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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250이 만든 뽕의 새로운 세계

Entertainment 2023 WINTER

250이 만든 뽕의 새로운 세계 250은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지만 모두가 외면하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 뽕짝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 그의 확고한 음악 세계가 담긴 앨범 (2022)은 한국 대중음악계를 넘어 세계가 집중했으며, 지금도 그 영역을 계속해서 넓히고 있다. 가수이자 DJ, 작곡가, 그리고 프로듀서인 250은 2023년 한국 대중음악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이다. 한국인의 고유 정서인‘뽕’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여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 ⓒ 비스츠앤드네이티브스 매콤한 국물과 꼬불꼬불한 뜨거운 면을 호호 불어먹는 매력이 있는 라면. 당신이 한국의 라면을 끓이는 데 처음 도전했다고 생각해 보자. 적정량의 물을 끓이고, 건더기스프와 면을 넣고…. 그런데 아뿔싸, 라면 맛의 핵심인 빨간 분말스프 가루를 넣는다는 걸 완전히 잊었다. 그것을 한국식 라면이라 부를 수 있을까? 라면에서 가장 중요한 분말스프를 빼놓고는 라면의 맛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국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인 250이다. 이견이 없는 올해의 음악인 그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맵고 뜨거운 인물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250은 지난해 발표한 정규 1집< 뽕 > 으로 한국의 그래미상으로 불리는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 ‘최우수 일렉트로로닉 노래’ 등 네 개 부문을 석권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둘째, 그는 데뷔 1년 만에 한국 음악계를 뒤집어 놓은 신인 케이팝 그룹 ‘뉴진스’의 여러 곡에 참여한 프로듀서다. 250은 한국에서 구시대적이라고 폄훼하는 음악 장르인 ‘뽕짝’을 베이스로 일렉트로닉 음악이나 힙합 요소를 더하여 완전히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250은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 감독의 영화< 이창(Rear Window 裏窓) > (1954)을 보았는지를 기자에게 물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영화< 이창 > 에서부터였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는 수년 동안 뽕짝의 본질을 탐구하고 저의 음악과 접목해 보려고 했지만, 그 답을 찾는 것이 순탄치 않았어요. 답을 찾던 중 영화< 이창 > 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창 > (2018년 싱글 앨범)이란 곡을 쓰게 되었죠. 어떤 투명한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뽕’과 ‘비(非)뽕’이 서로 마주 보는 느낌이랄까요.” 뽕과 비(非)뽕, 과거와 현재, 세련됨과 촌스러움 따위가 멀리서 대면하는…. 그 형이상학적인 ‘창’은 250의 음악 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뽕’은 오묘한 단어입니다. 여러 면에서 한국인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죠. 트로트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 ‘뽕짝’은 사실 북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 ‘쿵짝’에서 비롯되었어요. 영어로 하면 ‘Boom Clap’ 같은 거죠. 하지만 ‘쿵짝’은 다른 장르에서도 통용될 수 있으니, 뭔가 더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쿵’이라는 말을 ‘뽕’으로 바꾼 겁니다. 자기비하적 측면이죠. ‘뽕’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도 있어요. 1986년 상영된 성인 영화< 뽕(Mulberry) > 이요. 당시 크게 흥행하여 다양한 후속작이 나오기도 했죠. 그리고 한국에서 마약을 뜻하는 은어이기도 하고요. 우스꽝스럽거나 낯간지럽거나 어둡거나….이렇게 다층적이면서 복합적인 상징과 느낌들이 ‘뽕’, 이 단 한 음절에 축약된 겁니다.” 애수와 낭만, 즐거움이 담긴 음인 뽕짝은 한국에서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문화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애초에 ‘뽕’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로 담고 있으며,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은 단어인 것처럼 말이다. 250은 음지에서 저평가받고 있는 뽕짝을 대중음악 세계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새로운 음악의 성취를 거둔 셈이다. 250이 탐구한 음악 세계 250은 한서대학교에서 영상 음악 제작을 전공했다. 20대부터 한국 공중파 TV 드라마의 음악을 만들었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전자음악 성지(聖地)인 클럽 케잌샵(cakeshop)에서 DJ로도 활약했다. 그때부터 “유별난 음악을 트는 이가 등장했다”라는 입소문이 클러버들 사이에 돌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의 의뢰를 받아 NCT127, BoA, f(x) 같은 메이저 케이팝 가수의 원곡에 대한 정식 리믹스 음원을 발표했다. 또 힙합 팬들이 열광하는 래퍼 이센스의< Everywhere > 와< 비행 >등을 프로듀스 했다. 그러다 그가 2018년부터 저예산 다큐멘터리 시리즈< 뽕을 찾아서 > 를 내놓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음악업계에서는 “비트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더니 코미디도 제법이다”라는 식의 가벼운 반응들이 다수였다. 2018년 싱글< 이창 > , 2021년 싱글< Bang Bus > 가 조용히 회자되더니 마침내 2022년 3월, 정규 1집 앨범< 뽕 > 이 발매되자마자 음악 팬과 평단은 그의 독창적인 음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250은 미국 뉴욕의 할렘에 힙합이 흐르거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파벨라 펑크(favela funk) 장르가 울려 퍼지듯 뽕짝은 마치 한국이란 문화권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부연했다. 청각적으로도 ‘게토(ghetto 특정 민족이 사회의 주류 민족과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화’한 요소들이야말로 힙합 프로듀서이자 클럽 DJ 출신인 250이 뜻밖에 발견한 뽕짝의 매력이다. “대단한 연주자 또는 50인조 오케스트라가 오래전에 녹음해 둔 샘플을 후대에 조악한 장비로 구현해 낸 힙합곡들…. 거기서 풍기는 특유의 멋이란 게 있잖아요. 뽕짝도 마찬가지예요.” 그는 뽕짝을 탐구하면서 느낀 또 한 가지는 뽕짝이 한국의 식문화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뜨거워야 잘 먹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김치찌개나 전골처럼 맵고 뜨거워야 ‘잘 먹었다’라고 느끼는 것처럼요. 저 역시 얼마 전에 벨기에에 일주일 정도 다녀왔는데, 귀국하자마자 매니저와 김치찌개를 먹으러 기사식당에 갔어요. 한국인에게는 어정쩡한 것보다는 화끈한 것이 통하는 것처럼 ‘뽕짝’도 그런 점이 있어 통하는 것 같아요. 저는 뽕짝이 확실하게 슬픈 곡조, 그리고 확실하게 신나는 그 무언가가 투박하게 결합된 매력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250이 ‘뽕’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경부터다. 케잌샵 DJ 시절, 동료들과 단합대회를 다녀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뽕짝 음악이 담긴 리믹스 테이프를 샀다. 서울로 돌아가 이 음악을 리믹스 해보자며 장난처럼 의기투합한 게 시작이었다. 그 장난 같은 시작이 250을 장난이 아닌 뽕짝의 경지까지 끌고 온 셈이다.   익숙한 뽕짝의 맛 250이 만든 익숙한데 낯설고 촌스럽지만 신묘하며 힙하기 이를 데 없는 ‘뽕’의 세계에 가장 열성적인 관객은 10~20대의 젊은 세대다. 뽕짝이 한국인의 일상 가까이 녹아 있던 20세기와는 오히려 가장 거리가 먼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고 예쁘게 깎여 있는 시대에 살고 있죠. 그래서 도심의 반듯한 계단보다는 서울 변두리에 오래전 지어진 건물의 울퉁불퉁한 계단에 열광하며 필름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최근 빌보드 차트에서도 컨트리 장르가 득세하고 있죠. 한국 음원 차트에 트로트가 최근 몇 년 사이 인기를 끈 것과 비슷한 현상일 수 있죠.” 250이 요즘 음악 말고 빠져 있는 것도 일종의 ‘구닥다리’다. 1970~1980년대 상영된 홍콩 영화인< 소권괴초(笑拳怪招, The Fearless Hyena) > (1979년)를 비롯한 성룡(成龍 Jackie Chan)의 초기작에 나오는 비논리적 액션 장면들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언젠가는 영화음악에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 > (2018)처럼 사람들이 소리에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영화,< 인셉션(Inception) > (2010)처럼 스케일이 큰 영화,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가 참여한 작품처럼 선율로 승부하는 영화 등 모두 욕심이 나네요.” 마침 그의 저예산 다큐< 뽕을 찾아서 > 는 2023년 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큰 스크린에서 공식 상영됐다. “제게 특별한 롤모델이란 없습니다만, 그저 음악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Quincy Jones)나 작곡가이자 뮤지션인 류이치 사카모토(さかもとりゅういち Ryuichi Sakamoto, 1952~2023) 같은 분들처럼 이런 음악, 저런 작업 등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50의 다음 프로젝트는 한국 성인영화 시리즈물의 속편 제목처럼< 뽕 2 > 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벌써 계획하고 있는 차기작의 제목은< 아메리카 > 이다. “ < 뽕 > 으로 한국 음악을 제대로 해봤으니까 이제 미국 음악을 해봐야죠. 제가 학창 시절에 동경했던 미국, 그리고 즐겨 듣던 미국 음악에 대한 환상을 담은 앨범이 될 수도 있겠어요.” 7년여간 탐구한 뽕에 대한 정의는 250의 안에서도 계속 변해왔다. 지금, 이 시점에 그가 내리는 뽕의 정의는 이렇다. “뽕짝이란 마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의 라면스프의 맛 같은 걸지도 모르죠. 김치찌개를 끓이다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싶으면 라면스프를 조금 넣잖아요. 그럼 ‘아는 맛’ 나오잖아요. 라면스프가 고급스러운 레시피도 아니고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익숙한 맛이고 입에 감기는 어떤 만족스러운 맛이라는 점은 확실하죠.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한국인이 공통으로 찾는 마지막 한 조각이랄까요.” 250이라는 이름은 그의 본명인 이호영과 비슷하게 불리길 바라며 ‘이오영’이라 썼는데, 모두가 ‘이오공’이라 부르면서 250이 되었다. ⓒ 세종문화회관 그는 첫 앨범< 뽕 > 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특히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과 최우수 일렉트로로닉 노래 부분 수상은 ‘뽕’이 일렉트로니카 뮤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뜻깊다고 전한다. ⓒ 비스츠앤드네이티브스 임희윤 (Lim Hee-yun, 林熙潤) 음악평론가

