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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를 넘어 이어진 사람과 문화의 교류가 아름다워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다시 만나는 이웃 러시아》전이 지난 9월 28일부터 10월 12일까지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렸다. 수교의 여부를 떠나,양국 간 이어졌던 사람들과 문화의 교류 현장을 지켜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대한제국기에 역사적인 사건들을 목격한 러시아 공사관, 청일 전쟁 후 세워진 독립문을 설계한 세레딘사바틴, 또 러시아 지역을 근거지로 독립운동을 벌인 안중근 그리고 얼마 전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우주를 날았던 소유스호까지. 한국의 전근대사를 되돌아보면 굴곡마다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 ‘코리아’ 속의 ‘러시아’를 만날 수 있다. 지난 20년 간 이웃이었지만, 이웃으로 느끼기에는 낯선 감이 없지 않았던 이웃나라 러시아. 그런 러시아와 코리아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한자리에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마련되었다. 바로 지난 9월 28일부터 10월 12일까지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렸던 전시회 《다시 만나는 이웃 러시아》전에서 우리는 역사 속의 ‘이웃 러시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볼 수 있어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다시 만나는 이웃 러시아》전은 지난 4월 출범한 한러대화(Korea-Russia Dialogue)의 문화행사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무엇보다 한러 양국이 19세기에 수교하기 이전부터 맺어온 우호적인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최초의 기회란 점에서 언론과 양국 관계자들의 관심이 높았다. 또 이를 반영하듯 9월 29일,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린 기념회 개회식에는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를 비롯해 이기수 한러대화 조정위원장 겸 고려대 총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해 전시회의 의미를 더했다.
한러 양국의 교류관계를 증명하는 사진과 책, 영상 등 다양한 전시품 총 100여 점이 전시된 이번 전시회는 ‘만나다’, ‘그리워하다’, ‘함께 가다’ 총 3부로 구성되었다. 그중 ‘만나다’ 코너는 1884년 러시아와 조선이 공식적으로 수교를 맺은 전후의 전시물을 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특히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관람객을 접견하는 듯 정장을 차려 입고 있는 고종 황제와 니콜라이 2세의 초상이 인상적이었다. 두 나라 황제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1678년 러시아 외교관이 만든 ‘코리아제국’이라 표기된 <시베리아 도면>(영인본)을 시작으로, 러시아에서 찍은 민영환 사절단 파견 사진과 1854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팔라다호와 승선 장교들의 사진, 아관파천 때 고종을 최측근에서 보필한 외교관 베베르의 원고, 또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는 서울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 전 사진과 설계도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110년 만에 최초로 공개되었다는, 1896년 고종이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축하 선물로 보낸 백동조각화 2점을 사진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는데 사진으로봐도 품위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외에도 1898년 러시아 탐사단원이 당시의 한국을 찍은 사진 앨범도 국내에 최초로 전시되어 많은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수교를 넘어 교류되었던 사람과 문화
2부 ‘그리워하다’ 코너에서는 러일전쟁으로 외교가 단절된 시절 양국의 교류를 지켜볼 수 있었다. 톨스토이 등 러시아 대문호의 국내 첫 번역저서, 1894년 러시아에서 최초로 출판된 ‘춘향’등 우리 문학작품 희귀번역본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역시 문화의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이외에도 모스크바의 고려인연합회와 1920년대 한국으로 망명한 러시아인들의 기록 등 한국인과 러시아인들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코너는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빅토르 최’의 코너였다. 빅토르 최는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러시아의 전설적 록 가수로 1990년 할아버지의 나라인 한국 공연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인물이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그의 추모벽을 재현한 이 코너에는 빅토르 최의 밴드 키노(Kino)와 영화배우로 활동한 그의 영상과 사진, 기념우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3부 ‘함께 가다’에서는 1990년 수교 이후 20년을 정리하는 리포트 형식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양국 수교를 기념해 모스크바에서 제작된 기념주화를 비롯해 러시아에 주재했던 한국 외교관 가족을 중심으로 결성된 ‘마트료슈카 연구회’에서 제작한 러시아 인형 등이 모든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했다.

이웃을 다시 만나고, 느끼는 기회가 돼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는 동북아 지역 냉전의 벽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경제적인 면만 보더라도 양국 교역액이 수교 전후와 비교해 50배가 넘을 정도로 급증했다. 하지만 한러 관계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낯선 것이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전시회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 전시회를 통해 국가 대 국가가 아닌 사람 대 사람, 문화 대 문화의 만남이 얼마나 깊을 수 있는가를 알려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런 만큼 앞으로도 양국의 관계는 만나고 대화할 때 더욱 아름답게 꽃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된 《다시 만나는 이웃 러시아》에서 전시회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를 ‘다시 보고, 만나는’ 뜻깊은 경험을 잊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