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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지역에서의 한국학 발전 방안 논의

최초로 중남미 한국학자가 한자리에 모여 논문을 발표하고 상호 의견을 교환한 중남미 한국학 회의를 중남미에서 한국학자가 가장 많은 아르헨티나에서, 그것도 권위가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에서 개최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작년 11월 이인호 재단 이사장과 필자가 중남미 4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학 회의의 개최를 제안한 것에 대해 Gino Germani 연구소의 Pedro Krotsch 소장이 관심을 보임으로써 올해에 전격적으로 재단과 이 연구소가 공동 주관하여 개최하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에 꽃 피운 중남미 한국학 회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교수로 지난 10여 년 동안 아르헨티나의 한국인 이민에 대해 연구하여 출판 경험도 있는 Carolina Mera 교수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회의를 준비하는 초반에는 제대로 준비가 될지 걱정이 컸는데, 거의 매일 회의 준비 상황을 전해 오는 그녀의 이메일을 접하며 서서히 걱정을 떨칠 수 있었다.

본회의는 10월 2일 시작이었지만, 전야행사로 10월 1일에 석·박사 학생들의 소규모 세미나를 준비하여 4시부터 2시간동안 12명의 학생들이 지금까지 연구해 온 논문들을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다. 멀리 남미에서 이렇게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너무도 신기하고 고마웠다.

다음날 오전 9시 정각에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법과대학 대강당에서 Jaim Etcheverry 총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한국학 본회의가 시작되었다. 인근 대학의 교수, 학생 등 150여 명이 좌석을 가득 메웠다. 이렇게 많은 청중들이 모인 것은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과 인근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6개월동안 매월 여섯 차례에 걸쳐 한국관련 세미나를 개최한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이틀간 오전과 오후에 각각 2개의 세션이 진행되어 총 8개 세션이 개최되었다. 첫날 오전은 ‘한국의 문화, 윤리, 종교, 사회’와 ‘한국과 중남미의 전통과 문화예술’에 대해, 오후에는 ‘한국정치의 근대화와 민주화’, ‘한국과 중남미간 문화적 상호관계’에 대해, 둘째 날 오전은 ‘한반도 갈등과 중국의 역할’, ‘아·태지역에서의 한국의 역할’에 대해, 오후에는 ‘한국의 주변국과의 관계 및 양자관계’, ‘중남미 한국학 현황과 발전방안 모색’에 대해 회의가 진행되었다.

중남미 한국관련 학자 30명의 발표를 듣고 중남미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교수들이 이처럼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실제로 첫날 발표한 학자들만 한국학자들이고, 둘째날 발표한 학자들은 중국 또는 일본 등 아시아학 전공 학자들이었지만, 모두 한국에 초점을 맞춰 발표하였다. 물론 현재의 상황과는 다른 내용과 일반적인 정보수준에 머무르는 발표도 있었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비교적 한국 현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학 불모지에서 한국학회 결성 논의
재단이 특히 관심을 가졌던 ‘중남미 한국학 현황 및 발전 방안 모색’은 중남미에서 정규 한국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학이 없어서인지 새로운 내용이 나오지 않았고, 별다른 한국학 발전 방안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 중남미가 여전히 한국학의 불모지인 사실을 보여준 세션이었다. 대신, 이 세션에서 ‘중남미 한국학 회의’가 지속적으로 개최되어야 하며, 중남미 한국학회 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 점은 고무적이었다.

2차 회의는 2005년에 멕시코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고, 한국학회 결성은 논의 중에 시간이 부족하여 세션이 종결되는 바람에 결론을 맺지 못했다. 시간이 있었다면 아마도 학회가 결성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지만, 중남미 한국학자간 네트워크 구성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는 필자로서도 학자들간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한국학회의 결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2005년도 멕시코에서 있을 2차 회의에서 다시 의논하기로 하고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학회를 결성하지 않더라도 이번 회의 참석자들 사이의 교류는 얼마든지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한국학 발전을 위한 몇 가지 방안
이번 회의 참석으로 중남미의 한국학이 아직은 한국어 강좌나 한국학 강좌를 개설하기에는 이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먼저 한국에 대한 교수나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강연회, 세미나 개최 등과 같은 한국관련 행사를 시작하고 점차 한국관련 연구로까지 발전시키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연구센터를 설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한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 증진을 위해서는 한국 방문 기회를 제공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사업은 없을 것이다. 해외인사 초청사업 또는 체한연구자에 대한 장학사업을 통해 중남미 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로 시급한 문제는 중남미에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있어도 읽을 만한 도서와 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남미 지역에 대한 한국관련 도서와 자료의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 재단이 제공할 수 있는 자료는 주로 한국어와 영어 자료가 대부분이므로 가급적 스페인어 자료를 조사하여 배포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현지 교포를 이용하거나 국내 스페인어 전공자를 이용한 번역 출판 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남미에 한국학 뿌리내리기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한국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관심이 제고된 후에야 비로소 한국어를 포함한 한국학 강좌를 개설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객원교수를 파견하여 한국관련 강좌를 운영하고, 더 나아가서는 현지 학생이 한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가 자기나라 대학에서 강의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학자를 양성한다는 것이 1~2년 만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위해서는 또 다른 10여년이 걸릴 것이다. 이렇듯 중남미에 한국학이 뿌리내리기까지 최소한 20년은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인 장기계획을 수립하여 한 발 한 발씩 내딛는다면, 20여년 후에는 중남미에 한국을 확실히 심을 수 있게 되리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