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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한국학 진흥, 기업 참여가 열쇠다

지난 3월말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한국학 과정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적지않은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이어서 동 대학의 한국학 과정이 중국학이나 일본학 등 인접 동북아시아 국가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열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가열되었다. 중국학은 차치하고라도 14명의 교수진을 갖춘 일본학과에 비해서도 겨우 1명의 조교수와 강사로 명맥을 유지해 온 한국학이 그나마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이 해외 대학의 자국 관련학과에 지원하는 금액의 규모 차이가 엄청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은 가중되었다. 일본기업과 개인의 알려지지 않은 기여와 그 파급효과까지 포함한다면 해외 한국학과 일본학에 대한 외부지원규모의 차이는 100배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심각한 불균형이 서구사회에서 한국을 중국 또는 일본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면서 독도나 역사왜곡 문제를 한국에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일었다. 이런 와중에서 동북아시아 3국 중 유난히 학문적 연구가 빈약한 한국학을 진흥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해외한국학 지원사업에 대한 기업의 기부금에 대하여 조세감면 혜택을 부여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여기에서는 제출된 법안의 개요와 경과를 살펴보고 해외 한국학에 대한 기업참여의 활성화가 가지는 의미를 간략히 짚어 보고자 한다.

기업 기부금에 대한 조세 감면제도의 개요와 경과
이번에 제출된 법안은 기업이 한국국제교류재단에 기부를 함으로써 해외 대학, 박물관, 도서관의 한국학 관련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되면 그 기부금 액수에 상응하는 만큼의 일정한 조세 감면혜택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실 재단의 해외 한국학지원 사업에 대한 이러한 기부금 공제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94년부터 98년까지 5년간 재단에 대한 기부금은 공익적인 기부활동으로서 현재 제출된 법안에 의한 것보다 폭넓은 감면혜택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재단을 통하여 해외 대학의 한국연구와 문화소개 등 국제교류사업에 지원된 기부액은 2,473만 달러이고 이는 같은 기간 중 재단 전체 사업예산의 약 40%에 육박하는 규모다.
그러나 98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외화를 해외에 지원하는 사업에 대한 면세혜택이 중단되었고 그 결과 99년부터 2004년까지 민간기업의 해외 한국학에 대한 기업기부는 187만 달러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기업들이 해외 한국학 연구사업에 기부하기보다는 기업홍보에 도움이 되는 단기적 해외 이벤트성 사업에 치중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재단의 사업예산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업 재원의 유입조차 줄어들게 되자 해외 한국학 전체의 부담이 되었다. 옥스퍼드의 경우만 해도 재단의 지원으로 한국학 과정을 개설할 때에는 한국기업의 참여로 장차 활성화될 것을 기대했었으나 한국기업이 등을 돌림으로써 결국 과정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재원마저도 확보하기가 어려워져서 폐지를 고려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기업의 참여 유도는 해외한국학 진흥 방안의 핵심
오늘날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한국기업은 글로벌한 경쟁 속에서 거대한 경제주체로 성장하였다. 또한 그 사회적 공헌 활동도 세계 도처에서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공헌 활동이 한국학 분야에서만큼은 아직도 미진한 편이다. 그 중요한 원인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법률적, 제도적 장치, 즉 기업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던 조세감면 혜택의 폐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화교자본이나 일본기업의 경우와 달리 비교적 해외진출이 늦었던 한국 기업의 경우, 비경제적 해외 학술, 문화 투자(기부)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편이었던데다 IMF사태에 따른 조세감면 혜택 폐지로 말미암아 미처 이 분야에 대한 기부문화와 전통이 형성되기도 전에 흥미를 잃어 버리게 되었다.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에 흥미를 가지도록 유발하는 두 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홍보효과와 세제혜택 중 한 축인 홍보효과는 간접적이고 가시적이지 못한 가운데, 세제혜택마저도 사라져 버렸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조세감면 폐지 이후 현재까지도 재단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장치는 일본 Japan Foundation의 특정기부에 대한 면세혜택이나 미국 IRC (Internal Revenue Code) 501조 상의 비영리 기관에 대한 기부공제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기부문화가 아직은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일정한 세제상의 인세티브를 줌으로써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은 재원이 부족한 해외 한국학의 부피를 늘리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해외 한국학의 지원이 재단 혼자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제도적 지원장치의 부활을 통해 기업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이 부족한 재원을 확충하고 국가나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 하면서 한국학을 진흥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해외 한국학 진흥에 기업참여가 가지는 의의
