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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동유럽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는 5월 7일부터 7월 16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동유럽 이야기>란 주제로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강좌에서는 현지에서 다년간 수학하고 학위를 마친 교수들과 각 분야에서 동유럽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영화감독, 여행가, 바이올리니스트 등이 헝가리, 체코, 폴란드를 중심으로 동유럽의 흥미진진한 역사, 문화, 예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자주 들어보았고 또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누군가 질문을 하면 딱히 할 말이 없는 지역 중 하나가 동유럽이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가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도 한 이유일 수 있지만 1989년 체제 전환 시기까지 사회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지역에 대한 정보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결과로 현재까지도 동유럽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고, 1960~1970대를 지나온 노년층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유럽 하면 아직도 소련군의 탱크나 빈곤만을 떠올리고 있다. 다행히 여행 자율화 이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방문이 많아지면서 동유럽 국가들의 찬란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동유럽의 역사와 문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유럽’이란 개념을 사실 헝가리, 체코, 폴란드인들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이들 지역은 지리적 관점에서 유럽의 중앙에 있고, 과거에는 ‘중부유럽’이란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정치적 관점에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삼고 서유럽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동유럽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서유럽은 민주주의국가, 선진국이라는 이미지와 결합했고, 반대로 동유럽은 사회주의국가, 후진국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했다. 따라서 이들은 정치적 개념의 ‘동유럽인’으로 불리기보다는 지리적 개념의 ‘중부유럽인’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헝가리는 언어적으로, 인종적으로 섬을 이루고 있는 국가다. 언어는 핀-우그르어족에 속하고 민족은 마자르족으로 불리는 아시아에서 이동해간 민족이다. 아시아 우랄 산맥 동쪽으로부터 7개의 부족이 이동하여 896년에 현재의 유럽 중심부에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그들이다. 게르만족, 슬라브족, 라틴족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독교를 받아들인 결과 현재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유럽 속 아시아인으로서 유럽 문화와 아시아 문화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체코는 폴란드, 슬로바키아와 더불어 서슬라브어를 사용하고 있다. 슬라브 건국 신화에 따르면 체크, 루시, 레흐 삼형제가 길을 떠나 체크는 남쪽으로 내려와 프라하에 정착했으며, 루시는 러시아를 세우고, 레흐는 포즈난에 정착해 폴란드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체코는 852년에 건국했고 이후 14세기 카렐 4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하며 최고의 번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현재는 동유럽의 파리로 불리며 1년에 인구의 10배인 1억 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만큼 많은 이를 매혹하고 있는 프라하는 문화유적과 유산을 잘 보호하고 있다.
폴란드는 966년 서슬라브족인 피아스트 왕조에 의해 탄생한 국가다. 암염을 통한 풍족한 재정을 바탕으로 14세기에는 강력한 통일국가로 성장하기도 했지만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 강국에 둘러싸여 있어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18세기에는 123년 동안 세계지도에서 국가가 사라져 버린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
동유럽의 역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피의 역사다. 소련, 독일,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들의 점령에 대항한 끊임없는 투쟁의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현대사에서 동유럽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점령당하면서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않고 자유와 독립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 결국 다시 독립국가로서, 또 유럽연합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고있다. 폴란드의 경우 1956년에 포즈난을 중심으로 ‘우리는 배고프다 빵을 달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소련에 저항하다가 노동자들과 어린이들이 무참히 쓰러져갔고 이에 영향을 받아 헝가리에서도 약 30만 명이 참가하는 반소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소련은 2,000대의 탱크와 15만의 병력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약 3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이 사건을 소재로 김춘수 시인이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다늅강(江)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1968년에는 프라하에서도 역시 반소운동이 일어나 바르샤바조약군 20만 명이 체코슬로바키아로 진입하여 둡체크를 비롯한 개혁파 지도자들을 연행해갔으며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을 당했다. 동유럽의 도시들은 이런 시련과 아픔을 딛고 당당하게 서 있어 더욱더 가슴 저미고 정감이 간다.

찬란한 문화와 예술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동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지만 그럼에도 찬란한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곳이 바로 동유럽이다. 헝가리에서는 이미 1800년대 말에 유럽 대륙 최초로 지하철을 만들어 운행했으며 노벨상 수상자만 해도 물리, 화학, 의학을 중심으로 13명을 배출할 정도로 기초과학이 발달했다. 특히 음악 교수법으로 유명한 코다이 졸탄, 아방가르드 음악의 대가 바르토크 벨라 그리고 유럽의 낭만주의 음악에 기여한 리스트 페렌츠의 음악이 있어 다뉴브 강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나라다. 낭만주의 3대 시인인 미츠키에비츠, 『쿠오바디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엔키비츠가 있어 낭만이 숨 쉬는 나라, 국가가 패망하자 파리로 망명을 떠나 나라 잃은 슬픔을 연구로 승화시켜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한 퀴리부인과 죽거든 심장은 꼭 사랑하는 조국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있어 더욱 가슴 저려오는 나라가 폴란드다.
한편 이미 1300년대에 대학교를 건립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교육학의 아버지 코메니우스를 탄생시켰으며,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을 주장했던 얀 후스의 나라가 바로 체코다. 동유럽의 파리, 프라하의 아름다운 유적지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치 독일에 항복할 만큼 비굴한 것 같지만 합리적 사고를 지닌 스메타나를 비롯해 드보르작,야나체크의 음악을 들으며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바로 체코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