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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 Power와 테러와의 전쟁

2001년 9ㆍ11 희생자를 추도하기 위해 열린 기도회에서 부시 대통령이 “범세계적 반테러 전쟁(Global War on Terrorism)”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후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은 ‘반테러 전쟁’이 되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가 사용해 온 이 ‘반테러 전쟁’이라는 용어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그 동안 ‘반테러 전쟁’, 즉 ‘전쟁(War)’이라는 용어가 알카에다 관련 테러 조직들의 논리를 강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슬람교도를 ‘지하드(聖戰)’에 참전하도록 한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반테러 전쟁’이라는 용어는 비록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될 시점에는, 국내외에 많은 지지를 이끌어내는데에는 유용하였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더 이상 적절한 용어가 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차기 정부는 ‘반테러 전쟁’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외교정책의 중심에 놓아서는 안된다.

부시 대통령이 남긴 것
일부 외교 전문가들은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부시 대통령의 외교전략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딕 체니 부통령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주민을 해방시키고 테러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던 정책으로 재평가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트루먼 행정부를 예로 들면서 한국전쟁(6ㆍ25)으로 임기 말년에 낮은 지지율에 시달렸지만 훗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을 수행했던 대통령으로 재평가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 트루먼 대통령이 재임기간에 마셜 플랜이나 나토(NATO)와 같은 주요 협력기구를 창설했던 공적을 간과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9ㆍ11사태를 계기로 강경외교정책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였다. 어떤 비전을 평가할 때에는 그 비전이 가지고 있는 이상과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역량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현가능한 비전이라는 것은 희망사항만을 열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희망사항과 실현가능성을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아보면,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대통령이었던 반면 우드로 윌슨은 국제연맹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제시하였으나 국내적 동의를 이루어내지 못하여 이상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이 모델로 삼은 루즈벨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달리 인내심을 갖고 국민에게 국가가 직면한 도전과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충분한 지지여론을 형성하여 자신이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의 기반으로 삼았다.

차기 대통령에 대한 조언
먼저, 차기 대통령은 내가 <지도적인 파워>(The Powers to Lead)라는 새 책에서 명명한 ‘종합적 사고력(contextual intelligence)’이 필요하다. 외교정책에 있어 종합적 사고력이란 일종의 직관적 판단능력으로 다양한 상황 속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전술을 배치함으로써 훌륭한 전략을 만들어내는 사고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외교정책의 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많은 미국 외교정책의 전문가들은 그동안 미국의 국제적 지위에 대해 잘못 이해해왔다. 20여 년 전 미국은 ‘제국적 과잉대응(imperial overstretch)’으로 인해 쇠퇴할 것이라고 예측되었으나 탈냉전 이후 미국은 단일 패권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일방주의’는 2001년 9ㆍ11사태 이후 부시 독트린을 만들어냈다. 이는 세계 정치의 권력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권력은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뜻한다. 예전에는 이런 능력이 주로 군사적 요인에서 나왔으나 오늘날에는 군사적, 경제적, 나아가 초국가적 요인에서 나온다.
종합적 사고력은 미국의 권력이 가진 힘과 한계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초강대국일 뿐 제국이나 패권국이 아니다. 세계 정치는 3가지 차원을 가지고 있다. 단극적 군사력, 다극적 경제관계, 혼란스럽게 분포되어 있는 초국가적 관계(기후변화, 불법 약품, 전염병, 테러리즘)가 그것이다. 군사력은 이제 국제 문제를 해결할 때 작은 역할을 할 뿐이다.
두번째는, 다음 대통령은 하드(경성ㆍhard)의 군사력과 소프트(연성ㆍsoft)의 매력을 통합하는 거대한 전략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경성의 군사력을 잘못 사용하여 더 많은 테러리스트를 양성한다면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현재 대중외교, 방송, 교환 프로그램, 개발원조, 재난원조 등의 연성 국력은 현재 정부기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을 뿐이다.
다음 대통령이 가져야 할 세 번째 상황적 지성의 특성은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다. 부시 대통령의 ‘반테러 전쟁’은 지나치게 중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우리는 중국과 인도의 부상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 세기 전, 영국은 미국의 부상을 통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독일의 부상은 견제하지 못해 두 번째 세계대전을 초래했다. 한편 한국의 민주적ㆍ경제적 발전은 아시아의 밝은 미래를 예상하게 해준다.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
부시 행정부는 테러에 대한 전쟁과 냉전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부시 대통령이 반테러 전쟁을 냉전처럼 오랫동안 진행될 전쟁으로 예측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우리가 냉전에서 경성의 무력 국력과 연성의 매력이 현명하게 결합된 전략으로 이겼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사회주의는 외부가 아닌 그 내부에서부터 붕괴되었다. 우리가 적을 살상하고 점령하는 수보다 더 많은 대중이 극단주의에 가담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 부시 행정부는 이를 인정했지만,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현대는 정보화 시대다. 정보화 시대에 승리는 군사력에서의 승리 못지않게 논리 측면에서의 승리가 중요하다. 이슬람 주류의 논리가 소수의 테러리스트를 이기지 못한다면 테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수 이슬람교도들의 마음을 끌 만한 연성 권력, 즉 ‘소프트 파워’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면에서 우리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부진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는 약해진 소프트 파워에 대한 논의가 미비하다. 오히려 미국보다는 유럽이나 중국, 인도 정치학계에서 논의가 활발하다. 미국에서는 9ㆍ11사태의 충격 때문에 ‘연성’의 감정이 들어설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우리가 다시 중도적 성향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길조를 보기도 했다.
물론 소프트 파워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이나 알 카에다와 상대하는 일은 결국 군사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목적은 소프트 파워로만 달성될 수 있다.

스마트 파워
미국은 어떻게 ‘스마트 파워(Smart Power)’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재발견 해야 한다. 이것이 스마트 파워 위원회의 결론이고 또한 국방부장관 로버트 게이츠의 결론이기도 하다. 스마트 파워란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하나로 묶는 전략을 짜는 능력’을 말한다. 최근 미국 외교정책은 과도하게 하드 파워에 치중해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소프트 파워를 축적하기 위한 외교와 국외 원조는 단기적으로 영향력을 보여주기 어렵다는 이유로 차감되거나 무시되었다. 또한 소프트 파워는 정부의 영역을 넘어 사적인 부문과 시민사회의 영역까지 포괄되기 때문에 정부가 소프트 파워를 통제하기는 어려웠다.
미국정부가 하드 파워에 치중하게 된 데는 9ㆍ11사태의 영향도 크다. 9ㆍ11사태 이후 미국은 희망과 긍정이라는 가치를 전파하기보다는 공포와 분노를 표출해왔다. 이제 미국은 세계적으로 공공재 확산에 힘쓰는 스마트 파워가 되어야 한다.
스마트 파워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미국정부의 조직ㆍ조정ㆍ예산 등 모든 부분에서 전략적 재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이제는 미국이 공포심보다는 희망을 수출해야 할 때가 왔다. 이것이 차기 대통령이 주목해야 할 의제다.

스마트 파워 위원회는 미국이 외교정책을 수행할 때 집중해야 할 다섯 가지 주요 영역을 선정하였다

• 동맹, 파트너십, 다자기구(alliance, partnership and multilateral institutions)의 회복
• 세계 개발(global development)
•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 경제통합
•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