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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 떠난 2000년의 여행

지난 5월 14일 아침 6시에 눈을 떴을 때만 해도 나는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3일간의 버스 여행을 통해 백제시대 ( 기원전 16 년 ~ 기원후 660 년 ) 에 이르는 한국사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한국국제교류재단 체한연구펠로십 프로그램의 문화적.역사적으로 풍성한 답사 여행에 대한 기대는 품고 있었다. 답사지는 한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전라도였다.
서울을 떠나 첫 번째로 들른 곳은 1896년까지 전라도의 주무 관청 소재지였던 전주였다. 우리는 전주에서 닥나무로 만드는 한국의 전통 한지 제조술을 알게 되었고, 나중에는 가장 유명한 전라도 요리인 비빔밥도 시식했다. 인기 있는 한국 음식인 비빔밥은 집에서 재배한 신선하고 향긋한 갖가지 야채를 밥 위에 얹은 요리로, 여러 가지 반찬과 함께 나온다.
이어서 차로 잠깐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경기전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조선(1392~1910년)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그의 몇몇 후손들의 실물 크기 어진을 봤다. 왕의 권력을 잘 보여주기 위해 태종10년인 1410년에 세워진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일부분이 파괴되었지만 그 후 1614년에 중건되었다. 이곳에는 태조 이성계와 왕후의 위폐가 모셔져 있다.
공원에 대나무가 줄지어 선 길은 산책을 즐겁게 해주었다. 근처 전주 한옥마을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마을은 팔각형 지붕과 공 들여 조각한 기둥이있는 웅장해 보이는 목재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한국의 무역항과 외교권이 일본으로 완전히 넘어간 뒤 이 지역을 차지하는 일본 상인들의 수가 점점 늘어가자 1930년대에 이곳 마을 사람들이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많은 한국인 방문객의 표정을 보니, 이 한옥 건물들이 민족적 긍지를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들른 곳은 한라산, 금강산과 더불어 한국에서 3대 ‘영산’으로 일컫는 지리산에 자리한 화엄사였다. 불교가 한국에 들어오고 수백 년이 흐른 뒤인 백제 성왕 22년, 서기 544년에 지은 화엄사에는 서기 6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석공예품이 많이 있으며, 한국의 7대 사찰 중 가장 크고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1500년 말, 일본의 침입으로 파괴되었지만 조선시대 인조 8년인 서기 1630년에 재건되었다.



사찰의 이름 화엄은 한국에서 주요한 불경으로 여겨지며, 모든 것과 하나됨을 가르치는 경전인 화엄경에서 따온 것이다. 사찰 경내에서 제일 높은 곳에 깨달은 황제의 전각이라는 의미의 각황전이 있다. 1703년에 세운 각황전에는 커다란 금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지리산의 파노라마 전경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 고요함과 자연의 일치감이 만들어낸 신비한 느낌은 오늘까지도 남아 있다.
우리의 자연 감상은 다음 날 순천만에서도 계속되었다. 우리가 탄 배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주 중 하나인 이곳의 개펄과 구불구불한 갈대밭 사이를 느긋하게 지나갔고, 우리는 왜가리, 백로, 도요새, 물떼새, 흰꼬리수리, 망둥어, 게 등을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놀기 좋아하는 돌고래들이 종종 그러하듯, 산란기의 연어들이 잔잔히 흐르는 물을 따라 뛰어오르고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급속한 산업화와 현대화에도 한국의 자연미가 상당 부분 파괴되지 않은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은 세계 최대 제철 시설인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가까이 있지만 그럼에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개펄이다.
보존은 자연, 문화, 역사와 더불어 이번 여행의 주요한 주제이기도 했다. 낙안읍성에는 전라남도에 남은 마지막 조선시대 성곽이 자리하고 있다. 길이 1.41킬로미터, 높이 4미터의 이 모래벽은 1397년 일본 침입자들로부터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지어졌으며, 300년 뒤 돌로 다시 지어졌다. 성곽 위를 따라 걷자 모래, 점토, 진흙, 나무, 돌로 짓고,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초가 지붕을 얹었으며, 호박 넝쿨로 뒤덮인 낮은 돌 울타리로 분리된 집들의 경관이 멋지게 펼쳐졌다. 마을은 마치 농도가 각기 다른 따뜻한 베이지색, 노란색, 구리색, 황토색, 주황색, 갈색, 빨간색 같은 여러 느낌의 흙색이 서로 아름답게 조각조각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우거진 산과 근처 호수, 강의 반짝이는 물로 둘러싸인 평야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집 속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이 목가적인 환경 속에서 시간은 마치 정지한 것만 같았다.
또 부러웠던 곳은 완만하고 구불구불한 녹색의 차나무 언덕이 햇빛을 받아 거대한 녹색 벨벳처럼 반짝이는 보성다원이었다. 이 차밭은 1957년에 조성되었으며,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좋은 녹차 중 일부를 생산해내고 있다. 우리는 20미터 키의 삼나무들이 양옆에 죽 늘어선 천연의 모랫길이 이어지는 매혹적인 숲, 쾌적한 녹색과 부드러운 새들의 합창이 있는 아름답게 굽이치는 언덕으로 안내되었다. 보성은 삼한시대 (기원 전 57년~기원후 668년)에 마한의 일부였으며, 통일신라시대(668~935년)에 보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온대 기후와 높은 고도(해발 350미터나 된다)는 이곳을 이상적인 녹차 재배지로 만들어준다. 한국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한 시기는 신라시대 선덕여왕(632~627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해가 잠시 들어가고 비와 안개가 우리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수킬로미터 계속되며 구불거리는 언덕, 푸른 골짜기, 잔잔히 흐르는 강과 논을 지나며 목포의 유달산까지 가는 내내 스산한 날씨는 매력과 신비한 기운을 더해주었다. 목포는2001년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반도 서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 목포는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매우 큰 도시 중 하나였다. 지금은 작은 도시지만 그래도 목포는 매력을 잃지 않았다. 노령산맥의 일부분을 이루고있는 유달산에서 비와 안개에도 불구하고 남쪽의 영산강 입구를 볼 수 있었고, 멀리 펼쳐진 무수한 섬들을 살짝 엿볼 수도 있었다.
우리의 마지막 방문지는 가장 신비롭고 매력적인 운주사였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다른 사찰과는 달리 운주사에는 다양한 크기와 높이의 천불천탑이 있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신라시대(기원전 57년~기원후 935년) 도선이라는 승려가 운주사를 지었다고 한다. 민간 전설에 의하면 도선은 고대 한국의 풍수를 따랐고, 재난을 피하기 위해 천상의 석공들을 불러 하룻밤에 1000개의 불상과 1000개의 탑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틀 무렵 수탉이 울자 석공들은 가장 크고 인상적인 마지막 2개의 와불이 완성되기 전에 천상으로 되돌아갔다.
어디를 걸어도거대한 바위 아래쉬고 있는 불상과높은 석탑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온통 기하학적 조각 문양으로 뒤덮인 채 원통형 뾰족탑을 자랑하는 9층 석탑이었다. 차고 신선한 공기가 신비감을 더해주는 가운데 빗속에서 불상과 석탑 사이를 거니는 것은 황홀한 경험이었다.
이번 답사는 내 생애에서 가장 길고도 짧은 3일간의 여행이었다. 한국의 한 지역을 다녀오는 여행이 이토록 교육적이고, 풍요롭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다음 이 나라의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은 또 내게 무엇을 안겨줄지 궁금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