더 이상 다음 소희가 없길

Entertainment 2023 AUTUMN

더 이상 다음 소희가 없길 < 다음 소희(NEXT SOHEE, 下一个素熙) > (2023)는 지난해 열린 제75회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 국제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이는 한국 영화로서는 최초이기도 하다. 사회에 가려진 청소년 노동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영화는 국적과 세대를 초월한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이다. 영화 < 다음 소희 > 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여고생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주목받았다. 영화는 제목처럼 주인공 소희가 끝이 아님을, 어딘가에 있을 소희의 다음에 주목해 주길 바라고 있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제75회 칸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 다음 소희 >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자, 현지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며 7분여간 기립박수를 쳤다. 상영관 밖을 나오며 한국인 취재진이 극장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관객들은 카메라를 향해 기꺼이 박수를 전했다. 어떤 이들은 “최고”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상영 후 극장 안에서의 기립박수는 영화제 관례상 흔한 일이기도 하지만, 극장 밖에서까지 반응은 꽤 드문 일이다. 세계의 공감을 얻다 당시 경쟁 부분에 초청된 한국 영화 <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分手的決心) > (2022)이나 < 브로커(Broker 掮客) > (2022) 상영회와 비교해도 한층 뜨거운 반응이었다. 프랑스 언론인 에마뉘엘(Emmanuel) 씨는 “정말 가슴 아파요. 매우 매우 좋은 작품이에요”라며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벨기에에서 온 엘리(Elly) 씨는 “유럽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한국인과 다르게 느낄까요? 그렇지 않아요. 이 영화를 볼 때 나는 당신과 같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이런 영화로 인해 우리는 서로 연결됩니다”라고 했다.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다 자살에 이른 한국 학생의 특수한 비극이 현대인의 보편적 공감대를 얻어낸 순간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현장실습을 통해 콜센터에서 일하게 된 소희. 그녀는 고객을 위해 ‘친절함’을 만들고, 자신의 ‘수치심’을 감내하며, 마지막에는 높은 실적을 위해 그 어떤 상황에도 ‘무감각’해지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사무직 여직원이 되었다며 기뻐하던 것도 잠시, 춤추는 것을 좋아하던 해맑은 소녀는 그곳에서 점점 피폐해져 간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한국의 고등학교 중에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계 고교와 취업 위주의 교육을 하는 직업계 고교가 있다. 현장실습은 직업계 고교 학생이 기업에서 인턴십과 비슷한 형태로 일하면 해당 업체에서 채용에 가산점을 주거나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학교 입장에선 학생들을 기업에 많이 보내 취업률을 높여야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고 예산도 확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 학생 중 일부는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산업재해를 당하거나 심한 경우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2017년 1월, 직업계 고교 3학년 A양이 전주의 한 저수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대기업 하청 콜센터에서 인터넷 가입을 해지하려는 고객을 ‘방어’하는 부서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온갖 항의와 욕설에 응대하며 밤늦도록 야근하기 일쑤였지만 정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급여는 계약했던 것보다 적었다. “더 이상 못 견디겠어.” 친구에게 이런 말을 남긴 A양은 차디찬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영화 < 다음 소희 > 의 소재가 된 실화다. 정주리(Jung July, 鄭朱莉) 감독은 한 방송사의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를 접한 뒤 이후에도 비슷한 사망 사건이 되풀이되는 걸 지켜보며 영화화를 결심했다. 이 영화의 한국 개봉 이후 사회적 파급력이 적지 않았다. 결국 올해 3월, ‘다음 소희 방지법’으로 불리기도 하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현장실습생도 근로기준법상 강제 근로 금지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 등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현실적으로 그려낸 영화 경찰 유진은 소희의 죽음을 파헤치며 어른들이 어떻게 한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고, 또 외면했는지를 마주한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 다음 소희 > 는 내용상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가 앞서 소개한 실화를 다큐멘터리의 화법으로 그렸다면, 2부는 그때 소희(So-hee 素熙) 곁에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지켜주는 이가 있었다면 하는 희망 사항을 담았다. 1부는 단순히 회사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대결 구도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21세기 현대 사회가 실제로 그렇듯,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하고 해결은 한결 더 어렵다. 극 중 중간 관리자인 팀장은 상담원들에게 실적을 강요하지만, 비인간적인 상황에 내몰리긴 마찬가지다. 주인공 소희가 실적을 올리면서 회사의 목표 기준이 올라가자, 동료들 사이에 반목이 싹튼다. 가난한 친구보다 더 가난한 소희는 누가 더 한심한 신세인지를 두고 넋두리를 늘어놓다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이처럼< 다음 소희 > 는 약자의 잘못이 아닌데도 약자들끼리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경쟁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고든다. 장애인을 위한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사회에서 이동권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과 이로 인해 출근이 늦어진 비장애인 노동자가 반목하게 되는 것처럼. 최저 시급이 충분하지 못한 사회에서 대출 이자에 시달리는 편의점 점주와 삼시 세끼도 제대로 못 챙기는 아르바이트생이 최저임금을 놓고 등 돌리게 되는 일처럼. 구조조정을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와 고용이 승계된 노동자 사이에 연대가 깨지는 일처럼…. 잘못은 저 위쪽에서 비롯됐는데 아래쪽에 있는 이들이 더 아래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갈등하게 되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넓게 담고 있다. 그에 비하면 2부는 좀 더 대결 구도의 형태를 띤다. 그래야 했다. 소희의 자살을 수사하는 형사 오유진(Oh Yoo-jin 吳宥真)은 사태의 실체에 접근하면서 점차 외로운 투쟁의 길에 접어든다. 적절한 조치가 제때 이뤄졌다면 이 젊은이의 죽음을 막을 기회가 몇 번은 있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더 이상 ‘소희 다음’의 비극을 만들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유진이 잘못한 자들을 찾아 따져 물을 때마다 돌아온 답은 ‘실적 못 올리면 우리도 죽는다’는 취지의 말들이다. 소희가 일한 회사, 그 회사에 하청을 준 회사, 그 회사가 대기업이라며 좋다고 알선해 준 학교, 그 학교를 감독하는 교육청….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어느 한 개 기관이나 개인의 잘못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잘못된 일들은 종종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한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통찰을 영화의 플롯으로 구현한 것이다. 콜센터와 학교, 교육청과 경찰서를 오가며 홀로 조사를 이어가던 유진은 소희의 죽음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속이 후련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이 때문에 유진은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결연함과, 커다란 시스템에 맞서는 개인의 무력감을 동시에 보여줘야 했다. 유진 역을 맡은 배우 배두나(Bae Doo-na 裴斗娜)가 초췌한 얼굴로 소희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연기는 이 지점에서 설득력을 더한다. 칸영화제 현장에서 만난 정주리 감독은 “촬영 전 두나 씨에게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것 같은 얼굴을 화면에 보여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는데, 다음날 정말로 그런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그 얼굴을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라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취업에 짓밟힌 꿈 필자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이 영화를 보며 가장 가슴 아파한 대목이 있다. 첫 번째는 “소희가 춤추는 거 아셨어요? 춤추는 걸 좋아했대요. 엄청나게 잘했대요”라고 유진이 소희의 부모에게 건넨 말이다. 이를 들은 부모는 목 놓아 통곡한다. 또 한 차례는 유진이 소희의 휴대전화 속 동영상을 보는 마지막 장면이다. 소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휴대전화 안에 있는 모든 메시지며 앱을 삭제하고도 남겨둔 단 하나의 영상이었다. 거기엔 혼자 열심히 춤추며 끝내 웃음 짓는 소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번엔 유진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영화가 두 차례에 걸쳐 소희의 춤을 안타깝게 보여주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의 진정한 꿈을 알고 있는지 따져 묻는 것이다. 비극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다음 세대의 장기, 특기, 소질, 자질, 취향, 취미, 개성, 특성, 적성, 재능을 알아봐 주고 있는가? 영화의 질문은 이어진다. 고등학생들이 저마다 다른 꿈을 접고 취업률 높은 학과만 지망해야 하는 사회라면? 청년들이 각자 희망을 저버린 채 안정된 직장에 지원하지 않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처럼 불안한 곳이라면? 인문계 전공 자체를 미안해해야 하고 자연계 우등생 모두가 의대 진학만을 바라보는 세상이라면? 그다음에는 또 다른 형태의 소희가 나오지 않을까? 당신은 미래 세대가 꿈을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나? 칸영화제에서 만난 선진국 관객들이 < 다음 소희 > 를 보고 울먹인 까닭은, 각자의 사회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송형국 (Song Hyeong-guk, 宋亨國)영화평론가

케이팝 4세대 그룹에 대하여

Entertainment 2023 SUMMER

케이팝 4세대 그룹에 대하여 한국이 만드는 문화 콘텐츠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그 중심엔 케이팝이 있다. 지금은 주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을 우리는 4세대 케이팝 그룹이라 말한다. 이들은 기존 세대와 무엇이 다르며, 이들이 만들어가는 케이팝 문화는 무엇이 다를까. 에이티즈(ATEEZ)는 ‘10대들의 모든 것(A to Z(A Teenager Z))’이라는 의미를 담은 8인조 그룹이다. ⓒ KQ 엔터테인먼트 세대론은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호사가(好事家)에게 인기 좋은 재료이다. 이전과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발견되면 ‘이것이 바로 새로운 세대’라는 간판을 거는 것만으로도 대중은 새롭게 받아들이며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케이팝도 마찬가지다. 세대를 나누는 정확한 기준이나 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전과 다른 특징, 그러니까 그룹 구성 형태나 활동 지역, 콘셉트 등 이전과 다른 뚜렷한 특징이 보이는 그룹이 대거 나타났을 때 이들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대로 구분 지었다. 케이팝 그룹 1세대부터 4세대까지 1세대 케이팝 그룹 중 하나이자 국내 최초의 아이돌은 1996년 데뷔한 SM 엔터테인먼트의 H.O.T.이다. 이후 1997년 6인조 그룹 젝스키스가 데뷔하면서 H.O.T.와 경쟁 구도를 만들며 활동했고, 여자 아이돌 그룹으로는 1997년 S.E.S.가, 1998년 핑클이 데뷔해 경쟁 구도를 이어갔다. 이후 2세대로 넘어가기 전 신화, god, 쥬얼리, 보아 등 실험적 특징을 지닌 1.5세대라 아이돌 그룹이 나왔고, 이 시기에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끌면서 ‘한류’ 개념과 일부 일본 언론에서 ‘케이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케이팝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과거 신비주의를 고수하던 케이팝 1세대 그룹과는 달리 케이팝 2세대 그룹은 친밀한 이미지를 추구하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을 통해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동했다. 대표적인 그룹이 빅뱅,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이다. 이들은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월드 투어를 통해 국내외 대형 팬덤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국내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인 뒤 해외에서 활동하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케이팝 3세대 그룹의 특징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국내외 동시 성장을 꾀했다는 것이다. 또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 전부터 탄탄한 팬덤을 확보하기도 했다. 또한 케이팝의 질적 향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이를 이끌어낸 주역은 엑소, 방탄소년단, 위너, 레드벨벳, 마마무 등이다. 매일 찾게 되고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진(Jean)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뉴진스가 지난 1월 발매한 앨범 < omg > 의 단체 사진이다. ⓒ 어도어 지난 4월 발매한 아이브의 앨범 < I’ve IVE > . 아이브는 2021년 데뷔부터 자기애를 기반으로 노래하며 자신감 넘치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3세대 케이팝 그룹의 출현 이후 케이팝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대륙과 국가 등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까지도 구분 짓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그룹마다 독특한 개성과 세계관을 펼치며 본격 케이팝 4세대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아무튼 뭔가 다르다며 “달라달라”를 외치던 있지(ITZY)가, 어느 날 머리에서 자란 뿔을 부적 삼아 이전 세대와 선을 긋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 X TOGETHER)가, 밀레니엄 어딘가쯤의 향수를 사정없이 자극하며 등장한 뉴진스(NewJeans)가 모두 케이팝 4세대 대표 그룹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으로 10~20대와 정서를 공유하며 탄탄한 팬덤을 구축했다. ⓒ 빅히트 뮤직 케이팝 4세대 그룹의 중요 키워드 케이팝 4세대를 이끌어가는 그룹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해외 활동이다. 방탄소년단 이전까지 그룹의 해외 활동은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2001년 자신의 데뷔곡인 < ID;Peace B > 를 일본어로 번안해 일본에서 데뷔한 보아(BoA)처럼 선배들이 공들여 다져 놓은 일본 시장 정도를 제외하면 케이팝 가수에게 해외 시장은 여전히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었다. 싸이(PSY)가 < 강남스타일(Gangnam Style) > 로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을지라도, 여전히 도전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한령 등으로 장단 맞추기 바쁜 중국 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방탄소년단 이후는 달랐다. 아이돌 그룹과 케이팝, 나아가 한국 대중문화에 주목하는 시선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로 2020년을 전후해 데뷔한 4세대 그룹은 기획과 마케팅에 있어 ‘해외’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키워드였다. 다양한 국가의 언어 구사가 가능한 멤버를 그룹에 포함하는 건 기본이고, 음악에서 퍼포먼스까지 콘텐츠 전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활동을 꼭 한국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도 옅어졌으며, 나아가 그룹 구성원 가운데 한국인이 없어도 케이팝은 케이팝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도 늘어났다. 유명 아이돌 그룹이 새 앨범과 관련한 프로모션을 해외 방송을 통해 시작하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고, 데뷔 100일 만에 북미 투어를 개최하며 탄탄한 해외 팬덤을 구축한 뒤 본격적인 국내 공략에 나서며 유의미한 성과를 낸 그룹 에이티즈(ATEEZ) 같은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뚜렷한 개성 4세대 그룹의 또 다른 특징은 일명 젠지(Gen Z)라고 불리는 세대와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그룹의 등장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경우 데뷔 당시, 현재 세대 전반에 어린 은은한 우울을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스토리텔링으로 주목 받았다. 이들의 곡은 <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CROWN 昨天頭髮中長得角) > , <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5點53分的天空下發現的你和我) > , <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Run Away 在九又四分之三站臺等你) > 처럼 제목부터 알쏭달쏭하다.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수수께끼 같은 언어와 감성에 초점을 맞추며 독보적인 면모로 10~20대 팬을 중심으로 점차 몸집을 불려 나갔다. 뚜렷한 개성을 가진 그룹의 출현과 동시에 이전 세대와 달리 여성 그룹의 강세가 돋보이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먼저 아이브는 2021년 12월 데뷔 이후 내내 ‘나’에만 집중했다. 나를 사랑하다 못해 나와 사랑에 빠져버린 나르시시즘을 노래하는 이들의 외침은 화려하고 쿨한 그룹의 색과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이 훌륭한 조화는 아이브 싱글 앨범 < Eleven(2021) > , < Love Dive(2022) > , < After Like(2022) >3연속 히트와 2022년 최고의 신인그룹이라는 타이틀, 여기에 케이팝 4세대 그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룹이라는 영광의 왕관을 차례로 씌웠다. 그룹명 있지(ITZY)는 ‘너희가 원하는 거 전부 있지? 있지!’라는 뜻이다. 2019년 당시 데뷔곡 로 데뷔 9일 만에 걸그룹 음악방송 최단 기간 1위 달성을 하며 화제가 되었다. ⓒ JYP 엔터테인먼트 르세라핌은 음악을 관통하는 주체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그룹이다. 2022년 데뷔 초 나의 욕망과 시련에 관해 이야기 한 이들은 지난 5월 우리에 대한 이야기로 메시지를 확장하면서 데뷔 이후 줄곧 이어온 주제를 이어가면서도 한층 확장된 메시지로 존재감을 이어갔다. 뉴진스는 매일 찾게 되고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진(Jean)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포부처럼 데뷔와 동시에 레트로 감성이 돋보이는 콘셉트와 곡, 안무, 실력 등이 화제가 됐다. 데뷔곡 에 이어 도 빌보드 차트에 입성한 것에 이어 10대의 풋풋하고 순수한 콘셉트에 대중이 열광했으며 그 인기는 업계까지 이어져 국내외 광고계를 석권할 정도였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케이팝 에스파(aespa)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아티스트 멤버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멤버가 현실과 가상의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해 가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 SM 엔터테인먼트 흥미로운 건 케이팝 4세대 그룹 초기 주요 키워드로 언급되던 메타버스를 비롯한 가상 공간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수그러들었단 점이다. 해당 논의의 꼭짓점에 놓여 있던 그룹 에스파(aespa) 역시 아바타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세계관보다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핵심과도 같은 SMP(SM Performance)를 원형 그대로 재연하는 계승자로서의 가치를 더 높게 인정받는 모양새다. 가상이 아니면 서로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팬데믹 기간, 케이팝이 깊이 깨달은 건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이어줄 수 있는 기술 활용의 중요성이었다. 이는 해당 시기 가장 흥한 케이팝 비즈니스가 가수와 팬 사이를 감정적으로 더 깊게 이어주는 각종 팬 플랫폼이었다는 점만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4세대 케이팝의 윤곽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갈 새 시대 케이팝의 지형도도 이제 막 그려지기 시작했다. 김윤하(Kim Yoon-ha 金侖河)대중음악평론가

