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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폐기, 단기적으로는 하드 파워가 효과”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소프트 파워’ 신봉자다. 외교정책에서 군사ㆍ경제 같은 ‘하드 파워’ 못지않게 가치와 문화 같은 소프트 파워가 중요하다는 견해다. 전략문제 전문가인 그가 서울을 방문했다.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의 사회로 임성준 국제교류재단 이사장과 함께 이명박 정부에서의 한ㆍ미 관계와 소프트 파워의 역할에 대해 좌담했다.



● 김영희(이하 김) |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데는 그때 한국사회의 반미감정이 한몫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5년 동안 한ㆍ미 관계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한ㆍ미 관계에 큰 변화가 올 것 같습니까.
◆ 조셉 나이(이하 나이) | 취임하기 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해보니 한ㆍ미 관계 강화에 외교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더군요. 중국과 일본 같은 대국 사이에 끼인 한국은 멀리 있는 나라와 튼튼한 동맹관계를 갖는 게 좋습니다.
● 김 | 미국의 11월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한ㆍ미 안보관계에 영향이 있을까요.
◆ 나이 |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 김 | 선두를 달리는 대선 후보들의 북한 핵에 대한 입장은 어떻습니까.
◆ 나이 |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도 핵 확산을 막겠다는 입장이 분명해요. 후보 간 또는 정당 간 입장 차이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 임성준(이하 임) | 클린턴과 오바마는 북핵문제를 6자 회담을 통해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부시 1기 정부 때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겁니다.
● 김 | 이라크에서 외교적 점수를 많이 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기 만료 전에 외교적 업적을 하나 올릴 욕심에서 북한에 핵 비확산 약속만 받고는 완전한 비핵화 전 단계에서 핵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결론을 내고 북한 이름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 공산국과의 교역금지법 적용을 끝내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 나이 | 6자 회담 참가국들과 합의 없이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한국과 일본ㆍ중국이 동의한다면 가능하겠지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는 최종 목표지만 당장의 목표는 북한이 핵무기를 더 개발하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최종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전술적인 중간 목표를 세우고 그것들을 달성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6자 회담 당사국들을 이간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좌절시키도록 조율하는 겁니다.
● 김 | 2004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부시 대통령이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모여 평화선언 같은 데 함께 서명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죠.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을 포함한 4개국 정상들의 평화선언을 원합니다. 북한의 핵 폐기가 그런 평화선언의 선행 조건이라는 주장도 가능한 동시에 4개국의 정치적인 평화선언이 북한의 핵 폐기를 촉진할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까요.
◆ 나이 | 한국과 중국, 일본이 동의하지 않는 한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 임 | 핵 폐기에 완전히 합의하지 않고는 평화 선언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 김 | 2월 12일 강연에서 나이 박사는 김정일 위원장이 미국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쉽사리 핵무기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근과 채찍을 함께 써야 한다는 말입니까.
◆ 나이 | 단기적으로 북한에 소프트 파워를 사용하는 것은 별 성과가 없고 경제 제재라는 하드 파워가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장기적으로, 예를 들어 10년 정도의 기간이라면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북한 주민이 남한의 높은 생활의 질을 매력적으로 느낀다면 북한에 변화가 올 수 있어요.
● 김 | 나이 박사는 또 중국의 경제라는 하드 파워와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이용해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거기에는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문제가 빠져 있지 않습니까.
◆ 나이 | 김정일 위원장의 딜레마죠. 개방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개방하면 체제 유지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 임 |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한 것은 북한의 단계적 변화를 유도하고 붕괴를 막아 보자는 의도에서였어요. 북한에게 선택에 따른 결과와 혜택을 분명히 알려줘야 합니다. 핵 폐기를 하면 어떤 혜택이 있을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얘기죠.
● 김 | 나이 박사의 지적대로 영어가 인터넷 웹사이트 콘텐츠의 80%를 차지합니다. 한국에선 영어교육 문제로 논의가 분분합니다. 영어 하나만으로도 미국은 소프트 파워 초강국의 지위를 영원히 누리는 것 아닙니까.
◆ 나이 | 장기적으로 미국 소프트 파워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소프트 파워는 정책ㆍ문화나 가치에서 나오지요. 평이 좋지 않은 미국의 현재 정책은 바뀔 수 있지만 문화나 가치는 바꾸기 힘듭니다.
