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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해외에서 돌아온 문화유산들

Focus 2023 WINTER

해외에서 돌아온 문화유산들 현재 해외에 소재한 한국의 문화재들은 22만 9천여 점(2023년 1월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 이후 지금까지 기증과 매입 등을 통해 환수한 문화재는 1,200여 건(2023년 8월 기준)이며, 그중 가치가 높은 유물들은 보물로 지정되고 있다. < 묘법연화경 권제6(妙法蓮華經 卷第6) > . 14세기 제작 추정. 감지에 금·은니 필사. 27.6 × 9.5 ㎝(접었을 때), 27.6 × 1,070 ㎝(펼쳤을 때), 두께 1.65 ㎝. < 묘법연화경 권제6 > 은 올해 3월 일본에서 환수한 고려 사경(寫經)으로, 경전의 주요 내용을 그린 변상도(變相圖)와 경문(經文)으로 구성돼 있다. 사경이란 불교 경전을 옮겨 적은 것을 말한다.< 묘법연화경 > 은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설파하는 경전으로, 한국의 불교 사상이 확립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 국립고궁박물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7월 미국인 민티어 부부(Gary Edward Mintier & Mary Ann Mintier)에게 한국 근현대 미술품들과 직접 촬영한 사진 등 총 1,516점의 소장품을 기증받았다. 이 기증품들은 이들 부부가 1969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과 부산에 거주하면서 한국 문화에 매료돼 수집하고 촬영했던 것들이다. 이 중에는 근대기 회화의 다양성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을 비롯해 희소 가치가 높은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1970년대 부산의 풍경과 생활사를 촬영한 사진들은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한 장면을 보여 주는 귀한 자료였다. 부산박물관은 이를 기념하여 한 달 동안< 1970년 부산, 평범한 일상 특별한 시선 > 이라는 제목의 특별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 대동여지도 > . 19세기. 30 × 20 cm(각 첩), 약 6.7 × 약 4 m(펼쳤을 때). < 대동여지도 > 는 조선의 지리학자인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 처음 제작하여 간행하고, 내용 일부를 수정해 3년 후 다시 발행한 22첩의 전국 지도이다. 이번에 환수된 지도는 1864년 판본에 김정호가 제작한 또 다른 전국 지도인< 동여도(東輿圖) > 의 내용이 추가되어 보다 상세한 지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목록을 포함해 총 23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재청 제공 선의의 기증 2012년 설립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오래 기간에 걸쳐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해외에 유출된 국내 문화유산 실태를 조사하고, 현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유물이 더 잘 보존, 관리, 연구,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기증이나 매입 등의 방식으로 문화유산을 환수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 기관에 의하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은 2023년 1월 기준으로 27개국 22만 9,655점에 이른다. 국가별로는 일본에 가장 많은 9만 5천여 점이 있고, 미국에도 6만 5천여 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해외 소재의 문화유산을 환수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유물을 소유한 개인이나 기관, 국가가 돌려주기를 거부하면 방법이 극히 제한된다. 불법적으로 유출된 경우라 하더라도 현재의 국제법을 감안하면 환수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환수는 주로 개인이나 기관·국가의 자발적 기증, 외교적 협의에 따른 반환, 경매나 개인적 거래를 통한 구입, 장기 임대 형식을 띤 사실상의 반환 등으로 이뤄진다. 그중 소장자의 선의에 따른 기증 형식의 환수가 가장 많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환수된 문화유산은 2023년 8월 기준 1,204건 2,482점이며 그중 상당수가 기증을 통해 돌아왔다. 자신의 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 애써 수집한 재산을 공공 자산화한다는 것은 숭고하고 위대한 행위이다. 이렇게 기증받은 문화유산 중에는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는 경우들도 있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된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粉靑沙器 象嵌 ‘景泰5年銘’ 李先齊 墓誌)가 대표적이다. 이는 조선 시대 학문 연구 기관인 집현전에서 활동했던 학자 이선제의 묘지(죽은 사람의 이름, 신분, 행적 따위를 기록한 글)로, 당시 묘지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유물은 일본인 미술품 수집가인 남편 도도로키 다타시(等々力孝志) 타계 후 아내 도도로키 구니에(等々力邦枝)가 2017년 무상 기증의 뜻을 밝혀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 일영원구(日影圓球) > . 1890. 동, 철. 높이 23.8 cm, 구체 지름 11.2 cm. 조선 시대의 일반적인 해시계가 반구(半球) 형태인 것과 달리 일영원구는 꽃잎형 받침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원구를 올렸다. 당시 과학 기술의 발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물이다. 2022년 3월 미국 경매를 통해 매입한 문화재이다. ⓒ 국립고궁박물관 희소성 높은 유물들 올해 돌아온 유산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조선(1392~1910) 후기에 제작된 한반도 지도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와 고려 시대(918~1392) 유물인 『묘법연화경 권제6(妙法蓮華經 卷第6)』이다. 이번에 환수한< 대동여지도 > 는 기존에 국내 기관들이 소장하고 있던< 대동여지도 > 와 구성과 내용이 달라 더 의미가 깊었다. 조선 시대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인 김정호(金正浩, 1804 추정~1866 추정)가 1864년 목판에 지도를 새기고 이를 인쇄한 가로 3.3m, 세로 6.7m 크기의 지도이다. 일본인 소장자가 판매에 나서면서 그 존재가 확인됐고,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구입해 환수했다. 『묘법연화경 권제6』은 불교 경전인 『묘법연화경』 일부를 종이 위에 필사한 것이다. 경전을 정성스럽게 종이에 베껴 쓰고 또 고급스럽게 꾸민 유물을 사경(寫經)이라 한다. 이 사경은 한국의 전통 천연 염색 재료로 지금도 이용되는 쪽물을 닥종이에 물들인 후 그 위에 금가루와 은가루를 전통 접착제인 아교에 개어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희귀한 이 유물은 일본인 소장자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매도 의사를 밝혀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해인 2022년에는 모두 10점이 환수됐는데, 그 중에서 19세기 휴대용 해시계인 ‘일영원구(日影圓球)’가 크게 주목받았다. 이 유물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구형(球形) 휴대용 해시계로, 조선 시대 과학 기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개인 소장자가 미국 경매에 내놓은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낙찰받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국가지정문화재 최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환수한 문화유산 중에서 16세기 작품인<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 > 와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책봉 죽책(文祖妃 神貞王后 王世子嬪冊封 竹冊)』이 올해 보물로 지정되었다. ‘계회도’는 회합 장면을 그리고, 참석자들의 인적 사항도 적어 넣은 그림을 말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환수된< 독서당계회도 > 는 1531년에 당시 현직 관료들이 자신들의 모임을 기념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인 소장자가 미국 경매에 내놓은 것을 낙찰 받아 환수했다. 한편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책봉 죽책』은 프랑스의 개인 소장자가 경매에 내놓은 것을 2018년 국내 한 기업이 매입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기증했다. 죽책이란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 등을 책봉할 때 그에 관한 글을 대나무쪽에 새겨서 수여하는 문서이다. 이 죽책은 헌종(憲宗, 재위 1834∼1849)의 어머니인 신정왕후(神貞王后) 가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책봉된 1819년에 제작된 것으로, 조선 왕실의 중요한 의례 상징물로 빼어난 예술성과 왕실 문화의 품격을 보여 준다. 특히 이 유물은 조선 왕실의 서적을 보관하던 강화도 외규장각(外奎章閣)에 있었던 것으로 1866년 병인양요 때 다른 서적들과 함께 불에 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가 다시 돌아와 주목을 받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문화유산들은 전문가들의 조사, 연구와 과학적 보존 처리를 거쳐 박물관, 미술관 같은 전문 기관에 소장된다. 이후 보존과 관리를 받으며 연구와 전시, 교육을 위한 소중한 역사적, 문화적 자료로 활용된다. <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책봉 죽책(文祖妃 神貞王后 王世子嬪冊封 竹冊) > . 1819. 대나무, 황동, 견. 25 × 102 cm. 신정왕후가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책봉된 해에 제작된 것으로, 조선 왕실의 전형적인 죽책 형식을 엿볼 수 있으며 공예품으로도 뛰어난 예술성을 지녔다. 책봉 대상자의 인적 사항을 비롯해 착한 일은 권하고 나쁜 일은 금하는 당부가 적혀 있다. ⓒ 국립고궁박물관