연애 리얼리티 열풍에 담긴 의미

Entertainment 2023 SPRING

연애 리얼리티 열풍에 담긴 의미 최근 방송 플랫폼마다 경쟁하듯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고 이 흐름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연애, 결혼이라는 현실과 이상 간 괴리의 대리만족으로 풀이된다. 과거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난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환승연애 2 >포스터와 커플이 되어야만 나갈 수 있는 외딴섬, ‘지옥도’에서 펼쳐지는 솔로들의 솔직하고 화끈한 데이팅 리얼리티 쇼인< 솔로지옥 2 >포스터. ⓒ 티빙, ⓒ 넷플릭스 현재 방송되었거나 방송 중인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연애 리얼리티 장르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 이 OTT 채널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2022년 한해 방영된 프로그램만 봐도 TVING의< 환승연애 2 > ,< 러브캐쳐 인 발리 > , 넷플릭스의< 나는 SOLO > ,< 솔로지옥 2 > , MBN< 돌싱글즈 3 > , Wavve의< 남의 연애 > ,< 메리퀴어 > ,<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한국 연애 리얼리티의 두 날개 반경 10m 안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가오면 알람이 울리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웹툰의 실사판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인<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 > ⓒ 웨이브 수많은 프로그램 중 지금의 광풍을 이끈 주역은 단연<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시리즈다. 첫 방영과 함께 시즌 2로도 이어져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모두 OTT라는 플랫폼에서 방영되어 그간 공중파에서 담을 수 없었던 시도를 담았다. 선택적인 시청을 전제로 하는 OTT는 시청 연령 제한만 분명하다면 수위를 제재받지 않는 자유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대부분 멜로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감정적 교류 정도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기존의 프로그램이 처음 만난 평범한 남녀의 연애 과정을 담았다면,< 환승연애 > 는 헤어진 커플들이 한 공간에서 지내며 다른 이를 만나 ‘환승’하거나 혹은 헤어진 채 현실로‘복귀’하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헤어진 연인이 내가 아닌 다른 이와 가까워지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는 감정적 자극의 수위가 높은 프로그램으로, 기존의 미디어라면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프로그램이었다. 또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솔로지옥 >시리즈는 ‘한국판< 투핫 > ’이라고 불릴 정도로 노출이나 스킨십 수위를 높여 놓았다. 지옥도에서 만난 남녀가 서로 선택해 매칭되면 천국도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내세웠다. 감정적 교류만이 아니라 섹시한 몸을 의도적으로 노출해 보여주기도 하고 남녀의 스킨십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두 프로그램은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노출 수위는 물론 다양한 콘셉트로 차별화 하며, 이혼남녀, 이별을 고민 중인 커플, 성소수자, 양성애 같은 다양한 출연자 풀을 갖게 됐다. 이 모든 것은 놀랍게도 단 1년 만에 벌어진 현상이다.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연애 리얼리티는 날개를 달았고, 소재, 수위, 자극적인 면에서 꽤 오래도록 닫아뒀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 이라는 두 날개가 펼쳐놓은 연애 리얼리티는 한국 예능의 신세계를 펼쳐 놓고 있다. 연애 예능의 변천사 그간 연애 예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맞선, 미팅, 소개팅 등 익숙한 연애 문화에서 착안한 MBC< 사랑의 스튜디오 > (1994~2001)는 일반인들이 스튜디오에서 대화를 나누고 게임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는 단순한 형태였는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예능적인 재미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초반에는 일반인 대신 연예인들이 출연해 매력을 발산하고 게임을 하며 커플 매칭을 하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으로 변모했다. 이 시기 해외에서는 일반인들의 수위 높은 사생활이 공개되는 리얼리티쇼가 유행했지만, 한국은 지상파 방송의 제재로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여전했고, 이에 해외 리얼리티쇼를 한국 정서에 맞는 수위로 조정하여 수용하기 시작했다. 2008년 방영됐던 MBC< 우리 결혼했어요 > 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인 대신 연예인이 출연해 가상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7년 시즌4까지 방영되었는데, 그 사이 방송가에서도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리얼리티쇼는 ‘관찰카메라’라는 덜 자극적인 표현으로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정착해갔고, 2011년 한국적 연애 리얼리티쇼로 SBS< 짝 > 이 등장했다. ‘애정촌’이라는 특정 공간에 일반인 남녀 출연자들이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선택하는 과정을 담은 포맷으로 사실상 현재 유행하고 있는 연애 리얼리티의 형태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일반인의 과도한 사생활 노출이라는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한동안 주춤하기도 했다. 이후 2017년 현실 연애를 한편의 멜로 드라마처럼 연출한< 하트시그널 > 과 같은 형태로 진화를 거듭했다. 일반인의 리얼리티와 다양한 연출,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지금의<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 이 등장한 셈이다. 연애 리얼리티 봇물과 실제 연애, 결혼관의 괴리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러브캐처는 머니캐처를 피해 진정한 사랑을 찾고, 머니캐처는 러브캐처를 유혹해 상금을 획득하는 리얼 연애 심리 게임< 러브캐처 > ⓒ 티빙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열풍은 실제 청춘남녀들이 연애, 결혼에 열의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의 혼인율은 갈수록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혼인 건수는 192,507건으로, 10년 전인 2011년 329,087건 대비 무려 134,566건(41.6%)가량 줄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혼인율이 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청년층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연애는 물론이고 결혼이나 출산 등은 모두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하지만 최근 취업 경쟁이 치열해진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생존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다. 결국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열풍은 실제 연애를 하기 어려운 이들의 대리 만족 의미가 더 강하다는 뜻이다. 또한 최근 1년간 쏟아져 나온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 최근 한국인 청년들이 가진 연애관의 변화도 읽어낼 수 있다. 남녀 간의 사랑 표현 방식뿐만 아니라 헤어진 후에도 관계를 이어 나가는 쿨한 모습이나 스킨십, 혼전 동거 등 기성세대들보다 열려 있는 면을 볼 수 있다. 나아가 이성애는 물론이고 양성애, 성소수자 같은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모습들도 보인다. 한편 K-콘텐츠의 관점으로 보면 연애는 본래 중심적인 위치에 있던 소재였다. 지금 봇물이 터지듯 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이미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K-드라마들이 그 증거다.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먼저 시작한 해외의 프로그램에 비하면 아무래도 문화나 정서적인 이유로 제한적인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한국인만의 남다른 감수성을 강점으로 로맨틱 코미디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덕현(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 평론가

