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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과 한국음식문화의 변화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발효음식인‘김치’를 한국적인 것의 정수로 여긴다. 거의 매 끼니 마다 따라 나오는 김치는 쌀 만큼이나 중요한 주식이라 할 만하다. 인류학자인 국민대 한경구 박사는 김치가 한국민의 성격을 특히 잘 투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춧가루에서 나오는 김치의 강렬한 붉은 색과 매운 맛은 힘과 남성적인 것을 상징한다. 단순하고 소박하며 비싸지도 않은 채소음식인 김치는 게으르고 살찐 고양이들이 큼직한 고기 덩어리를 놓고 싸움하는 세상에서 힘 없는 약자처럼 보이지만 전력투구하여 우뚝 일어서고야 마는 한국인의 자화상과도 잘 들어맞는다. (Walraven 2002)

궁중음식의 전통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
한국의 음식문화를 상징하는 김치의 위상이 위협받는 일은 좀처럼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최근 추세를 보면 현대 한국인들이 그들의 또 다른 요리 유산인 여성적이고 정교한 조선시대 궁중음식의 전통을 적극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방송 텔레비전에서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기 시작한 작년 여름 이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세련된 궁중요리와 가까워졌다. ‘대장금’은 16세기 초 조선시대 궁중 요리사이자 임금의 주치의였던 전설적인 여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로서 드라마 전반에 걸쳐 요리하는 장면이 눈에 띄게 묘사되고 있다. 이 연속극은 작년 10월말 시청률이 거의 50%에 달하면서 한국 텔레비전 방송사상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궁중음식의 전통 계승과 발전을 위한 노력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은 오랫동안 한국 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었다. ‘대장금’에서 요리와 관련된 부분을 감수한 전문가는 바로 한복려씨로 궁중음식 부문 인간문화재 황혜성씨의 장녀이다.

인간문화재 황혜성씨는 비록 궁중 요리사는 아니었지만 조선의 마지막 주방 상궁 한희순으로부터 수십년간 궁중요리를 배웠다. 1972년 한희순 상궁이 사망한 이래 황혜성씨는 국내외에서 한국 궁중음식의 최고 권위자이자 사절로 활약했다. 그녀는 수많은 요리책을 저술했으며 요리강습, 전시회 등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궁중음식을 널리 알리고 있는 ‘궁중음식연구원’을 설립했다. 또한 궁중음식 전문점 ‘지화자’를 열어 말 그대로 과거 한국 궁중의 풍미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궁중음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확실한 인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전까지 한국인들 사이에 비교적 덜 알려져 있었고 오직 요리에 특별한 취미가 있는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감탄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대장금’의 인기에 힘입어 궁중음식의 특별함은 전국적인 경이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의 가정주부들이 당장 궁중요리를 식탁에 차려낼 것 같지는 않지만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은 분명 대한민국의 음식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아니 실제로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장금’에서 요리하는 장면을 책임지고 있는 바로 그 한복려씨는 지난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회담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위해 주최한 연회를 총지휘하기도 했다.

대중매체로 인한 궁중음식의 대중화 현상
드라마 ‘대장금’은 지난 20년간 계속되어온 맛의 고급화를 가속시켰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음식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한 데에는 확실히 경제적 번영이 큰 기여를 한 것 같다. 사회 문제였던 식량공급의 부족은 1980년대 이래 완전히 사라졌으며, 전에는 특별하게 여겨졌던 종류의 음식도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이 최근 경기불황을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과거에는 부유층만이 부담할 수 있었던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도시지역의 경우 세계의 요리경향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쟁시절과 종전 이후 제한된 양의 식량을 배급받던 일은 나이 지긋한 사람들만의 오래된 추억거리가 되었으며, 한국역사상 처음으로 사회경제적 지위는 달라도 모든 이들의 일상 식단은 기본적으로 같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조선의 궁중음식이라는 세련된 전통의 모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드라마 ‘대장금’ 성공의 직접적인 결과로 궁중음식에 대한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2003년 11월 둘째 주말, 서울의 한 백화점은 궁중음식 열풍에 부응하여 지하 식품매장에서 ‘지화자’의 메뉴 중 하나를 중심으로 궁중음식에 관한 소규모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 몇 주 전인 9월의 마지막 주말 덕수궁에서는 궁중에서 김치 담그는 법, 궁중과자 등을 소개하는 더욱 큰 규모의 전시회가 열렸다. 또한 한국의 항공사는 올해 초부터 일등석 승객에게 궁중요리를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궁중음식이 상품화되어 고급 슈퍼마켓의 판매대에 등장하거나 우편주문으로 판매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인 것 같다. 이미 작년 11월에는 궁중요리를 테마로 하는 식품 광고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궁중음식 열풍 계속될 것인가
이런 현상은 금방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한국인들의 식습관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시 세워진’ 전통이 진정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번 기고문과 같은 형식의 글 속에서 이런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궁중음식의 부활은 현대 한국인들에게 그들의 소비 행태에 맞는 재미난 방식으로 과거를 탐험해보는 기회를 주고 있으며 동시에 프랑스의 누벨 퀴진이나 일본의 카이세키 료리에 비길만한 자랑스러운 고급 요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최근 불고 있는 궁중음식 열풍은 일반적인 식습관의 본질에 대해서도 놀라운 점을 시사하고 있다. ‘전통’ 음식의 여러 특징 중에는 현대에 도입되거나 발명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디를 보더라도 음식문화는 항상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사회, 특히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 음식과 관련된 습관과 신화가 매일 매일 만들어지고 있고 또 변하고 있다. 2003년 가을에 한국의 식습관 변화를 연구한 필자의 현지조사는 시기적으로 완벽했던 것 같다.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이 전국적으로 부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글을 쓰는데 필요한 자료수집을 도와준 아키코 모리야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참고문헌
Boudewijn C.A. Walraven, ‘Bardot soup and Confucians’ meat: Food and Korean identity in global context’ in K. Cwiertka with B. Walraven (eds) Asian Food: The Global and the Local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