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제 1차 한·이탈리아 포럼을 다녀와서

한국과 이탈리아는 1884년 수교한 이래 지난 120년 동안 외교관계를 유지해왔다. 우리가 1876년 개항했음을 고려할 때 개항 초기부터 매우 오랫 동안 외교 관계를 맺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2004년 6월 24일 로마에서는 제 1차 한·이탈리아 포럼이 개최되었는데, 필자는 이번 포럼에 남북관계 및 한반도 평화 세션의 발제자로 참여하게 되어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함께 발표를 맡은 다른 두 한국 측 참가자가 건축가 김석철 명지대학교 학장(사회·문화분야 발제), 한홍순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장(경제분야 발제) 등 이탈리아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저명한 분들이라서 필자로서는 긴장되었지만, 발표 주제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였기 때문에 약간은 안도할 수 있었다.

세계와 유럽, 한반도 문제에 대한 통찰과 지혜 교환
평소에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오랫동안 로마와 르네상스, 단테와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그람시와 톨리아티의 나라에 가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정작 이번이 첫 번째 방문이었다. 그러한 흥분과 기대를 포함하여 필자에게 이번 포럼에 대한 이탈리아 측의 배려는 두 가지 점에서 상당히 신선한 자극이었다. 하나는 참석자의 면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회의 장소였다. 먼저, 회의 장소는 이탈리아로서는 총리가 외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는(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이곳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화가 라파엘이 설계한 로마의 유서 깊은 빌라 마다마(Villa Madama)였다. 실제로 건물 자체와 경관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고, 천장에는 라파엘이 그린 그림이 부착되어 있었다. 참석자는 정부의 2인자로 알려진 Gianni Letta 총리실 보좌장관을 비롯해 Lamberto Dini 상원 부의장(전 총리), Franco Frattini 외교부 장관, Margherita Boniver 외교부 차관, Francesco Rausi 주한 이탈리아대사, Gianni De Michelis 전 외교부 장관 등이었는데, 이러한 구성의 면면은 이탈리아 정부가 이 포럼과 한국에 대해 보여준 관심의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지 한국대사관원들의 숨은 노력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장소와 면면을 넘어 더욱 놀라운 점은 토론의 내용이었다. 발제와 토론은 의례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 오늘의 세계와 유럽, 한반도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통찰과 지혜를 교환하였다. 여러 국가의 정치인들과 회의와 토론을 하면서 한 나라의 수준은 그 나라 정치인들의 식견 수준과 상부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필자에게 이탈리아 관료와 정치인들이 보여준 세계와 역사에 대한 식견은 놀라운 것이었다. 또한 필자는 이탈리아 참석자들의 한국에 대한 전문 지식은 물론, 그들 나름의 문제 해법이 갖는 깊이에 놀랐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으로 한국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다. 필자에게 이 이해의 깊이는 세계화 시대 유럽과 동아시아 그리고 양국의 지리적 거리를 뛰어 넘어 세계 7위와 12위의 선진 경제국가 사이의 상호 관심과 대화의 산물로 여겨졌다.

필자의 발표는 북핵 문제를 포함해 오늘의 한국 문제의 위상과 상황을 설명한 뒤 역사적으로 한국 문제가 갖고 있는 탈(脫)한국적 세계성과 지역성을 강조하였다. 요컨대 한반도 평화 없이 동아시아의 평화 없고, 동아시아의 평화 없이 한반도의 평화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유럽의 평화 건설과 통합의 지혜를 빌어 글로벌 제국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즉, 동아시아 문제 및 국제 문제로서의 한국 문제의 중첩적 구조와 전개를 강조한 뒤, 바로 그러한 중첩성 때문에라도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왜 남한과 북한은 물론, 동아시아와 세계의 다층적·복합적 공동 노력이 필요한 지를 설명하였다. 필자는 그것을 한반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한 화음이요,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불렀다.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시장과 경제 통합, 평화 문화, 제도, 민주주의를 통한 평화(가능) 경로를 제시한 뒤 각각의 수준에서, 즉 시장과 경제, 문화, 제도, 민주주의 층위에서 유럽과 이탈리아가 보여 주었던 경험을 나누어 줄 것을 주문하고 강조하였다. 거시적이고 공고한 평화 창조를 위한 3중 해법, 다시 말해 남한과 북한 내부의 평화 문화 창출과 민주주의 발전, 남북 사이의 평화 협정 체결과 대북 지원 및 경제통합 제고 그리고 국제사회의 한반도 평화 보장과 동아시아 에너지 공동체 -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의 구축 노력(그것이 없을 때 지속 가능한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의 건설은 불가능하기 때문에)을 강조했을 때 이탈리아 참석자들은 이탈리아의 적극적 대북 역할에 대한 의사를 표명하면서 남과 북에 대한 적절한 주문도 잊지 않았다.

이해와 통합, 상생과 평화를 싹틔우는 문화 교류
어려운 이탈리아 방문 기회를 맞아 필자가 다른 분들의 발표를 포함해 회의에서의 토론 내용에 대해 이탈리아 측 참석자들에게 직접 물었을 때 그들이 보여준 만족과 감사 그리고 회의 이후 자기들도 참으로 귀한 기회를 얻었다며 반갑게 악수해준 일,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공연에 대해 보여준 찬사와 감동, 김선일 씨 사건에 대한 합동 묵념 등을 보며 포럼을 마친 뒤 필자는 민간외교의 진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디와 푸치니의 음악 그리고 아리랑과 그리운 금강산을 부른 조수미 씨에 대해 그녀는 단순히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잘 하는 차원이 아니라 문화와 작품의 내용을 깊이 이해한 토대 위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라는, 음과 감정을 동시에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이탈리아 참석자들의 평가는 자랑스럽고도 놀라운 것이었다.

회의 직후 있었던 하루 동안의 공식적인 로마관광 일정을 마치고 따로 떨어져 이틀을 더 머물며, 현지에서 안식년 도중 참석한 외교안보연구원의 박홍규 교수와 함께 나폴리, 소렌토, 폼페이, 피렌체를 방문하여 평소에 보고 싶었던 문화유적과 예술품들을 둘러보았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떠올리며 야간에 다시 보는 ‘괴테의 집’이 주는 운치는 더욱 감미로웠다. 폼페이에서 보았던 인간 문명과 피렌체에서 만났던 아르노 강,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다. 로마와 폼페이는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몇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있지 않은가? ‘시간은 도대체 무엇이며 인간의 삶과 문명은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 과연 발전하는 것인가?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이러한 행사에 직접 참가하면서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의 지원, 주최, 회의진행에 개인적으로 깊은 사의를 가지는 것은 지식의 사회성을 유념하여 사회와 국가에 대한 헌신을 생각하고, 또 우리 문제에 대한 동아시아 및 세계인들의 바르고 깊은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들과의 교류와 대화가 갖는 중요성을 늘 인식해 왔기 때문이었다. 지식과 생각과 문화 교류의 집적을 통해 우리는 남을 잘 알게 됨은 물론, 우리를 또한 잘 알고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이해와 통합과 상생과 평화는 날로 자라게 될 것이다.

우리 문제에 대한 동아시아 및 세계인들의 바르고 깊은 이해를 높이기 위한 대화와 교류를 통해 우리는 남을 잘 알게 되고, 우리를 또한 잘 알고 알릴 수 있다. 따라서, 문화교류와 협력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이해와 통합과 상생과 평화는 날로 자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