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활동 게시판

[싱크탱크] 벨기에 유럽의회(EP) 함희은 2개월차

  • 등록일 2017.05.10


KF 글로벌 챌린저 월간 활동보고서



상세 활동 보고
작성자 함희은
인턴십 분류 유럽의회 인턴십
파견기관 벨기에 유럽의회
파견기간 2016년 2월 ~ 2016년 4월 (총 3개월)
보고서 해당기간 2개월차
내용
3월 1일: 새로운 트레이니들이 들어오는 날이다. 원래 EP는 드레스코드가 formal 하지 않아서 그 동안 편한 옷만 입어왔지만 이 날은 한국식 면접 복장으로 딱 각 잡고 formal 하게 입고 나왔다. 기선제압을 위해서다. 실제로 복장 때문에 그런 것인지 무엇인지는 몰라도 내가 선배처럼 보이기는 했나 보다. 트레이니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프린터 드라이브 설치하는 법, 휴대폰에 회사 와이파이 연결하는 법, 키보드 언어설정하는 법, 식당 위치 등등 이것 저것을 물어보았다. 만으로 평균연령이 24살 정도 된다고 하는데 대체로 대학원생인 것 같았고 사회경험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3월 2일: 같이 오피스를 쓰는 20명 넘짓 되는 트레이니들 중 우리 유닛에 들어온 트레이니는 두 명이다. 둘 다 남학생인데 한 명은 헝가리인, 한 명은 슬로바키아인이다. 상사에 의하면 우리 유닛이 24가지 언어로 스크립트를 검토하거나 번역하는 일을 종종 하는데 헝가리어나 슬로바키아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들어 거의 국적 위주로 선발했다고 한다. 한 명은 덩치가 엄청 크고 한 명은 많이 왜소한 편인데 둘다 어제부터 엄청 겁에 질린 표정이라며 상사들이 엄청 놀렸다.

3월 4일: 불어 수업을 들으려고 학원에 가서 Placement Test까지 봤는데 학원행정처리가 엉망이라 결국 수업 듣기를 포기했다. 사실 일하면서 수업까지 듣기에 조금 벅찬 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불어 공부를 못하고 있는 게 너무 거슬려서 책가게 Filigranes에 갔다. 비오는 날 주말 서점 까페에서 책을 읽는 이들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 책 사는 데에 돈을 아끼지 말라고 하셔서 거금 50유로를 망설임없이 썼는데 정말 공부를 꾸준히 할지는 의문이다.

3월 5일: 일요일. 브뤼셀에서는 매달 첫째 일요일에 무료방문이 가능한 박물관들이 있다. 아침에 날씨가 좋아 보이길래 벨기에 야수파 화가 Rene Magritte 박물관에 가기로 결심했다. 다 준비하고 나와보니 웬걸 그 사이 날씨가 180도 바껴서 비바람치고 있다. (벨기에 날씨는 항상 이렇게 수시로 바뀝니다. 비가 거의 일주일에 3번은 오는 것 같네요. 우산 또는 우비는 필수!) 추운 비바람도 뚫고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엥 웬걸? 미술관을 기대했지만 그냥 생가였다. 볼 게 별로 없었다.



같이 사는 다현이와 다음에 왕립미술관에서 르네 마그리트전을 제대로 보자고 약속하며 언 몸을 달래려 김치찌개를 해먹었다. 한국음식을 해먹으려면 식재료가 비싸기도 하고 냄새가 많이 나서 집주인 눈치를 보게 된다. 그래도 이렇게 가끔 가다가 매콤한 국물로 피로를 풀어줘야 한국인이지!

3월 7일: EP 에서는 사진/그림 전시회를 많이 하는데 개막전에는 개회사를 하면서 각종 샌드위치와 감자칩과 와인이 무료로 제공된다. 오늘도 Eleven Women in War 라는 사진 전시회가 열려서 가보았는데 웬걸 우리 부서 트레이니들이 잔뜩 있었다. 다같이 한 손에 와인 한 손에 샌드위치를 들고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전시회만 열리면 다같이 정보를 공유해서 저녁 끼니를 해결하러 간다.



3월 8일: 오후에 이민자들과 노동의 권리에 대한 세미나를 들었다. EP 내에서는 이런저런 주제로 열리는 세미나가 많다. 석사 졸업논문을 난민 위기에 관해서 썼고 실제로 유럽인들이 이민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직접 보고 싶어서 기대하며 갔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인상 깊지는 않았다. EP내에서 두 번째로 큰 당인 S&D(Socialist & Democrats)가 주최하는 세미나였는데 이민자들이 유럽에 와서 겪게 되는 노동문제에 관해서만 지적할 뿐 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었다.

