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2022 SPRING 1005
신드롬을 이끄는 연주자들 수백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세련되고 깊은 울림으로 다시 태어난 크로스오버 신드롬의 기저에는 탄탄한 연주 기량을 갖춘 인스트루멘털 컨템퍼러리 국악의 선구자들이 있다. 국내외 무대에서 크게 조명받고 있는 대표적인 세 그룹 – 그들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음악 세계를 들여다본다. 2019년 벨라 유니언(Bella Union)에서 발매된 잠비나이(Jambinai)의 세 번째 정규 앨범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이다.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인 이일우(Ilwoo Lee 李逸雨), 김보미(Bomi Kim 金寶美), 심은용(Eun Youg Sim 沈恩用) 세 명으로 출발하여 2017년 드러머 최재혁(Jaehyuk Choi 崔宰赫)과 베이스 유병구(B.K Yu 兪炳求)가 정식 멤버로 합류한 뒤 처음 내놓은 앨범이다. 전작들에 비해 한층 역동적인 리듬감이 살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블랙스트링(Black String)“거문고의 진정한 소리, 평생을 바쳐도 다다를 수 없는 그것과 블랙스트링이 추구하는 지향은 큰 틀에서 볼 때 다르지 않다.” 2011년 결성된 4인조 그룹 블랙스트링(Black String)은 전통 음악과 재즈를 접목시켜 즉흥성에 중심을 둔 실험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왼쪽부터 거문고의 허윤정(Yoon Jeong Heo 許胤晶), 아쟁과 장구의 황민왕(Min Wang Hwang 黃珉王), 대금과 양금의 이아람(Aram Lee 李アラム), 기타의 오정수(Jean Oh 吳定洙).ⓒ 나승열(Nah Seung-yull 羅承烈) 지난 여러 해에 걸쳐 국내외 월드 뮤직 및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주목을 받아온 이 4인조 그룹의 독특한 이름은 이들 음악의 깊은 뿌리가 거문고에 있음을 천명한다. 줄잡아도 천 오백 년의 역사를 가진 이 악기는 그 담백하고 장중한 음색이 한국 전통 음악의 품격을 상징한다. ‘현금(玄琴)’이라는 한자 이름을 영어로 옮기면 그대로 Black String이다. 2011년에 팀을 이룬 이들 4인의 걸출한 연주가는 거문고의 허윤정(Yoon Jeong Heo 許胤晶), 기타의 오정수(Jean Oh 吳定洙), 대금과 양금의 이아람(Aram Lee), 아쟁과 장구의 황민왕(Min Wang Hwang 黃珉王)이다. 2016년 이들에게 이륙의 순간이 왔다. 독일의 세계적 음반사 ACT와 무려 5장의 정규 음반을 내는 파격적인 계약을 맺은 것이다. ACT는 ECM과 함께 재즈를 중심으로 실험적 현대 음악까지 아우르는 음반사다. 블랙스트링은 이 회사와 음반을 내게 된 최초의 한국 연주 그룹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출시한 1집 음반 로 2018년 영국의 세계적 월드 뮤직 시상식 송라인즈 뮤직 어워즈(Songlines Music Awards)의 Asian and Pacific 분야 수상자가 되었다. 이것도 한국 음악가로서는 최초로 이룩한 성과였다. 블랙스트링의 음악 세계는 어찌 보면 유럽 민속 음악과 명상적 재즈를 결합하는 ECM의 색깔과 더 맞는지 모른다. 2019년 발매된 2집 의 동명 타이틀곡에서 보여 주는 앰비언트 뮤직의 선(仙)적인 재해석, ‘Exhale-Puri’나 ‘Song of the Sea’가 들려주는 재즈 퓨전적인 접근법은 한국적 ECM 사운드에 가깝다. 그룹의 리더 허윤정은 파격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서울대 국악과 교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거문고 연주자인 그는 20세기 한국 연극의 지평을 크게 넓혔던 마당극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연출가 허규(1934∼2000 許圭)의 딸이다. 그는 “아버지를 통해 즉흥 음악의 대가들을 알게 됐고, 해금 연주자 강은일(姜垠一)이 국악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나도 참여하게 됐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허윤정은 강은일과 함께 국악계에 자유로운 실험 바람을 일으키는 주역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철현금(鐵絃琴) 연주자 유경화(柳京和)와 함께‘상상 트리오(SangSang Trio)’를 만들어 활동하며 전통적 시김새와 장단을 프리 재즈나 현대 음악의 방법론과 섞어 냈다. 유경화, 그리고 작곡가로 협업했던 원일(Won Il 元一)은 허윤정과 국립국악고등학교 동기들이다. 블랙스트링의 다른 멤버들은 모두가 국악과 재즈 분야에서 손꼽히는 젊은 베테랑들이다. 이들은 재료 선택에 거침이 없다. 전통 민요나 무속 음악, 불교 음악을 비롯해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Exit Music - For a Film’까지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가져와 몽환적인 음악 비빔밥을 거침없이 만들어 낸다. 결코 플루티스트에게 밀리지 않는 독보적이고 창조적이며 비르투오소적인 대금 연주를 들려주는 이아람, 그와 함께 다른 팀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황민왕은 물론이고, 오정수의 미니멀하면서도 입체적인 기타 사운드는 이들이 결코 거문고만을 위한 앙상블이 아님을 방증한다. 국악에 막 눈을 뜬 독자라면 제각기 솔로와 프로젝트 활동도 겸비하는 이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허윤정은 “즉흥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팀의 아이덴티티는 즉흥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곡의 명확한 콘셉트와 정체성이 뼈대가 되고, 즉흥성이 동력이 돼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전통의 즉흥 음악 독주 장르인 산조야말로 허윤정과 블랙스트링의 뿌리이자 심장이다. 잠비나이(Jambinai)“멸종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동물이 눈앞에 나타날 때의 충격, 마치 심해에서 살아 있는 실러캔스가 발견됐을 때와 같은…. 그런 뭔가를 추구한다.” 포스트 록 밴드 잠비나이는 한국 전통 악기를 중심으로 록과 메탈이 뒤섞인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한다. 왼쪽부터 드럼의 최재혁, 거문고의 심은용, 기타와 피리, 태평소의 이일우, 해금의 김보미, 베이스의 유병구.ⓒ 강상우(Kang Sang-woo) 헬페스트(Hellfest)라는 음악 축제가 있다. 축제라고 하기엔 조금 살벌한 이름인가? 매년 6월이면 수만 명의 열혈 청춘들을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불러 모으는 세계적 메탈 페스티벌이다.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부터 캐니벌 콥스(Cannibal Corpse)까지 날 선 금속성을 앞세운 록, 메탈 밴드들이 주요 출연진이다.그런데 2016년, 이 축제 무대에 한국의 전통 악기들이 난데없이 대거 등장했다. 밴드 잠비나이가 공연을 펼쳤던 것이다. 이 팀은 2009년 결성된 5인조 포스트 록(post rock) 밴드로 기타와 피리, 태평소를 두루 연주하는 이일우(Lee Il-woo [Ilwoo Lee] 李逸雨), 해금의 김보미(Kim Bo-mi [Bomi Kim] 金寶美), 거문고의 심은용(Sim Eun-youg [Eun Youg Sim] 沈恩用), 드럼의 최재혁(Choi Jae-hyuk [Jaehyuk Choi] 崔宰赫), 베이스의 병구(B.K Yu 兪炳求)로 구성됐다.이들의 음악은 음산하고 기괴한 한국 도깨비와 귀신들의 한바탕 난장을 연상시킨다. 술대로 거문고의 몸통과 현을 한번에 내려치는 거친 반복 악절(loop)이 해금의 귀곡성과 전기 기타의 포효를 만날 때 헤비메탈은 만들어 낼 수 없는 서스펜스와 호러가 거친 물결을 이룬다. 포스트 록, 슈게이징, 메탈, 국악의 미학이 예상할 수 없는 비율로 충돌한다. 해금과 거문고가 내는 마찰음과 파찰음이 낯설되 짜릿하다.그룹의 핵심 멤버인 이일우, 김보미, 심은용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동기인데 어려서부터 국악을 전공한 정통파들이다. 그러나 사실 잠비나이는 국악에 대한 이일우의 반항심이 야기한 산물에 가깝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피리를 잡았고, 3학년 때부터는 전기 기타를 쳤다. 학교에서는 국악을 배우고 집에서는 메탈리카를 보며 로커를 꿈꿨다. 잠비나이 이전에는 ‘49 Morphines’라는 격정적 스크리모(screamo) 장르의 밴드에서 활동했다. 그는 잠비나이의 결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국악기는 밴드 사운드와 절대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없어. 전통 한옥에나 어울리지’ 하는 선입견, 국악은 지루한 음악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그러려면 강렬한 사운드가 필요했는데, 브라질 전통 음악을 메탈과 결합한 밴드 세풀투라(Sepultura)의 ‘Roots’에서 간접적 힌트를 얻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앨범에서 들은 인더스트리얼 록의 사운드 콜라주, 바이올린, 첼로, 백파이프 같은 악기가 록 사운드와 이질감 없이 맞물리는 포스트 록 장르 모두 자양분이 됐다.” 2014년 미국 SXSW 페스티벌 공연에서 잠비나이는 2명의 관객으로 시작해 30분 만에 공연장을 가득 메워 놓았다. 