애니메이션, 웹툰 미디어 믹스의 또 다른 해법

Focus 2023 AUTUMN

애니메이션, 웹툰 미디어 믹스의 또 다른 해법 드라마나 영화로 미디어 믹스되던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는 원작의 매력을 살리는 유효한 전략이면서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도 용이한 방식이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앞으로 더 많은 웹툰들이 애니메이션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웹툰 원작의 애니메이션 포스터들. 위부터 < 외모지상주의 > (2022), < 기기괴괴: 성형수 > (2020), < 도깨비 언덕에 왜 왔니?(Dokkaebi Hill) > (2021~2022), <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My Daughter is a Zombie) > (2022). ⓒ 넷플릭스(Netflix) ⓒ 에스에스애니먼트(SS Animent Inc.), 스튜디오 애니멀(Studio Animal), SBA ⓒ 김용회(Kim Yong-hoe, 金龍會), 쏘울크리에이티브(Soul Creative), CJ ENM, KTH, SBA ⓒ EBS, 두루픽스(Durufix) 최근 인기 웹툰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서 미디어 믹스의 장르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있다. 우선 2020년, SIU 작가의 < 신의 탑(Tower of God, 神之塔) > 과 박용제(Yongje Park, 朴溶濟) 작가의 < 갓 오브 하이스쿨(The God of High School, 高校之神) > 이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관객들과 만났다. 비슷한 시기에 외모 지상주의 사회를 풍자한 오성대(Sungdae Oh, 吳城垈) 작가의 웹툰 < 기기괴괴(Tales of the Unusual, 奇奇怪怪) > 가 < 기기괴괴: 성형수(Beauty Water, 奇奇怪怪: 整容液) > 라는 제목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2022년에는 넷플릭스가 박태준(Taejun Pak, 朴泰俊) 작가의 대표작 < 외모지상주의(Lookism, 看臉時代) > 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스트리밍했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들의 애니메이션화가 거론되고 있으며, 특히 추공(Chugong) 작가의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웹툰 < 나 혼자만 레벨업(Solo Leveling, 我独自升级) > 의 경우엔 해외 팬들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다. 그동안 시장 검증을 마친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사례들은 많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어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효율적인 미디어 믹스 출판된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사례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4천 장의 종이에 그려 넣은 윈저 매케이(Winsor McCay)의 < 잠의 나라의 리틀 네모(Little Nemo in Slumberland) > (1911) 이래로 만화의 애니메이션화는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다. 특히 일본에서 1990년대에 3차 애니메이션 붐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작위원회(製作委員會)’라 불리는 특유의 미디어 믹스 체계가 있었다. 잡지에 연재된 만화는 단행본 발간, 애니메이션 제작, 관련 상품 제작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팬덤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이렇게 출판된 만화를 TV 시리즈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자주 연계해 온 덕분에 만화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의 시청자가 될 수 있었다. 반대로어린이 채널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하고 나중에 원작 만화를 접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향유해 온 소비자층은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구조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미지와 대사가 2차원 평면에 그려진 웹툰은 시각만으로 독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웹툰은 가상 세계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정지된 이미지가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화 스타일을 비롯해 의성어, 의태어, 효과선 같은 만화적 표현으로 장면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이렇듯 웹툰에서 구현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는 없어 보인다. 웹툰에서 그려진 가상 세계를 영상화하려면 드라마나 영화처럼 실사 영상으로 찍는 방법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SF나 판타지 세계관의 스토리텔링을 드라마나 영화 같은 실사 영상으로 만들려면, 거대한 세트장에서 촬영을 하고 특수 효과 과정도 거쳐야 한다. 제작 공정도 복잡하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 이에 반해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는 제작 공정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효율적이며, 원작 그대로의 매력을 십분 살릴 수 있는 강점이 있다. 특히 3D 애니메이션보다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 원작의 매력을 살리는 데 유효한 전략이다. 게다가 웹툰 독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는 행위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판타지 재현에 적합 2011년 4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네이버웹툰(NAVER WEBTOON)에 장기 연재된 박용제 작가의 < 갓 오브 하이스쿨 > 6화 장면. 네이버웹툰의 대표 히트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2020년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한국과 일본에서 방영되었다. 우승하면 소원을 들어주는 격투기 대회에 저마다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참가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 네이버웹툰, 박용제 근래 웹툰계에 나타나는 장르적 특성 중 하나가 판타지다. 주인공이 적대자들을 물리치며 최강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약속된 서스펜스를 보장하는 게임형 판타지나 로맨스 판타지는 실사 영상으로 미디어 믹스하는 것보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편이 원작을 제대로 구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주인공이 게임과 같은 가상의 판타지 세계로 이동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스토리텔링은 실재하지 않는 ‘가상’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웹툰 < 신의 탑 > 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처럼 의지하던 소녀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이 소녀를 찾기 위해 신의 탑에 오르는 여정을 그린다. 2010년 네이버웹툰(NAVER WEBTOON)에 연재되기 시작돼 지금까지도 매주 업데이트 중인 이 작품이 만약 실사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면 여러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일단 실사 영화로 웹툰의 판타지 세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디지털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 완성도 높은 특수 효과를 앞세운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지만, 여전히 감당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제작 기간과 막대한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손으로 그린 이미지는 과장과 생략을 통해 독자들이 이입할 여지를 주는 데 비해 실제 배우들이 등장해 연기하는 장면은 그렇게 되기 어렵다. 독자들이 저마다 상상하는 상(像)과 일치하지 않을 때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즉 실사 영상으로 웹툰의 세계와 캐릭터 구현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설득이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러한 난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적지 않은 비용과 기간이 소요되지만, 원작이 가진 판타지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무기이다.   잠재 독자층 포섭 웹툰 산업은 웹툰의 영상화와 관련 상품 판매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산업화 체계를 점차 갖춰 가는 중이다. IP(Intellectual Property)의 다각화를 통해 업계에서 글로벌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확고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존 팬덤을 유지하는 한편 새로운 향유층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장기 연재되는 웹툰의 장대한 스토리텔링은 여러 회차의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때 기존 웹툰 독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한편 애니메이션 채널의 주요 타깃층이 어린이라는 점에서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는 잠재적 웹툰 독자를 미리 포섭해 두는 포석이 될 수 있다. 아직 세로 스크롤, 스마트폰으로 읽는 형식의 웹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웹툰에도 호기심을 느끼도록 애니메이션을 먼저 향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잠재 독자층뿐 아니라 출판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향유해 온 기존 출판 만화 독자들에게도 웹툰의 애니메이션화 전략은 유효하다. IP를 어떤 장르로 제작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다만 콘텐츠 향유자들의 날로 다양해지는 취향과 원작 구현의 적합성을 고려했을 때 애니메이션화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김용회 작가의 < 도깨비 언덕에 왜 왔니?(Dokkaebi Hill) > 는 2013년 8월 카카오웹툰(Kakao Webtoon)에 첫 화를 공개한 후 현재까지 연재 중인 판타지 웹툰이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부모를 찾기 위해 주인공이 친구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쏘울크리에이티브와 CJ ENM이 TV 시리즈로 제작했고, 어린이∙청소년 대상 방송 채널인 투니버스(Tooniverse)에서 2021년 7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매주 방영되었다. ⓒ 김용회, 쏘울크리에이티브(Soul Creative), CJ ENM, KTH, SBA < 지구의 주인은 고양이다 > 는 2020년 3월 카카오페이지(Kakao Page)에 첫 연재를 시작해 이듬해 완결된 HON 작가의 웹툰으로, 지구 정복을 꿈꾸는 고양이와 주변 동물들의 일상을 담았다. 현재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며, 2024년 상반기 방영 예정이다. ⓒ Cats are Masters of The World Animation Partners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이윤창(Lee Yun-chang, 昌) 작가의 <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My Daughter is a Zombie, 僵尸奶爸) > 은 좀비가 된 딸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좌충우돌 이야기다. 진중한 주제 의식과 유머 코드를 통해 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두루픽스와 EBS 방송이 TV 애니메이션으로 공동 제작하여 2022년 EBS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다.ⓒ EBS, 두루픽스(Durufix) 홍난지(Hong Nan-ji, 洪蘭智)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창극으로 확장된 여성 서사