기업기부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조세감면이 추진되는 시점에서 기업의 참여가 해외한국학의 진흥에 가지는 의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해외 학계 특히 동북아 지역 연구분야에 존재하는 지나친 중국·일본 편중현상을 완화함으로써 균형잡힌 학문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한·중·일을 그 비중에 맞게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이 동아시아 문명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지만 실제로 구미 학계에서 이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가에는 의문이 든다. 일례로 사무엘 헌팅턴 같은 이는 동아시아를 중화문명권과 일본문명권으로 나누고 있는데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 중 일본사람을 제외하고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부분일 것이다. 이것이 종교를 중심으로 분류하다보니 한국의 서낭당과 맥을 같이하다가 명치유신 이후 조장(助長)된 종교인 신도(神道)를 침소봉대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일본문화에 대한 서구 지성계의 인식의 크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근대화를 일찍이 성취한 일본이 몇 세대 앞서서 서구와 접촉하면서 누리는 프리미엄인 셈인데 문제는 이러한 인식의 크기 차이가 동아시아학에서 한·중·일간 비중의 차이를 지나치게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성장한 한국기업의 기부를 통해 외국인이 자국내에서 한국의 학술·문화적인 측면을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그 첩경이다.
둘째, 해외 한국학계에 있어서는 현 시점이 위기이자 기회라는 점 때문에 기업의 참여가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된다. EU에서 진행중인 볼로냐 프로세스에 의한 교육개혁 과정에서 지역학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인 한국학은 일차적인 정리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개편의 와중에서 한국학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참여는 향후 한국학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는가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기업에게 있어 동북아 지역학의 균형잡힌 발전은 한국의 국가적 정체성이 응분의 대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이 곧 기업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데 의의가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기업의 경쟁력과 연계된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국가 이미지의 개선은 그 나라의 문화와 학술에 대한 동조와 공감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동조와 공감은 국제교류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그 정점에서 권위를 가지는 것은 역시 학문적 연구성과이다. 한국학이 세계 유수대학에서 응당의 위상을 찾게 되면 한국기업은 위축된 한국학과 그로 인한 평판 때문에 마이너스 평가를 받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넷째, 한국국제교류재단에게 있어서 조세감면을 통한 기업기부의 증가는 단순히 사업비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단의 고유 목적과 기능을 확인하는 의미를 가진다. 기업의 기부를 통해서 비로소 재단은 한국정부를 대신하여 해외에 한국을 소개하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이 해외의 학술 문화 분야에 기여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은 재단이 당초에 민관합작적인 성격을 띄고 민간의 참여를 모아나가는 매개체로 고안된 것과 부합되는 역할인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통해 재단은 명실공히 한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해를 제고하고 국제적 우호친선을 도모하는 동시에 한국의 기부문화를 단순한 기업의 홍보성 이벤트가 아닌 학술분야에 대한 지원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인류문명의 다양성과 보편성에 대한 학문적 성취를 높이는데도 기여하는 기관이 되는 것이다.

한국학 위상 확보위해 활발한 기업참여 절실
옥스퍼드대학의 한국학 과정은 지난 7월 5일 재단 권인혁 이사장의 동 대학 방문을 통해 회생의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옥스퍼드의 한국학이 중국학이나 일본학처럼 14-18석의 교수직을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명목상 학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최소 4석의 교수직(University Lectureship)이 설치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은 재단 혼자만의 힘으로는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다.
비록 옥스퍼드대학 측에서 동북아 지역학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본학 교수직 1석을 희생하여 한국학 교수직을 운영하기로 하였다지만 나머지 3석의 교수직은 한국 측의 지원을 절실히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 측으로서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셈이며 여기에 호응하여 동아시아 지역학의 균형적인 발전에 기여하고 한국의 국가적 위상에 걸맞는 한국학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하여 나서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금번 제출된 이 법안이 해외 한국학 진흥에 기업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제도적 촉매”가 됨으로써 해외의 한국학 연구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