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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화려한 휴가’

대만과 한국의 노동정치 비교 연구를 하는 나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도 받고,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여러 가지 학술적 자원도 이용할 수 있어 열심히 박사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술적인 공부만 하는 것으로는 한국을 이해하는 데 부족할 것 같았다. 한국 사회도 관찰할 겸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싶은 나에게 ‘2008 봄 지방답사’는 한국의 역사 현장을 직접 확인하는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첫날 경기전에 이어 찾은 곳은 소쇄원. 처음에는 어떤 곳인지 상상하지 못했지만 도착해 소쇄원의 한자를 보고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소쇄(瀟灑)란 말이나 모습, 행동 등이 소탈하고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들어가서 보고 나니 과연 소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에 비하면 당당하고 화려한 분위기는 없지만 모든 건물들이 자연의 지형에 따라 지어져 전체 경치를 잘 볼 수 있고, 건물 스스로가 자연 경치 중 일부가 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민주화의 현장
내가 이번 여행 일정 중에서 가장 기대한 곳은 5. 18 민주 묘지였다. 전공이 정치학인 만큼 한국의 민주화와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인 5. 18 민주항쟁운동에 관해서도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었다. 마침 이번 여행 기간이 5. 18 민주기념일과 잘 맞아떨어져 5. 18 민주묘지에서는 여러 가지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민주의 문’에 들어가자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희망의 씨앗을 받쳐 든 모습의 5. 18 민중항쟁 추모탑이었다.
구묘역을 걸어가면서 마음속으로 구묘 안에 잠들어 있는 과거 자유와 정의를 갈망한 시민들의 정신을 생각했다.
‘역사의 문’에 들어가서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회를 봤다. 5. 18 당시의 기사와 사진을 보고 우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다시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힘을 얻게 해준 답사
전라도에 오면 전라도의 음식뿐만 아니라 전라도의 전통문화도 많이 맛봐야 한다. 밤이 되어 우리들은 전남도립 국악단의 공연을 봤다. 사실 나는 판소리를 들으면서 자유롭게 어깨춤을 추는 한국 서민의 모습을 너무 좋아한다. 한번쯤은 판소리를 들으며 같이 흥겹게 춤을 추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펠로들이 함께 있으니까 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2박 3일 여행이 벌써 마지막 날이 되었다. 18일 아침, 우리들은 섬진강변으로 가서 산책을 조금 하다가 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이름 붙였다고 하는 화엄사에 갔다. 화엄사에 있는 각황전은 매우 유명한 건물이라고 들었다. 한국에서 현존하는 목조 건물 중 최대 규모라고 한다.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이곳에 오니 나도 모르게 엄숙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덕분에 1,100km가 넘는 여행길에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외국 사람으로서 쉽게 가지 못할곳도 많이 둘러보며 구경할 수 있었다. 풍성하고 화려한 휴가를 보낸 덕분에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연구하여 대만에서 한국 정치의 연구가로서 학문적 발전을 이룩하도록 힘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