Focus 2023 SUMMER

창극으로 확장된 여성 서사 국립창극단이 여성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 동명의 웹툰 를 올해 첫 레퍼토리로 무대에 올렸다. 원작의 인기와 여성 국극이라는 소재에 대한 관심으로 개막 전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 기대를 넘어서는 감동으로 창극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국립창극단의 2023년 첫 레퍼토리인 는 195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여성국극이 소재이다. 사진은 당시 여성국극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연출한 장면이다. ⓒ 국립극장 국립창극단이 올해 3월 무대에 올린 는 여러모로 이례적인 작품이었다. 개막 두 달을 앞두고 캐스팅이 발표되기도 전에 전 좌석이 조기 매진되었고, 이에 따라 3회 더 연장된 공연마저 모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이 이토록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우선 빼어난 원작에 기인한다. 이 창극은 서이레(Suh Iireh)가 글을 쓰고 나몬(Namon)이 그림을 그린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최고의 여성 국극 배우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소녀의 성장기를 그렸다. 이 웹툰은 2019년, 연재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콘텐츠상’도 받았다. 그만큼 작품성이 보장되었다는 얘기다. 또한 그동안 웹툰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사례는 많았지만 창극화는 처음이라는 화제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창극이 주목받은 데는 무엇보다 소리꾼이자 공연예술가로서 상당한 팬덤을 갖고 있는 이자람이 작창(作唱)을 맡고, 그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연출가 남인우가 협업했다는 점이 주효했지 않았을까. 여기에 그리스 비극, 중국 경극 등 다양한 장르를 지속적으로 창극화해 왔던 국립창극단이 1960년대 이후 명맥이 끊긴 여성 국극을 부활시켰다는 점도 각별하게 다가온다. 짧았던 전성기 서이레 글, 나몬 그림의 웹툰은 2019년 4월부터 2022년 5월까지 3년 남짓 네이버웹툰(NAVER WEBTOON)에 인기리에 연재되었으며, 여성 서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국립극장 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창극과 여성 국극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창극은 판소리를 기반으로 연극적 요소가 가미된 한국 고유의 음악극이다. 소리꾼들이 각자 배역을 맡아 연기한다는 점에서 일인다역(一人多役)의 판소리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창극의 한 장르로 195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여성 국극은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맡았다는 특징이 있으며, 창극보다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였고, 음악도 훨씬 대중적이었다. 당시에 여성 국극에서 남장을 한 여성 배우들의 폭발적 인기는 흥행과 직결되었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여성 팬들의 선물 공세는 물론이고, 배우들에게 혈서를 보내거나 납치를 시도하고, 심지어 가상 결혼식을 요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성 국극이 창극의 한 갈래로 자리 잡은 것은 1948년 박녹주(朴綠珠)와 김소희(金素姬) 등 당대 최고의 명창 30여 명이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면서였다. 남성 중심의 기존 국악계에 반발해 여성들이 반기를 들고 자신들만의 무대를 만들어 보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여성 국극은 창립 공연 를 기점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주류 국악계에서 여성 국극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저속한 오락으로 폄하되었고, 아류로 격하되었다. 이후 여성 국극은 1960년대 TV와 영화가 보급되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고, 전통을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마련된 국가 제도에서도 배제되어 짧은 전성기가 막을 내렸다. 극중극 형식 여성 국극은 근현대사를 살아낸 여성들의 굴곡진 삶 자체였으며, 동시에 혼신의 힘을 다해 이뤄낸 성취였다. 남성에 의해 늘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던 여성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목소리와 이름, 그리고 정당한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빛나는 여정의 결과물이었다. 결국 는 가까운 과거에 존재했던 의미 깊은 역사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창극 의 또 다른 볼거리는 극중극 형식이다. 1950년대 실제로 인기가 많았던 , 등의 여성국극 작품들이 마치 액자소설처럼 삽입된다. 사진은 주인공 윤정년이 의 방자 역할을 첫 배역으로 따낸 후 열연하는 모습이다. ⓒ 국립극장 이 창극은 2시간 남짓한 시간에 빠른 호흡으로 웹툰 137화 분량의 방대한 서사를 압축해 전달한다. 따라서 생략된 부분도 있지만 원작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은둔한 명창의 딸인 주인공 정년이는 서울에 올라와 가장 규모가 큰 매란(梅蘭)국극단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사랑과 우정, 험난한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와 의연함으로 점철된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승자만을 다루는 일반적 영웅담과는 사뭇 다르다. 등장인물들은 경쟁자를 밟고 올라서지도 않고, 최고가 되기 위해 누군가를 음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했고, 여성 국극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작품 속 여성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세상과 어떻게 대결해야 했는지, 이를 위해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주인공 윤정년이 당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을 만나 여성국극 배우로 성공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웅변하는 장면이다. ⓒ 국립극장 창극 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백미는 극중극 장치다. , 등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대표적인 여성 국극 공연들이 작품 속에 삽입되어 관객들은 의 관객이면서 동시에 매란국극단의 관객이 된다. 이로써 이 작품은 지금은 사라진 역사의 한 장면을 되살리는 동시에 관객들을 역사 속으로 초대한다. 여기에 국립창극단을 대표하는 배우들의 수준 높은 소리와 연기가 감동을 더한다. 수준 높은 작창 이 작품에서 서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음악이다. 판소리 소리꾼들은 오랜 기간 학습한 한국 전통 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데, 이를 작창이라고 한다. 소리를 만든다는 뜻이다. 오늘날 판소리로 만나는 모든 새로운 이야기는 작창을 필요로 하며, 작창의 깊이는 곧 작품의 수준을 결정한다.작창은 판소리라는 긴 역사를 탐구하고 해체하여 다시 쌓아 올리는 작업이다. 여기에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에 목소리를 불어 넣는다. 음악감독 이자람은 심원한 판소리의 유산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면서 가사의 내용을 극적으로 전달하고 말맛의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그는 판소리를 전통의 틀에 가두지 않고 동시대의 장르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명맥이 끊겼던 여성 국극은 2000년대 들어 페미니즘과 문화 운동 세례를 받은 여성 아티스트들에 의해 다양한 퍼포먼스로 재생돼 왔다. 그러다가 웹툰의 인기에 힘입어 창극화된 것이다. 남성 위주의 질서에 반발해 태동한 여성 국극이 시간의 강을 건너 강렬한 여성 서사를 앞세우며 당당하게 무대에 올랐다. 성혜인(Seong Hye-in, 成惠仁) 음악평론가

아시아 미술 시장의 허브를 향해

Focus 2023 SPRING

아시아 미술 시장의 허브를 향해 몇 년 전부터 해외 대형 갤러리들이 국내에 속속 상륙하면서 이들이 한국 미술계에 어떤 지각 변동을 일으킬지 큰 관심사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22년 9월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프리즈(Frieze) 서울’은 서울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다. 2022년 9월,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키아프 서울과 동시에 열린 프리즈 서울은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 속에서 연일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은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등 명작들을 대거 전시한 애콰벨라 갤러리(Acquavella Galleries)의 전시 부스. ⓒ 프리즈 서울, 사진 렛츠 스튜디오(Lets Studio)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뉴욕이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마주쳤다. 그뿐만 아니라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과 서펜타인 갤러리, LA카운티미술관, 파리 피노 컬렉션 등 전 세계 내로라하는 미술관과 갤러리들의 관계자들도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주인공은 바로 프리즈 서울이었다.프리즈는 2003년 영국에서 시작한 후발 주자지만, 1970년에 막을 올린 스위스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자리 잡았다. 런던 리젠트파크에 텐트형 전시장을 설치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파란을 일으켰고, 2012년에는 뉴욕, 2019년에는 LA에 진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증가해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문화 소비 갈증에 보복 소비 경향이 겹치면서 미술 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한 시기에 프리즈는 아시아 진출의 전초 기지로 서울을 지목하고 2022년 9월 프리즈 서울 개최를 선언했다. 한국 미술은 그동안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받아 왔지만, 제대로 된 한 방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프리즈는 그런 한국 미술을 국제 무대 위로 끌어내면서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 뜨거웠던 축제 데미언 허스트의 2006년 작< High Windows(Happy Life) >앞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국내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해외 유명 작품들이 걸린 부스는 어김없이 포토존이 되었다. ⓒ 프리즈 서울, 사진 렛츠 스튜디오(Lets Studio) “스위스 아트 바젤에서 뵙던 고객들을 이렇게 한국에서 만나네요. 정말 놀랍습니다.” 한국에 상륙한 프리즈 서울과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20년 전통의 키아프 서울이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나란히 개막하던 날, 이렇게 말하는 원앤제이 갤러리의 박원재(朴垣䮨) 대표 얼굴에는 감격이 어렸다. 세계 곳곳의 최정상 아트페어를 다니기만 했지 우리 안방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프리즈 서울에는 21개국 110개 갤러리, 키아프 서울에는 17개국 164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개막 현장에서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많이 들릴 정도로 해외 방문객들이 많았다. 프리즈 서울은 한마디로 대단했다. 한국에 처음 진출한 세계 최정상 화랑 가고시안과 리슨 갤러리를 비롯해 하우저앤워스 등이 개막 1시간 만에 수백억 원어치의 작품을 팔아치웠다. 하우저앤워스 뉴욕 관계자는 “한국의 개인 컬렉터 외에도 일본의 사립미술관, 중국 컬렉터 등이 작품을 구입했다”고 밝혔다. 이런 날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일찍이 한국에 진출한 갤러리들은 더 안정적인 거래를 보여 줬다. 프리즈와 키아프 양쪽 모두에 참가한 페로탱은 첫날 솔드 아웃을 알렸을 정도였다. 아트페어는 매출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지만, “프리즈 서울 전체 매출이 6,500억 원은 될 것 같다”고 예상했던 뉴욕의 한 갤러리 관계자 말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아트페어의 목적이 오로지 작품 판매에만 있는 건 아니다. 예술을 매개로 한 축제로서 잠재 고객을 키워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프리즈 서울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에곤 쉴레의 드로잉과 파블로 피카소의< 방울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Girl with a Red Beret and Pompom) > (1937) 앞은 긴 줄이 늘어섰고, 아트페어의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20~30대 젊은 관람객들은 외국 박물관에서나 만날 법한 중세 필사본과 고지도, 이집트 유물 등에 큰 관심을 가졌다. 왜 서울인가 류성실(Ryu Sung-sil) 작가의 < BigKing Travel Ching Chen Tour - Mr. Kim’s Revival > (2019)이 설치된 P21 갤러리의 전시 부스. 해외 갤러리들이 주로 서양 미술사에 발자취를 남긴 주요 작가들과 동시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을 내걸었다면, 국내 갤러리들은 근현대 대가들과 젊은 유망주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 프리즈 서울, 사진 렛츠 스튜디오(Lets Studio) 프리즈가 아시아에 처음으로 상륙한 지역이 서울이라는 점은 개최 전부터 큰 화제였다. 프리즈 최고경영자 사이먼 폭스는 “아시아의 첫 번째 개최지로 서울을 택한 것은 다양한 미술관과 갤러리, 작가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협력 관계가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지금 K-팝, 영화, 드라마, 패션, 건축 등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프리즈 개최에 맞춰 서울 전시도 기획했던 글로벌 경매사 크리스티의 프랜시스 밸린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은 “한국 미술의 저력이나 미술계 인프라가 탄탄하다”면서 문화 도시로서 서울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홍라희(洪羅喜) 전 리움미술관 관장에게 아그네스 마틴의 그림을 소개하고 돌아선 페이스 갤러리의 마크 글림처 회장은 “한국 미술 시장은 기존의 탄탄한 컬렉터 기반 위에 팬데믹 이후 영향력이 더욱 커진 영앤리치 컬렉터들의 활동까지 더해져 성장 가능성이 높다”며 “우리도 그들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 다양한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OECD 국가의 미술 시장 규모는 평균적으로 국민총생산의 0.2%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줄곧 10분의 1 수준인 0.02%를 맴돌다 지난해 거래 총액 1조 원을 넘기며 0.04%에 이르렀다. 아직도 5배는 더 커져야 하지만, 한국 미술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 게다가 세계 경제가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13년 아트바젤이 홍콩에서 열리게 된 이유도 중국부터 서남아시아까지 젊은 신흥 부유층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미술 시장 조사 기관 아트프라이스(Artprice)에 의하면 2021년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였다. 세대교체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아트바젤과 UBS가 공동으로 발간한 「2021년 미술 시장 보고서(The Art Market 2021)」에 의하면, 전 세계 고액 자산가 컬렉터 중 밀레니얼 세대가 52%를 차지해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보다 4배가 넘는 영향력을 보였다. 또한 밀레니얼 세대의 미술 작품에 대한 총지출 평균은 $228,000로 $109,000를 지출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두 배 이상이었다. 접근성도 중요하다. 서울은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 라인이 구축돼 있어 어디서든 찾아오기 쉽다. 프리즈 기간 갤러리들이 밀집한 삼청동, 한남동을 비롯해 강남의 호텔들이 특수 효과를 누렸다. 그중 프리즈가 열렸던 코엑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인터컨티넨탈호텔은 예약이 꽉 찼는데, 투숙객의 60%가 중화권 방문객이었다고 한다. 아시아 미술 시장의 허브인 홍콩은 무관세라는 이점과 중국과의 접근성이 최대 장점이었다. 작년 행사는 해외 미술관들과 관련 기관 관계자들 위주였다면, 중국의 엔데믹 기조가 확실한 올해는 개인 방문이 더 많아질 전망이다. 한편 지난해 다녀간 외국 컬렉터들은 “전시에서 작품을 보는 기쁨 못지않게 곳곳에서 한류 스타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내년에는 K-팝 팬인 우리 아이들과 함께 와야겠다”는 얘기를 하며 다음 행사를 기약했다. 주어진 과제 관람객들이 국제갤러리 부스에서 양혜규(Haegue Yang, 梁慧圭) 작가의 설치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는 21개국 110개 갤러리가 참여했으며, 그중 국내에서는 국제갤러리를 비롯해 총 12개 화랑이 참가했다. ⓒ 프리즈 서울, 사진 렛츠 스튜디오(Lets Studio) 프리즈 서울에 참여한 국내 갤러리들은 근현대 대가들과 젊은 유망주들을 주로 내세웠다. 일례로 학고재(學古齋) 갤러리는 류경채(柳景埰, 1920~1995), 하인두(河麟斗, 1930~1989) 같은 한국의 20세기 추상 미술가들을 집중 소개했는데 부스를 방문한 해외 미술관 관계자들은 “이런 작가, 이런 작품이 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했다. 한국 미술계는 프리즈와 동시에 키아프를 개최하면서 낙수 효과를 기대했다. 실제로 외신들이 이례적으로 한국 미술을 집중 보도했고, 프리즈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키아프로 찾아들기도 했다. 개막 첫날 키아프 부스들을 꼼꼼하게 살피던 타데우스 로팍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아시아 첫 지점을 서울에 연 유럽 명가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를 이끄는 그는 귀족적인 풍모로 어디서든 눈에 띈다. 그런 로팍이 어찌나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녔던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만큼 흥분된 상태였다. 이처럼 한국의 수집가들이 프리즈에서 열심히 작품을 감상하고 구입하는 동안 한국을 방문한 해외 컬렉터들 상당수는 오히려 키아프의 한국 갤러리를 방문하거나 한국 작가의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며 즐겼다. “지난해 키아프와 프리즈를 통해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달라졌음을 확인했다”는 우찬규(禹燦圭) 학고재 대표는 “문화는 한 분야만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음악이 발달하면 문학과 미술도 더불어 상생한다. 본격적인 K-아트의 시대가 이제부터 시작할 것이라 본다”고 예상했다. 이제 한국 미술계는 목표를 매출에만 맞춰서는 안 된다. K-아트의 성장 기반을 넓혀야 한다. 프리즈의 정상급 화랑들과 럭셔리를 무기로 경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저력은 부티크가 아닌 유니크에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 이나 영화< 기생충 > , BTS의 성공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한국 미술계에는 참신한 국내 작가의 발굴로 콘텐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졌다. 해외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문화 소비에 눈 뜬 국내 관객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독특한 기획과 작품들을 선보여야 한다. 봄은 가을을 준비하기 적합한 때다. 올해 프리즈 서울은 9월 6일에 개막한다. “서울에서 또 만나!” 조상인(Cho Sang-in, 趙祥仁)서울경제신문 기자