이 놀라운 광경을 직접 본 것은 필자의 콘서트 관람 중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다. 이 밴드는 마침내 2015년 영국의 세계적 레이블 벨라 유니언(Bella Union)과 계약하고, 이듬해 2집 를 세계 시장에 내놔 극찬을 받았다. 촛불처럼 시작해 거대한 들불로 번지는 듯한 이들의 드라마틱한 사운드는 1집 의 ‘소멸의 시간(Time Of Extinction)’, 2집의‘벽장(Wardrobe)’, 3집 의 수록곡 ‘사상(絲狀)의 지평선(Event Horizon)’처럼 맹렬한 곡들뿐 아니라 1집 마지막 곡 ‘커넥션(Connection)’처럼 명상적인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2집 제목이기도 한 ‘은서’라는 단어는 이 팀을 이해하는 좋은 키워드가 될 것 같다. 이 말은 네시(Nessie)나 설인을 다루는 유사 학문 은서동물학(cryptozoology, 隱棲動物學)에서 유래했다. 잠비나이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50회가 넘는 해외 공연을 다녔다. 영국의 워매드(WOMAD), 세르비아의 EXIT, 그리고 덴마크의 로스킬레(Roskilde) 같은 세계적 페스티벌 무대에서 관객을 홀렸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동양고주파(Dongyang Gozupa)“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부족함이 창의적인 걸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셋이지만 충분한 팀이 되고 싶다.” 동양고주파(Dongyang Gozupa)는 2018년 결성된 3인조 그룹으로 리듬 악기로만 이루어진 악기 구성은 그 자체로 다른 그룹들과 구별된다. 질주하는 듯한 빠른 연주를 통해 음악적 서사와 폭발적 에너지를 전달한다. 왼쪽부터 퍼커션의 장도혁(Jang Do Hyuk 張道爀), 양금의 윤은화(Yun Eun Hwa 尹銀花, YIN YINHUA), 베이스의 함민휘(Ham Min Whi 咸民輝).ⓒ 김신중(Kim Shin-joong 金信中) 앞선 두 그룹에 결코 뒤지지 않는 파격적 개성을 지닌 3인조 밴드가 있다. 이름부터 만만치 않게 독특한 동양고주파다. 이 밴드에 대한 첫인상은 스콜처럼 내리퍼붓는 양금 주자 윤은화(Yun Eun-hwa [Yun Eun Hwa] 尹銀花, YIN YINHUA)의 타현(打絃)이 먼저 장악한다. 이는 메탈리카가 ‘Master of Puppets’를 연주할 때 보여 주는 다운 피킹의 폭풍우를 시각적으로 압도할 정도다. 여기에 함민휘(Ham Min-whi [Ham Min Whi] 咸民 輝)의 묵직한 베이스 기타와 신출귀몰하는 장도혁(Jang Do-hyuk [Jang Do Hyuk] 張道爀)의 퍼커션이 결합하면 아우토반을 내달리듯 질주하는 이들의 사운드가 완성된다. 양금의 명료한 음색은 싱그러운 초록 열대우림에 쏟아지는 청명한 빗방울같이 뛰어다닌다. 2018년 EP 앨범 으로 데뷔한 이 팀은 아시아 밴드 최초로 세계적 월드 뮤직 페스티벌인 워멕스(WOMEX)에 2020년과 2021년 연속 초청됐다. ‘동양에서 온 고주파’를 뜻하는 듯한 기괴한 팀명은 장도혁이 우연히 본 동네 전파사 간판에서 따왔다. 사납고 날이 선 자신들의 음악 세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따온 이름이다. 이 밴드의 중심은 윤은화의 양금으로 블랙스트링이나 잠비나이가 연주하는 거문고의 현이 명주실인 데 반해 이 악기는 철현(鐵絃)이다. 윤은화는 이것으로 메탈을 방불케 하는 철의 음악을 뽑아 낸다. 양금은 페르시아에서 유래했다. 이후 조금씩 개량되면서 지터(zither), 덜시머(dulcimer), 침발롬(cimbalom) 같은 이름으로 불리다가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전파됐고, ‘서양에서 온 악기’ 라는 의미로 양금이라 불리게 되었다. 국악기 가운데는 생황과 함께 서양 음계나 화성을 어느 정도 연주할 수 있는 희귀한 악기이기도 하다. 세계양금협회 한국 지부장이기도 한 윤은화는 이 악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더 현대적으로 개량했다. 그는 “원래 우리 전통 양금은 작고 음역도 좁아 다양한 장르를 연주하기엔 제약이 있다”면서 “내가 개량해 쓰는 이 양금은 음역으론 4옥타브 반을 커버하고 서양의 12 반음계 체계를 갖췄다. 어떤 음악도 가능하다. 소리를 증폭하는 픽업도 달고 이펙터도 사용해 표현 영역을 더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민휘는 “윤은화만큼 양금을 헤비하게 두드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네 살 때 중국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북한식 양금에도 눈을 떴으며,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타악을 전공했다. 동서양은 물론 남한과 북한, 타악과 현악의 장점을 흡수한 ‘윤은화 스타일’은 오랜 단련의 결과물이다. 발로 밟는 킥 베이스 드럼을 쓰지 않는 장도혁도 독특한 연주자다. 사지를 모두 쓰는 대신 두 손만으로 저음부터 고음까지 모든 타악의 스펙트럼을 구현하다 보니 그만의 스타일이 탄생했다. 동양적 세계관을 결합했던 독특한 록 밴드 ‘단편선(短篇選)과 선원들(Danpyunsun and the Sailors)’ 출신인 그는 “연주의 제약이 오히려 나만의 사운드를 만든다. 이런 도전이 재밌다”고 말한다. 함민휘의 베이스 연주는 미국 뉴메탈 밴드 콘(Korn)이나 펑크록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둔중함과 날렵함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윤은화는 2021년 말 수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수림뉴웨이브상을 받았다. 매년 단 한 명 또는 한 팀만 받을 수 있는, 실험적인 음악 작업을 선보이는 젊은 국악 연주자를 뽑는 영예로운 상이다.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LEENALCHI)의 보컬 권송희(Kwon Song-hee [Kwon Song Hee] 權松熙)와 황해도 무가(巫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밴드 악단광칠(ADG7; Ak Dan Gwang Chil)도 이 상을 받았다.#국악
Features 2022 SPRING 867
다양한 시도, 뜻밖의 즐거움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을 안고 새로운 음악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한국 전통 음악의 지평을 한껏 넓히고 있다. 재주와 야심이 넘치는 이 음악인들이 다양한 기법으로 만들어 내는 뜻밖의 묘미를 만나 보자. ⓒ 김희지(Kim Hee-ji 金熙智) , HAEPAARY, 2021년 6월, 플립드코인뮤직(Flipped Coin Music)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는 국악을 전공한 박민희(Minhee 朴玟姬)와 최혜원(Hyewon 崔惠媛)이 2020년 결성했다. 이들은 국악이 지닌 미니멀한 미학에 존경을 표하는 동시에 그것이 지니는 가부장적인 맥락을 해체하고자 한다. 이 디지털 음반에서는 종묘제례악을 가져와 일렉트로닉 비트로 재해석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악은 조선 왕실의 사당인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음악과 춤으로 요즘에도 재현되고 있다.특히 두 번째 트랙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 ‘귀인(歸人)-형가(亨嘉)(Born by Irreproachable Gorgeousness)’의 음산한 전자음은 흡사 1960~70년대 독일 크라우트록(krautrock) 장르를 연상시키는 불길한 미니멀리즘의 잔치다. 젠더를 해체하는 박민희의 가창도 상징적이며 기묘하다. 국악 성악곡의 한 갈래인 가곡(歌曲)은 남성이 부르는 남창 가곡과 여성이 부르는 여창 가곡으로 나뉘는데, 그는 이러한 구분 없이 이펙터를 사용해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되 여성을 앞세움으로써 전통의맥락을 뒤집고 재조합한다. 해파리는 2021년과 2022년 연속 미국 SXSW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비스킷 사운드(BISCUIT SOUND) 제공 , 정은혜(Jung Eun-hye [Jung Eunhye] 鄭恩寭), 2021년 8월, 비스킷 사운드(BISCUIT SOUND) 2017 초연된 창작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낭독극 사운드 프로젝트에 완성도를 더해 발매된 음반이다. 창극과 서양 고전 문학에 사운드적 건축학을 적용한 일종의 ‘소리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지옥의 문’, ‘카론의 강’, ‘악마의 먹잇감’ 등 음반에 실려 있는 17곡은 단테의 『신곡』 가운데 지옥편에서 착안했고, 주요 텍스트를 창(唱)과 대사로 풀어냈다. 스테레오의 입체 공간 속을 유령 같은 메아리로 떠도는 정은혜의 목소리는 이따금 타악, 첼로, 기타, 피아노의 지원을 받아 듣는 이의 감은 눈앞에 어둠침침하고 눅눅한 지하 소극장을 펼쳐낸다.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LEENALCHI)가 코믹한 판소리 에서 익살과 흥을 극대화했다면 정은혜는 판소리에 담긴 지극한 처연함의 미학을 단테의 지옥도와 결합 낸다. 