이 시대의 모든 태일이에게

Entertainment 2022 WINTER

이 시대의 모든 태일이에게 애니메이션 (2021)는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Chun Tae-il 全泰壹 1948~1970) 열사의 이야기다. 50년도 더 된 과거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지만, 관객에게 여전히 깊은 여운을 남기며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2021)는 노동 환경 개선과 노동자 인권 개혁을 위해 스스로 불꽃이 된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 명필름(MYUNGFLMS) 1960~1970년대 당시 한국은 빈곤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봉제 산업처럼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산업 분야에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경제 성장을 추구해왔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돼 있었지만, 경제 성장 논리에 법 준수는 뒷전이었다. 이러한 부당한 세상에 목소리를 내며 변화를 꿈꿨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가 2022년 제46회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Annecy International Animated Film Festival) 심사위원 특별상, 제26회 판타지아 국제 영화제(Fantasia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관객상(동상), 제18회 서울 인디애니페스트(Seoul Indie-AniFest) 대상을 수상하며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온종일 일해도 제대로 돈을 받지도 못하고 열악한 근무 환경에 몸이 아픈 것이 오히려 죄가 되는 동료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열사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이야기, 첫사랑을 꿈꾸는 청년의 모습 등 생애를 차곡차곡 쌓아 전태일이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게 한다. ⓒ 명필름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선 청년 1960년대 말 서울 청계천 일대에 위치한 평화시장에는 의류 제조업체가 밀집해있었다. 노동자들은 하루 14~15시간씩 일하며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다. 작업 공간은 원단을 가공할 때 발생하는 먼지를 환기할 수 있는 시설조차 없었고 심지어 1층을 임의로 2개 층으로 분리해 허리를 펼 수도 없었다. 작업 환경이 이러하니, 노동자들은 폐 질환을 비롯한 각종 병에 시달리기 일쑤였지만, 병이 나 출근하지 못하면 곧바로 해고당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특히 보조 인력 노동자 대부분은 13~17세의 어린 여성이었고 이들의 급여는 최소한의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봉제 노동자였던 전태일 열사는 평소 보조 인력 노동자들을 여동생처럼 아꼈다. 자신의 차비를 털어 그들에게 풀빵(물에 밀가루를 풀어서 풀처럼 반죽을 만들어 구워 만든 빵)을 사주고는 자신은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동시에 동료들을 모아 노동자 단체를 결성하고 고용노동부나 시청 등 관계 당국에 끊임없이 노동 조건 개선과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했다. 종종 노동자 시위를 벌여봤지만, 경찰의 방해로 그때마다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던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또 한 차례 시위가 저지되자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 법전을 손에 쥐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자기 몸에 불을 붙여 노동자들의 현실을 세상에 온몸으로 알렸다.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가 극도의 고통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도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는 말을 남긴 다음 세상을 떠났다.   일상을 통해 섬세히 그려낸 이야기 영화는 전태일 열사를 평면적으로 영웅화하지 않고 한 청년으로서 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애쓴다. 특히 지금도 대부분 보존되어 있는 그의 일기장에 적힌 대로 1967년 당시 짝사랑에 빠졌던 감정까지도 애틋하게 묘사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짝사랑 상대가 공장 사장의 처제였고, 그의 나이 19살에 사랑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점이다. 사장에게 밉보일 경우 철저한 계급 사회였던 봉제공장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었다는 점을 자각한 것이다. 이 같은 선택은 그의 실제 삶과 현실 속에서의 인식을 냉정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나아가 그가 계급 인식을 인지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대목으로, 영화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공들여 포착하고 있다. 사장에게 신뢰를 얻어 그가 사장 집에 머무는 동안 그 집에서 사용하는 비누 향기가 평소 자신이 쓰던 비누의 향기와는 다르다는 점을 자각하는 장면처럼, 전태일 열사의 계급 인식이 생성되고 강화되는 경로를 그의 일상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낸 대목도 돋보인다. 냄새로 계급을 구분 짓는 현실 묘사는 봉준호(Bong Joon-ho 奉俊昊) 감독의 영화 (2019)에서도 주요하게 등장하는 모티프로, 극심한 불평등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 관객들이 마음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과거와 다를 것 없는 오늘 는 50여 년 전 이야기를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오늘날에 지니는 의미를 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당시 봉제공장에서 실제로 벌어진 임금 배분 갈등과 착취 구조를 노-사 갈등이라기보다 사측이 조장한 노-노 갈등의 측면에서 재조명한다. 당시 봉제 공장들은 재단사-재단 보조-미싱사-미싱 보조 순으로 철저한 계급 구조를 만들어놓고 계급 간 관리 책임을 각 직종의 상급자에게 맡김으로써 노-사 갈등의 책임을 떠넘겼다. 병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노동자를 해고할 때 사장이 직접 하지 않고 재단사에게 떠맡긴다든지, 임금 배분을 재단사의 재량에 맡겨 적정한 임금을 전체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고용주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 행해졌다. 21세기의 노동 문제 역시 책임과 권한이 있는 자가 다양한 방식을 이용해 중간 관리자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사태의 본질을 숨기는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 문제를 가맹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의 갈등 관계라는 프레임 속에 가둠으로써, 가맹점 시스템을 운영하는 대기업은 책임을 지지 않고 약자들끼리의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초점을 흐리는 것처럼 밀이다. 는 1960~1970년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현재 우리 사회가 약자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측면에 두어 관객으로부터 보편적 공감대를 얻어내고 있다. 한국은 이제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 안팎의 선진국이지만, 2020년 기준 산업 현장에서의 노동자 사망자 수가 하루 평균 약 3명에 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기까지 하청-재하청 구조는 물론 그 구조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 고용직 노동자를 양산하는 경제 시스템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Dardenne brothers) 감독의 2015년 작 (2015),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2019년 작 (2019), 올해 화제작 중 하나인 에리크 그라벨(Eric Gravel) 감독의 (2022)에 이르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글로벌 자본주의의 새로운 고용 형태 혹은 노동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국면이 이전에는 보지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강자는 책임을 피하고 약자는 한층 더 깊은 고통에 몰아넣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는 이들 걸작과 함께 거론될, 50년 전 이야기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노동의 복합적인 해결 과제를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수작이다. 영화의 종반부,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결행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주인공의 모습을 단 두 컷의 짧은 장면으로만 처리한다. 대신 놀란 눈으로 이 모습을 바라보는 동료들과 주변 시민들의 얼굴을 더 길게 보여준다. 이들의 표정은 다름 아닌 관객 자신의 얼굴이 되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바라보는 사회 갈등의 원인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당신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사회의 불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당신은 지금 어떤 재난을 지켜보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나?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모습부터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는 말하고 있다.   송형국 (Song Hyeong-guk, 宋亨國) 영화평론가

한국 서사의 힘과 매력

Entertainment 2022 AUTUMN

한국 서사의 힘과 매력 복잡다단한 역사적 질곡을 거쳐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역동적이면서도 다양한 욕망이 용광로처럼 녹아 있는 나라 한국. 최근 우리만의 역사와 이야기가 다양한 통로로 힘을 발휘하며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2) ⓒApple TV+ / (2020) ⓒA24 /「Native Speaker」(1995) ⓒRiverhead Books 웨인 왕 감독의 (2019)은 소설가 이창래가 1995년 10월 16일 『뉴요커』에 게재했던 동명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그의 에세이 는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암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이민 1세대로서 경험해야 했던 모진 시절을 아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서술한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의 도전을 담은 영화< 미나리 > 의 아빠 제이콥은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가족에게 뭔가 해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한다. ⓒA24 일하는 부모 대신 어린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했던 가족은 한국에 있는 모니카의 엄마 순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은 여느 할머니 같지 않은 순자가 늘 못마땅하다. ⓒA24 세계 무대 위에 오른 이야기의 시작 작가의 기억 속 어머니는 부엌에서 소고기의 근막을 살리면서 갈빗살을 손질하고 한국식 음식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던 사람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부엌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오직 공부에만 힘을 쏟아 세상이 인정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하길 바랐다.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 이민자 하면 떠오르는 성실한 동양인이라는 이미지에 철저히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에세이 속에 묘사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 > (2020) 속 할머니가 떠오른다. 생활력이 강하고 자식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며 무엇보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 한국의 어머니 말이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에서 증권 분석가로 일하다가 첫 소설 『이방인』을 썼다. 이 작가는 이 소설로 PEN/헤밍웨이상(Hemingway Foundation/PEN Award), 아메리칸북 상(American Book Award) 등 미국 문단의 6개 주요 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주목받았다. 작가는 명실상부 한국의 이민 1.5세대로서 빛나는 자취와 성과를 남겼고 여전히 유력한 노벨상 후보자로 주목도 받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진 못했다. 아마도 글보단 시청각을 동원한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 와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 가 갖는 영향력과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정 감독의< 미나리 > 는 아카데미 영화상의 주요 부문 후보작이 되고, 여우조연상을 받음으로써 엘리트 주류 문화의 철옹성을 한국어, 한국 배우로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 < 미나리 > 는 한국인 이민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의 핵심을 짚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격동기였던 1980년대에 한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미나리 >속 가족은 미국에 정착한다.< 미나리 > 에 묘사된 아버지와 어머니는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맨몸으로 부딪히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런 이민자의 모습은 캐나다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 > 에서 코믹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진 한국인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인종 차별이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해 관심도 없던 미국의 농촌 마을에 터를 잡은< 미나리 > 의 젊은 부부는 어떤 점에서는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신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꿈과 희망, 열정과 젊음만 있다면 기회와 가능성을 주는 나라 미국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2021년< 미나리 > 가 거둔 성과의 밑바탕에는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성취가 있었다. 그의 영화< 기생충 > 은 한국의 이야기가 가진 역동성과 세련됨에 대한 기대감을 칸과 아카데미의 장벽을 넘으며 입증했다. 연이어< 미나리 > 가 2021년에 한국의 이야기로 미국의 문턱을 한 번 더 넘자, 한국의 이야기가 가진 힘은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고 더 주목받았다. < 미나리 > 로 시작된 한국인 여배우 윤여정에 대한 관심, 한국인 이민자에 대한 긍정적인 호기심은 마침내 2021년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NETFLIX)의 최대 성공작이자 화제작이었던< 오징어게임 > (2021) > 과 함께 절정을 맞았다. 봉준호 감독이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달라며 영어 사용자들에게 호소한 지 고작 1년 만에 한국어로 제작하고 한국 배우가 출연하며 한국 감독이 연출한 한국의 TV쇼가 세계 이야기 산업의 중심이 된 것이다. < 오징어게임 > 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한국적인 것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인구 5천만 명 중 1천만 명 이상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밀집해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매우 역동적인 동시에 그만큼 갈등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립된 상황에서 456억 원이라는 고액의 상금을 향한 다양한 욕망과 저마다의 갈등은 모두의 공감을 일으켰다. 경쟁 과정에 도입된 기이하고도 유아적인 게임도 눈길을 끌었다. 말 그대로 한국의 콘텐츠, 이야기, 서사가 창의적이면서 도발적인 동시대적 발언으로 시선을 끈 것이다.   < 파친코 > 는 고국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드라마 속 한수와 선자는 은밀한 사랑을 나누지만, 한수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 선자는 그의 곁을 떠난다. ⓒApple TV+ 일제강점기 시절의 어린 모습부터 1989년 노년 시절까지 시대별로 그려지는 선자의 삶은 아픈 역사 속에서의 여성들의 삶, 그들의 노력과 희생, 역할 등을 투영하고 있다. ⓒApple TV+ 변화된 스트리밍 플랫폼과 경쟁력 있는 콘텐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급성장한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시장의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성공 과정에서 한국 이야기 서사는 점유율 확보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OTT 플랫폼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 모델로 한국의 이야기가 수배되기 시작한 것이다. 애플 티브이 플러스가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 > 를 드라마로 만든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흥미로운 것은 이 작가의 출세작인< 파친코 > 가 미국 이민 1.5세대로서의 자기 고백적 이야기가 아니라 100년도 전에 있었던 한국의 일제강점기 시절의 이야기와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칸에서 수상한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나 넷플릭스의 주목을 받은< 오징어게임 > ,< 지옥 > (2021) > 과 같은 드라마 모두 현재의 시간대를 허구의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작가의 소설< 파친코 > , 그리고 그것을 원작으로 한 애플 티브이 플러스의< 파친코 > 는 국제외교 관계상 여전히 가장 민감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191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의 일제 강점기 시절의 한국과 일본을 다루고 있다. 미국 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휴가지 필독서 목록으로도 주목받았던< 파친코 > 는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단순히 20세기 초의 자이니치, 일본 거주 한국 이민자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삶의 토대와 뿌리, 디아스포라 적 삶을 지탱해야만 하는 이민자의 고통과 역경, 그 가운데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의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확장됐다. 훨씬 더 오늘날로 이민자의 문제를 끌고 온 것이다.< 파친코 > 에서 고향이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정착해 살아가면서 미래와 다음 세대를 선사한 곳이라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5세대, 2세대로서 한국인 이민자는 그 나라의 주권자이기도 하지만 혈통과 역사적으로는 떠나온 고향의 정서나 뿌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복잡하고도 다단한 심정과 역사를 한국인 이민자 작가와 감독, 연출자, 감독들이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과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한국인의 이야기가 힘을 갖는 것은 결국 그 구체적 이야기 속에 동시대 우리의 삶에 가장 선명하게 담겨 있으며 그 안에 인류 보편의 욕망과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평양 출신의 목사인 이삭은 일본으로 건너가던 중 병으로 쓰러지지만 선자와 그의 어머니의 간호로 건강을 되찾는다. 한수와 이별 후 선자는 이삭과 일본으로 넘어가 부부의 연을 맺는다. ⓒApple TV+   강유정(Kang Yu-jung 姜由楨) 영화평론가, 교수