시대의 변화가 담긴 한복 생활

Focus 2022 WINTER

시대의 변화가 담긴 한복 생활 지난 7월, ‘한복 생활(hanbok saengwal)’이 국가무형문화재(Na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로 지정됐다.‘한복 생활’은 ‘한복’과 ‘생활’을 합친 명칭으로, 의복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 관습까지 아우르는 의미가 담겼다. 전통 혼례복 중 하나인 원삼을 착용한 여인의 모습이다. 이 옷은 조선 시대 궁중이나 양반가 여인들의 대표적 예복이었고, 서민층에서는 특별히 혼례복으로 입을 수 있었다. 신분에 따라 색깔이 달랐는데 왕실에서는 황색이나 적색을, 민간에서는 녹색 원삼을 입었다. 현대에 와서는 다양한 색상과 문양이 사용된다. ⓒ 통로이미지(TongRo Images) 대부분의 국가나 민족에게는 각각의 지리적 환경과 역사, 종교, 가치관 등을 반영한 전통 의복이 전해 온다. 일본의 기모노, 중국의 치파오나 한푸, 몽골의 델, 베트남의 아오자이, 인도의 사리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는 한복이 있다. 여느 나라의 전통 의복과 복식 문화가 그러한 것처럼 한복도 시대 흐름에 따라 형태나 제작, 유통 구조 등이 많이 변해 왔다. 한복이 일상복이었던 과거와 달리 근래에는 입을 기회가 드물다. 하지만 한국인의 일상에는 여전히 한복 생활에서 파생한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 형성돼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복의 역사는 2000여 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500여 년 전 고구려 고분 벽화, 신라 사람들이 흙으로 만든 인형 토우(土偶) 등에서 한복의 흔적이 확인된다. 이 옷의 기본적인 복식 구조가 완성된 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반도를 분할하고 있던 삼국 시대(기원전 57년~7세기)로 본다. 이후 통일신라(676~935)와 고려(918~1392), 조선(1392~1910) 시대 및 일제 강점기(1910~1945)를 거치면서 다양하게 변화했다. 한복은 조선 시대 중‧후기에 전형(典型)이 확립되었는데, 오늘날 한국인들이 ‘전통 한복’이라 부르는 옷은 이때의 복식을 가리킨다. 한복이란 용어는 19세기 후반 서양 문물로 들어온 양복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누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복은 평상복과 예복이 다르며 성별과 연령, 그리고 계절에 따라서도 각각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다. 일반적인 평상복의 기본 구성은 남성은 바지와 저고리, 여성은 치마와 저고리로 이뤄진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기본 구성 위에 덧입는 옷도 있다. 어떤 종류든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선을 연출한다. 또 화려하면서도 격조 있는 색감, 입었을 때의 단아한 자태도 멋으로 꼽힌다. 몸에 끼이지 않고 여유가 있어 신체 굴곡이 잘 드러나지 않는 특징도 있다. 근현대에 들어 한복 생활이 크게 위축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한국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결혼식,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결정적이고 중요한 때에 한복을 입는다. 또 설, 추석 같은 민속 명절에도 한복을 입고 다양한 의례를 치르거나 놀이를 즐긴다. 아기가 태어나면 처음으로 입는 옷이 ‘배냇저고리’이다. 면직 재질에 천의 봉합선인 솔기가 거의 없다. 아기의 연약한 피부에 자극을 최대한 줄이려는 부모의 지혜에서 비롯된 옷이다. 첫 생일인 ‘돌’을 맞으면 돌잔치를 여는데 이때 입히는 옷이 ‘돌복’이다. 돌복에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하는 상징을 담은 문자와 무늬를 넣는다. 결혼식에서도 한복이 빠지지 않는다. 요즘은 대부분 신랑, 신부가 양복과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치르지만, 양가의 부모를 비롯해 축하객들은 격식과 예의를 갖추기 위해 여전히 한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전통 혼례 옷을 입고 옛날 방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수의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한복이다. 요즘에는 기성품을 구입하지만, 과거에는 집집마다 여인들이 직접 바느질로 만들었다. 수의는 바느질 매듭을 짓지 않는 게 특징이다. 매듭을 지으면 죽은 이의 혼이 자식들과 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수의는 살아 있을 때 미리 만들기도 하는데, 그래야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속설에서 비롯됐다. 조상을 기리는 제사에서도 제례 의식에 맞는 한복을 입는다. 1986년, 경상북도 경주시 용강동(龍江洞)에 위치한 고분(7세기 말~8세기 초) 발굴 당시 함께 출토된 토우(土偶)들이다. 머리 모양과 의복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당시 사람들의 복식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 문화재청 오늘날의 한복 생활 과거에는 큰 명절이 다가오면 옷감을 마련해 옷을 새로 지어 입었다. 한 해가 시작되는 설날에 해 입는 옷을 ‘설빔’, 음력 5월 5일 단오에는 ‘단오빔’, 음력 8월 15일 추석에는 ‘추석빔’이라 불렀다. 명절날 입는 한복에는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으니, 한복이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의 평안과 행복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매개체라는 걸 알 수 있다. 근현대 이후 한복 생활은 크게 위축되었다. 오늘날 평상복으로 한복을 입는 경우는 드물고,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으로 여겨진다. 과거처럼 집집마다 직접 바느질해 입는 일도 거의 없다. 대량 생산된 제품을 구입하거나 디자이너의 브랜드숍에서 맞춰 입는다. 한복 디자인도 시대나 유행에 따라 변했다. 계급, 성별, 연령에 맞게 색상과 문양을 적용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한다. 한복을 현대 생활에 맞게 실용적으로 개량한 브랜드들도 많다. 하지만 한복 생활의 보존과 전승에 대한 관심은 꾸준하다. 특히 젊은 세대는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즐거운 체험이나 놀이의 하나로 한복 생활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서울 인사동이나 북촌 같은 동네에서는 거리에서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 외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만난다. 한복을 빌려주는 가게들도 많다. 패션 디자이너들도 한복의 특성을 응용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영국 작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가 제작한 목판화 (1921). 한 여인이 두 아이와 함께 설빔을 차려 입고 나들이에 나선 모습이 묘사되었다. 1919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키스는 이후 여러 차례 방문하며 한국인의 풍속과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 국립민속박물관 또 다른 진화 젊은 층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명 인사들이 한복을 입어 화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룹 BTS나 블랙핑크 등이 공연과 뮤직비디오에서 한복 패션으로 주목을 끌었다. 이들의 한복 착용은 전 세계 K-팝 팬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국제적으로 한복의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 K-드라마도 한복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제 해외 언론들도 한복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높아졌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4월, 애플 TV+의 드라마 에 등장하는 의상 변화를 통해 한복을 조명했다. 이 매체는 “한 나라의 전통 의상은 그 나라의 역사를 투영하는 렌즈”라며 한복의 역사와 종류를 소개한 뒤에 “실용적이고 아름답다”고 평했다. 또 긴 역사 속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반영해 온 한복이 ”현대 디자이너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한복 생활의 보존과 전승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996년부터 10월 21일을 ‘한복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 한복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한복의 우수성과 산업적‧문화적 가치를 더 알리기 위해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도 한복을 입으면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제도를 확대하는 추세다. 인간 삶의 총체적 양식인 문화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기 마련이다. 한복 생활도 마찬가지다. 지난 역사 동안 다양하게 변화됐듯 지금도 변하고 있고, 미래에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다. 개량 한복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전주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서울 도심의 고궁 주변이나 지방에 위치한 한옥마을에는 젊은 층의 감각에 맞춰 개조한 한복을 대여해 주는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 한국관광공사 도재기(Doh Jae-kee, 都在基)경향신문 기자