그는 판소리와 창극, 연극을 오가며 소리꾼이자 배우로 활약해 왔다. 일곱 살 때 판소리에 입문해 당대의 명창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서울대학교에서 국악을 전공했다. 201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여러 편의 창극에서 주역을 맡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 박진희(Park Jin-hee 朴眞姬) <“Hi, We are Jihye & Jisu”>, 지혜지수(Jihye & Jisu), 2021년 3월, 사운드 리퍼블리카(Sound Republica)타악 연주자 김지혜(Kim Ji-hye 金智慧)와 클래식 연주자 정지수(Jung Ji-su 鄭智守)로 구성된 듀오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다. 김지혜는 어릴 적부터 국악을 했지만 다른 예술 장르와의 융합을 꿈꾸었고, 정지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성장했지만 창작욕과 대중성에 대한 갈증이 컸다. 미국 버클리음악대학 재즈 작곡과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이들은 연주가로서 활동하며 더불어 창작자로서도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들의 음악 작업에서는 심각하고 난해한 실험은 찾아볼 수 없다. 디지털로 변환한 무언가도 없다. 수록된 일곱 곡이 연주되는 동안 북과 장구와 피아노가 있는 그대로의 음색으로 한 편의 담백한 어쿠스틱 콘서트를 만들어 낸다. 함께 스페인을 여행하며 떠오른 영감과 개인적 경험들을 녹여낸 이 앨범은 낙천적인 분위기, 밝은 에너지가 시종 넘실댄다. 굿거리, 자진모리, 칠채 같은 국악 장단이 재즈의 펑키한 리듬이나 홀수 박자와 맞부딪친다. 속도감 있게 질주하는 다섯 번째 곡 ‘론다와 나(Ronda and Me)’는 꽉 막힌 출근길에서 들으면 제격일 정도로 시원한 느낌이다. 여섯 번째 곡 ‘벚꽃의 기억(Memories of Cherry Blossom)’과 마지막 곡 ‘K-시나위(K-Sinawi)’에는 색소폰 연주자와 타악기 연주자가 참여했는데, 매우 인상적인 이들의 피처링도 기억할 만하다. ⓒ Daniel Schwartz, Micha , 국악재즈소사이어티(The Gugak Jazz Society), 2021년 3월, 소리의 나이테 음악회사(Sori-e Naite Music Company) 국악재즈소사이어티는 한국, 그리스, 미국 출신의 음악가들로 구성된 다국적 앙상블로 2019년 보스턴에서 재즈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판소리 칸타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이 음반은 제목에 쓰인 ‘Greekorea’라는 조어(造語)처럼 그리스와 한국 전통 음악의 화학적 결합을 시도한 작품이고, 재즈가 촉매로 합류한다. 보스턴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조미나(Cho Mi-na [Mina Cho] 趙美娜)가 주도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장구, 꽹과리, 생황, 가야금, 태평소와 같은 국악기부터 그리스의 류트, 중동 타악기인 벤디르, 리크, 다부카를 포함해 드럼과 베이스까지 다채로운 악기가 입체감을 만들어 낸다. 또한 이나래(Lee Na-rae [Lee Na Rae] 李翼)의 보컬은 놀랍게도 한국 민요와 중동의 소리를 유연하게 오가고 각국의 장단과 리듬, 화성이 이질감 없이 섞여든다. 그는 이날치의 멤버이기도 하다. 이 독특한 3개국 합작 프로젝트는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색감의 음악 팔레트를 만들었는데,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서울, 아테네, 보스턴에 위치한 각국의 연주자들이 원격으로 협업하며 음반을 제작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 보이드 스튜디오(Void Studio) , 신박서클(SB Circle), 2021년 8월, 플랑크톤뮤직(Plankton Music) 재즈 색소폰 연주자 신현필(Shin Hyun-pill 申鉉弼),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Park Kyung-so [Kyungso Park] 朴景召), 베이스 주자 서영도(Seo Young-do 徐永道), 드러머 크리스천 모런(Christian Moran)의 이름을 결합한 팀명을 지닌 신박서클의 두 번째 앨범이다. 젊은 세대가 즐겨 쓰는 ‘신기하고 기발하다’는 뜻의 속어 ‘신박하다’의 의미도 담겨 있다. 이 ‘신박한’ 그룹은 전통 음악의 단선율 음계에 재즈 화성을 끼워 맞추는 식의 오래된 물리적인 결합은 지양했다. 대신 경쾌하되 경박하지 않은 공동 창작의 화학 작용을 준수하게 뽑아 냈다. 색소폰과 가야금의 단선율 유니슨(unison)이 뻥 뚫린 한강변 도로 위 세단처럼 뻗어나가는 첫 곡 ‘밀실의 선풍기(Fan in the Room)’부터 음악의 질감이 매끈하고 근사하다. 서영도의 베이스와 크리스천 모런의 드럼이 가져다주는 섬세하면서도 절도 있는 리듬도 매력적이다. ‘평면지구(Flat Earth)’나 ‘음이온(Negative Ions)’의 뻔하지 않으면서도 귀에 와서 철썩 부딪치는 멜로디는 국적이나 음악적 전통을 떠나 도회적인 재즈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곁에 바짝 다가갈 만하다.#국악
Features 2022 SPRING 1105
다름을 보여 준다 장영규(Jang Young Gyu 張領圭)는 영화, 무용, 연극, 현대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몇 개의 밴드를 조직하고 이끌며 전통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실험을 지속해 왔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작업실이 그의 음악적 모험의 산실이다. 2019년, 로 국내외에서 돌풍에 가까운 호응을 얻은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LEENALCHI)에는 음악감독이자 베이시스트인 장영규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이제야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겠지만, 사실 그는 이날치 이전에도 민요 록 밴드 씽씽(SsingSsing)으로 해외 음악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음악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2016)이나 (2016) 같은 영화를 통해 그의 음악을 이미 경험했다. 최근에 높은 흥행을 이룬 이런 작품들 외에 타짜(Tazza: The High Rollers)>(2006), (2005)을 비롯한 80여 편의 영화에도 그의 손길이 배어 있고, 그는 실제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음악상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도 무용과 연극 음악 분야까지 아우르며 종횡무진 작업하는 뮤지션 장영규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말을 잘하지 못한다며 수줍어했지만,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탬버린, 멜로디언으로 연주하는 ‘말도 안 되는’ 그룹을 만들었던 그의 생각은 그의 음악만큼 자유롭게 번득였다. 컨템포러리 국악의 한 축을 이끌어 온 장영규는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해 온 것이 음악 작업의 외연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전통 음악에 접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국악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원일(Won Il 元一) 씨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 그를 알게 되었고, 1994년 결성한 어어부(漁魚父) 프로젝트(Uhuhboo Project)에서 1집을 낼 때까지 함께 활동했다. 그때는 밴드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소리에 대한 호기심이 컸는데, 원일 덕분에 국악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어 그들과 이런저런 작업을 함께했다.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전통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현대무용가 안은미(Ahn Eun-me 安恩美)와 함께 작업하면서부터였다. 안은미컴퍼니는 내 마음대로 음악을 해 볼 수 있는 기회였고, 그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도록 이끌었다. 특히 이나 과 같은 작업을 할 때는 전통 성악의 세 장르, 즉 판소리, 민요, 정가가 그제야 구분되면서 각 소리의 특성과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겉핥기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에 2007년 7인조 밴드 비빙(Be-Being 悲憑)을 만들었다. 비빙을 통해 불교 음악, 가면극 음악, 궁중 음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실 모두 공부하는 마음으로 해 본 작업들이었다. 