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세 도시 이야기 : 12×36 a local lens

예술가들에게 도시는 어떻게 비춰질까. 12명의 예술가가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를 렌즈로 담아냈다. 필라델피아 ‘222 gallery’에서 열린 <12x36 a local lens> 전시에서는 객관화된 도시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도시를 포착한 작가들의 시선을 만날 수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222 gallery’에서 활동한 벤저민 캐플런과 ‘EAST Bridge’의 기획자 박나혜, 두 젊은 기획자들이 우리에게 던진 것은 무엇인가? 기획자들은 서울, LA, 필라델피아 세 도시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 12명에게 아주 간단한 과제를 제시했다. 그들이 거주하는 도시는 실제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관념적으로 배워온 도시의 이미지들과 의미들의 복합체일까? 현대문명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 도시이고 이런 도시가 우리의 생존조건이라면 우리는, 아니 예술가들은 당연히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에게 도시란 무엇인가? 나는 정말 도시에서 살고 있는가? 도시는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가? 도시가 예술가에게 창조의 모티프이자 영원한 생명수라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작가의 시선에서 재탄생하는 ‘도시’
양아치(서울)의 작업은 서울의 간판들을 찍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간판에는 세계의 도시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태리 양복점’, ‘런던양복점’, ‘PARIS’ 등 우습게도 세계의 주요 도시 이름은 모두 나온다. 게다가 농담처럼 사진 한쪽에 마치 허연 엉덩이처럼 엄지손가락이 연속해서 나타난다. 멕시칸 아메리칸인 에스테반 오리올(Eastevan Oriol, LA)의 작업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래퍼 ‘스눕 독(Snoop Dogg)’이 나온다. 또 미모의 여인이 나오는데 대단히 중성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김혜란(서울)의 록 그룹과 라이브 클럽의 이미지들은 사실 이 장소가 서울인지 아니면 세계의 어느 도시인지 구별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제시카 로빈스(Jessica Robbins, LA)의 사진들도 매우 이국적인 풍경이 나열되어 있는데, 사실 가로수를 담은 사진 이외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도시의 어느 코너에 있는 상점을 담고 있다. 랜달 셀러스(Randall Sellers, PH)의 사진은 반이나 인화되지 않았다. 검은 먹으로 나타난 접사 이미지는 우리를 순간 황당하게 만든다. 그리고 허름한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흑인들 사진 약간. 비약하자면 하얀 색채의 미국과 검은 색채의 미국이 동시에 우리 의식 속으로 떠오르게 한다.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서의 도시 표현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실제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어떠한 객관적인 판단이나 지표를 갖고 있지 않다. 작가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는 그들에게 단지 살아 숨쉬고 부대끼는 어떤 불투명하고 모호한 공간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도시는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첨단 라이프스타일도 그들에게는 매우 오래된 이미지들로 나타난다. 아마도 사진이라는 매체, 특히 ‘로모’ 카메라의 대책 없는 흐릿함과 모호성이 우리의 지각을 흩뜨러놓기 때문인 것 같다. 한편으로 작가들은 환락의 도시 ‘나성(羅城, LA)’에 대한 우리의 로망과 미국 독립전쟁의 중심지였던 필라델피아의 역사, 메가로폴리스(megaropolis) 서울의 복잡성과 질펀한 삶의 운동이 어울린 다양한 멘탈리티를 담아내고 있다.
나는 기획 단계부터 진행 과정과 그 결과가 나타나는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벤저민과 박나혜의 참신한 발상과 간명한 연출, 참여 작가들의 무의식적 촬영 행태로, 정말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뉘앙스를 이번 <12x36 a local lens>에서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전시가 현대예술에서 국적이 사라졌다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도시, 예술가들의 담담한 고백을 전해주리라 기대했고 여전히 그 소망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