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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문화의 진수, 진귀한 역사적 유물을 전시하다

지난 9월 10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 LACMA)이 해머 빌딩 광장층에 새롭게 단장한 한국실(약 6,700ft2, 약 622m2)을 선보였다. 21세기 국제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의 전통 문화를 알리는 소중한 공간, LACMA의 힘찬 행보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LACMA의 새 한국 미술 전시실은 주제별로 구성되었다. 작품들은 각각의 주제에 따라 전시되며, 18세기부터 19세기 조선시대 여성과 남성 문화, 한국회화에 나타난 표현과 재현, 한국 불교 미술에서의 깨달음과 구현, 한국도자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전시작품은 5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대표 작품 100여점으로 불교미술, 문인화, 도자기, 목칠공예, 회화, 조각 등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까지 망라하는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LACMA는 작품 수집과 소장의 역사가 비교적 짧지만 다양하고 폭넓은 한국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서구 미술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뛰어난 소장품으로 해외에서 한국의 미술과 문화를 한층 심도있게 보여주고자 한다.



신구(新舊), 시공(時空)을 넘나드는 기행
약 2년이 걸린 준비 과정에서 한국실 담당자들은 두 가지 주요 문제를 중점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했다. 첫째는 템포 & 토포스 (Tempo & Topos), 즉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였다. 이 주요 관심사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전통 예술을 21세기 로스앤젤레스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프로젝트 담당자들이 추구한 방향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메우는 것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에 맞춰 LACMA 전시 디자인 팀은 한국의 미감을 유지하면서도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전시 공간을 만들고자 고심하였다. 그래서 한국 전통 작품의 전시를 위해 LACMA는 특별히 한국에 있는< 원오원 건축사무소(대표 최욱) >에 전시케이스 기본 디자인을 의뢰하였다. 이 디자인은 현대적이지만 한국 전통 소재를 재료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온돌에 사용하던 장판지를 케이스 하단 외벽에, 전통가옥의 창문과 벽지로 사용하던 창호지를 케이스 내부에 사용했으며, 전체적인 비례도 한국 전통가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하였다.
두 번째로 고심한 사안은 전시물이나 특정 설치물의 배경, 또는 이를 둘러싼 맥락을 적절히 제시하여 관람객들이 그 유물을 둘러싼 심층적인 사회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백자 묘지명은 무덤의 부장품으로, 원래 있었던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묘지명 두 점을 담아있었던 도자기항아리 안에 넣어서 전시하고 있다. 또 목칠 아미타불은 여러 복장물과 함께 산스크리트, 한문, 한글 등 각각 3개 언어로 된 불경을 주위에 겹겹이 쌓아 전시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불상이 불교의 가르침을 구현하는 통합체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전시실 출구 근처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는 한국 도자기 파편들이 혁신적으로 설치되었는데 이 또한 작품들의 맥락을 고려하여 준비된 것이다. 총 850점 중 121점의 사금파리는 그 출토지역에 따라 한반도의 팔도별로 구분되어 한 벽면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이 여덟 군데의 지리적인 구분은 뒤에서 은은하게 나오는 조명을 받은 한지의 여덟 가지 색과 좌측 벽에 나란히 제시된 지도의 색을 동시에 매치하여 확인할 수 있게끔 하였다. 일제시기에 한반도에 거주한 일본인 형제 (아사카와 노리타카, 아사카와다쿠미)가 수집한 이 도편 컬렉션은 지금은 확인할 수 없거나 사라진 가마터를 증명하는 등 여러 면에서 학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실험적인 전시기법은 한국 도자의 기술과 양식, 재료의 다양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국미술실은 상설전시실로는 처음으로 영상과 문자를 함께 활용한 전시영상물을 사용해 전시작품과 주제를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총 9편의 영상은 불교미술, 한국도자 등 전시실 주제 또는 특별한 작품분야나 전시작품에 관한 것으로, 이미지 중심으로 구성된 영상에 짧은 설명을 덧붙여 관람객들이 언제 영상을 보더라도 내용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영상물은 주제별로 구성된 독창적인 전시공간과 함께 한국미술실을 찾는 다양한 관람객들이 한국 미술과 문화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전시영상패널을 포함한 새로운 전시주제와 독특한 전시환경은 다양한 관람객들이 한국의 예술과 문화를 다각적으로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전시공간과 유물들을 통한 기행