음악감독으로서 국악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나? 오랜 시간이 아니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들에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 듣는가,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가에 따른 차이도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국악인들을 직접 만나 가까이서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음반이라든지, 아니면 마이크를 통해 소리를 증폭시키는 공연에서 국악을 접하는 것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가까이에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런 경험의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민요 록 밴드 씽씽이 2017년 7월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여우락 페스티벌(Yeo Woo Rak Festival)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파격적인 음악과 유쾌한 퍼포먼스로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씽씽은 장영규를 비롯해 세 명의 소리꾼과 드러머, 기타리스트 등 6인이 모여 2015년 결성되었으며 2018년 해체되었다.국립극장 제공(Courtesy of National Theater of Korea) 요즘 국악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지난해, 오디션 심사를 하면서 60여 개 팀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심사하는 내내 저들은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전통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수련을 거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하지만 숙련된 테크닉뿐이라면 그 자체를‘음악’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최근 몇 년 사이 국악과 다른 장르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밴드들이 늘고 있고, 지난해에는 TV 방송에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생기면서 크로스오버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게 좋기만 한 일인지 모르겠다. 전통 음악을 들어본 경험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시청자들이 이런 경쟁 프로그램에 나오는 크로스오버 형식의 음악만 국악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음악만 찾게 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전통 음악의 재미와 매력을 제대로 들려줄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빨리 찾아내야 한다. 국악과 다른 장르가 접목된 음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나는 김덕수(Kim Duk Soo 金德洙) 사물놀이패와 다국적 재즈 그룹 레드선(Red Sun)의 협연 음반을 들으며 자랐다. 음악적으로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는 푸리(Percussion Ensemble Puri)와 양방언(Yang Bang Ean 梁邦彦, Ryo Kunihiko)이 눈에 들어왔다. 양방언의 경우 그가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공연 무대에서 그의 곡을 연주하지 않는 국악 밴드들이 없을 정도였다. 당시 그의 음악 스타일을 모방한 국악 그룹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국악계가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잠비나이(Jambinai) 같은 경우는 그들의 음악이 전통 음악에 속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자신들이 무슨 음악을 해야 되는지 방향성을 갖고 자신들만의 색깔을 확실히 내고 있는 팀이다. 음악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달(2nd Moon)처럼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한 밴드도 있다. 다양한 팀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12월, 홍대 앞 라이브 공연장 스트레인지 프룻(Strange Fruit)에서 공연하고 있는 이날치. 장영규를 중심으로 2019년 결성된 얼터너티브 팝 밴드로 두 명의 베이시스트와 드러머, 네 명의 보컬 총 7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판소리를 팝으로 재해석한 댄스곡 는 국내외에서 폭발적 호응을 이끌어 냈다. 오른쪽부터 베이스의 장영규, 보컬 권송희(Kwon Song Hee 權松熙), 이나래(Lee Na Rae 李翼), 안이호(Ahn Yi Ho 安二鎬), 신유진(Shin Yu Jin 申有珍), 뒷줄에 베이스의 박준철(Park Jun Cheol 朴俊澈)과 드럼의 이철희(Lee Chul Hee 李鐵熙). ⓒ LIVE CLUB DAY, Azalia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음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름’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업할 때 다름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를 항상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상투적 표현을 경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인가?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스타일이 명확해지고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져 변화에 대해 고민하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항상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내 스타일 안에서 내용에 따라 다른 방식을 찾아가면 된다. 무용, 연극, 영화 음악을 만들 때와 이날치 작업은 어떤 차이가 있나? 다른 작업들은 목적이 분명하고, 내가 해야 되는 역할도 명확하다. 반면에 이날치는 완전히 열려 있다. 이날치 음악을 만들 때는 기본적인 리듬이나 패턴들을 만들어 놓은 후 소리꾼 4명이 모여서 소리 대목들을 찾는다. 리듬과 음악적 방향에 어울리는 선율을 만들기 위해 어떨 때는 주요 판소리 다섯 바탕을 다 찾아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것들을 포착하여 발전시키는 게 재미있다. 전통 판소리를 놓고 편곡하는 방식이 아닌 작곡에 가깝다. 이날치가 성공한 이후 달라진 게 있는가? 대중음악 시장에 들어가고 싶다, 소비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무얼 해야 되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2020년 1집 앨범 를 발매한 후에 보니 정말 하기 싫었던 일들, 예전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이 내 앞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회피하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까지 해야 되나’ 여기던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 게 내 스스로 가장 달라진 점인 것 같다.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날치는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과연 밴드로서 소비되고 있는가’ 자문해 봤을 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갈 길이 남았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사실 국내 음악 시장에는 밴드 시장이 없기 때문에 좋은 음악만 만들면 저절로 잘될 거라 기대해선 안 된다. 소비되기 위해서 때를 기다리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누가 그런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닌 이상, 밴드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해외 활동을 준비하고 있나? 밴드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국내에서도 물론 계속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해외에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시장이 존재하니까 그곳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양쪽 모두 시도해 볼 작정이다. 올해는 해외 공연 일정도 잡혀 있다. 지난해 발매 예정이었던 2집이 늦어지고 있다.사실 이렇게 바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음반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판소리 다섯 바탕 안에서 뭔가 더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기존 판소리 레퍼토리를 짜깁기하여 이야기만 새로 갈아 끼운다고 지금 시대에 맞는 음악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시대성을 지닌 새로운 이야기는 물론이고 작창에서도 다른 음악적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치 2집은 앞서 말한 고민들이 반영된 창작 판소리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다. 가능하다면 올해 말에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국악
