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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원을 찾아서

나는 기원에 매료되어 한국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현재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가?’ 이런 것들이 내가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질문의 일부다. 흥미로운 인물ㆍ장소ㆍ사건 등에 관해 많은 것을 읽으면서 관계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지식 중 계보학ㆍ유전학ㆍ영장류학 등에도 관심이 갔다.
그러나 UCLA 학부 시절(1986~1991)에는 내가 원하던 것을 공부하기까지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미국 이민자인 나의 부모님으로서는 17세짜리가 ‘비실용적인’ 전공을 택하도록 놓아둔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나는 결국 아버지의 전공이던 공학을 선택했다. 이런 진로에 대해 곧 후회하게 된 나는 로스쿨에 진학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2학년 때 전공을 역사로 바꿨다. 그러던 중 3학년 때 존 던컨 교수님이 UCLA로 오셨다. 던컨 교수님은 재미있는 한국사 강의로 깊은 인상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역사학자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었다. 부모님을 설득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대학원에서 전공 분야를 놓고 고민해야 했다. 오랫동안 비잔틴 문명에 매력을 느꼈지만 교수님들의 조언과 교수직 전망 등은 내가 전근대 한국사회사를 선택하도록 이끌었다.
하버드에서의 대학원 과정(1991~1999)은 어학공부, 관련 자료의 학습과 독서, 전문적인 관계구축 등을 통해 한국사에 대해 좀 더 집중적으로 공부하게끔 했다. 지도교수이던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님은 나의 페이스에 따라 학업을 진척시킬 수 있게 해주었고, 논문의 주제를 선택하는 데 도와주셨다. 우리 모두 공통적으로 사회이동성과 가계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이 상당량의 조선시대 무과 명부를 소장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나는 조선 무관들의 정치적 위상과 사회적 배경에 관한 논문을 썼다. 흔히들 무관이 정치사회적 지위 면에서 문관보다 열등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논문을 쓰면서 양반에서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남자가 무반의 자리를 얻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후과정 펠로(1999~2000)를 거쳐 UC Irvine의 조교수(2000~)로 있으면서 나는 논문을 수정하여 조선 후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최근 출판한 저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조선 후기 무과 1600년~1894년>을 준비하면서 실시한 연구에서 나는 두 세기 이상 안보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나라의 수많은 남자에게 무과 급제가 뜻하는 게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양반 계층으로 새롭게 진입하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19세기에 접어들어 무과 제도는 무공을 세우고, 기존 사회질서를 흔들지 않으면서 지위상승을 꾀하고자 하는 열망에 대한 대중의 환상을 부채질했다.
수년간 내가 강의와 공부는 물론 연구활동을 하는 데 한국국제교류재단은 매우 귀중한 지원을 해주었다. 나는 재단으로부터 한국전공 대학원생 장학금(1994~1995, 1996~1999), 체한연구 펠로십(2001), 중진학자 연구지원금(2003~2004) 등을 받았다. 또한 재단은 나의 맥길대학교 객원 조교수직(1998~1999)과 UC Irvine 조교수직(TTP)도 지원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로서 나는 재단의 지원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현재 나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을 다루는 새로운 책을 준비 중이다. 양반도 아니고 상민도 아닌,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았던 중인(中人) 가문을 들여다봄으로써 한국의 근대성과 보통 사람들의 역사적 작용과 관련해 중인에 대한 틀에 박힌 이해를 좀 더 복잡다단하게 만들고자 한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은 그 무엇보다도 중인 지위의 본질, 친일 ‘부역’, 비엘리트 출신은 제외하는 현대의 계보학 담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 나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펠로십(2007~2008) 지원을 받아 한국에서 자료조사와 구술사 인터뷰를 실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유전학자들이 발견한 인류의 기원과 이동경로에 대한 흥미롭고 새로운 사실을 나의 역사 및 계보 연구에 좀 더 잘 반영할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다. 직계 남자 후손과 직계 여자 후손에게 각각 유전되는 Y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 DNA 돌연변이 유형에 대한 분석 덕택에 이제 우리는, 예를 들자면 동아시아인, 한국인 혹은 ‘밀양 박씨’라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며 혹은 무엇을 뜻하지 않는가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너무 이상적인 목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학자로서 나는, 좀 더 많은 지식이 우리를 분열시키게 놓아두기보다는 그것을 가지고 우리의 본질 그대로를 보아야만 한다는 인식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