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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류, 한국 이해가 아닌 세계 이해로

지난 8월 17일과 18일, 양 일간에 걸쳐 재단이 주최한 국제교류 워크숍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 국제교류사업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그 동안 국내 각급 기관과 단체가 시행해 온 국제교류사업을 회고하고 향후 국제교류의 바람직한 방향과 그 발전 방안, 그리고 재단의 역할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국제교류사업의 의미와 방향,” “한국의 국제교류사업에 대한 반향과 평가,” “21세기 국제교류전략”의 3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된 이번 워크숍은 이인호 재단 이사장의 개회사에 이어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의 국제교류 전문가 11명의 주제 발표가 있었으며 이어 10명의 지정 토론자와 재단 임직원을 포함한 참석자들의 질의와 답변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허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팀장은 독일문화원, 영국문화원, 일본의 국제교류기금, 싱가포르 국제재단 등을 예로 들며 외국의 국제교류사업의 특징과 장점을 비교 설명하였는데 공통적으로는 국제교류의 주체가 정부 중심에서 정부의 간접 지원, 그리고 최근에는 민간 지원 형태로 바뀌어 가는 추세라고 설명하였다. 국가마다 중요한 외교 정책으로 학술문화교류를 중요시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재단이 교류사업을 시행하는데 있어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문환 서울대 교수는 정부관련 부처간, 그리고 산하 단체간의 중복과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문화 외교에서 가장 앞선 프랑스의 경우 자국 문화의 해외 소개는 외무부, 해외문화의 국내 도입은 문화부에서 각각 담당한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재원 기관과의 연락과 조정을 담당하는 프랑스 문화교류위원회의 활동을 모범적으로 평가하면서 재단도 이 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또한 이제야말로 자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문화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문화 정책을 펼쳐야 할 때라고 강조하며 “국제외교는 민제외교다”라는 말을 소개하면서 외교는 외교관이, 국제교류는 국민이 그 담당자라며 이제 전 국민이 앞장서서 국제교류를 위한 활동을 펼쳐야 하며 국민 모두와 NGO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영익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는 한국의 자랑스런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영문으로 편찬하는 작업을 재단이 앞장서서 시행해야 하며,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은 해외가 아닌 국내에 더 많이 있으므로 한국학 연구 지원도 외국에서가 아닌 국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영숙 런던대 SOAS 한국학센터 소장은 해외의 한국학(센터) 지원시 도서 소장 규모나 인접 학문의 교수진 유무 등 한국학 센터 설립의 기본적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는지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하며 특히 대학 당국의 공약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정치, 경제 등 현대사회를 다루는 학문만 연구해서는 진정한 한국학 전문가 양성이 어렵다며 인문과학의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 예로 인문과학 분야에 한정하여 지원하며, 외국과의 공동연구, 양질의 서적 출판, 유물자료의 디지털화 등을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장경국재단을 그 사례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정책연구소 지원과 관련해 박신일 전 뉴욕문화원장은 우수한 학자나 연구소를 선별, 장기적으로 집중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실무자들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서도 주요 연구소나 교류단체들과 지속적 교류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아시아재단과 공동으로 미국에서의 한국·동북아에 관한 Public education program을 시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참석자 중 유일한 외국인인 원한광(Horace H. Underwood) 한미교육위원단 단장은 우물안 개구리식의 한국의 국제화를 꼬집었다. 한국을 해외에 소개하는 것은 성공적이지만 한국 내에서의 국제화는 준비조차 안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개탄하며, 그 예로 외국에서 유학중인 한국 학생은 14만 명이나 되지만 한국 내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3-4천명에 불과하고, 한국의 대학에는 일부 영문과를 제외하고는 외국인 교수가 거의 없는 현실이며 오히려 1939년에는 외국인 교수들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이 가장 많은 도시인 서울에서 영어로 자막 처리된 한국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고, 박물관에는 영어로 설명된 안내문조차 제대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원 단장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은 것은 바로 한국인의 의식구조였다. 그는 메릴랜드대 교수 C. Fred Alford의 “Think No Evil: Korean Values in the Age of Globalization”을 인용하면서, 대부분의 한국인이 국제화를 사악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일본문화와 교육시장 개방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가 이를 증명한다며, 이제는 한국인에게 외국인과 외국문화가 들어와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재단과 한국민 모두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원한광 단장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성미 교수의 쌍방향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 및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의 개방정책에 관한 ‘대원군 콤플렉스’를 지적하면서 한국의 대표적 문화 유산을 선별해 빈틈없는 논리와 유창한 영어로 잘 포장하여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귀담아 들을 만했다.

