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2008년 재단 신규 직원 해외사무소 방문

데이트 약속이 잡힌 날보다 더 조심스럽게 커튼을 살짝 들추어본다. 12층 숙소에서 내려다 본 베이징의 아침은 맑음. 햇볕은 갓 지어올린 고층 빌딩의 꼭대기에도, 그 옆에 무너질 듯 서 있는 연립주택의 앞마당에도 골고루 내리쬐고 있었다. 그래, 오늘은 제대로 된 중국을 볼 수 있겠구나.



물질과 속도를 강조하는 시대의 거센 외압은 이미 고대 제국의 역사적 위엄과 문화적 높이를 평가절하시켜버렸지만, 수치로 확인하는 현재의 성장세만 놓고 보더라도 중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연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임에 틀림없다. 출발하는 날 이른 새벽, 침대에 매몰차게 등을 돌릴 수 있었던 것도 대륙에 첫발을 내딛고 그들을 만나게 된다는 기대와 설렘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베이징에 도착한 날 해는 구름에 거의 가려져 있었다. 휴일을 반납하고 직접 공항까지 마중 나오신 송중석 베이징사무소 소장님의 얼굴에서만 밝은 웃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며 둘러본 베이징은 자전거 물결과 태극권을 수련하는 노인을 대신해 시원하게 뻗은 도로와 신식 건물의 상점들이 여느 국가의 대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현지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베이징올림픽을 대비하여 최근 몇 년 사이 버스와 택시가 고급 모델로 교체되었고 걸인들과 노점상이 일제히 정리되는 한편, 고층 건물의 신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송 소장님의 말씀대로 최소한 베이징은 이미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물질적으로 발전해 있었던 것이다.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찾은 곳은 누가 뭐래도 쯔진청이다. 역사적 무게가 너무도 컸던 것일까, 톈안먼 광장은 1989년 그날의 함성을 떠올리기에는 예상외로 아담한(?) 규모였으나 쯔진청을 병풍삼아 당당히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쯔진청 내부의 건축물들은 다른 듯 같은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한 걸음씩 걷다 보니 세상의 중심임을 칭하던 자존심이 느껴지는 듯하다. 우리 정서에는 역시 경복궁 근정전의 멋들어진 팔작지붕이 익숙하지만, 황금색의 다양한 지붕 모양들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음으로 방문한 톈탄 공원은 하늘에 제를 올리던 세계 최대의 제전으로 사정상 먼발치서 바라보았는데도 하늘을 숭배하고 하늘과 통하고자 했던 중국인들의 열망이 느껴졌다.
화창한 날씨에 기대를 품고 출발했던 둘째 날은 재단의 현지 사무소와 주중대사관, 베이징대학교, 현대국제관계연구원, 그리고 중앙민족대학교를 차례로 방문하였다. 예상한 것보다 열악한 한국어 관련기관들의 현황을 눈으로 확인하고, 실용학문 내지는 변방 지역학의 하나로 연구되는 현지 사정을 인지하게 되자 다양한 구조적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시는 현지 사무소의 노고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날이 저물며 이어진 현지 재단 펠로 교수들과의 만찬간담회에서는 재단의 펠로 지원사업의 중요성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나눈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중국 내 한국학 발전을 위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점을 절감한 뜻 깊은 자리였다.
연수의 마지막 날, 중국사회과학원으로 향하는 길가에 즐비한 명품 판매점과 패스트푸드점, 그리고 최신 일제 자동차의 거리 광고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던 사회과학원 측 설명은 한국어 연구가 아태지역 혹은 소수 지역 언어의 일부로 연구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역시 한계를 체감하였다. 한편 인민외교학회에서는 양 단체를 상호 소개하고 이해를 증진시키는 뜻있는 만남이 있었고, 젊은 회원들과 오찬간담회를 통해 서로 비슷한 업무상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문화적 차이에서 생기는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사흘을 돌이켜보니, 내내 구름과 안개에 가린 흐린 날씨의 중국을 본 듯한 느낌이다. 짧은 기간에 한 도시의 극히 일부 지역에서 고작 수십 명의 사람만을 만나고 대륙과 중국인을 논한다는 것은 당찮은 일이지만, 민중이 향유하는 문화의 향기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는 아쉬움은 그만두더라도 당장 가야 할 길이 뿌옇게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답답함은 아마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더 많이 만나고 연구하면 안개와 구름을 걷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되었든 언젠가 중국을 만나고 떠날 때에 “맑은 베이징의 하늘을 보았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