Features 2022 SPRING 742
융합과 협업의 축제 국립극장이 주최하는 여우락(樂) 페스티벌(Yeo Woo Rak Festival)이 그 이름이 뜻하는 대로 모두가 함께 즐기는 흥겨운 행사로 자리 잡았다. 국악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대중화를 모색하는 취지로 시작된 축제가 해를 거듭하며 많은 음악인들의 상상력과 영감을 일깨워 과감한 창작의 세계로 이끌어 가고 있다. 2017년 7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여우락 페스티벌에는 월드 뮤직 그룹 1세대인 공명(GongMyoung 共鳴)이 창단 20주년을 맞아 풍성한 레퍼토리로 구성된 기념 공연을 펼쳤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관객의 열렬한 호응 속에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국립극장 제공(Courtesy of National Theater of Korea) 서울 한복판 남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극장에서는 매년 7월이면 한 달 내내 흥겨운 축제가 펼쳐진다. 여우락 페스티벌이다.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It’s our music)’는 뜻의 줄임말로 ‘동시대인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전통 음악’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2010년에 시작해 올해로 13회를 맞는 이 페스티벌에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전통 음악을 매개로 과감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명실상부한 전통 음악 실험의 장(場)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여우락은 대부분의 다른 국악 공연과 달리 수년째 유료 티켓의 매진 행렬을 자랑한다. 2021년 말 기준 누적 관객 6만 6천여 명(2020년 온라인 상영 시청자 제외), 평균 객석 점유율 93퍼센트를 기록했으며, 꾸준히 마니아층을 확보해 최근 대중 문화계에 불고 있는 국악 열풍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간 전통 음악이 매우 소외된 장르로 명맥을 이어 왔고, 전체 음악 시장에서 국악 기반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도 여전히 미미함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성공은 매우 이례적이고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 페스티벌의 존재 가치는 단순히 티켓 판매에 성공했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통 예술 분야를 국가의 지원으로 이어가는 보존에만 한정하지 않고, 그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음악 활동을 펼치는 음악인들을 무대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전통 예술의 현대화, 나아가 그 가치의 향유를 해외 무대로 넓혀 가는 ‘국악 르네상스’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다.여우락은 그간 예술 감독으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양방언(Yang Bang Ean 梁邦彦, Ryo Kunihiko), 재즈 아티스트 나윤선(Youn Sun Nah 羅玧宣), 작곡가 겸 지휘자 원일(Won Il 元一), 철현금(鐵絃琴) 연주자 유경화(Ryu Kyung-hwa 柳京和)가 역임하였고, 2020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Park Woo Jae 朴佑宰)가 수장을 맡고 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양방언과 나윤선은 재즈와 대중 음악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뮤지션들이고, 원일과 유경화는 전통 음악 전공자로서 자신의 개성적인 음악 세계를 기반으로 실험적이면서 창의적인 협업으로 일가를 이룬 중견 예술가들이다. 이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구성이야말로 여우락의 세 가지 키워드, 즉 실험성, 대중성, 그리고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주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여우락 페스티벌의 포스터들. 국악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대중화를 모색하기 위한 취지로 201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매년 7월 국립극장 무대에서 창의적 공연을 펼친다.국립극장 제공(Courtesy of National Theater of Korea) 그간 무대에 섰던 출연진들도 대체로 세 부류의 이질적인 그룹으로 대별된다. 첫째는 판소리 명창 안숙선(Ahn Sook-sun 安淑善)이나 황해도 대동굿 만신 이해경(Lee Hae-kyung 李海京)처럼 전통 음악의 원형을 보유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나 이에 준하는 명인들이다. 둘째는 이들보다 한 세대 젊은 층으로 전통 음악을 전공했지만 재즈나 아방가르드, 대중 음악과 서양 클래식 등 타 장르와의 협업에 능숙하고, 예술성과 실험성,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일가를 이룬 새로운 세대의 음악인들이다. 바로 이들이 여우락 페스티벌의 중추적 역할을 맡아 왔다고 할 수 있다.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Kyungso Park 朴景召) 같은 아티스트와 공명(GongMyoung 共鳴), 신노이(Sinnoi)처럼 주로 월드 뮤직 연주로 알려진 밴드들을 꼽을 수 있다. 셋째는 주로 재즈와 대중 음악 쪽에서 실험적이고 예술성이 높은 작업을 해 왔던 뮤지션들로 평소에도 활발한 협업을 통해 전통 음악과의 융합에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들이다. 피아니스트 임동창(Lim Dong-chang 林東昌), 작곡가 정재일(Jung Jae-il 鄭在日), 래퍼 타이거 JK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사진 작가, 시각 디자이너 등 음악 외 장르 예술가들도 다수 참여해 새로운 형태의 콘서트를 만드는 데 활발히 기여하고 있다.#국악
Features 2022 SPRING 834
‘조선팝’의 탄생 국악과 팝을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 ‘조선팝(Joseon pop)’이 주목받고 있다. K-pop의 외연을 확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 ‘변종’ 음악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JTBC의 TV 국악 경연 프로그램 (2021. 9~12)이 마련한 전국 투어 콘서트 중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서도밴드(sEODo Band)가 공연하고 있다. 은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전통 음악의 멋과 매력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JTBC, 어트랙트엠(ATTRAKT M) “국악은 한국인의 음악이지만, 한국인과 가장 거리가 먼 음악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한 소설가의 이 말은 20세기 이후 한국 전통 음악의 현실을 그대로 나타낸다. 오랜 시간 전승되어 온 민족 고유의 음악이지만 오늘의 감각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국악은 한때 거의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했다. 