영어가 미국 소프트 파워의 토대이긴 하지만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매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요. 중국의 경우 중국어가 널리 보급돼도 영화와 언론ㆍ인터넷에 대한 검열이 계속되는 한 매력적인 콘텐츠가 나올 수 없어요. 풍부한 콘텐츠를 위해서는 열린 정치문화가 중요합니다.
■ 임 |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오래갈 것으로 봅니다. 세계에 대해 미국이 매력적이기 때문이죠.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가치와 기회, 교육,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많은 이민자를 끌어모으고 있지 않습니까.
● 김 | 나이 박사는 2005년 중국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부상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미국과 이웃 국가에 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중국이 일단 경제적인 강국이 되고 나면 정치적ㆍ군사적인 강국의 지위를 탐낼 때 문제가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 나이 | 1980년대 중반 내가 클린턴 정부 국방차관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국방정책을 수립할 때 이 문제가 대두했습니다. 그때 중국을 봉쇄하는 정책을 쓰자는 주장이 나왔는데 그렇게 하면 바로 중국을 적으로 만들게 되었어요. 오히려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의 책임 있는 이해당사국으로 참여하게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중국이 군사적인 팽창주의를 추구할 경우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두는 것도 필요해요. 한ㆍ미 동맹과 미ㆍ일 동맹이 그런 보험수단입니다.
● 김 | 중국이 블랙홀처럼 석유 같은 세계의 자원을 빨아들여 다른 나라들의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 나이 | 석유는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이 그걸 많이 쓴다고 해서 세계 경제가 심각하게 영향을 받진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오히려 중국이 쓰는 에너지보다는 중국이 무엇을 배출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청정석탄과 에너지 기술 등 중국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걸 선진국이 지원해야 합니다.
● 김 | 나이 박사는 6자 회담을 동북아시아 안보를 논의하는 다자적인 틀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구상을 역설하는 걸로 압니다.
◆ 나이 | 6자 회담을 확대ㆍ발전시켜 동북아시아 안보체제를 논의하는 장으로 만드는 게 매우 바람직해요. 북핵문제 해결 말고도 군사교류나 정보교류 같은 데 기여할 여지가 큽니다.
● 김 |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어디서 나옵니까.
◆ 나이 | 한류, 한국의 뛰어난 정보기술(IT)과 하이테크 상품,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발전시킨 성과가 다른 나라들에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대외 원조와 평화유지군 파견에 적극 참여하는 정책이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 김 | 나이 박사의 최근 저서 <지도적인 파워>(The Powers to Lead)에서 지도자는 콘텍스트 안에서 사물을 이해하는 ‘종합적 사고력(contextual intelligence)’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는 그런 사고력을 가졌는데 지금의 부시 대통령에게는 종합적 사고력이 모자란다는 지적은 재미있습니다. 미국의 대선후보 세 사람 중에서는 누가 그런 기준에 가장 가깝습니까.
◆ 나이 | 세 사람 모두 그 방면의 점수는 좋아요. 매케인은 외교적 경험과 상원의원으로서의 경륜도 많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역시 퍼스트레이디와 상원의원으로서 많은 외교적 경험을 쌓아왔고 외국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요. 오바마는 경력은 상대적으로 짧지만 할머니가 아직 케냐에 살고 있고, 어릴 때 양아버지와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산 특이한 경험이 있습니다. 과거 어느 대선에서도 미국의 대외적 이미지에 대해 이렇게 넓은 이해의 폭을 갖춘 후보가 없었습니다.
● 김 | 미국 의회의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전망은 어떻습니까.
◆ 나이 | 대선과 의회선거를 앞둔 지금은 FTA를 비준받기에 최악의 시기죠. 특히 노조와 농업 분야의 표에 많이 의존하는 민주당 후보들은 FTA에 부정적인 발언을 할 수밖에 없어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레임덕 회기’에 재빨리 처리하는 것이 최선일 겁니다.
● 김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조셉 나이(Joseph Nye)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겸 국제정치학과 교수.
미 프린스턴대(학사), 영국 옥스퍼드대(석사), 하버드대(박사) 졸업.
미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국가정보위원회 회장을 지냈다. 군사력ㆍ경제력 같은 ‘하드 파워’와 대치되는 문화ㆍ가치ㆍ대외원조 등을 개념화한 ‘소프트 파워’의 창시자다.




임성준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주캐나다 대사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 외교부미주국장을 역임한 정통 외교부관료출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에서 수료했다. 지난해 2월부터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으로 해외 학술ㆍ문화 교류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