[여기서 잠깐!] 트레이니들도 어떤 세미나이든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습니다. 단 하나, 먼저 유닛 보스의 허락을 구해야 합니다. 유럽인턴들 같은 경우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아무 때나 오피스를 나가서 세미나를 듣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긴급한 일이 생겨서 보스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우리가 오피스에 없으면 언짢은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업무 때문에 (예컨대 다른 상사와 다른 곳에서 일을 하게 된 경우)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 업무에 임하겠다는 이메일 답장을 보낼 때 보스에게도 이메일이 가도록 cc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유닛 보스는 다른 상사들과는 달리 많이 바빠서 신경을 잘 못써줍니다. 저도 2개월을 근무하면서도 1대1로 대화를 해본 적이 아직 한 번도 없을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이메일은 그래도 다 보내는 것이 안전합니다. 보스가 다른 일을 완수했을 경우 그 성과물을 보낼 때에도 cc 해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3월 9일: 오늘은 목요일 PLUX 데이. 켈슨이 나 떠나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다며 어떡하냐고 해서 감동받았다. 오늘 상사한테도 칭찬받고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많이 사랑받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 출장>

[여기서 잠깐!] 유럽의회 인턴들은 누구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에 있는 유럽의회로 출장을 갈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어떤 DG에서든 갈 수 있었는데 요근래 들어 예산이 부족해서 어떤 DG에서는 허락하고 어떤 DG에서는 허락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DG COMM인데 3박 4일간의 출장을 허락하였고 다현이는 DG EXPO 인데 처음에는 출장을 허락하지 않았다가 1박 2일간의 출장을 허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장비도 두둑하게 챙겨주고 (1일 숙식비 포함 180유로) 프랑스 구경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갈 수 있다면 가는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3월 13일: 스트라스부르크 1일차. 벨기에에서 벗어나 프랑스 남부로 가니 날씨가 너무 좋고 도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좋다. 숙소는 AirBnB로 1박에 30유로 정도 되는 선에서 저렴하게 구하였고 도착하자마자 Alsace 지방의 음식으로 유명한 Tarte flambee / Flammkuchen 을 먹었다. 베이컨과 양파, 치즈가 얹어져 있는 씬피자인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프랑스가 벨기에보다 물가가 싼 편이고 벨기에 슈퍼마켓에서는 안 팔지만 프랑스에서는 흔하게 파는 Russian Earl Grey 티(Tea)도 샀다 (2유로도 안 되는 가격!). 레몬향이 나는 부드러운 얼그레이 차다.

3월 14일: 이번 출장이 특별한 이유는 기존의 슈만트레이니들이 2월을 끝으로 떠나고 새로운 슈만트레이니들이 3월에 들어왔기 때문에 3월에 출장가는 트레이니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트레이니들이 단체로 출장을 가게 되는 경우 자유롭게 Plenary session 도 구경하면서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는데 나는 이번에 보스와 함께 혼자 왔기 때문에 보스 바로 건너편에 앉아서 브뤼셀에서보다 더 일을 많이 했어야 했다. 사실 나는 그럴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 여행은 이전에도 했었고 도시구경보다는 보스에게 내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보스가 Promotional Video 가 무엇인지 또 그리고 우리 유닛에게 추천할 만한 Promotional Video 유형과 예시를 조사하여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2일에 걸쳐 7장짜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스가 워낙 무뚝뚝하신 편인데 쓱 보시더니 다음 주에 Promotional Video 와 관련된 미팅에 같이 참여하라고 하셨다. 그건 분명 좋은 평이었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몇 명만 참여하는 자리에 나 혼자 인턴이었기 때문이다. 야호!



