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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얼음의 나라, 러시아와 아르메니아 한국의 춤 공연에 녹다

역사와 문화, 예술의 도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 아르메니아의 예레반에서 윤미라 무용단의 화려한 공연이 펼쳐졌다. 전통 춤을 재창작한 환상적인 공연에 겨울 나라의 밤은 동양의 신비로움으로 가득 물들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공연을 마친 무용단은 긴장감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11월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무용단들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러시아 문화 예술이 꽃핀 땅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비행기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 착륙을 하자 말로만 듣던 환상적인 백설의 추위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주었다. 수속을 끝내고 공항을 나서니 한국 영사관 직원들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환영을 받으며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우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즈음이었다.



겨울궁전에서 펼친 환상의 세계, 동서양의 경계를 허문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연
도시로 들어선 순간 가슴이 턱 막히는 벅차오름이 느껴진다. 도심 한가운데 흐르는 네바 강, 화려한 조명! 여느 거리의 야경에서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경관이 아니었다. 넓은 광장과 어둠 속에 화려하게 빛나는 궁전들이 서 있었고, 고전적인 궁전과 고풍스러운 일반 건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거리는 마치 과거로 돌아간것 같은 인상이 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의 베네치아라 칭송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시가지의 15%가 수면으로, 도처에 운하와 강이 흘러 1년 내내 거의 비와 안개로 덮여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종일 비가 오는 궂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만 뿜어져 나오는 운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더욱 행복한 시간이었다.
공연을 했던 에르미타쥬 박물관은 18~19세기 유럽 최고의 건축가들이 지은 5개의 건물로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상징한다고 한다. 에르미타쥬 박물관의 소장품은 약 270만 점으로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 예술품까지 주제별로 15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마치 거대한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세계적인 박물관의 감상을 뒤로한 채 우리는 엘리트 무용 공연만을 수행한다는 에르미타쥬 극장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펼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울궁정에 소속되어 왕비를 위한 공연을 했던 곳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작품의 질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영사관 직원들의 이야기를 이미 들은 터라 공연을 앞둔 우리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어울리는, 러시아의 혼이 담긴 겨울궁전에서 첫 번째 공연을 하게 되니 설렘과 기대감도 들었지만 걱정과 두려움 또한 컸다. 무대에 오르는 일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전제되어 있지만 러시아라는 낯선 땅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춤을 소개하는 자리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에르미타쥬 박물관 안의 아담하고 우아하게 꾸며진 무대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우리 춤 공연을 펼치는 단원들의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었고 운치가 느껴졌다. 서양식의 궁정 무대에서 선보인 한국 전통 춤의 공연은 동서양의 문화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색다른 경험을 전해주었다. 기존의 민속 춤과는 달리 전통 춤의 재창작을 위주로 구성된 우리 무용단의 작품에 모두들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공연을 관람한 관객 대부분이 러시아인이었는데, 이미 우리나라 춤에 대하여 상당히 깊게 이해하고 있는 듯 무용을 즐기며 관람하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우리의 몸동작에 몰입해있는 관객들을 보면서 역시 문화 선진국 국민들답다는 생각과 함께 새삼스럽게 무용에 대한 고마움과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자 기립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과 장식품에 대한 찬사를 하며 사진 찍기를 청하는 관객들로 한동안 홀이 가득 메워졌다. 유서 깊은 곳에서 러시아의 예술과 같이 호흡하며 동서양 사이의 경계를 허문 이번 공연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모두 입을 모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관객들은 기존 윤미라 무용단의 댄스 레퍼토리의 특성인 한국 전통 춤의 고급화에 감동했으며, 그들 나름대로 한국 춤이 지닌 예술적 우수성에 대한 감동을 쏟아냈다.

열악한 환경을 딛고 한국 춤의 예술적 우수성을 전한 예레반 공연
다양하고 매력적인, 문화와 예술의 도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 공연을 위해 모스크바를 경유해 아르메니아 예레반으로 향했다. 예레반은 우리 교민이 한 가구밖에 살지 않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알리고 윤미라 무용단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새벽에 도착한 무용단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리허설을 하기 위해 극장에 도착했다. 현지 스태프와 우리 스태프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니 공연을 위한 극장의 사정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 극장은 연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극장으로 댄스 플로어가 설치되지 않은 마루 무대였는데 너무 낡아서 버선이나 슈즈를 신고서는 공연을 할 수가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준비를 하면서도 극장 정보를 얻기 위해 예레반 현지와 여러 번 접촉을 시도했을 때 잘 이루어지지 않아 공연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공연장의 상황은 더욱 심한 상태였다. 극장을 천천히 살펴보니 극장의 구조는 매우 우수했으나,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해 무용 공연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 있었다.
1회 공연 때 급하게 구한 장판으로 임시 댄스 플로어로 사용하면서 열악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공연은 문제없이 이루어졌다. 예레반 관객들의 반응은 러시아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무척 호의적이었다. 우리 춤의 리듬감이나 화려한 의상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전통적인 사물 연주에 맞추어 추는 진쇠춤이나 가야금 선율에 맞춰 구성한 장고춤에 많은 감동을 느끼는 듯했다. 무용수들과 악기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언어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서로 힘을 합해 예레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는 호텔에서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에게 피와 살이 되는 선생님이며, 춤은 언어나 문화가 달라도 공연하는 자와 관객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예술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을 하면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똑같은 공연을 해도 공연장마다 그 공연의 분위기가 무척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관객들은 단순히 농악이나, 민속춤이 아닌 새롭게 무대화된 작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아르메니아의 예레반 관객들은 리듬감이 있는 사물 연주에 맞춰 춤을 춘 작품들에 높은 호응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두 장소에서 이루어진 공연 모두 한국 춤의 예술적 우수성에 대한 감동은 동일한 것이었다.



해외 공연은 우리의 문화만을 알리는 차원이 아니라 방문국의 문화를 경험하는 기회도 된다. 이번 러시아와 아르메니아 공연을 통해 자국 문화에 대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의 뛰어난 자긍심에 감동했으며, 처음 한국 문화를 접하는 예레반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문화 사절단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새삼 깨달았다. 돌아올 때까지 아무사고 없이 해외 공연을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한 무용단원들을 비롯해 스태프,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영사관 직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