새로운 LACMA의 한국실은 5개의 전시실과 출입구 근처의 작은 공간 두 곳, 입구 로비, 그리고 동아시아 그림을 직접 그려볼 수 있는 어린이 문화 체험실로 구성되어 있다. 낙선재의 흑백 사진을 설치한 벽면은 한국실 입구 로비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낙선재는 서울의 창덕궁 안에 있는 건물로 독특하게 궁궐 건물임에도 단청이 없다. 이러한 낙선재의 흑백의 이미지는 시공을 초월하는 향수를 느끼게 하며 한국적인 건축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앙전시실에서는 흥미로운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들을 순환 전시하려고 계획하였다. 이번에는 LACMA의 한국미술 상설 전시실의 재개관을 기념하여 한국에서 미륵보살반가사유상(6세기 후반 제작, 국보 78호)을 대여받아 2009년 12월 13일까지 전시하고 있다. 이 국보 78호의 전시 이후에도 흥미롭고 다양한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유물들을 한국이나 세계 각국으로부터 대여해 한국 미술의 다양한 측면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중앙의 전시실은 한국실 로비에서도 바로 관람할 수도 있지만 그곳의 전시물들을 더욱 가까이 세심히 감상하려면 다른 전시실을 통과하도록 되어있다. 우선 입구에서 전시실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관람객들이 한국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의 고지도를 전시하고 있다. 고지도가 있는 곳을 지나면 회화실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병풍, 화첩, 두루마리, 족자 등 다양한 형식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또 한 벽면은 초상화만을 걸고 있는데, 관복을 입은 관리, 평상복 차림의 학자, 고승의 초상화가 한국 초상화의 특징과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 전시실은 특별히 관람객들이 회화 작품들을 다양한 거리에서 감상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하였으며, 작품들은 정기적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회화실을 지나서 있는 가장 서측 전시실은 여성 문화와 남성 문화를 대비함과 동시에 그 조화로움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미술은 미술사나 미술관 전시에서 제대로 다루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LACMA의 새로운 한국실은 일부 공간을 전적으로 여성의 문화에 할애함으로써 한국여성들이 사실은 예술가, 수집가, 후원자로서 모든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여기에는 한국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대여받은 한국의 여성 미술품 23점을 LACMA의 소장품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 미술품들은 다양한 형식과 양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모두 한국의 여성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한편 남성과 관련된 작품들을 전시한 공간에서 주목할만한 유물은 상서로운 기린을 수놓은 흉배(rankbadge)이다. 작품 조사 과정에서 이 흉배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것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불교 미술 전시실에는 불교 회화의 주된 주제인 <시왕도>가 있는데 이는 작품 상태로 인해 십여 년 넘게 전시되지 못하다가 최근 보존처리를 마치고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또한 불교 미술 전시실에는 한국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국보 78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함께 한국에서 온 삼화령 미륵 삼존의 협시 보살이 귀여운 모습을 하고 서 있다. 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협시 보살은 LACMA 소장의 목칠 아미타불과 함께 전시되었는데, 한국 미술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대표적 재질을 대비시키는 동시에 한국불교 조각의 맥락을 설명해 주고 있다.
마지막 전시실은 6세기 토기에서 19세기 백자에 이르는 도자기류를 주로 보여 준다. 또한 이곳에는 금속 공예품과 나전칠기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도자실의 맨 마지막 공간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도자기 파편들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전시하고 있다. 이렇듯 도자기 파편들을 설치한 의도는 역사가 수많은 파편으로 이루어진 퍼즐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시실에서 도편들과 여러 유물들을 감상한 관람객들이 한국 역사 속에서 발생된 작품들, 즉 파편들을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체적으로 보는 시각도 함께 갖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