전성기를 맞은 K-멜로

Entertainment 2022 SUMMER

전성기를 맞은 K-멜로 최근 넷플릭스(Netflex)에서는 ‘K-멜로’전성시대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한국 멜로드라마가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다. 멜로드라마에 MZ세대의 달라진 가치관이 잘 반영되어 있는 점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공감을 얻은 이유로 분석된다.   (2019), (2021), (2021), (2022) 등 근래에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열풍을 일으킨 작품들 대부분이 장르물이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가 대부분 장르물에 치우져 있다고 오인하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 OTT 콘텐츠 순위를 집계하는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FlixPatrol)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한 넷플릭스 Top 10 작품은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tvN의 TV 드라마 (2021)였다. 뒤이어 연상호(Yeon Sang-ho, 延尚昊) 감독의 이 또 한번 열풍을 일으켰을 때는 궁을 배경으로 한 KBS의 멜로 사극 (2021)가 Top 10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런 흐름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이른바 ‘K-멜로’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생겨났다. 의 두 여자 주인공은 펜싱 라이벌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발전하며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 Studio Dragon 달라진 가치관 K-멜로는 갑자기 생겨난 장르가 아니다. 오래전 KBS의 20부작 TV 드라마 (2002)가 일본을 강타하며 한류의 물꼬를 트던 시절부터 싹을 틔웠다. 이후로 SBS의 (2013), tvN의 (2019) 같은 메가 히트작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20여 년간 공고한 팬덤을 확보했다. 남녀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과 감정선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덕분이다. 한국 드라마의 진짜 주력 장르는 멜로였던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플랫폼 OTT의 등장은 K-멜로가 아시아권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뻔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멜로물은 과거나 현재나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여러 가지 변화한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시청자의 가치관이나 감성이 예전과 달라졌고, 그러한 변화가 드라마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멜로드라마의 주된 시청자층인 MZ세대는 일과 휴식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원하고, 성공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며, 다양한 사회 관계 속에서 존재감을 느끼는데, 이러한 경향이 K-멜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특징이었던 신데렐라 서사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현대판 왕자님이 등장해 힘든 삶을 씩씩하게 버텨 내고 있는 여성에게 신분 상승의 구두를 신겨 주는 스토리는 더 이상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대신에 동등한 위치에 있는 남녀가 취향이나 가치관, 삶의 방식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많아졌다. 예컨대 의 여자 주인공은 현실주의 성향이 강한 치과의사인데, 도시에서 살다가 작은 갯마을로 내려와 병원을 개업한다. 그러고는 이렇다 할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으며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세속적인 욕망이 투영된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다. SBS가 지난해 방영해 인기를 모은 은 헤어졌던 남녀가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다시 만나 엮이는 스토리다. 이 드라마에서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감정이 부각될 뿐 현실적 상황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들이 성공이나 부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의 성공이나 경쟁보다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행복을 중요시한다. K-멜로가 투영해 내고 있는 가치관의 변화가 글로벌 대중들의 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전 세계인들이 마주한 ‘시대의 변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은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현실 휴먼 로맨스 드라마이다. © SLL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현실주의 치과의사 여자 주인공과 만능 백수 남자 주인공의 사랑과 이웃의 따뜻한 정을 담은 © Studio Dragon 다양한 취미와 관계 한국의 청춘들은 과거 일 중심으로 살아왔던 기성 세대와 달리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한다. 명함 한 장이 그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던 시대를 지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취향을 통해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태로 변화한 것이다. (2020) 같은 드라마는 이런 MZ세대들의 달라진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평일 내내 열심히 환자를 돌보던 의사들은 주말이면 밴드 활동에 열정적이다. 이들은 의사로서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누리며 행복을 느낀다. 남녀 관계에 집중하던 멜로 드라마가 다양한 관계를 담기 시작한 점도 또 다른 특징이다. 과거 전형적 멜로 드라마는 남성 주인공을 가운데에 두고 펼쳐지는 여성 등장인물들의 경쟁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지난 3월 종영한 JTBC의 은 아예 로맨스보다 세 여성이 보여 주는 워맨스에 집중했다. 시청자들이 멜로 드라마에서 사랑 이상의 스토리를 기대하게 되면서 휴먼 드라마처럼 풀어내는 새로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tvN의 (2022)에서는 여자 주인공인 나희도(Na Hee-do)와 고유림(Ko Yu-rim)이 펜싱 라이벌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따뜻한 정을 담았다. 한편 멜로드라마 속에서 일의 영역은 보통 배경으로 간단히 그려지기 일쑤였지만, 요즘에는 매우 디테일한 묘사로 현실감을 살리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여성 예능 바람이 분다

Entertainment 2022 SPRING

여성 예능 바람이 분다 남성 중심의 방송 환경과 낮은 시청률로 인해 부진하던 여성 예능이 최근 들어 한국의 TV 예능 편성에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여성들 간의 유대와 공감 속에 펼쳐지는 도전과 상호 존중의 서사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큰 여운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수들의 뒤에서 무대를 지켜왔던 무명의 댄서들을 조망한 케이블 TV 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는 2021년 8월 방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사진 속 그룹은 격전 끝에 최종 우승을 차지한 홀리뱅이다. ©Mnet 2021년 한국 TV에서 가장 뜨거웠던 콘텐츠 가운데 Mnet의 (街頭女戰士, Street Woman Fighter) 가 있다. 흔히 가수 뒤의‘백댄서’로 호명되던 여성 댄스 크루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경연을 펼친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8월 24일 첫 방영부터 화제를 모았다. 방영 기간 동안 꾸준히 비드라마 화제성 1위를 기록했고, 10월 26일 종영 이후에는 주요 참가자들이 다른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에 게스트로 초청받는가 하면, 여러 패션잡지의 연말 결산에서도 일제히 다뤄졌다.   의 무대는 한 명의 MC와 세 명의 심사위원을 중심으로 대결을 앞둔 양 크루가 바라보는 사각형 구조다. 그 주위로 나머지 크루 멤버들이 자리 잡고 응원과 호응을 해준다. ©Mnet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왼쪽)와 코카N버터의 리더 리헤이. 예고편은 ‘쎈 여자들’의 다툼이고 아찔한 갈등의 연속이었으나 본방에서 보여준 출연자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름답게 인정하는 멋진 모습이었다. ©Mnet 라치카(La Chica)는 애초에 한 가수의 안무를 짜기 위해 모인 일시적 모임이었는데, 작업량이 많아지고 다른 가수들의 안무도 담당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팀이 됐다. 원래 세 명이 팀원이지만 스우파 출연을 위해 피넛(왼쪽에서 두번째)과 에이치원(맨 오른쪽)이 객원 맴버로 참석했다. ©Mnet 새로운 트렌드 2010년 Mnet의 (Superstar K) 시즌 2와 2020년 TV조선에서 방영한 (Mr. Trot, 明天是)이 그러했듯, 는 단순한 인기 프로그램을 너머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역대 시청률을 갱신했던 두 프로그램과 달리 의 시청률은 가장 높았을 때도 3%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프로그램은 불특정 다수 시청자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인터넷 커뮤니티, 뉴스 포털 등 TV 바깥에서 커다란 화제를 만들며 팬덤을 이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따져보려면 시청률이라는 지표에서 인상적인 기록을 남긴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코미디언, 패션 모델, 배우 등 여성 유명인들이 2002년 월드컵 대표 선수들을 감독으로 축구팀을 만들어 경쟁한 SBS (Kick A Goal, 踢球的她们)이다. 2021년 6월 이후 계속 방영 중인 이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6~8%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같은 해 신작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눈에 띄게 높은 수준이다. 최근 조작 논란이 있긴 했지만, 침체에 빠져 있었던 지상파 예능의 희망 역할을 톡톡히 해준 것이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가 만들어낸 신드롬과 의 안정적인 높은 시청률이 지난 해 한국 여성 예능의 부흥을 이끈 두 가지‘사건’이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클리셰에 맞서다 두 프로그램에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형식을 갖췄으면서 동시에 여성 서바이벌 예능의 거의 모든 클리셰를 배신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TV 여성 서바이벌 예능에서 보여온 구도는 경쟁 자체보다는, 경쟁 과정에서 격화되는 감정싸움을 구경하거나 ‘여성 치고 잘하는’ 모습을 기특해하는 방식으로 소비되어 왔다. 는 다른 여성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그래왔듯, 강렬한 비주얼의 여성끼리 벌이는 ‘캣파이트’를 노골적으로 의도한 프로그램이다. ‘2021년 여름, 춤으로 패는 여자들이 온다!’는 방영 전 홍보 문구나 예고편도 여지없이 캣파이트를 연상시켰다. 또한 만만한 상대로 지목된 댄서가 옷에‘No Respect’ 스티커를 붙이고 배틀을 벌이는 첫 미션에서 연이어 아이돌 출신 댄서를 제압하는 모습은 마치 하이에나 무리가 손쉬운 먹잇감을 사냥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드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계급 미션’에서도 댄스 크루 웨이비의 리더 노제(No:ze, 盧智慧)가 만든 안무를 채택한 뒤 그 안무를 더 잘 소화해 메인 댄서가 되려는 다른 크루 리더들의 치열한 역공의 과정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프로그램 속에는 단순한 싸움이 아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존감 높은 출연자들의 진짜 모습이 있었다. 아이돌 출신 댄서가 탈락하게 되는 마지막까지 모든 출연자들은 그에게 한없는 애정과 존중을 표시했다. 또한 노제가 만든 안무를 두고 한 출연자가 “저건 내가 좀 갖고 놀 수 있겠다. 외우기만 하면” 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그 춤이 쉽고 만만하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본인의 춤에 대한 강한 프라이드가 내비쳤다. 출연자들 간의 경쟁을 감정적 캣파이트로 묘사하려는 편집에도 불구하고 춤을 향한 그들의 진지한 태도는 감춰지지 않았고, 바로 이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탈락해야 했던 노제는 “항상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담담하게 춤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떠났다. 바로 이때부터 모든 참가자에게는 승패 보다는 프로로서 얼마나 후회 없이 전문성을 증명하고 가느냐가 중요하게 됐다.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프라우드먼이 3차 미션에서 떨어졌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그들의 패배가 아니었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종전의 어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10%의 높은 시청률을 올리자 정규 편성에 들어갔던 역시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이 모여 스포츠 경기를 벌이는 경우 종전에는 으레 출연자들의 부족한 실력과 실수가 주는 웃음에 초점을 맞췄던 것에 반해, 이 프로그램은 그러한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했다. 파일럿 방송에서 우승했던 중년 스타 팀 FC 불나방은 정규 방송에서도 다시 리그와 토너먼트를 거치며 우승했지만, 여기서도 역시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었다. 평균 키가 월등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파일럿 단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배했던 모델 팀이 정규프로에서 가까스로 4강전에 올라 FC 불나방과의 결승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끈질긴 시도로 득점에 성공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YG엔터테인먼트 산하의 댄스 레이블 YGX는 주로 YG 소속 가수의 공연이나 연습생 트레이너로 활동하다 에 합류했다. 참가 그룹 중 가장 어리고 톡톡 튀는 이미지로 Z세대 여성의 상징이 되었고, 실제로 주 고객층이 Z세대 여성들인 유명 패션 플랫폼의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Mnet 유대와 공감 남성 중심의 방송 환경에서 여성 예능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또 다른 방법, 즉 진정성에서 우러나오는 성실과 끈기, 그리고 상호 존중의 태도가 있었다. 의 최고 명대사로 꼽히는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는 감히 남자들은 끼어들 수 없는 강한 여성들의 도도한 세계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이러한 한국 여성 예능의 부상이 있기 까지는 2020년 방영이 시작된 E채널의 (Sporty Sisters, 愛玩的姐姐)나 2016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방영된 MBC everyone의 처럼 선구적 역할을 담당해온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2021년에 시즌 2로 이어진 에서는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박세리(Pak Se-ri, 朴世莉)를 비롯해 전‧현직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출연해 새로운 운동 종목이나 취미를 경험한다. 막강한 근육과 넓은 어깨로 화제가 됐던 수영선수 정유인(Jung You-in, 鄭唯仁)처럼 그 동안의 TV 속 젠더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 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에서 코미디언 김민경(Kim Min-Kyoung, 金敏璟)이 큰 체구로 수비수를 튕겨낼 정도의 저돌적인 드리블을 하는 통쾌한 장면도 서로 일맥상통한다. 최근까지 남성 진행자들만 있었던 MBC의 인기 토크쇼 의 마이너 버전 정도로 만들어졌던 (Video Star)의 존재도 중요하다. 이 쇼가 5년 동안 장수하는 동안 MC를 맡았던 박나래(Park Na-rae, 朴娜勑)와 김숙(Kim Sook, 金淑)은 각각 2019년 MBC 방송연예대상, 2020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남성에 비해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 방송인들이 진행자로서 자리를 지키고 성장해 최고의 예능인으로 인정받게 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송에서 여성은 언제나 남성의 관점에서 그려졌고 주변부로 밀려나기 일수였다. 그런 속에서도 새롭게 자신들의 영역을 개발해온 여성 연예인들이 있고, 또한 그들과 일체감을 느끼며 응원하고 지지하는 여성 시청자들이 있어 왔다. 이들은 서로 비슷한 싸움을 해온 유대감을 공유하며 또 한 번의 전진을 위해 투쟁을 각오한다. 이들의 성취는 아직 결말이 아닌 과정이다. 2022년에도 그들은 새로 보여줄 것들이 많아 보인다.