고리타분한 음악이라는 인식이 대중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이러한 고정관념이 국악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른바 ‘조선팝’의 부상과 인기에 지렛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대중이 멀리 밀어 두었던 국악이 어느 날 색다른 변화의 옷을 입고 나오니, 그 변신의 폭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사실 한국의 전통 음악은 시대마다 새로운 감각을 입으며 변화해 왔고, 그 같은 유산이 오랜 침체기를 지나 지금 빛을 발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10월,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Kim Duk Soo 金德洙)와 청배(請拜)연희단(Cheong Bae Traditional Art Troupe)이 함께 광화문 아트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김덕수는 1978년 전통 농악 장단을 무대 예술로 각색한 사물놀이를 세상에 내놓아 국내외 수많은 무대에서 공연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청배연희단은 20여 년 동안 전통 연희를 기반으로 창작 음악을 만들어 오고 있는 단체이다.ⓒ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Samulnori Hanullim, A Non-Profit Organization) 보존을 위한 지원20세기 후반 정부의 보존 및 지원 정책이 전통 음악의 생존에 중요한 결정적 뒷받침이 되었다. 보존이 가능했기에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의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예로부터 어느 국가나 사회에서도 전통 음악은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빛을 잃기 마련이었다. 한국의 전통 음악도 그런 운명 앞에 놓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 동안 위기를 맞았으며, 1950년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전통 음악인들을 비롯한 국악 자원의 파괴를 가져왔다. 휴전 이후에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전통 음악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으며, 1960년대부터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변되는 근대화 물결이 거세지면서 전통 음악은 전근대적 예술이라는 이유로 그늘 속에 가려 있었다. 하지만 위기 속에도 미약하나마 보존을 위한 노력은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가 그 역할을 했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조선 왕조는 ‘이왕가(李王家)’로 격하되었고, 궁중의례 음악도 자연히 축소되거나 폐지될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왕직아악부가 학생들을 모집해 가르침으로써 궁중 음악의 명맥을 겨우 이어 나갔다. 해방과 건국에 이어 발발한 한국전쟁 동안 임시 수도 부산에서 국립국악원이 문을 열고 전쟁으로 흩어진 국악 자원과 음악인들의 중심 역할을 했다. 1953년 휴전 이후 서울로 이전한 국립국악원은 이후 계속 발전을 이루어 오늘날에도 전통 음악의 보존과 이를 응용한 창작을 지원하는 기관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62년부터 시행된 문화재보호법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이 법에 따라 ‘국가무형문화재’ 제도가 도입되었다. 중요한 전통 문화 예술 분야를 보존 대상으로 지정하고, 이를 연마하고 전승 능력을 갖춘 이들에게 국가가 ‘보유자’ 및 ‘이수자’ 자격을 부여하고 지원하는 제도다. 전통 음악 부문에서는 종묘제례악, 가곡, 판소리, 대금 산조, 경기 민요를 포함한 다수의 종목이 지정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국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주목받고 있는 연주자 중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블랙스트링의 허윤정(Heo Yoon-jeong [Yoon Jeong Heo] 許胤晶)은 거문고 산조, 잠비나이(Jambinai)의 이일우(Lee Il-woo [Ilwoo Lee] 李逸雨)는 피리 정악 및 대취타, 이날치(LEENALCHI)의 안이호(Ahn Yi-ho 安二鎬)는 판소리, 소리꾼 이희문(Lee Hee-moon 李熙文)은 경기 민요 이수자다. 2020년 9월, 데뷔 10주년을 맞은 고래야(Coreyah)가 구리아트홀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 2010년 결성된 국악 크로스오버 그룹 고래야는 전통 악기의 특성을 살린 음악적 구성에 전 세계의 다양한 민족 음악과 대중음악을 접목해 새로운 국악 스타일을 만들어 왔다. ⓒ 구리문화재단(Guri Cultural Foundation) 국악의 정착1959년 서울대학교 국악과 창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악이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서울뿐 아니라 전국 여러 지역의 대학에 국악과가 개설되는 불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1970~80년대에 크게 증가한 국악과 개설과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은 국악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20세기 역사의 격변 속에 전통 음악이 사라질 위기를 목격했던 전 세대와 달리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는 보존과 전승보다는 국악이 보다 새로운 감각을 입고 대중에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전통 음악의 여러 요소들을 밑바탕으로 시대에 어울리는 창작곡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창작’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일반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민요나 판소리를 소재로 새로운 곡을 쓰거나 익숙한 서양 고전 음악을 편곡하여 국악기로 연주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되었다.특히 1970년대 말 등장한 사물놀이는 국악이 대중과의 간극을 좁히는 데 획기적 역할을 했다. 전통 농경 사회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기던 농악 장단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물놀이는 북, 장구, 꽹과리, 징 4개의 타악기가 앙상블을 이루어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이다. 젊은 국악인들은 사물놀이의 특성과 요소를 흡수하여 대중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호응을 이끌어 내면서 오랫동안 뒷전에 물러나 있던 전통 음악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국악의 변신대중음악 시장이 부상하던 1980년대에는 국악의 장단이나 가락을 살려 일반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든 민요풍의 가요가 등장했다. ‘국악 가요’라 불리는 이 장르는 대중 음악의 한 흐름으로 정착했으며, 국악 향유층을 넓히는 데도 한몫했다. 또한 국악기와 양악기를 결합한 반주 편성은 이후 1990년대 들어 퓨전 국악이 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한편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시작된 세계화의 물결은 또 다른 자극제가 되었다. 시장이 개방되고 새로운 무역 질서가 구축되며 서구 문화가 다수 국민들의 일상에 유입되는 가운데 우리 문화를 돌아보자는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 국산 농산물을 애용하자는 내용을 담은 배일호(裴一湖)의 노래 (1993)가 크게 히트했고, 같은 해에 판소리를 소재로 한 임권택(Im Kwon-taek 林權澤) 감독의 영화 도 ‘국민 영화’로 불리며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슷한 시기 판소리의 박동진(朴東鎭 1916~2003) 명창이 출연해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를 외쳤던 한 의약품 TV 광고의 카피가 한동안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2018년 12월, 멜론 뮤직 어워드(Melon Music Awards)의 BTS 특별 무대에서 멤버 지민(Jimin)이 부채춤을 추고 있다. BTS는 음원 사이트 멜론이 주최하는 이 시상식에서 (2018)을 국악 버전으로 편곡해 공연했고, 지민의 부채춤뿐 아니라 제이홉(J-HOPE)의 삼고무, 정국(Jungkook)의 봉산탈춤 등 전통 문화를 접목한 화려한 퍼포먼스로 관객의 열광적 호응을 받았다. ⓒ Kakao Entertainment Corp. BTS 멤버 슈가(SUGA)의 두 번째 믹스테이프 (2020)의 타이틀곡 ‘대취타’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이다. 