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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도 재단과 맺은 인연은 계속된다.

재단이 창립된 1992년은 마침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수립하던 해이다. 당시 7명의 중국 학자가 재단의 펠로십을 받았는데 금년으로 벌써 4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중국에서 재단의 펠로들은 대부분의 대학 한국어과 책임자이며, 한국관련 전문연구자들로 중국내 한국어 교육과 한국학 발전의 선봉에서 활약하고 있다. 비조선족 대상 한국어학과가 92년 수교 당시에는 3개에 불과했으나 현재 4년제 한국어문학 정규과정을 개설한 대학이 40여 개에 이르니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발전이다. 이러한 중국내 한국학의 급성장에는 우리 재단 펠로들의 역할과 기여가 매우 컸다고 평가된다. 이에 대해 펠로들은 그 공을 온전히 재단에 돌리는 겸손을 보인다. 재단 펠로로 방한하여 한국식 한국어를 습득하고, 각종 자료 수집은 물론 한국의 학자들과 폭넓게 교류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귀국 후 표준 한국어를 가르치고 단절되었던 한국과의 학술교류를 빠르게 회복시키면서 중국내 한국학의 양적, 질적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50여 명에 이르는 북경지역 재단 펠로들이 재단의 유대관계 속에서 친목을 도모하고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2005년 12월 동창회를 구성했다. 그 후 2006년에 한 번, 그리고 얼마 전 임성준 이사장의 북경 방문을 계기로 펠로들이 다시 모임을 갖고 서로 우의를 다지고 또 나름대로 상호 정보를 교환하는 기회로 삼았다. 사실 처음에는 학술행사 등 한국연구 활동도 계획했으나 워낙 전공 분야가 다르고 연령층도 다양하여 공통된 주제로 학술모임을 갖기는 어려움이 따랐다. 단지 가끔 한번씩 만나는 것만으로도 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에 머물렀던 좋은 경험을 떠올리고 재단에 대한 감사와 함께 한국 관련 연구 및 교육활동에 다시 한 번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펠로 모임은 상해에서도 한 번 개최하고, 필자가 업무상 지방 도시를 방문할 때 현지 펠로들과 간담회를 개최하는 형식으로 도시별 모임을 갖는다. 특히 지난 5월과 7월에는 심양, 청도, 천진 등에서 개최된 재단의 문화 공연에 펠로들을 초청하여 함께 관람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펠로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은 자신이 한국에 갔을 때 재단의 담당자에 대한 안부이다. 처음 한국에 와서 적을 둘 대학을 찾아가는데 재단 담당자가 친절하게 동행해 주었다, 약속 없이 재단에 들렀는데 점심을 사주더라 등 대부분은 사소하지만 낫선 한국 땅에서 자신을 살갑게 대해준 재단 직원의 친절함이 가장 오래 기억된다고 한다. 바쁜 업무 일상에서도 펠로들에 대한 좀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중국은 한국과의 눈부신 관계발전에 비례하여 한국을 연구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학자와 학생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재단의 예산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만나는 펠로마다 재단 펠로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을 듣거나, 재단 펠로로 선정되지 못하면 중국 한국학계에서 크지 못한다는 등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한다. 북경에 근무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앞으로 중국의 학자, 학생, 전문가에 대해 보다 많은 지원 혜택이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