해외 박물관의 한국실 설치와 관련, 박영숙 소장은 외국의 국립 박물관들이 우리 문화재를 구입할 수 있도록 문화재의 해외반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영문으로 된 한국관련 자료의 부족으로 해외에서의 한국연구가 어려움을 얘기했다. 안휘준 서울대 교수는 한국학이 사회과학이 아닌 문화 중심으로 지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청동기 시대의 다뉴세문경(多 細文鏡), 고려 금속활자, 신라 에밀레종과 석굴암, 고려 청자와 불교회화, 조선시대의 초상화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러한 훌륭한 유산들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국제교류사업의 의미와 방향을 살펴보고 과거 국제교류사업의 평가에 이어 21세기의 국제교류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세 번째 세션에서는 홍사명 전 학술진흥재단 국제교류부장으로부터 해외 한국학 현황을 되짚어보고, 북미중심의 한국학 지원 편중 문제(한국학 지원의 55% 차지)에 대해서는 인위적 안배가 아닌 수요에 따른 현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인 38%에 달하며 오히려 일률적인 지역 안배야말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백봉자 연세대 어학원 교수는 외국인에 대한 국내외의 한국어 교육 현황을 소개하면서 문제점으로 재단의 지원이 교수나 학자 등 대학교 이상의 엘리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지적하며 청소년 대상의 교육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과 한국어 보급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세워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백승종 서강대 교수는 한국의 국수주의나 민족주의가 외국에서 비판받고 있으며 지나친 민족주의를 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한 재단 직원들의 해외연수 필요성과 전문성 제고를 위해 교류사업 담당자들의 잦은 인사이동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준혁 추계예술경영대학원장은 발표에서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문화/예술 교류시 장기적 계획성과 체계적 연계성이 취약하다고 지적하면서 전통문화(예술)에만 치중하지 말고 현재의 문화로 교류함으로써 우리문화의 창의력을 보여주는 것이 경제통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강원장은 또한 교류전문 인력을 배양해 국제 문화 로비스트로 활동하게 해야 하며 해외의 한국문화원, 해외 (한국) 식당, 국내거주 외국인 등은 준비된 문화교류의 거점임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형민 서울미대 교수는 해외 전시사업에 있어 단독 전시보다는 개최지역의 관련기구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방안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문화관광부의 유재기 문화교류과장은 “문화는 세계각국의 상대적인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기 소르망(Guy Sorman)의 어구를 인용하여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국내 대중가수들의 해외진출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도 하였다. 또한 문화협정체결 내용의 90%가 문화관광부 소관으로 되어 있는데, 체결은 외교통상부를 통해서만 가능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문화부가 직접 외국과의 문화협정체결을 하는 중국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패널 토의의 첫 주자로 나선 한신대 국제관계학과의 김명섭 교수는 문화외교란 정부기구나 또는 위임을 받은 특정기구가 다른 나라의 정부기구 혹은 국민을 대상으로 문화정책을 구현해 나가는 활동이라고 전제한 뒤 공적자금에 의해 운영되는 문화외교가 문화상업 논리와는 다르게 추진되어야 하며 또한 대통령 직속의 문화위원회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의 임성남 문화협력과장은 외교통상부가 펼치는 각종 문화교류 활동에 관해 소상히 설명하면서 그 동안의 우리 대외문화 교류가 철학이나 전략이 없이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교육부의 소형석 국제교육협력담당관은 교육부가 각종 국제기구를 통해 다양한 협력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했고,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의 유홍준 교수는 북한 문화재와 관련한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재단이 앞으로 시행해 나가야 할 여러 가지 사업들을 제안하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임직원을 비롯, 국내외의 국제교류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한 이번 워크숍에는 보다 효율적인 국제교류를 위한 수많은 제안과 주문이 쏟아졌으며 재단 사업상의 문제점에 대한 따끔한 질책과 자성의 소리도 높았다. 한승주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평소 재단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사업운영관련 주요 정책적 현안이라고 생각했던 점을 지적하였는데, 정책적 사업과 학술·문화교류사업, 지원사업과 직접 기획·집행 사업, 집중지원과 분산지원 등의 균형도모 또는 우선 순위 설정을 손꼽았다. 특히 참석자들은 이제는 한국도 과거의 자국 이익과 이미지 제고에서 벗어나 인류공영, 세계평화 등을 지향하는 국제교류로의 시각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으며, 한국문화의 해외소개에만 치중하지 말고 외국문화 수용 등 쌍방향 국제교류(two-way exchange)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재단의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서도 지원 중심에서 기획 사업으로의 일부 방향 전환, 국제기구나 해외의 유관기관 등과의 공동사업 추진, 민간 부문에서 시행하기 어려운 기반 조성 위주의 사업 추진 등이 제안되었다. 또한, 선진국 위주 지원에서 탈피하여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