조선 시대 임금이나 관리들의 공식 행차 때 연주되던 행진곡 대취타를 샘플링해서 만든 곡으로 트랩 비트(trap beat)와 악기 소리가 신명나게 어우러진다. 전 세계 아미들이 국악에 관심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 곡이다. ⓒ 하이브(HYBE Co., Ltd.) 당시 정부는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을 기념하고 관광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1994년을 ‘한국 방문의 해’ 및 ‘국악의 해’로 지정했다. 이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했고, 이 과정에서 국악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몇 년 후 아시아 금융 위기로 국가 부도 사태를 맞게 되자 문화 예술인들의 활동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으나, 한편으로 많은 국악인들에게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가’라는 시대적 당면 과제를 안겨 줬다.1990년대 말부터는 인터넷의 확산에 따라 국악인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도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국의 전통 음악이나 민속 음악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음악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런 음악이 ‘월드 뮤직’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도나 아프리카 등 다른 문화권의 음악은 국악인들이 새로운 음악을 창작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특히 종전의 해외 국악 공연이 전통 음악에 국한되었던 것과 달리 작곡가 원일(Won Il 元一)을 주축으로 한 그룹 푸리(Puri)나 월드 뮤직 그룹 공명(GongMyoung 共鳴)처럼 퓨전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례가 늘어났고, 해외 음악 페스티벌이나 음반 시장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이와 함께 변화와 변용도 넓은 의미에서 국악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유네스코가 아리랑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릴 때도 “오래된 노래가 여전히 불리며, 동시에 새로운 창작을 통해 전승되고 있다”는 점을 등재 사유로 들었다. 2021년 7월,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진행되었던 소리꾼 이희문(Lee Hee-moon 李熙文)의 온라인 콘서트 의 스틸 사진이다. 공연을 앞두고 공개된 이 사진에서 이희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캐릭터 ‘미뇨’를 판타지적인 비주얼로 표현했다. 현장 공연과 뮤직 비디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영상 콘서트는 새로운 공연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이희문컴퍼니(Lee Hee Moon Company) 제공 협업과 시너지최근 들어 ‘조선팝’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대중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음악은 이처럼 오랜 역사와 배경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보다 때로는 해외에서 더 사랑받고 있는 듯한 블랙스트링, 잠비나이, 이날치 같은 밴드들의 탄생도 이런 흐름의 한 자락으로 볼 수 있다. 2010년부터 국립극장이 매해 주최하고 있는 여우락 페스티벌도 국악계의 큰 행사인 한편 오늘날 변화하고 있는 국악인들의 생각과 작업을 소개하는 일종의 월드 뮤직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이런 흐름 속에 국악을 대하는 다른 분야 예술가들의 자세와 일반인들의 생각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JTBC가 2021년 9월부터 12월까지 방영했던 TV 오디션 프로그램 은 젊은 국악인들의 자유로운 실험 정신을 가감 없이 보여줬고, 시청자들은 낯설지만 감각적인 이들의 음악에 환호했다. 연극∙무용∙영화∙뮤지컬∙미술 등 다른 장르들이 색다른 변화를 시도할 때 국악인들과 활발히 협업하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소리꾼 이희문은 패션∙영상∙뮤직비디오 같은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긴밀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최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국악을 잘 보존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악이 다른 예술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숨은 무기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고 했다. ‘조선팝’이 앞으로 지구 곳곳의 독특한 음악을 찾아 듣는 해외 월드 뮤직 팬들에게 앞으로 더욱 다가설 수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국악
Features 2022 SPRING 865
월경(越境)하는 국악기들 국악기에는 고대로부터 한반도에 존재해 온 자생적 악기와 유라시아 대륙과의 교류를 통해 유입된 외래 악기가 있다. 이 악기들은 이 땅의 오랜 역사와 함께하며 각 시대의 문화와 감성을 담아 왔다. 그런 가운데 어떤 것은 한때 성행하다가 조금씩 잊히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잠시 잊혔다가 다시 조명되기도 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국악기 가운데 몇 종류를 소개한다. 세상의 모든 악기에는 문화가 반영된다. 악기의 재료, 형태, 크기, 연주법은 지리, 환경, 종교, 정치 등 다양한 요소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외부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악기는 거의 없다. 설령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보편화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사회적 요인이 개입한다. 새로운 악기는 인접 국가의 문화와 자국의 문화가 융합되고 충돌하며 탄생한다. 이렇듯 악기의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국악기도 마찬가지다. 까마득히 먼 과거에 중국에서 수입된 악기를 개량해 보편화된 것도 있고, 비교적 가까운 과거인 20세기에 서양 악기를 개조한 것도 있다. 오늘날에는 음량을 개선하거나 음역대를 넓히기 위해 기존 악기를 개량하기도 한다. 국악기는 지금도 여전히 경계를 넘으며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한편 서양 음악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근대를 거치며 밴드나 콰르텟, 서구 오케스트라 편성의 합주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편성은 국악기에 최적화된 합주 방식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국악기 본연의 특성이 배제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음량이 작거나 화성 진행에 어려움이 있는 국악기는 무대에서 보조적인 역할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각각의 악기가 지닌 고유한 특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늘었다. 합주에서 본연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부차적으로 밀려났던 악기, 홀로 연주되는 일이 드문 악기가 주축이 되는 독주곡도 새롭게 등장했다. 악기를 사용하거나 전통 음악을 해석하는 방식도 과거에 비해 무척 다양해졌다. 오늘날 국악기는 전통 음악의 문법에 깊게 착안한 음악부터 장르의 경계가 모호한 음악까지 모두 아우른다. 거문고,악기 중의 으뜸 한국을 대표하는 현악기 거문고는 예로부터 모든 악기 중 으뜸이라 칭해져 왔다. 비단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의 역할뿐 아니라 지식인들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수양의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외관은 같은 현악기인 가야금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특성을 지녔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음색이다. 거문고는 가야금에 비해 줄이 굵어 낮고 중후한 소리가 난다. 연주법도 다르다. 가야금은 손가락으로 줄을 누르고 튕기며 연주한다. 하지만 거문고는 술대라는 막대를 사용해 줄을 밀거나 뜯고 내려치며 연주한다. 