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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찬사를 받은 한국 성악의 ‛무게’

남성 합창단의 전설로 불리는 ‘돈 코사크 합창단’의 나라 러시아. 그곳에서 ‘이 마에스트리’ 합창단은 한국의 혼을 담은 목소리로 러시아인을 감동시켰다. 러시아인의 따뜻한 반응을 얻으며 한발 더 앞서 나아간 ‘이 마에스트리’의 행보가 그 어느 때보다 힘차다

지난 7월 2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여기는 한국 날씨가 재방송되는 곳이에요.” 러시아 동쪽 땅에 사는 한 한국인은 편서풍을타고 한국에서 날아온 비구름을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했다. 며칠 전 한국을 한바탕 적시고 이곳으로 옮겨온 소나기였다.



낯선 땅, 낯선 상황에서 오직 실력으로 승부한 무대
‘이 마에스트리’ 합창단 단원 60명은 하루 전 좀 더 동쪽에서 공연을 마쳤다. 이들은 항구 도시 나호드카가 이날 “물에 잠긴 듯했다”고 했다. 이들이 연주한 DCM 홀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부족한 전력으로 조명도 충분치 않을 정도였고, 교통도 편안함을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터다.
‘이 마에스트리’가 넘어야 할 하나의 고비였다. 홍수로 불어난 듯한 낯선 도시에서 처음 얼굴을 맞대는 러시아 청중과, 완벽하지 못한 공연장.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을까?
같은 달 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이곳 필하모니아 홀의 울림은 비교적 건조한 편이었다. 무대 뒤쪽에 소리를 반사하는 판을 세웠지만 우람한 목청이 객석 구석구석에 꽂히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무대도 좁았다. 성악가들은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촘촘히 섰다.
700석 규모의 필 하모니아 홀 90% 이상은 러시아 현지 청중이 메웠다. 최고 500루블(약 1만5000원)씩 직접 티켓을 구매한 사람들이다. 생경한 도시의 청중 앞에서 단원들의 긴장감은 얼마나 높았을까? 피아니스트의 독주로 첫 곡, 리스트가 편곡한 베르디의 ‘리골레토’가 시작됐다. 음악의 비장함이 천천히 연주장에 스며들었다. 완벽하지 못한 조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이들이 기댈 것은 실력과 경험뿐이었다.

60개의 인생이 만들어낸 감동의 하모니
2006년 창단한 ‘이 마에스트리’는 ‘한창때의 성악가 군단’을 꿈꾸는 합창단이다. 30~40대의 전성기 성악가들이 뿜어내는 목소리는 오케스트라가 됐다. ‘폭포소리의 오케스트라’로 네 번의 정기 연주회를 마쳤고, 지난해 7월 일본 도쿄의 산토리 홀에서도 공연했다. 일본 음악 잡지 <음악의 벗> 평론가인 노리코 고노는 이들에게 “합창단이라기보다는 소리를 실험하는 ‘보이스 오케스트라’ ”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들을 표현하는 수많은 수식어를 실감케 한 것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아무도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불렀을 때다. 성악가 한 명 한 명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소리를 냈다. 그 유명한 “승리(Vincero)”를 외치는 부분에서 단원들은 크고 튼튼한 소리 외의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었다. 바리톤이 테너를 뛰어넘고 베이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꽂히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남성 성악가에게는 하나의 유토피아였으리라.
더욱 중요한 것은 각자의 소리를 고르게 합하는 방법이었다. 각자의 소리를 마음껏 지르면서도 어느 하나 삐죽 튀어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성악가들의 ‘경험’이다. 옆 사람의 소리를 듣고, 개인의 실력 발휘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 오랜 시간 여러 번 무대에 선 음악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객석에 앉은 나는 단원 개개인이 거쳐왔을 시간을 헤아려봤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씩 노래를 붙들었을 사람들이다. 이 긴 시간 동안 음악만 생각하며 살아온 60명의 인생이 있었다. 해외에서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경력을 더해봤다. 총 60회 이상이었다. 단원들은 각기 다른 10여 개의 도시에서 공부한 경력이 있고, 모두 합해 수백 편의 오페라에 출연했다. 이 숫자들은 곧 한국 성악이 세계 무대에서 갖는 무게감이기도 하다.
두터운 경력과 경험이 블라디보스토크의 무대를 압도하는 사이, 연주곡목은 한국 가곡으로 넘어갔다. 진규영의‘아리랑’과 ‘뱃노래’는 러시아청중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들에게 한국 특유의 리듬과 힘이 전달되었다.



한국의 목소리를 따뜻하게 품어준 ‘돈 코사크의 나라’
네 번의 앙코르가 이어졌다. 대부분의 청중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한국과 유럽의 음악을 오가며 청중의 정서에 가깝게 다가간 덕분이었다. 한 이름 모를 관객은 무대 위로 올라와 단원 몇 명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공연을 마친 단원들이 이색적 경험으로 꼽은 것도 바로 이 꽃다발이다. “낯선 한국의 공연 단체에게 꽃다발을 주는 문화가 좋았다”는 것이다. 청중이 다 함께 리듬을 맞춰 치는 ‘전차 박수’ 또한 러시아 청중의 특징으로, 연주자들을 흥분케 했다.
나호드카와 블라디보스토크는 음악의 중심지는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이 마에스트리’는 특별한 연관성이 있다. 러시아는 남성 합창단의 전설로 불리는 ‘돈 코사크 합창단’의 나라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터키의 포로가 된 러시아 병사들이 비참한 생활을 이기기 위해 조직했던 합창단이다. 전쟁이 끝나고도 특유의 힘과 절도 있는 노래로 러시아 민요를 세계에 퍼뜨렸다.
러시아 음악의 ‘심장부’까지는 아직 가지 못했다. 하지만 ‘돈 코사크의 나라’에서 따뜻한 반응을 얻었다는 점에서 ‘이 마에스트리’는 또 한발 나아갔다. 그레고리안 찬트에서 오페라 아리아까지, 매년 변화하는 레퍼토리를 잘 이어나간다면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자리 잡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법하다. 이들은 내년 일본에서 또 한번 공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국 성악가들이 ‘실력의 무게’를 재어볼 진짜 무대는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