귀로 듣는 즐거움

Focus 2022 AUTUMN

귀로 듣는 즐거움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희곡이 지닌 문학성을 전달하는 낭독극이 공연계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음악이나 영상을 접목한 새로운 실험도 나타난다. 기존 연극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닌 낭독극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정착하며, 공연 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중이다. 2020년 10월 남산예술센터에서 극단 풍경의 배우들이 중국 극작가 쉬잉(徐瑛)의 「로비스트(說客)」를 낭독하는 모습이다. 한중연극교류협회(Performing Arts Network of Korea and China)가 주최하는 제3회 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한중연극교류협회 제공 문학의 한 장르인 희곡은 연극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배우가 관객들에게 대본을 읽어 주는 낭독극이 확산되고 있다. 일반적인 연극 공연과 달리 세트나 조명, 음향, 의상 등은 최소화하거나 생략한 채 오로지 텍스트에만 집중하는 방식이다. 낭독극은 1945년 창단한 뉴욕의 리더스 시어터 컴퍼니(The Readers Theater Company)가 처음 시도한 이후 점차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에도 낭독극의 원형이라 할 만한 형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1392~1910) 후기에 활동했던 전기수(傳奇叟)는 소설을 직업적으로 읽어 주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당시 인기가 있었던 고전 소설들을 실감 나게 읽어 주면서 돈을 벌었다. 이들의 탁월한 입담과 뛰어난 연기력은 관객들에게 상당한 재미를 안겨 주었다고 전해진다. 근래에 오디오북이 보편화되는 추세인데, 전기수는 시대를 한참 앞서갔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낭독극은 본래 연극화 이전 단계에서 제작에 참여할 후원자를 찾고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홍보 목적으로 꾸려졌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쇼케이스 성격의 무대 리딩(stage reading)을 넘어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연들이 선보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엿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전문 극단뿐 아니라 희곡 읽기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모여 공연을 열기도 하고, 학생들의 사고력과 감성을 키우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도 낭독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추세다. 낭독극을 통한 국제 교류 낭독극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까지 여러 기관과 단체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일연극교류협의회(KJTEC, Korea-Japan Theatre Exchange Concil)와 일한연극교류센터(Japan-Korea Theatre Communications Center 日韓演劇交流センター)의 낭독 공연 사업은 그 의미가 자못 깊다. 두 단체는 20년 동안 서로 상대국의 현대 희곡을 번역하여 정기적으로 공연을 올려 왔다. 일본 내 7개 연극 단체가 공동으로 발족시킨 일한연극교류센터는 일본 문화청의 지원을 받아 2002년부터 우리나라의 현대 희곡을 자국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첫해에는 김광림(金光林)의 「사랑을 찾아서」, 박근형(朴根亨)의 「대대손손」, 장진(張鎭)의 「허탕」, 조광화(趙光華)의 「미친 키스」 등 국내 대표적 극작가들의 작품이 도쿄 스기나미(Suginami 杉並区)에 있는 대학생협회관 지하 공연장(大学生協会館ヴァーシティホール)에서 사흘 동안 상연되었다. 이듬해에는 이에 대한 화답으로 한일연극교류협의회가 일본 현대 희곡 세 편을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무대에 올렸다. 올해 2월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白星姬張民虎劇場)에서 열린 열 번째 공연까지 합산하면 지금까지 양국에서 각각 50명의 극작가와 50편의 희곡이 소개됐다. 이 프로젝트는 초기에는 연극적 요소를 배제하고 희곡 읽기에만 집중한 낭독회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희곡의 글맛과 묘미를 한층 더 살리기 위해 차츰 연극적 표현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공연은 낭독극 본연의 단순한 읽기 방식에서 탈피해 보다 연극에 가까워진 형태를 보여 줬다. 낭독 공연에서 소개한 작품이 본 공연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다수다. 대표적으로 일한연극교류센터가 2019년 소개한 이보람(李宝藍)의 은 살인죄를 저지른 열네 살 소년과 그 가족이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인데, 2020년 마나베 다카시(Takashi Manabe 眞鍋卓嗣)가 연출해 정식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 연극은 그해에 일본 문화청예술제상 연극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 희곡을 무대화한 작품이 일본에서 권위 있는 연극상을 받은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국내에서는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룬 하타사와 세이고(Seigo Hatasawa 畑澤聖悟)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親の顔が見たい)」를 비롯해 청춘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마에다 시로(Shiro Maeda 前田司郎)의 「위대한 생활의 모험」 등이 연극으로 만들어져 호평을 받았다. 낭독 공연 의 한 장면. 중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멍징후이(孟京輝)의 이 희곡은 개들의 시선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과 복잡한 인간 사회를 풍자한다. 한중연극교류협회 제공 공감 가능한 스토리 한중연극교류협회(Performing Arts Network of Korea and China)가 주최하는 도 주목할 만하다. 이 협회는 한국과 중국, 대만, 홍콩 등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의 문화적 교류를 위해 2018년부터 해마다 중국 희곡을 번역 출판하는 한편 그중 엄선한 작품으로 낭독 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 4월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다섯 번째 공연은 사전 예약 티켓이 금세 매진됐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이는 그만큼 중국 희곡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 공연을 통해 그동안 수십 편의 중국 전통 희곡과 현대 희곡이 소개됐는데, 그중 「물고기 인간(魚人)」, 「낙타상자(駱駝祥子)」,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마디(一句頂一萬句)」 등이 이후 연극 무대로 옮겨져 성공했다. 「물고기 인간」은 현재 중국 연극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인 궈스싱(過士行)의 1989년 데뷔작으로 중국인들의 대표적 취미인 낚시를 소재로 삼아 진정한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묻는다. 「낙타상자」는 중국의 소설가 라오서(Lao She 老舍)가 1937년 발표한 동명의 장편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Rickshaw Boy』라는 제목으로 서구에서도 출판된 바 있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력거꾼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마디」는 중국 신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류전윈(劉震雲)의 동명 장편 소설을 중국 실험극의 선구자라 불리는 연출가 머우썬(牟森)이 2018년 재해석한 작품이다.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다양한 직업과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이 프로그램이 첫발을 내딛을 때만 하더라도 국내 관객들에게 중국 희곡은 매우 생소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기대감이 높아지는 중이다. 삶의 본질을 궤뚫는 통찰력과 따뜻한 시선이 배우들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져 깊은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2022년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된 낭독극 의 한 장면. 중국 근대기, 베이징의 한 찻집을 무대로 민초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펼쳐지는 원작을 국내 스타 연출가 고선웅(Koh Sun-woong 高宣雄)이 무대에 올렸다. 한중연극교류협회 제공 극작가 위룽진(喩榮軍)의 「손님(家客)」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면서도 위트 있게 던진 화제작이다. 2020년 남산예술센터에서 극단 죽죽(竹竹)의 배우들이 원작의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했다. 한중연극교류협회 제공 새로운 시도와 변화 요즘 낭독극은 연출가의 시선이 더해지고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적극적인 형태로 변모하는 중이다. 이른바 ‘입체 낭독극’이라 불리는 이러한 경향은 음악, 무대 미술, 조명, 의상 같은 연극적 표현 요소들을 두루 활용한다. 때로는 영상이나 연주를 결합하기도 하는데, 이는 희곡의 서사를 보다 풍부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기존 낭독극이 오롯이 텍스트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입체 낭독극은 연출가의 해석을 바탕으로 일정 부분 극의 형식을 갖춘다. 지난해부터 국립극단이 진행하는 ‘창작 공감: 희곡’은 한국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희곡 발굴 사업이다. 투고작 중 선정한 작품들의 정식 공연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입체 낭독극 형식을 활용한다. 올해 2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소극장 판(The Theater PAN)에서 관객들과 만난 < 금붕어 휠체어 > 는 SNS를 도용 당한 인물과 도용한 인물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공연은 독특한 무대 연출이 돋보였는데, 특히 양쪽 벽면에 영상을 비춰 두 인물의 SNS 이미지를 관객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장치는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 작품을 지원해 온 두산아트랩(DOOSAN ART LAB)이 지난 3월 두산아트센터 무대에 올린 < 유디트의 팔뚝 > 도 음악 낭독극이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극은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Judith Beheading Holofernes) > 를 모티브로 삼아,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팔뚝이 왜 굵은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공연이 흥미로운 것은 17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삼은 이야기에 한국 전통 음악을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창작자들은 당시 시대상과 여성 화가의 삶을 가야금 연주와 노래로 풀어냈다. 이처럼 낭독극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낭독극이 활성화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정식 연극과 달리 배우들이 대본을 완벽히 외울 필요가 없다. 무대 장치를 간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도 공연을 올릴 수 있다. 관객 입장에서는 시각적 자극이 줄어든 만큼 배우들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무대 예술의 완결성을 위해 충분히 갖추어야 할 다양한 연극적 표현이 배제되는 데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관객들에게 연극과는 다른 매력과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낭독극이 공연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고 다양화하는 데 일조하는 것은 분명하다. 두산아트센터의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인 두산아트랩(DOOSAN ART LAB)을 통해 올해 3월 공연된 < 유디트의 팔뚝 > . 가야금 연주를 접목해 화제를 일으킨 공연이다. 이처럼 낭독극은 새로운 시도로 공연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중이다. ⓒ 두산아트센터 김건표(Kim Geon-pyo 金建杓)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연극평론가