스트라스부르크에는 유명한 치즈레스토랑이 있다. 치즈가게가 아니고 라끌렛, 퐁듀, 치즈플레이트 등 치즈요리만 하는 치즈 레스토랑이다. 들어가자마자 입구부터 치즈 꼬린내가 코를 찌른다. 나는 냄새가 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고 국제적으로 잘 먹는 사람은 예쁨을 받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보스에게 사랑받기 프로젝트’에 쐐기를 박기 위해 꼭 오늘도 무진장 잘 먹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약 15가지 스트롱 (냄새가 심하고 진한) 치즈 플레이트를 주문했는데… (소프트 치즈도 있었는데 냄새 나는 음식 좋아한다며 패기있게 스트롱으로 주문했다.) 와! 한 절반 먹고나니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았다. 다른 반찬 없이 치즈와 빵만 먹어야 했고 웨이터 말로는 유럽인들도 먹기 힘들어할 정도로 스트롱한 지역산 치즈라고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보스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 꾸역꾸역 먹으려고 했지만 결국 들통 나고야 말았다. 레스토랑 들어왔을 때는 말도 많고 활기차더니 왜 말이 없어졌냐고 다 안 먹어도 된다고 하시더라. 내가 오만했다.



3월 15일: 오늘 phenomenal 한 하루였다. 오전에는 Plenary session 들으러 Hemicycle 에 직접 가서 Juncker(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님과 Verhofstadt(벨기에 전 수상)님의 연설을 직접 들을 수 있었고 나오는 길에 Juncker님이 지나가길래 셀카를 찍었다니 화면에 같이 나왔다. 작년 이맘때쯤 Juncker 관련 보고서를 대학원에서 쓰고 있었는데 이젠 직접 보고 셀카까지 찍다니 새삼스럽게 내 미래 전개가 참 다이나믹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라스부르크 일기 끝)



3월 20일: 브뤼셀로 돌아와서 일하니 좋다. 일주일간 자리를 비우면 트레이니들 사이에서 내 존재력이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새로운 트레이니들은 물론이고 유닛 내의 상사들과 선배들도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느꼈다. 다시 보니 (얼마나 떨어져 있었다고) 어찌나 반갑던지! 여기저기 반가움의 포옹을 하고 다닌 하루였다.

3월 22일: 북한 인권과 관련된 세미나가 있어서 가보았는데 몹시 흥미로웠다. 첫 번째 패널은 북한 내의 정보를 밖으로 배출하기 위한 북한의 노력에 관한 내용이었다. <북한의 숨겨진 혁명>의 저자 백지은님과 북 반체제작가 반디의 단편집 <고발>을 입수해 세상에 알린 도희윤님이 초대되어 책에 대해서 소개해 주셨다. 두 번째 패널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의 북한 강제 노동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앞선 패널보다 사실 이 패널이 더욱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폴란드에서만 하더라도 500명이 넘는 북한 “노예”가 공장에서 불법적으로 일을 하고 있고 그 받은 돈의 80퍼센트 이상을 북한으로 다시 보낸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에 분명히 유럽의회 차원에서도 북한의 인권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점들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월 26일: 이번 주말은 소셜라이징을 많이 하게 된다. 어제도 트레이니들과 토요일을 보내서 오늘은 사실 혼자서 집에서 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거절을 못하는 체질이라 친구들이 나오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또 나가게 된다. 벨기에 날씨는 주로 우중충하기 마련인데 트레이니들이 오늘은 햇빛이 쨍쨍한 일요일이라며 이런 날에 집에 있으면 안 된다고 피크닉을 하자고 한다. 결국 나오길 잘 했다. Scharbeek 에 있는 Josaphatpark 에 가서 햇빛, 맥주와 감자칩을 즐길 수 있었다.



3월 27일: 우리 유닛의 새로운 트레이니들은 윗사람이 “이것 좀 해줄래?” 하고 부탁하면 “음, 아니요 안 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바빠서요.” 하고 대답한다. 컬쳐쇼크다. 윗사람은 사실 질문을 한 게 아니라 공손한 명령을 한 것이었는데 “아니요”라고 대답하다니! 사실 바쁠 일도 없다. 그간 일해봐서 알지만 트레이니들한테 주어지는 업무는 그렇게 스케일이 크지 않다. 설령 조금 큰 스케일을 맡게 되더라도 충분히 시간을 주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조사하라는 업무를 받았고 일주일 동안 그 업무를 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중간중간에 상자를 옮기거나 전달하는 간단한 업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유럽의회에 들어올 만큼 스펙이 좋은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종종 육체적 노동을 시킬 때에 거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사들이 스펙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동유럽권 나라 트레이니들이라 그런 것 같다며 농담 아닌 농담으로 다시는 그 쪽 나라 인턴들은 안 뽑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가 일하는 모습 하나하나를 보고 사람들은 그 사람을 통해 그 사람이 속한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 평가하게 된다. 나의 모습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이바지하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