이념을 넘어 지켜야 했던 것

Entertainment 2021 WINTER

이념을 넘어 지켜야 했던 것 영화 는 30년 전 소말리아 내전에서 함께 살아남은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의 실화를 생생하게 엮었다. 이념과 체제가 생존의 본능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류승완식 휴머니즘이 파헤친다. 2021년 7월 개봉한 는 1990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힘을 합쳐 혼란의 도시를 함께 탈출한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이다. “자동차 한 대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사막을 질주하는 이미지에서 출발했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처럼 4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탄 양측 외교관과 그 가족들의 긴박한 탈출 장면이 영화의 백미이다. 소말리아와 풍경이 비슷한 모로코 에사우이라에서 거의 모든 장면을 CG 없이 실제로 촬영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미라클 작전도 영화로 만들 준비를 해야 하나.” 얼마 전 ‘미라클 작전’을 지켜보다가 촬영이 한창이 류승완(Ryoo Seung-wan 柳昇完) 감독에게 관련 기사를 보냈더니 ‘미소’이모진을 덧붙여 돌아온 대답이다. 지난 8월 미군 철수와 탈레반의 재점령으로 아수라장이 된 카불에서 그 동안 한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간 민간인과 그들의 가족을 탈출시킨 정부의 결정과 실행은 국제사회에서의 연대감과 책임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 작전을 지켜보면서 코로나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 속에서도 극장 관객 300만을 기록하며 장기 상영에 들어 간 류승완 감독의 영화 (逃出摩加迪休, Escape from Mogadishu; 2021)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운명 같은 인연 “자동차 한 대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사막을 질주하는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2년 전, 류 감독이 속한 제작사 외유내강(內柔外剛 Filmmaker R&K)이 제작한 재난 영화 (極限逃生, EXIT; 2019)의 시사회에서 잠깐 만났을 때 류 감독이 던진 말이다. 전작 (軍艦島, The Battleship Island; 2017) 이후 와신상담하던 그가 자신의 열한 번째 장편영화로 를 막 결정했던 즈음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이라 그는 말을 아꼈지만 그 날의 짧은 대화에서 그가 어떤 배경과 분위기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 두 가지를 얻었다. 그것은 실화를 재구성한다는 것과 남북한 인물들이 총알 세례를 뚫고 함께 사막을 질주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일까 무척 궁금했었고, 극장 객석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얻기까지 2년이 걸렸다. 의 배경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에 기반한다. 1990년 12월 30일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에서 바레 장군의 장기 독재를 거부하는 시위가 쿠데타를 불러 일으키며 내전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 남북한 대사관이 동시에 주재하며 상호 비난과 공작 활동을 벌이고 있었던 모가디슈에서 두 대사관 직원들이 힘을 모아 함께 혼란의 도시를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류 감독이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던 이 사건을 스크린에 펼쳐내야겠다고 판단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서로 대치 중이던 남북한의 외교관들이 제3국에서, 그것도 머나 먼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나란히 분투한 사건에서 단순한 흥미 이상의 어떤 감동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류 감독은 어느 날 자신의 사무실에 놀러온 후배로부터 1991년 동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해 우연히 듣게 되었다. (與神同行, Along with the Gods: The Two Worlds) 시리즈를 제작한 덱스터 스튜디오가 영화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辣手警探, Veteran; 2015)의 후반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로부터 두어 해가 지난 뒤 덱스터 스튜디오가 그에게 연출 제안을 해 왔다. 류 감독은 “실화가 궁금해 당시 언론 보도와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너무 극적인 이야기라 누가 됐든 잘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과 영화는 그렇게 ‘운명처럼’ 만났다. 그가 이 사건에 매료된 건 무엇보다도 ‘함께 탈출한 남북한 외교관들이 특수 부대원이나 첩보 요원이 아닌 민간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극적인 상황을 겪으면서 발생하는 서스펜스가 흥미진진했고, 종전에 영화를 만들던 방식과 다른 시도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것이 나를 움직인 원동력이었다”는 게 류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실화를 다시 취재해 영화로 재구성했다. 모가디슈가 무장 군인과 반란군의 총격전으로 아수라장이 되기 전 남북한 외교관들은 각기 자국의 UN 가입에 소말리아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남한 대사 역의 김윤식(전면 왼쪽)과 북한 대사 역의 허준호가 긴장된 관계를 보여준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냉전 속 뜨거운 감동 영화는 1990년 12월 초부터 내전이 시작된 12월 30일을 거쳐 남과 북의 외교관들이 모가디슈를 벗어나는 1991년 1월 12일까지 약 한 달 남짓한 시간을 다룬다. 류 감독은 역사적 사실의 배경과 진전, 그리고 결말을 충실히 끌어오되 캐릭터와 사건의 디테일을 영화적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그것은 그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이기도 하다. 류 감독은 “그 기간은 소말리아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급변하던 시기라 이 격동적 변화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대한한국 대사관 관저에서 12일을 함께 보냈는데 그 기간 그들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채워넣는 게 관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영화에서는 크게 두 개의 전쟁이 전반부와 후반부를 교차하며 전개된다. 장중한 아프리카풍 음악을 배경으로 바다에서 바라보는 모가디슈 풍경— 이제껏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오프닝 시퀀스에 이어지는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남북간의 외교전이 펼쳐진다. 남북한 대사들은 앞다퉈 대통령, 장관 등 소말리아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며 치열하게 로비를 벌인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고, 나라에 국격이 있듯이 외교에도 격조가 있다” 지만, 각기 유엔 가입을 위한 회원국의 표만 끌어올 수 있다면 아슬아슬한 공작도 서슴지 않는다. 당시 냉전 말기에 힘의 우위에 있었던 건 영화 속 북한 대사의 말처럼 “남조선보다 20년이나 앞서서 아프리카에 기반을 닦은”북한이다. 남한 대사는 북한 대사가 쳐놓은 덫에 걸려들어 번번이 허탕을 친다. 영화의 전반부는 주요 캐릭터들을 꼼꼼하게 구축하는 동시에 소말리아 내전이 진행되는 과정을 공들여 보여준다. 그 의도를 류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관객이 인물에 몰입하고 그들과 함께 내전 상황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내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개되는지 사실적으로 잘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조마조마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너무나 잘 알지만 관객에게는 그것이 첫 경험이다. 그러니 익숙하지 않은 역사적 배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봐 걱정됐다. 다행스럽게도 관객이 영화 속 내전 상황을 무리 없이 잘 이해한 것 같다.” 북한으로 기울었던 균형추는 반군이 진짜 전쟁을 일으키는 중반부부터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어 나간다.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동요하며, 군부가 모가디슈로 진입해 국가를 장악하는 쿠데타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진다. 그러면서 서사는 남과 북의 외교전에서 모가디슈 탈주극으로 전환된다. 긴박한 상황 속에 남한 대사가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받아들이면서 남과 북은 같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남한으로의 전향이나 북한 사람과의 접촉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목표는 탈출해 살아남는 것,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다. 탈주극은 류 감독이 처음 시도한 장르가 아니다. 의 후반부에서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탈주한다. 하지만 그 탈출 신이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판타지라면, 의 그것은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비슷한 시기의 소말리아를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영화 (黑鷹計劃, Black Hawk Down; 2001)이나 미국 CIA 요원이 이란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주이란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탈출시키는 (逃离德黑兰, Argo; 2012) 역시 실화를 기반으로 한 탈주극이지만, 한 국가가 자국민을 구출하는 작전을 그려낸 앞의 두 영화와 달리 는 내전으로 인해 치안이 파괴되고 통신이 두절된 주재국 수도를 냉전 속에 대치 중인 적대국의 외교관들이 국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힘을 합쳐 탈출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긴박한 상황 속에 남한 대사가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받아들이면서 남과 북은 같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남한으로의 전향이나 북한 사람과의 접촉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류승완 감독은 로 11월 10일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주는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같은 시상식에서 촬영상, 음악상, 남우조연상도 받아 4관왕의 영예를 누렸다. 또한 내년 3월 개최되는 제94회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류승완식 휴머니즘 남북한 대사관 직원 20여명이 자동차 4대에 나눠 탄 채 화염병과 총알 세례를 뚫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질주하는 후반부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류승완식 휴머니즘이 고스란히 반영된 명장면이다. 포드 머스탱이 서울 명동 거리를 질주했던 류 감독의 전작 과 달리 이 영화 속 자동차들은 ‘모래주머니와 책을 매달아’ 속도를 내지 못해 아슬아슬한 묘미가 있다. 그런데도 서스펜스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관객이 함께 타고 있는 느낌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진짜 같아야 한다는 원칙 안에서 신경 썼던 건 ‘스펙터클해서는 안된다’ 였다. 쏟아지는 총알과 화염병 속에 질주하는 인물들의 절박감이 전달되려면 스펙터클보다는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게 중요”했다며 “카메라가 자동차 외관보다는 차 내부 상황을 중점적으로 담아낸 것도 그래서다. 무엇보다 관객이 차 안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몰입감을 느끼게 하려면 사운드를 생생하게 구현하는 게 필요했다. 사운드팀이 녹음실에서 차 소리와 총격 소리를 사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4대가 사람을 가득 태워 느린 속도로 반군의 추격을 따돌리는 숨막히는 광경을 그 흔한 인물의 클로즈업숏이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오케스트라 음악 없이 카메라에 담아낸 것이 인상적이다. 또한 소말리아를 탈출한 비행기 안에서 남북한 인물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도 정갈하고 담백하게 묘사되었다. 류 감독은 “비행기 안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이 많이 울었다. 촬영 후반부라 감정적으로 고조된 상태였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긴 시간 동안 얼마나 긴장된 상태로 함께 지냈겠나”라며 “그 장면이 과거에서 종결되는 이야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힘을 가지려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여운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모두가 그 상황이 어떤 감정과 의미를 담아야 하는지 다 알고 있었으니까”라고 말했다.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처음으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영화의 중반부에서 남한 대사의 부인이 깻잎을 떼어내지 못하자 북한 대사의 부인이 자신의 젓가락으로 도와주는 장면이 뭉클했던 것도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연대를 보여준 덕분일 것이다. 아마 이 대목에서 박찬욱 감독의 (JSA安全地帶, Joint Security Area; 2000)에서 남북한 병사들이 초코파이 하나로 우정을 나누던 장면이 절로 떠오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삶의 의지, 또한 체제와 이념보다 인간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휴머니즘 — 류 감독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메시지다.

