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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하고 있는 일은 국가간의 또는 국제사회에서의 친구 사귀기를 돕는 것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법 제 1조에 명시된 재단의 설립목적은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해를 도모하고 국제적 우호친선을 증진하는데 이바지함’으로 이는 세계화 시대에 이웃사촌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Global Korea Speakers Forum 개최
이웃사촌, 친구는 신뢰, 믿음을 바탕으로 하며, 신뢰와 믿음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언어 장벽, 문화 장벽, 거리 장벽, 시차 장벽에 갇혀 한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제사회의 이웃사촌들에게 우리의 역사와 문화, 생각, 삶을 바로 알리기 위해 한국학 지원, 박물관 지원, 인적교류 등의 다양한 국제교류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재단은 우리 국민들이 외국 문화,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여, 국제간의 친구, 이웃사촌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처신하는 것을 돕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외국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도록 지난 2005년에 설립한 재단문화센터가 그 예이다.
Global Korea Speakers Forum은 재단 이웃사촌 만들기 작업의 새로운 시도이다. 우리는 관심 대상 국가의 사회 현안이 무엇이며, 국제적 이슈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은 그들의 친구인 한국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필자가 워싱턴사무소장으로 활동한 지난 2년 여의 기간 동안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많이 질문받은 내용은, 현 한국 사회의 현안은 무엇인가, 즉 한국인들은 무엇에 대해 고민하는가? 지역 (또는 국제적) 현안에 대해 한국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등이다. Global Korea Speakers Forum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무엇을 고민하며, 국제 이슈와 관련해 생각하는 바에 대해 외국 친구들과 직접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4월 기획되었다. 그 이후 개최기관 섭외, 발표자 및 주제 선정 등의 준비 작업을 거쳐 2007년 9월 4일 제1차 행사로 동해 표기 문제에 관한 강연회가 워싱턴 DC에서 개최되었다.
동해연구회(회장: 이기석 서울대학교 교수)와 공동으로 준비된 이날 행사에서 동해연구회 김진현 명예회장은 일제시대 학창시절에 겪은 창씨개명 일화를 소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김진현 명예회장은 자신이 겪은 일화를 통해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이 일본 식민지배와 무관치 않음을 우회적으로 암시하며 ‘일본해’ 명칭 사용에 있어서 정통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민족에게 ‘동해’는 단순한 지리학적 명칭이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지니는 유산(遺産)의 개념임을 강조했다. 이어서 경희대학교 주성재 교수는 지난 몇 세기 동안의 문서와 지도 등을 바탕으로 본래 ‘동해’로 명기되었던 바다가 국제적 관점의 변화에 따라 일본해로 표기되다가 다시 동해/일본해 병용설이 제기되는 역사적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루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당초 목표인원 30명을 초과한 45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특히 미국 상무부 소속 국가측지국 및 지리학회 관계자, 지리학과 교수, 동아시아문제 전문가, 사회과 교사 등 주제와 관련된 분야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하여 고무적인 토론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기석 교수가 진행한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지명 표기 문제의 역사, 문화적 복잡성에 대해 통감하면서 ‘동해’ 도 아니고 ‘일본해’도 아닌 중립적 명칭을 사용하자는 대안을 내어놓기도 했다.



지역 현안에 대한 생각을 나눈 2차 행사
Global Korea Speakers Forum 1차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50여 일 후 동아시아 민족주의에 관한 2차 강연회가 로스앤젤레스와 워싱턴 DC에서 개최되었다. 1차 행사가 우리들이 고민하는 과제를 위한 자리였다면, 2차 행사는 지역 현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Nationalism and Internationalism in Korea and Northeast Asia’를 주제로 한 2차 행사에는 동북아역사재단 김용덕 이사장이 강사로, 그리고 연세대학교 김호기 교수, 서울대학교 박태균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으며, 주관기관인 남가주대학교(USC) 한국학연구소장 황경문 교수, UCLA 한국역사 이남희 교수(이상 로스앤젤레스 행사), 그리고 조지워싱턴대학교 시거센터 소장 커크 라슨 교수(워싱턴 DC 행사)가 토론에 합세했다.