글로벌 마켓을 향한 모색과 도약

Focus 2022 SUMMER

글로벌 마켓을 향한 모색과 도약 한국 뮤지컬은 2000년 즈음 영미권으로 진출한 이래 최근에는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 주고 있다. 창작 뮤지컬의 투어 공연을 비롯해 라이선스 공연, 합작, 투자 등 다양한 형태의 모색은 향후 한국 뮤지컬이 또 다른 한류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995년 초연한 는 명성황후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대형 창작 뮤지컬로, 뮤지컬 한류의 효시로 기록된 작품이다. 웅장한 무대 세트와 화려한 의상이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 에이콤 국내 뮤지컬 산업은 몇 차례의 경제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예상치 못한 외부적 요인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지속적으로 저변을 넓혀 가며 성숙기로 진입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까지 국내 공연 시장의 전체 규모는 약 4,000억 원 수준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됐으며, 그중 대부분의 매출이 뮤지컬과 콘서트 분야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뮤지컬 시장은 평균적으로 전체 공연 시장의 약 55~60% 수준으로 추정되며, 2021년에는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우리말로 제작된 이 공전의 흥행을 기록한 이후 뮤지컬 산업은 거의 매년 15~17% 내외의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제한적인 내수 시장의 한계에 대한 해결책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도약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해외 진출 뮤지컬 산업에서 해외 진출이 화두로 등장한 것은 2000년 전후이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 공연 시장에서 라이선스 뮤지컬이 문화 산업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때와 맞물린다. 라이선스 뮤지컬을 통해 콘텐츠의 부가가치 재생산 혹은 극대화에 대한 필요성을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초창기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은 주로 영미권 시장을 향했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그리고 에든버러로 상징되는 공연 페스티벌을 대상으로 왕성한 도전과 실험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었다. 국내 최초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창작 뮤지컬 와 넌버벌 퍼포먼스 뮤지컬 가 대표적이다. 특히 에이콤(ACOM)이 제작해 1995년 초연한 는 국내의 흥행을 바탕으로 1997년과 1998년 연이어 링컨센터 내 주립극장(New York State Theater)에서 막을 올렸다. 이후 2002년 런던 외곽의 해머스미스 아폴로(Hammersmith Apollo)에서는 영어 가사로 극을 전개하는 시도를 보여 줬다. 이 작품은 창작 뮤지컬의 상품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해외 진출 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또한 해외 진출을 꿈꾸는 공연 예술계에도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이후 2010년대에는 아시아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는 변화가 일어났다. 전반기에는 일본과 중국으로 시장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단적으로 일본의 경우 2012년부터 3년 동안 40편의 뮤지컬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일본이 국내 뮤지컬 콘텐츠의 주요한 수출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2013년 한국 뮤지컬 전용관인 아뮤즈 뮤지컬 씨어터(Amuse Musical Theatre)가 도쿄에 개관하여 기획 공연이 증가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보인다. 2013년 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진출한 는 창작 뮤지컬의 공연권을 수출한 대표적 사례이다. ⓒ CJ ENM 의 한국 공연 장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고 소설로도 발간된 이 뮤지컬은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 CJ ENM 의 대만, 일본, 중국 공연 포스터(왼쪽부터). ⓒ CJ ENM 세 가지 유형 국내 공연 콘텐츠의 해외 진출은 창작 뮤지컬의 투어 공연,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의 투어 공연 그리고 창작 뮤지컬의 공연권 수출이나 현지 인력과 자본이 결합된 공동 제작 등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우선 창작 뮤지컬의 투어 공연은 제작진과 배우, 스태프 등이 일정 기간 해외 무대에 직접 찾아가 공연을 꾸미며, 주로 자막을 활용해 내용을 전달한다. 1994년 데뷔한 3인조 힙합 그룹 DJ DOC의 히트곡들을 바탕으로 가수의 꿈을 키워 가는 세 젊은이의 청춘을 그린 주크박스 뮤지컬 는 2012년 오사카와 2014년 도쿄 공연을 통해 일본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중국 투어 공연은 2001년 을 시작으로 해마다 작품 수가 늘어났다. 특히 신라의 두 고승 원효(元曉 617~686)와 의상(義湘 625~702)의 이야기를 무대로 불러낸 은 2012년 한중 수교 20주년 초청 공연작으로 2013년에는 선전(Shenzhen 深圳), 하이난(Hainan 海南省), 광저우(Guangzhou 广州), 베이징(Beijing 北京) 4개 도시에서 큰 호응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투어를 마쳤다. 이 작품은 중국 공연을 위해 오리지널 공연에 없었던 캐릭터를 추가하고, 중국 전통 민요를 활용한 음악을 추가하는 등 현지 관객들을 고려한 버전을 선보였다. 프랑스 시인 랭보의 삶을 다룬 는 한중 합작을 통해 2018년 초연 당시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공연되었다. ⓒ 라이브(LIVE Corp.)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의 투어 공연은 우리말로 번안되고 재해석된 버전을 다시 수출하는 일종의 중계 무역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스타 마케팅과 결합하거나 한류의 새로운 시도와 결부되는 사례가 많다. 2000년대 초반 , , 등의 일본 투어 프로덕션이나 , 의 중국 투어 프로덕션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2013년 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진출한 는 창작 뮤지컬의 공연권을 수출한 경우에 속한다. 창작 뮤지컬 최초로 영화화되기도 한 이 작품은 중국 관객들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각색되었으며, 상당한 관객을 동원하면서 소극장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 작품을 필두로 , , 등 다수의 작품들이 중국에 진출했다. 와 를 일본과 중국 무대에 올린 콘텐츠 제작사 라이브(주)의 는 프랑스 시인 랭보의 삶을 다룬 뮤지컬인데, 한중 합작을 통해 2018년 초연 당시 이례적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공연되었다. 또한 이듬해에는 베이징 라이선스 재연이 한국보다 앞서 올라갔다. CJ ENM이 중국 문화부와 함께 설립한 공연 제작 기업 아주연창(亚洲联创)이 선보인 도 한중 합작에 속한다. 미각을 잃어버린 중국 황실 공주를 위해 전 세계의 요리사들이 모여 경연을 펼치는 내용이며, 중국 전통 요리를 화려한 율동과 현대적 음악으로 표현했다. 삶의 의미를 묻는 는 중국 23개 도시에서 공연, 중국에 진출한 국내 뮤지컬의 라이선스 공연 중 최다 지역 기록을 세웠다. ⓒ 라이브(LIVE Corp.) 장기적 안목 코로나19 펜데믹 직전인 2019년 한국 뮤지컬은 정치적 이슈와 국제 정세에 민감한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한국 뮤지컬은 한류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OSMU의 활성화는 이미 검증된 한류 자원들의 무대화라는 당연한 순서로 그 영역을 넓혀갈 것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누가 어떤 작품으로 그 물꼬를 터트려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이다.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들