밀리터리 콘텐츠의 새 풍경

Entertainment 2021 AUTUMN

밀리터리 콘텐츠의 새 풍경 분단된 한반도 상황에서 군대를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최근 특수부대 출신 출연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가 색다른 기획으로 화제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군대 소재 콘텐츠는 스테디셀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콘텐츠로 화제가 됐던 (虚假的男人, Fake Man; 2020)는 특수부대 훈련을 통해 불굴의 정신력을 기른다는 기획 의도 아래 지나치게 출연자들을 혹사시키는 장면들로 인해‘가학 논란’속에 방영이 중단되었다. 그러니 ‘군대’라는 소재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의 잔상을 남기고 있었던 상황에, 또 다른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시작 전부터 우려 섞인 반응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올 3월부터 6월까지 케이블 TV 채널 A를 통해 방영된 는 여섯 개 특수 부대 예비역들이 출연한 서바이벌 밀리터리 예능이다. 각기 소속되었던 부대에 따라 특수 기술을 가진 출연자들이 극한의 대결을 펼쳐 최종 우승 부대를 가리는 방식이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 채널 A 기대 밖의 열풍 하지만 올 3월 23일부터 6월 22일까지 3개월 동안 채널A가 매주 화요일 밤에 방영한 (钢铁部队, Steel Troops)는 시작과 함께 이런 우려들을 기대감으로 바꿔 놓았다.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들로 팀을 꾸려, 최고의 부대를 가려낸다는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애초에 훈련 과정이 불필요했다. 철저히 준비된 출연자들이 부대별로 대결을 벌인다는 점에서 가학 논란도 개입될 수 없는 구성이었다. 대신 자신이 속했던 부대의 명예를 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스포츠맨십이 더해졌다. 차가운 밤바다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조하고, 250kg 무게의 타이어를 네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계속 뒤집어가며 300m를 이동하거나, 40kg 군장을 한 채 10km 산악행군을 하는 혹독한 미션들은 단지 승패만이 아니라 완주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미 탈락이 결정된 팀마저 끝까지 함께 미션을 완수한 것은 부대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의지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패자에게도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여기에 남다른 체격에 잘 생긴 외모를 갖춘 출연자들이 벌이는 ‘대테러 작전’, ‘서울함 탈환작전’ 등은 마치 게임 같은 환상으로 여성 팬들까지 끌어 모았다. 레인보우식스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일인칭 슈팅 게임(FPS)을 실제 버전으로 보는 듯한 긴박감 넘치는 장면들이 열띤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압도적인 피지컬의 출연자들은 회차가 진행될수록 인기를 몰아갔다. 그 중 해군 특수전전단 UDT/SEAL 폭발물처리대대에서 하사로 전역한 육준서(陸俊書)는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출연자 중 한명이다. 그가 속한 UDT가 결국 우승팀이 됐다. © 채널 A 밀리터리 콘텐츠의 계보 이전에도 한국에는 다양한 밀리터리 콘텐츠들이 꾸준히 등장해왔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KBS 2TV 코미디 프로그램 의 한 코너로 방영되었던‘동작 그만’은 병영생활을 콩트 코미디 형식으로 다뤘다. 군대 경험에 대한 시청자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서열문화를 슬쩍 비튼 이 콩트 코미디는 한국인들이 군대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이중적인 감정을 잘 건드렸다. 즉 한창 나이인 20대에 병역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했던 경험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힘겨움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그들만이 겪은 일들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감정의 복합적인 심리상태로 이어진다. ‘동작 그만’은 그 힘겨움과 자랑스러움에 대한 공감과 함께, 병영 내 서열 문화의 불편함을 살짝 곁들여 웃음으로 전해주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 MBC TV가 방영했던 (友情的舞台)는 전형적인 군대 위문 공연 프로그램으로, 이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KBS 1TV가 방영한 같은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만 해도 군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외부와 격리된 환경이었고, 따라서 이런 위문 공연 방식의 프로그램들은 군인들과 일반인들이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시간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의 마지막 코너였던 ‘그리운 어머니는 군부대를 찾아온 어머니와 아들이 만나는 장면이 늘 화제가 되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서 군대는 외부에 공개되기가 쉽지 않은 공간이다. 하지만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시즌을 나눠 MBC TV에서 방영됐던 (真正的男人, Real Men)는 여러 부대에 연예인들이 단기 입소해 그 경험을 담는 파격을 선보였다. 당시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던 관찰카메라(일명 리얼리티쇼)가 군대 내무반까지 들어가 그 생생한 체험을 담았던 것이다. 물론 보안상의 이유로 어느 정도 ‘준비된 내무반’의 상황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지만 과거에 비해 한국의 군대가 훨씬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2013년 공군이 영화 (悲惨世界, Les Miserables)을 패러디해 홍보영상으로 만든 (Les Militaribles)은 영화에서 자베르 경감 역할을 연기했던 러셀 크로우가 언급하면서 국제적인 화제가 되어 영국 BBC에서보도되기도 했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육군은 당시 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었던 싸이의 (绅士, Gentleman)을 패러디한 (GentleSoldier)을 내놓았다. 한국의 군대가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3~4회에서 특수부대 예비역들이 IBS 침투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은밀한 해상 침투나 정찰 등의 목적에 사용되는 고무보트 IBS는 무게가 250kg에 달한다. ⓒ 채널 A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만나다 시대가 바뀌면서 대중들의 감수성도 바뀌었다. 를 패러디한 는 ‘진짜가 되려는 가짜들의 도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경쟁을 통해 선발된 일반인들이 해군 특수전전단 (MUSAT) 훈련을 받는 혹독한 과정들을 담았다. 상대적으로 표현이 자유로운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특징 때문에, 가혹할 정도로 강도가 높은 훈련과정들이 가감 없이 공개되었고, 이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유튜브 콘텐츠는 주로 1인 크리에이터들의 방송이라 알려졌지만, 는 여러 유명 유튜버들이 모여 함께 만든 통합적인 방송으로 유튜브에도 블록버스터급 콘텐츠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특히 를 통해 대중에 알려진 일부 특수부대 출신 교관들은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 유명인이 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영국 Discovery Channel에서 2006년부터 2011년가지 방영된 (荒野求生, Man vs. Wild)의 베어 그릴스가 영국 육군 하사 출신 예비역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제 한국의 특수 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또한 지난 해 특전사 출신 여성 교관이 여성 연예인들의 유튜브 서바이벌 프로그램 (我還活著, I′m a Survivor)로 화제가 된 것은 이제 군대 소재 콘텐츠가 보다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확장되고 있는 현상을 잘 보여준다. 는 바로 이 변화의 정점에서 이제까지의 군대 콘텐츠들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정수를 성공적으로 엮어낸 경우다. 분단과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군대는 폐쇄적인 곳일 수밖에 없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쉽게 개방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기성세대들이 뒤로 물러나고 새로운 세대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며 한국의 군대도 조금씩 변화를 겪고 있다. 꾸준히 대중의 관심을 받아온 밀리터리 콘텐츠들의 변화 과정은 그래서 실제 군대의 변화 과정과 맞닿아 있다. 고립되고 닫혀 있던 군대가 조금씩 속살을 드러내고 있고, 이제는 그 경험이 TV 프로그램을 통해 즐거움을 선사하고 더 나아가 일상의 생존을 위한 노하우로도 소비되고 있으니 말이다. 꾸준히 대중의 관심을 받아온 밀리터리 콘텐츠들의 변화 과정은 그래서 실제 군대의 변화 과정과 맞닿아 있다. 2회에서 최강대원 선발을 통한‘대진 결정권’을 두고 여섯 부대가 대결을 벌이고 있다. 메인 미션 사이에 베네핏을 건 서브 미션들이 함께 진행되었다. ⓒ 채널 A 정덕현(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평론가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의 즐거운 상생

Entertainment 2021 SUMMER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의 즐거운 상생 한국 시장 진출 이후 5년– 넷플릭스는 그동안 한국 콘텐츠의 수준을 높였고, 세계 시장에서 K-콘텐츠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같은 순항의 이면에는 지속적인 투자와 과감한 도전, 그리고 우수한 제작자들의 협력이 있었다. 2016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지금까지 OTT(over-the-top) 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의 최강자 넷플릭스(Netflix)는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양질의 외국 콘텐츠가 한국시장에 쏟아졌고, 한국의 우수한 콘텐츠도 해외 관객을 만났다. 넷플릭스 덕분에 한국 콘텐츠 제작자들이 세계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한국 덕분에 넷플릭스는 세계 시장에서 구독자 수를 늘려나갔다. 콘텐츠 교류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윈윈’ 관계를 확실히 구축한 것이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은 전례 없는 격변을 맞았다. CJ ENM의 티빙(TVING), KT의 Seezn, SKT의 wavee가 시장 선점을 위해 경쟁 중이다. Disney+등 외국의 대형 OTT 서비스도 한국 시장 진출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이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파격적인 시작 넷플릭스는 한국 진출을 선언할 때부터 파격이었다. 740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투자해 제작한 봉준호(Bong Joon-ho 奉俊昊) 감독의 대작 (玉子, Okja; 2017)를 한국 넷플릭스의 간판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OTT와 극장 동시 상영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으나, 봉 감독은 이 작품으로 할리우드에 눈 도장을 찍었다. 어찌보면 (寄生虫, Parasite; 2019)이 거둔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의 첫 단추는 넷플릭스와의 공조였던 셈이다. 넷플릭스는 이후 (甜蜜家园, Sweet Home; 2020), (灵能教师安恩英, The School Nurse Files; 2020), (乐园之夜, Night in Paradise; 2021)의 공개로 계속 라인업을 확장했다. 의 경우 지난해 12월 18일 공개한 이후 한 달 만에 2200만 계정이 시청했다. 이는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순위에 해당하며, 한국 콘텐츠의 잇단 흥행 성공에 힘 입어 전 세계 구독자수가 지난해 2억명을 돌파했다. 영화 에서 환경단체 ALF(Animal Liberation Front)의 목적은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숨겨진 실체를 파헤치는 것이다. © 넷플릭스(Netflix) 주인공 미자(우)는 잃어버린 친구 옥자를 되찾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대표 낸시 미란도를 만난다. 주목하는 이유 넷플릭스는 한국을 단순히 소비시장으로 보지 않았다. 인구 5000만명의 나라는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아시아에서 지사나 사무소를 둔 곳은 싱가폴, 인도, 일본, 그리고 한국 네 나라뿐이다. 인도는 12억 인구로 시장이 방대하다. 싱가폴은 동·서양을 잇는 교두보로 필요하다. 일본은 애니메이션 생산을 위해서 마련됐다. 지리적 위치도, 인구 수도 수익을 보장할 수 없어 보이는 한국에 넷플릭스가 뛰어 든 이유는 뛰어난 콘텐츠 제작능력이 있어서다. 우수한 드라마·영화 제작자들이 구미를 당기게 했다. 콘텐츠 생산 전초기지로 알맞아 보인 것이다. 넷플릭스의 선택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한 (尸战朝鲜/屍戰朝鮮, Kingdom;시즌 1 2019, 시즌 2 2020)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한국의 조선시대(1392~1910)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좀비 이야기가 동∙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혼합한 콘텐츠로 주목을 끌었다. 김은희(Kim Eun-hee, 金銀姬) 작가의 필력도 한 몫했다. 미국에서는 조선의 양반들이 쓰던 모자 ‘갓’을 구매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넷플릭스는 해외 팬들이 K-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한류의 창구가 되기도 한다. 한류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아시아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해외 팬들이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한국 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영국인 소피 씨(Sophie Abdoul, 23)는 14살 때부터 K-팝과 한국 드라마, 그리고 영화를 꾸준히 챙겨 봤다. 아이돌 음악은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었지만, 드라마만큼은 장벽이 높았다. 하지만 최근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를 연달아 공개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관람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넷플릭스로 인해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좋아졌다”면서 “우울할 때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덕분에 최근에는 한국 문화 전도사처럼 친구와 가족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했다. 미국인 첼시 씨(Chelsea Anosik, 18)는 한국 드라마 팬이다.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부터 K-드라마를 즐겨 온 그는 요즘 더 많은 한국 드라마를 찾아 보고 있다. (奶酪陷阱, Cheese in the Trap; 2016)을 시작으로 , (虽然是精神病但没关系, It’s Okay to Not be Okay; 2020)까지 즐기는 장르도 다양하다. 그는 “한국 드라마는 너무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면서 “감정을 자극하는 데 탁월한 것도 인기 요소”라고 했다. 이어“넷플릭스가 한국 작가, 감독, 배우들에게 기존 TV에서는 할 수 없었던 다양한 도전을 촉구하는 모습이 반갑다”면서 “한국 드라마는 로맨스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보다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아시아에서도 K-콘텐츠와 넷플릭스의 협업이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필리핀인 마리 (Marié Olivia Garcia) 씨는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한국 콘텐츠는 기존 TV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옵션을 제공한다”면서 “한류 팬들에겐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영화 (屍速列車, Train to Busan; 2016)으로 한국 콘텐츠에 빠져든 인도인 스라비카(Shravika Wanjari) 씨 역시 “좀비물·스릴러물이 굉장히 뛰어난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넷플릭스 플랫폼을 점령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2020년 9월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은 정세랑(Chung Serang, 郑世朗)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시즌 1은 총 6화로 러닝타임 298분이다. ©넷플릭스(Netflix) 조선 왕조를 위협하는 좀비가 등장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포물 중 하나이다. 두 번째 시즌은 첫 번째 시즌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김성훈(Kim Sung-hoon 金成勳) 감독은 곧 방영 예정인 스페셜 에피소드 이 세 번째 시즌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라 말했다. 올 해 공개될 드라마 은 주동근(Joo Dong-geun 朱東根)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도시 속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극한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내용을 담았다. 4월 9일 넷플릭스를 통해 단독 공개한 박훈정(Park Hoon-jung 朴勋政) 감독의 영화 은 한국형 누아르에 전에 없던 여성 캐릭터까지 더해지며 스토리와 영상미를 함께 잡았다. 군대를 소재로 한 한준희(Han Joon-hee 韩俊熙) 감독의 는 평범한 이등병이 ‘군무이탈 체포조’가 되어 탈영병을 쫓으며 마주하는 혼란스러운 청춘에 관한 이야기다. 대규모 투자 넷플릭스는 세계 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과의 협업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치열해져 가는 OTT 서비스 경쟁에서 더 많은 투자로 우위를 점한다는 계획이다. 한국 콘텐츠 제작에 올해 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계획의 일환이다. 지난 5년간 누적 투자액이 7억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위해서 경기도 연천과 파주 두 곳에 대규모 스튜디오를 마련하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임대 계약을 체결한 두 스튜디오는 ‘YCDSMC 스튜디오 139’와 ‘삼성 스튜디오’다. YCDSMC 스튜디오 139는 6곳의 스테이지를 갖춘 총 면적 9000 제곱미터, 삼성 스튜디오는 3곳의 스테이지로 총 면적 7000 제곱미터에 이른다. 이 같은 전폭적인 지원으로 올해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면면이 화려하다. 의 프리퀄인 (屍戰朝鮮:雅信傳, Kingdom: Ashin of the North)은 전지현(Jun Ji-hyun, 全智賢)의 캐스팅을 확정 짓고 올해 방영을 앞뒀다. 유품 정리사의 눈을 통해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Move to Heaven:我是遺物整理師, Move to Heaven)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제훈(Lee Je-hoon, 李帝勳)이 주인공을 맡아 한류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정해인(Jung Hae-in,丁海寅), 구교환(Koo Kyo-hwan, 具敎煥) 김성균(Kim Sung-kyun, 金聲均)이 주연을 맡은 영화 (D.P:逃兵追緝令)도 기대작이다. 탈영병들을 쫓는 군무이탈 체포조들이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보통 작가의 동명 웹툰이 군대 내 부조리와 가혹행위들을 여과없이 그려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코리안 좀비 시리즈는 올해도 계속된다. 바이러스가 퍼진 고등학교를 구하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殭屍校園, All of Us Are Dead)의 스틸컷이 최근 공개되어 학교 운동장에 가득한 피투성이 좀비떼들의 모습이 팬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한류 스타 공유(Gong Yoo, 孔劉)와 배두나(Bae Doo-na, 裵斗娜), 이준(Lee Joon, 李準)이 주연하는 영화 (寧靜海, The Silent Sea)>도 넷플릭스에서 선보인다. 세계적인 사막화로 물과 식량이 부족해진 지구가 배경이다.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에서 벌어지는 정예대원들의 이야기로, 한국형 SF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넷플릭스의 대규모 투자에 자극을 받은 국내 OTT 서비스 플랫폼들의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KT는 2023년까지 4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오리지널 대작 드라마 100편을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상파 3사(KBS·SBS·MBC)와 SK Telecom이 만든 wavee는 3년간 3000억원을 콘텐츠 제작에 쏟아 붓는다. CJ와 JTBC 연합인 TVING도 3년간 4000억원 투자를 선언했다. OTT 플랫폼 공룡들의 전쟁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한류 팬들은 즐겁기만 하다. 넷플릭스는 세계 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과의 협업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치열해져 가는 OTT 서비스 경쟁에서 더 많은 투자로 우위를 점한다는 계획이다. 시즌 3는 스페셜 에피소드 에 이어 매우 기대된다. 스페셜 에피소드에서 전지현(Jun Ji-hyun 全智賢)은 좀비를 조종하는 것 같은 해적 여왕 아신으로 출연한다. Kwon Ki-bong Writer Ahn Hong-beomPhotographer

