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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통해 인식하는 한국

내가 한국에 오기전 업무 때문에 최근에 개설된 상트 페테르부르크시 소재 대한민국 명예총영사관에 갔을 때 명예영사를 직접 만나 점심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명예영사관이 앞으로 한·러 관계를 더욱 더 심도 있게 발전시키기 위해 러시아 서북지역에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또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였다. 영사님은 내가 곧 한국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 서울에 있는 출판사들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또 최근에 어떤 책들이 가장 많이 번역되어 있고 어떤 문학작품들이 스테디셀러인지 조사해 보라는 제의를 했다. 앞으로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한국문학을 본격적으로 번역하여 러시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기 때문이라고 영사님은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주 반가웠다. 이제부터는 이곳에서도 한국문학을 본격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전에도 약간의 한국문학 작품 번역본이나 한국문화에 관한 저서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대부분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나 전문가를 대상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에 일반 러시아 독자들은 한국문학 작품을 구해보기가 힘든 일이었다. 내 주변에는 독서를 즐기는 친구들 몇 명이 있는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서점에서 일본이나 중국의 문학작품들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한국소설이나 시집은 구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고 호소를 하곤 하였다.

여태까지 한국에 관하여 러시아 일반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김치’, ‘태권도’, ‘Sam-sung’, ‘LG’와 같은 것이고, 한국문학이나 예술에 대하여는 인식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러 수교 후 한국에 대하여 이전보다 훨씬 많이 안다고 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나 주재원들 덕분에 한국문학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많은 러시아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영화제나 미술전시회도 구경하게 되었고 때로는 한국에서 온 전통무용단의 공연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동시에 교육분야에서는 여러 러시아 고등교육기관과 한국의 대학들이 자매결연을 맺게 되었고 학문분야에서는 한·러 학술대회나 세미나가 열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문화 교류의 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한국문학을 관심 있게 읽는 경우는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양국간의 관계를 더욱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로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서로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문화라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경험과 관념, 전통과 풍습, 사고방식과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럼, 한국인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나는 그 나라의 문학작품을 한 권이라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모든 대답이 문학 작품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독자가 한국 고전소설이나 현대소설을 읽게 되면 그 작품 속에서 진정한 한국인의 모습이 보이게 될 것이다. 한국문화나 한국인을 제대로 보게 되면 서로의 의사소통도 빨라지고 서로의 마음도 더욱 더 쉽게 통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 보면 그 동안 가져왔던 서로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가 있고 상호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국과 러시아도 어차피 가까운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양국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여러 분야에 걸쳐 두 나라의 관계를 증진시키도록 공동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러시아의 한국 근대문학 번역의 현황과 전망을 하나의 예로서 살펴보고자 한다.

한·러 양국은 과거 19세기말부터 정치적 문학적 교류를 시작했다. 특히 문학사에 있어서 한국문학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던 러시아문학이 이러한 교류의 사실을 잘 입증해주고 있다. 반대로 한국 고유의 특색을 갖추고 있는 좬춘향전좭, 좬심청전좭, 좬흥부전좭, 좬홍길동전좭 등 고전소설이 러시아어로 번역되었고, 한국의 문화와 문학을 알리는 데 한 몫을 차지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냉전체제 때문에 러시아와 한국은 국교단절로 교류가 소원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속적인 연구를 해왔다. 그 동안 러시아에서 한국의 고전문학과 중세문학에 대한 소개와 번역은 대부분 학술적인 연구자료로 소개되어왔다. 하지만 한국의 근·현대문학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고, 실제 한국 근·현대작품의 번역 출판도 몇 권의 한국명작 번역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빈약한 실정이다. 다행히 한·러 양국 관계는 1990년 수교 후 다시 회복되었다. 이제 한·러 양국은 서로의 문화에 대해 충분히 인식할 기회가 마련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문학의 매개적인 역할은 아주 중요하고 생각한다.

이제서야 러시아에서 한국 근·현대 작품을 읽게 되었고 한국 현대문학사에 관한 수많은 연구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교환학생으로서 한국유학이 가능해졌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연구자료를 직접 수집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필자도 후자의 기회를 이용해서 소설가 김동인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한국유학을 하게 되었다. 1992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어학과에 들어가면서 한국어를 처음 배웠고 한국문화와 문학에 대한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로 그때 한국유학생의 소개로 김동인의 좬감자좭라는 작품을 읽게 되었고 그것이 김동인이라는 작가와의 첫 만남이 되었다. 특히 김동인은 20-30년대 근대작가이기 때문에 필자가 더욱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로 인해 김동인의 문학세계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한국문학사를 연구하는 박사과정생으로서 필자는 한국문학 작품을 읽으며 많은 감명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 김동인 작품을 러시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김동인 단편소설 좬감자좭, 좬광염소나타좭 그리고 좬광화사좭를 러시아어로 번역했고 앞으로도 20-30년대 작가 작품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제의를 하자면 여태까지 거의 없었던 일이지만 한국문학연구자와 러시아 한국학자가 하나의 팀을 이루어 함께 한국 현대소설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번역의 전문성도 높이고 한국문학의 국제화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만 이런 작업을 하는 데 아래와 같은 기본적인 원칙을 고려하면 이 작업이 좋은 성과를 이룰 수가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1) 번역할 문학작품 선택
(2) 번역의 전문성과 수준
(3) 질적인 주석

(1)의 경우에는 한국의 대표작은 물론이고 한국문화를 충분히 알릴 수 있는 작품을 골라야 하고, (2)의 경우에는 그 작가의 독특한 문체를 유지하며 번역하면서도 러시아 독자가 번역한 책을 읽을 때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3)의 경우에는 독자가 그 작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그 작품에 대한 배경 설명도 덧붙이고 한국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서양식 교육을 받은 러시아 독자들이 한국문화를 제대로 인식할 수가 있고 한국 문학의 미와 매력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의 문화와 문학을 알리고 명작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매우 필요한 작업이다. 양국의 교류가 통상협정에 그치지 않고 번역을 통한 민간의 문학 교류 차원으로 넓혀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