10월 30일 오후 12시, 90여 명의 참석자들이 조지워싱턴대학교 시거동아시아센터 회의장에 모여들었다. 참석자들과 함께 30분간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한 뒤에 강단에 오른 동북아역사재단 김용덕 이사장(서울대학교 교수)은, 역사 문제로 촉발된 동북아 민족주의와 관련하여 한국 민족주의의 뿌리와 역사적 배경, 나아가 국가 정체성으로의 발전 과정을 차분하게 설파했다. 외세의 침략과 도전에 대한 반작용으로 형성, 심화된 민족주의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냈으며, 나아가 장차 통일을 이루어내는 염원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옛 고구려와 발해 영토를 현재 점하고 있는 중국이 고구려사, 발해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고 하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 김용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영토주권’에 비견되는 ‘역사주권(historical sovereignty)’ 개념을 소개하며, 많은 한국 국민들이 동북공정은 한국에 대한 ‘역사주권(historical sovereignty)’ 침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북공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한국 고유의 민족주의가 과거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냈음이 분명하나 세계화 시대에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또한, 21세기 한국은 제한적인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것을 지양하고 한·중·일 사이에서 극단적 민족주의를 막는 중재자로서 거듭나야 한다고 설파했다.
김용덕 이사장의 마지막 발언처럼 다른 토론자들도 세계화 시대에서 한국적 민족주의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연세대학교 김호기 교수는 한국사회가 빠르게 다민족사회로 변해가고 있음을 소개하며, 한국사회가 이(異)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을 높여야 함을 강조했고, 동시에 국수적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고착되지 않도록 열린 민족주의로 가야함을 주장했다. 조지워싱턴대학교 시거동아시아센터 소장 커크 라슨 교수는 한?중?일 사이의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국가 대 국가적 접근은 비효율적인 것이라며, 이러한 중재역할을 하는 데는 동북아 재단과 같은 비정부 기구의 역할이 지대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라슨 교수는 유일한 미국인 토론자로서 한·중·일 관계 뿐만 아니라 북한과 남한 간 민족주의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놓아 흥미를 끌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서울대학교 박태균 교수는 한국사회가 맹목적,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에서 탈피하여 Post-nationalism을 지향할 것을 주장하며 이를 위한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조지워싱턴대학교 교수, 대학원생은 물론 인근 조지타운대학교,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학대학원(SAIS), 메릴랜드대학교, 조지메이슨대학교 동아시아학 교수들이 다수 참석했고, 국무부 동아시아 담당관이 경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김용덕 이사장과 김호기 교수, 박태균 교수는 로스앤젤레스에서도 10월 26일에 동일한 주제의 강연회를 가졌다. 남가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UCLA 한국학센터, 남가주 Asia Society, 그리고 재단이 공동 주최한 로스앤젤레스 행사에는 주류 사회보다 한인 사회에서 더욱 많이 참석하여 워싱턴 DC 행사와 대비되었는데, 이는 미국 내 최대 60만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로스앤젤레스와 정치, 외교의 중심 도시 워싱턴 DC 사이의 확연한 차이점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 글을 빌어 Global Korea Speakers Forum 강연회를 함께 준비해 준 USC 한국학연구소, UCLA 한국학센터, 남가주 Asia Society, 조지워싱턴대학교 시거동아시아센터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일련의 강연회를 통해 현대 한국인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미국의 한국 친구들이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면에서 보람을 느끼며, 아울러 필자 자신도 지명 표기와 역사문제에 대한 생각과 관점을 새롭게 조율할 수 있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개최될 Global Korea Speakers Forum 강연회가 한, 미 간의 사안에 대한 의견 교환을 돕고 나아가 두 국가 간 우정을 돈독히 다지는 데 일조하는 자리가 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