한국형 크리처물의 진화

Entertainment 2021 SPRING

한국형 크리처물의 진화 웹툰 원작의 넷플릭스 드라마 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스토리와 영상의 높은 완성도로 한국 크리처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 관객까지 사로잡은 이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2020년 12월 넷플릭스로 전 세계에 방영된 10부작 드라마 의 인기가 연일 화제다. 공개된 지 4일 만에 홍콩, 싱가폴, 대만, 말레이시아, 페루 등 13개국에서 일일 랭킹 1위를 기록했고, 넷플릭스가 인기 순위를 알려주는 70개 이상 국가에서 모두 ‘탑10’안에 들었다. 세계 순위로는 3위까지 올랐다. 국내에서 최초로 제작된 크리처물이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는 등 불리한 조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의 성공 배경에는 그동안 쌓아온 K-콘텐츠에 대한 넷플릭스의 신뢰가 있었다. 김칸비(Kim Carnby) 원작 스토리에 황영찬(Hwang Young-chan)의 그림을 입힌 동명의 원작 웹툰은 2017년 10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연재되며 이미 9개 언어로 서비스돼 글로벌 누적 조회 수 12억 건의 기록을 세웠다. 웹툰 속 다양한 괴물들의 영상화에는 앞서 공개된 드라마 이 한국형 아포칼립스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았다. 여기에 영화 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이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 4개 부문의 상을 받으며 K-콘텐츠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드라마 이 나설 자리는 이처럼 토양이 잘 다져지고 시의적절했다. 넷플릭스는 총 300억 원의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개봉 전부터 대작(大作)의 출현을 예고했고, 뛰어난 CG 기술과 세트 퀄리티 등으로 관객이 기대했던 ‘보는 맛’을 충분히 충족시켰다. 지휘봉은 TV 드라마 으로 절절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영상미를 입증한 이응복 감독이 쥐었다. 이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평소 크리처물을 잘 보지 않는데, 원작 웹툰을 보는 순간 한국 드라마의 소재를 확장하는 차원에서 도전하고 싶었다. 글로벌한 소재로도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칸비 글, 황영찬 그림의 웹툰 원작 한국 드라마 이 2020년 12월 18일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었다. 작품 공개 이후 첫 4주 동안 전 세계 2200만 유료 구독가구를 기록했다. 방영된 시즌 1은 10회로 구성됐으며 러닝타임은 총 515분이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Netflix Original Series) 욕망의 감염 이야기는 은둔형 외톨이인 고등학생 현수(Hyun-su)가 홀로 이사 온 아파트 ‘그린홈’에서 시작된다. 현수를 비롯한 거주민들이 각양각색 괴물들과 대항하는 내용으로, 자신만 살아남으려는 자, 희생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들이 늘어나는 괴물들과 사투를 벌이며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 작품 초반부는 정체불명의 원인으로 인해 인육을 탐하는 괴물이 등장하는 전형적 좀비 아포칼립스를 표방한다. 고립된 아파트 건물을 최후의 보루 삼아 벌이는 서바이벌 투쟁도 종전에 보아 온 익숙한 좀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괴물에게 물린 이가 다시 괴물이 되어 그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간다’는 좀비의 감염 공식은 이 작품에서 과감하게 부정된다. 애초부터 이 드라마에서는 인간이 바이러스 감염 같은 질병에 의한 것이 아닌 무언가로 말미암아 언제든 자아를 잃고 끔찍한 괴물로 변한다. 그 이유는 각기 자신의 욕망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형태 또한 갖가지 개인의 음험한 내면을 구상화했다. 환자복을 입은 채 촉수를 뻗어 흡혈하는 괴물, 근육 덩어리 몸으로 연신 “프로틴”을 외쳐대는 괴물 등이 이 같은 원인을 증명하며, 좀비 아포칼립스와 선을 긋는 미지의 공포로 작동한다. 이 감독 역시 “욕망으로 인해 괴물이 된다는 발상 자체가 참신해 영상으로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고 말한 바 있다. 에 등장하는 크리처의 움직임 연구에는 안무가 김설진(金雪镇 Kim Seol-Jin)이 참여했다. 그는 동물의 본능적인 움직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시즌 1 2화에서 주인공 현수의 집에 들어오는 연근 괴물. 주인공 현수는 세상을 차단하고 방 안에만 틀어박힌 히키코모리지만,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문 밖으로 나간다. 시즌 1 3화에서 현수가 무기를 들고 연근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 나서는 장면.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Netflix Original Series) 극 중 국어 교사 정재헌은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과 달리 검도를 수련한 경험을 살려 진검을 무기로 크리처와 싸운다. 시즌 1 3화에서 그가 프로틴 크리처를 유인하기 위해 몸을 날리고 있다. 에서는 극 중 인물들이 감염이 아닌 개인의 욕망에 의해 괴물로 변한다. 시즌 1 3화에서 그린 홈 주민들이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대통령의 담화에 놀라고 있다.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타적인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지고, 집단을 위한 희생을 감수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성장한다. 한국적 정서의 가족 드라마 누구나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구축한 전선은 오히려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간다. 사람들은 괴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이를 배척하고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의심하며 창을 겨눈다. 그럼으로써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이들의 신념을 끊임없이 흔들고 시험한다. 주인공 현수는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인물이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그가 괴물이 되다 만 채 누구보다 나약했을 자아를 다잡고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서서히 이 드라마가 단순한 크리처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타적인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지고, 집단을 위한 희생을 감수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성장한다. 이 드라마는 십여 명 이상의 등장 인물 저마다에 사연을 부여하고 살아 있는 인간으로 그려내려 한다. 이들이 생존을 위해 끝내 협력하는 험난한 과정은 당연히 극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에 관한 것이다. 과연 괴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이 감독의 이야기도 이와 맞닿아있다. 극중 대사가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사람도 세상도 신의 뜻도(I realized that what you see isn’t everything – people, the world and god’s will.).” 인물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은 각자의 드라마와 함께 인간성을 응원하는 작품의 주제와도 정확히 연결된다. 한국 드라마 특유의 ‘가족지향형 연대’마저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으로 그려낸 배경이다. 긴장과 쾌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 특유의 재미 또한 여느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 생생한 공포를 선사하기 위해 이 감독이 1년간 할리우드의 특수효과팀과 머리를 맞댄 결과다. 배우들의 실제 연기를 촬영한 뒤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괴물들을 만들어냈고 이들의 움직임은 안무가 김설진이 구상했다. 이에 긴박한 상황 변화와 잘 짜인 액션이 긴장과 쾌감을 더해준다. 현관문을 두드리며 절규하는 여인이 섬뜩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아파트 정문에 나타난 괴물은 기다란 촉수를 뻗어 사람의 피를 빤다. 상악골이 절단된 채 청각에만 의존해 건물 안을 헤집고 다니는 괴물이나 거대한 근육질 괴물은 개중에도 더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해 각기 다른 형태의 스릴을 선사한다. 거대한 눈알 형상을 하거나, 거미를 연상시키는 등 괴물의 형태엔 애초에 정형화된 틀이 없다. 다양한 생김새에 기반한 각각의 습성 때문에 대응하는 인간들 또한 매번 임기응변을 펼칠 수밖에 없으니 서스펜스는 자연히 극대화된다. 특히 작품 후반부에 벌어지는 또 다른 인간 집단과의 싸움은 관객의 감정을 극한으로 치닫게 한다. 그렇게 은 폐허에 가까운 외딴 아파트 단지 안에 온갖 드라마를 쓸어 담으며 두려움과 쾌감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 그 속에서 자라나는 유대감을 모두 아우르는 휴먼 스펙터클로 탄생했다. K-콘텐츠의 전과 후를 나누는, 기준으로 도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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