Focus 2022 SPRING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들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 중 하나로 인정받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지난 2021년 9월, 한국어 기원 단어 26개가 표제어로 새롭게 추가되었다. 고려대학교 신지영 교수가 이번 등재 과정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경험과 의견을 들려준다. 2021년 9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한국어 기원 단어 26개가 표제어로 새롭게 추가되었다. 1928년 초판 간행 이후 이번 업데이트 전까지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는 총 24개에 불과해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크게 높아진 결과로 해석된다. © 셔터스톡 2021년 5월 어느 날, 옥스퍼드대학의 조지은(Jieun Kiaer 趙知恩) 교수에게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거의 매주 스카이프로 연구 회의를 하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 그의 이메일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 담겨 있었다. 그는 4월 초,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로부터 자문 요청을 받았는데 함께할 의향이 없는지 내게 물었다. OED에 새로 등재될 한국어 기원 단어를 검토하고 자문하는 일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함께하고 싶다고 답장을 보냈다. 조지은 교수는 내 답장을 받고 OED의 월드 잉글리시 담당 편집자인 다니카 살라자르 박사(Dr. Danica Salazar)에게 이메일을 보내 필자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할 것을 권고했다. 살라자르 박사는 이어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는 메일을 내게 보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신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두 개의 PDF 파일 자문을 수락한 후 질문이 담긴 두 개의 PDF 파일을 전달받았다. 살라자르 박사가 작성한 첫 번째 파일은 2021년 9월 업데이트에 때 포함될 한국어 기원 단어가 두 개의 표로 정리되어 있는 2쪽 분량의 문서였다. 두 개의 표 중 하나에는 새로 등재될 표제어의 목록과 의문 사항이, 다른 하나에는 이미 등재되어 있는 표제어 중에서 수정이 필요한 표제어의 목록과 이에 대한 질문이 내용이 담겨 있었다. 두 번째 파일은 어원 담당자 카트린 디어(Katrin Their)가 보낸 6쪽 분량의 문서였다. 옥스퍼드 사전은 학술 사전의 성격이 강해서 표제어에 대한 어원 정보부터 방대한 예문은 물론 다양한 언어학적 정보를 다층적으로 담고 있다. 따라서 해당 언어를 알지 못하고 영어로 된 문서만을 기초로 외국어 기원 단어의 어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어원은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전문가의 자문이 꼭 필요한 영역이다. 어원 담당자의 질문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확인하고자 하는 바도 명료했다.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기반으로 판단한 내용이 맞는지 틀렸는지, 틀렸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틀렸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어원을 알기 어려운 경우와 그와 관련하여 궁금한 사항들을 조밀하게 물었다. 한국어를 모르면서 어떻게 이렇게 추론해 낼 수 있었을까 놀라웠다. 엉뚱하게 추론한 경우도 있었는데, 자문위원으로서 보완해 줄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 이 파일들을 열어보고 가장 놀랍고 반가웠던 것은 등재 예정 표제어의 규모였다. 무려 26개나 되는 표제어가 새로 등재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사전에 한꺼번에 이처럼 많은 한국어 기원 단어가 올라가게 된 것은 그야말로 일대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려 60만 개가 넘는 표제어 가운데 겨우 26개로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142년에 걸친 이 사전의 간행 역사에서 한국어 기원 단어가 이제까지 언제 얼마나 등재되었는지 돌아본다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aegyo, n. and adj. A. n. Cuteness or charm, esp. of a sort considered characteristic of Korean popular culture. Also: behaviour regarded as cute, charming, or adorable. Cf. KAWAII n. B. adj. Characterized by ‘aegyo’, cute, charming, adorable. banchan, n. In Korean cookery: a small side dish of vegetables, etc., served along with rice as part of a typical Korean meal. bulgogi, n. In Korean cookery: a dish of thin slices of beef or pork which are marinated then grilled or stir-fried. chimaek, n. In South Korea and Korean-style restaurants: fried chicken served with beer. Popularized outside South Korea by the Korean television drama My Love from the Star (2014). daebak, n., int., and adj. A. n. Something lucrative or desirable, esp. when acquired or found by chance; a windfall, a jackpot. B. int. Expressing enthusiastic approval: ‘fantastic!’, ‘amazing!’ C. adj. As a general term of approval: excellent, fantastic, great fighting, int. Esp. in Korea and Korean contexts: expressing encouragement, incitement, or support: ‘Go on!’ ‘Go for it!’ hallyu, n. The increase in international interest in South Korea and its popular culture, esp. as represented by the global success of South Korean music, film, television, fashion, and food. Also: South Korean popular culture and entertainment itself. Frequently as a modifier, as inhallyu craze, hallyu fan, hallyu star, etc. Cf. K-, comb. form Forming nouns relating to South Korea and its (popular) culture, as K-beauty, K-culture, K-food, K-style, etc.Recorded earliest in K-POP n. See also K-DRAMA n. K-drama, n. A television series in the Korean language and produced in South Korea. Also: such series collectively. kimbap, n. A Korean dish consisting of cooked rice and other ingredients wrapped in a sheet of seaweed and cut into bite-sized slices. Konglish, n. and adj. A. n. A mixture of Korean and English, esp. an informal hybrid language spoken by Koreans, incorporating elements of Korean and English.In early use frequently depreciative. B. adj. Combining elements of Korean and English; of, relating to, or expressed in Konglish.In early use frequently depreciative. Korean wave, n. The rise of international interest in South Korea and its popular culture which took place in the late 20th and 21st centuries, esp. as represented by the global success of Korean music, film, television, fashion, and food ;= HALLYU n.; Cf. K- comb. form. manhwa, n. A Korean genre of cartoons and comic books, often influenced by Japanese manga. Also: a cartoon or comic book in this genre. Cf. MANGA n.2Occasionally also applied to animated film. mukbang, n. A video, esp. one that is livestreamed, that features a person eating a large quantity of food and talking to the audience. Also: such videos collectively or as a phenomenon. noona, n. In Korean-speaking contexts: a boy’s or man’s elder sister. Also as a respectful form of address or term of endearment, and in extended use with reference to an older female friend. oppa, n. 1.In Korean-speaking contexts: a girl’s or woman’s elder brother. Also as a respectful form of address or term of endearment, and in extended use with reference to an older male friend or boyfriend. 2.An attractive South Korean man, esp. a famous or popular actor or singer. samgyeopsal, n. A Korean dish of thinly sliced pork belly, usually served raw to be cooked by the diner on a tabletop grill. skinship, n. Esp. in Japanese and Korean contexts: touching or close physical contact between parent and child or (esp. in later use) between lovers or friends, used to express affection or strengthen an emotional bond. trot, n. A genre of Korean popular music characterized by repetitive rhythms and emotional lyrics, combining a traditional Korean singing style with influences from Japanese, European, and American popular music. Also (and in earliest use) as a modifier,as in trot music, trot song, etc.This genre of music originated in the early 1900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unni, n. In Korean-speaking contexts: a girl’s or woman’s elder sister. Also as a respectful form of address or term of endearment, and in extended use with reference to an older female friend or an admired actress or singer. 그야말로 대박! 옥스퍼드 사전의 첫 번째 완결본이 나온 시기는 본격적으로 사전을 만들기 시작하고 49년이 지난 뒤였다. 1928년 간행된 12권 분량의 초판에는 약 41만 4천 8백 개의 표제어와 182만 개 이상의 보기 인용문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사전에는 한국어 관련 표제어는 하나도 없었다. 한국과 관련 지을 수 있는 표제어가 이 사전에 처음 등재된 것은 초판의 추가본이 출간된 1933년이었다. ‘Korean’과 ‘Koreanize’가 그것이다. 이후의 추가본에도 몇 개의 단어가 더 등재되었다. 1976년에는 ‘gisaeng(궁중이나 지방 관청에 소속되어 노래와 춤 등 연희를 담당하던 여성)’, ‘Hangul(한국의 고유 문자)’, ‘kimchi(배추에 여러 가지 양념을 섞어 발효시킨 음식)’, ‘Kono(한국의 보드 게임)’, ‘myon(면: 행정구역 단위)’, ‘makkoli(전통주의 한 종류)’ 등 6개가, 1982년에는 ‘sijo(전통 성악 형식 또는 3행으로 이루어진 정형시)’, ‘taekwondo(전통 무술의 한 가지)’, ‘won(화폐 단위)’, ‘yangban(전통 사회의 지배 계층)’, ‘ri(행정구역 단위)’, ‘onmun(한글을 낮춰 부른 이름)’, ‘ondol(전통 가옥의 바닥 난방 시설)’ 등 7개가 올랐다. 그 결과 1989년에 간행된 2판에는 총 15개의 한국어 기원 단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한국어 기원 단어가 다시 등재된 것은 21년이 지난 2003년이었다. 이때 포함된 단어는 ‘hapkido(근대 무술)’였다.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2011년에는 ‘bibimbap(밥에 여러 가지 채소, 고기를 섞어 비벼 먹는 음식), 2015년에는 ‘soju(증류주의 일종)’와 ‘webtoon(플랫폼 매체에 연재되는 만화)’, 2016년에는 ‘doenjang(된장)’, ‘gochujang(고추장)’, ‘K-pop’, 2017년에는 ‘chaebol(재벌)’, 그리고 2019년에는 북한의 통치 이념인‘Juche(주체)’가 올라갔다. 이처럼 2021년 9월 업데이트 이전까지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는 모두 24개에 불과했다. 그러니 한꺼번에 26개나 올라가게 된 것은 살라자르 박사의 표현대로 “Daebak(대박)!”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이번에 새로 등재된 표제어 가운데 ‘daebak’이 포함되어 있다. ‘뜻밖에 얻은횡재’또는 ‘대단히 멋진 일’ 같은 의미를 지닌 이 말이 그만큼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hallyu’ 및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 ‘Korean wave’가 동시에 채택되었고, ‘K-drama’, ‘mukbang’, ‘oppa’ 같은 단어들의 등재도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음을 확실히 보여 준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이제까지 한국식 영어로 비하되었던 ‘fighting’이나 ‘skinship’ 같은 단어들이 ‘Konglish’와 함께 등재되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질문 옥스퍼드 측에서 자문을 얻고자 하는 내용은 다양했다. 새로 등재될 단어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이미 등재되어 있는 단어 중에서 수정이 필요한 12개 단어에 대한 자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1976년 추가본에 등재된 ‘gisaeng’의 음절 경계(syllable boundary) 정보를 요청하거나 ‘kimchi’의 어원을 물었다. 가장 많은 질문은 단어의 구조에 대한 것이었다. ‘반찬’의 ‘반’과 ‘김밥’의 ‘밥’이 서로 관계가 있는 말인지에 대한 질문처럼 단어가 어떤 의미 조각으로 나누어지는지, 또한 각 의미 조각의 어종(origin)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또한 등재 예정 단어에 대한 자신의 분석 내용이 맞는지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 일부 단어의 경우는 한국어에서의 용법을 묻기도 했고, 남북한의 차이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또한‘오빠’가 남자 친구를 의미하는 것처럼 ‘누나’도 여자 친구를 의미하는가와 같은 재미있는 질문도 있었다. 자문 과정에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정보도 있었다. ‘PC방’ 관련 질문 중 그곳에서 음식을 파는지 궁금해했다. PC방에서 컵라면 정도 파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컵라면을 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내심 고민하면서 검색을 해 보았다. 그 결과 요즘 PC방에서는 ‘피시토랑(PC+restaurant)’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을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검색한 이미지를 갈무리한 후 주석을 달아 보내 주었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블로그 글에서부터 논문까지 다양한 자료를 두루 참고했다. 자문위원으로서 질문을 받지 않았다면 그냥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에는 조지은 교수와 조율하여 최종 답변을 만들었다. 그리고 담당자에게 우리의 답을 전달했다. 몇 가지 추가 질문이 오간 후에 자문은 마무리되었다.   dongchimi, n. In Korean cuisine: a type of kimchi made with radish and typically also containing napa cabbage, spring onions, green chilli, and pear, traditionally eaten during winter. Cf. KIMCHI n.     galbi, n. In Korean cookery: a dish of beef short ribs, usually marinated in soy sauce, garlic, and sugar, and sometimes cooked on a grill at the table.     hanbok, n. A traditional Korean costume consisting of a long-sleeved jacket or blouse and a long, high-waisted skirt for women or loose-fitting trousers for men, typically worn on formal or ceremonial occasions. © MBC     japchae, n. A Korean dish consisting of cellophane noodles made from sweet potato starch, stir-fried with vegetables and other ingredients, and typically seasoned with soy sauce and sesame oil. Cf. cellophane noodle n.     PC bang, n. In South Korea: an establishment with multiple computer terminals providing access to the internet for a fee, usually for gaming.     tang soo do, n. A Korean martial art using the hands and feet to deliver and block blows, similar to karate. © 국제당수도연맹   표제어의 조건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그간 한국어 기원 단어가 옥스퍼드 사전에 별로 없었을까? 그런데 왜 이번에 기존의 단어 수보다 더 많은 단어들이 한꺼번에 올라가게 되었을까? 사전에 올릴 단어는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 이렇게 많은 단어가 올라간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럼 앞으로는 어떨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번에 등재된 단어들은 한류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 준다. K-pop팬들이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를 부르는 호칭어로 사용하면서 알려지게 된 ‘오빠, 언니, 누나’와 팬들이 아이돌에게 요구하는 ‘애교’는 다국적 팬들 사이에서 공통어가 되었고 이 말들이 범위를 넓혀 사용되다가 사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한국 드라마와 먹방 콘텐츠, 그리고 한국 대중 가요가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되면서 ‘K-드라마’와 ‘먹방’, ‘트로트’가 영어에 편입되었고, 2015년에 등재된 ‘웹툰’과는 별도로 ‘만화’도 올라가게 되었다. 또한 비속어로 치부되어 국내에서는 사전에도 오르지 못한 ‘먹방’과 ‘치맥’이 옥스퍼드 사전에 먼저 오르는 신기한 일도 목격하게 되었다. 한류가 일기 전, 60만 개의 표제어를 가진 옥스퍼드 사전에 단지 24개의 표제어만이 한국과 관련된 단어였다는 사실은 영어권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미약했고, 영어 문헌에 한국어 기원 단어가 그다지 등장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과소 대표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등재어가 되려면 편집자의 눈에 자주 띄어야 하고, 문헌에서 일정 기간 이상 꾸준히 확인되어야 하며, 그 단어가 기대되는 맥락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사실 26개 표제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 단어들이 등재된 것은 그 이전 최소 15~20년 이상 꾸준히 사용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이번 등재 단어들이 관찰되기 시작하였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의 경우와 같이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는 한국 문화 콘텐츠는 세계인의 귀에 곧바로 한국어를 들려주고 있다. 그렇게 한국어는 더욱 널리 퍼져 나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필자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다.