거문고가 다른 현악기들에 비해 강인하고 절제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이렇듯 현악기적 특성과 타악기적 특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합주를 하는 전통 음악 레퍼토리에서 거문고는 핵심적인 입지를 갖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역할이 점차 줄고 있으며,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창작 음악도 드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밴드나 서구 오케스트라 편성이 주를 이루다 보니 거문고의 작은 음량과 소박한 음색의 가능성에 주목하지 못한 탓이 크다. 실제로 거문고의 특징이 잘 발휘되는 작품을 만들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최근 거문고만으로 존재감을 입증하는 연주자가 하나둘 늘고 있다. 거문고 솔리스트이자 창작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황진아(Hwang Gina 黃眞娥)는 이 악기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다. 2021년 발표한 디지털 싱글 은 이별을 대하는 남녀의 상반되는 심리를 재치 있는 사운드로 표현했다. 분명한 기승전결 속에서 거문고만이 할 수 있는 리드미컬한 호흡의 연주를 가감 없이 담아냈다. 피리,숨결을 불어넣은 나무 어떤 악기는 나무에 숨을 불어넣었을 때 완성된다. 피리는 대나무로 만들어 세로로 연주하는 관악기로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 세 종류가 있다. 궁중 음악부터 민간 음악까지 대부분의 전통 음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관악기는 소리를 내는 작은 진동판인 리드(reed)가 있는 악기와 그렇지 않은 악기로 나뉜다. 피리는 ‘서’라고 하는 겹리드(double reed)를 사용하며, 여타 관악기와 마찬가지로 숨을 불어넣고 강약을 조절하며 지공(指孔)을 여닫는 방식으로 연주한다. 혀를 사용하거나 서를 무는 위치를 달리하여 음정을 조절하고 피리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기교를 구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민감한 특성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연주자의 섬세한 기량이 요구된다. 피리가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꿋꿋하고 힘찬 음색 덕분에 현대에 만들어진 음악에서도 주선율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외로 피리 연주자로만 이루어진 팀은 흔치 않다. 삐리뿌(BBIRIBBOO)는 두 명의 피리 연주자와 프로듀서로 구성된 3인조 밴드다. 다양한 전통 음악 레퍼토리를 재기발랄하게 풀어내 악기가 지닌 매력을 극대화한다. 2021년 발표된 는 조선 시대에 궁중과 상류층에서 연주되던 정악 연주곡들 가운데 ‘양청도드리’의 주선율을 펑키한 스타일로 편곡한 작품이다. 양청도드리는 정악 계열의 음악 중에서 템포가 빠르며,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는 흥겨운 선율로 구성되어 있다. 는 이러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해석해 피리와 생황으로 연주한다. 운라(雲鑼), 떨림과 울림 모든 국악기가 까마득히 먼 과거부터 사용된 것은 아니다. 운라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했다. 운라가 전래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시대 대표적 악서인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에 등장하지 않고, 조선 후기 사료에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대략적인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운라는 구리로 만든 작은 접시 모양의 ‘동라’를 나무틀에 매달아 작은 막대로 쳐서 연주하는 타악기다. 하지만 선율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일반적인 타악기와는 조금 다르다. 동라는 여러 개의 단으로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는데, 맨 아래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가면서 음이 높아진다. 제일 높은 단의 중앙에 위치한 동라의 음이 가장 높다. 연주법은 간단하다. 양손에 채를 쥐고 동라를 번갈아 치거나 한 손으로 치기도 한다.이 악기는 주로 수문장 교대식이나 어가 행렬 재현식과 같은 행진곡에 사용된다. 다른 타악기와 함께 연주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단독으로 사용된 음악은 드물다. 최근에는 타악기 연주자 한솔잎(Han Solip)이 다른 타악기와 함께 운라를 사용해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2018년 발표된 첫 번째 디지털 싱글 는 맑고 청아한 음색의 운라를 사용해 따뜻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그려낸다. 이 곡은 행진곡에 사용되는 운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동라를 강하게 타격할 때 발생하는 쨍한 소리보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잔향과 서정적인 선율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미니멀하면서도 모던한 음색 속에서 운라의 가능성을 찾는 음악가들은 앞으로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최영모(Choi Yeong-mo) 철현금(鐵絃琴), 기타의 변신 철현금은 1940년대 남사당패 줄타기 명인이었던 김영철(金永哲)에 의해 고안된 현악기로 서양 악기인 기타를 국악기의 문법에 맞게 개량한 흔치 않은 사례이다. 기타를 거문고처럼 바닥에 놓고 연주하면서 놀다가 만들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다 보니 기타와 거문고의 속성이 절묘하게 결합되었다. 일반적인 현악기는 명주실을 사용하지만 철현금은 기타처럼 쇠줄이다. 연주법은 기타가 아닌 거문고와 비슷하다. 오른손에 술대를 쥐고 왼손으로는 농옥(弄玉)으로 줄을 문질러 연주한다. 쇠줄을 사용하지만 연주법은 기타와 전혀 다르다 보니 음색이 무척 독특하다. 미묘한 경계에 서 있는 이 악기는 근대의 역동성과 변화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사실 철현금은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 사이에서 보편화된 악기가 아니어서 다른 악기에 비해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드물다. 당연히 연주할 수 있는 곡도 매우 적다. 최근에 들어서야 창작곡을 통해 접할 기회가 조금씩 늘고 있다. 가야금 트리오 밴드 헤이스트링(Hey String)이 2019년 발표한 중반부에 철현금이 등장한다. 가야금 선율과 대비되는 날카롭지만 둥글게 휘는 금속성 선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송광찬(Song kwang-chan 宋光燦) 장구, 음악의 처음과 끝 장구는 한국의 거의 모든 전통 음악에 사용되는 타악기다. 음악의 처음과 끝에는 언제나 장구가 있다. 음악의 기준이 되는 ‘박(拍)’을 짚어 주면서 템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장구는 나무의 속을 파내고 가운데를 잘록하게 깎아 만든 긴 통의 양쪽에 가죽을 대고 줄로 엮어 만든다. 양쪽 가죽을 양손으로 두드려 연주한다. 장구의 왼쪽을 북편 또는 궁편, 오른쪽을 채편이라 부른다. 북편은 손바닥으로 두드리거나 동그란 궁알이 달린 궁채로 치고, 채편은 나무를 깎아 만든 길고 가느다란 열채로 연주한다. 일반적으로 장구는 반주용 악기로 인식된다. 물론 설장구, 풍물굿 등 장구를 중심으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가락과 기교를 선보이는 음악도 있다. 하지만 온전히 타악기로만 연주되는 경우는 많지 않고,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음악도 다른 선율 악기에 비해 한정적이다. 최근에는 솔리스트를 선언하고 활동하는 타악 연주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음악을 선보이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소라(Kim So-ra [Kim So Ra] 金素羅)는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타악기 연주자이다. 2021년 발매된 두 번째 앨범 는 한국에 오랜 기간 전승되어 온 풍물굿과 무속 장단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한 작품이다. 그의 연주에는 폭발하는 에너지와 정제미가 공존한다. 긴장과 이완 속에서 가락을 섬세하게 변주하며 장구가 지닌 역동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장구 연주를 온전한 하나의 음악으로 감상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제공한다.#국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