베일을 벗고 대중에게 공개된 이건희 컬렉션

Focus 2021 WINTER

베일을 벗고 대중에게 공개된 이건희 컬렉션 삼성그룹 고 이건희(Lee Kun-hee 李健煕) 회장 타계 후 그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국보급 문화재들을 비롯해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근현대 미술 작품들 2만 3천여 점이 사회에 환원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증받은 작품들 중 일부를 선별하여 일반에 공개했으며, 이 특별전들은 대중적 관심 속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 정선(鄭敾 1676~1759). 1751. 종이에 먹. 79.2 × 138 ㎝. 비가 그친 후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는 서울 인왕산의 여름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이 산의 모습을 자신감 있는 필치로 담아냈다. 전통적 관념 산수에서 벗어나 실제 경치를 직접 보고 그리는 실경 산수의 화풍을 크게 발전시켰던 그의 말기 작품이다. 2020년 10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코마 상태에 빠졌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나자, 대중들은 그가 남긴 소장 미술품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창업주인 그의 부친 이병철(李秉喆) 회장 때부터 시작된 삼성가의 미술품 수집은 유명했다. 부친에게 물려받은 작품들에 더해 이건희 회장 부부가 그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린 컬렉션 중 일부는 그동안 삼성그룹의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호암미술관이나 리움미술관을 통해 전시된 적이 있었지만, 전체 규모나 세부 목록은 공개된 바 없었기 때문에 늘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은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들보다 문화적 가치가 더 높다고 평가하기도 했으며, 재산적 가치가 수조 원이 넘는다고 추정하는 시각도 있었다. 2021년 4월 삼성가는 이 회장의 개인 소장 문화재와 미술품 2만 3천여 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고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내외 거장들의 미술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7월 21일부터 9월 26일까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특별전을 개최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또한 7월 21일부터 내년 3월까지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전을 열고 있다. (왼쪽). 14세기. 비단에 채색. 83.4 × 35.7 ㎝. ‘수월관음’은 관음보살의 또 다른 이름으로 하늘의 달이 여러 곳의 맑은 물에 비치듯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뜻을 지닌다. 관음보살이 걸친 투명한 옷 아래 비치는 문양과 은은한 색채의 조화에서 고려 불화 특유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오른쪽). 14세기. 비단에 채색. 93.8 × 51.2 ㎝. 천수관음보살은 무수히 많은 손과 눈으로 중생을 구원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불교는 천수관음보살 신앙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림으로 전하는 천수관음보살도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이 그림의 천수관음보살은 11면의 얼굴과 44개의 손을 지닌 모습으로 각각의 손에 좋은 의미를 가진 물건을 들고 있다. 국보급 문화재 이건희 컬렉션은 국가 기증에 앞서 작품의 성격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미술관에도 일부 기증되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 출신의 화가 김환기(1913~1974 金煥基)와 천경자(1924~2015 千鏡子)의 작품들은 전남도립미술관에, 경상북도 대구 출신의 화가 이인성(1912~1950 李仁星)과 서동진(1900~1970 徐東辰)의 작품들은 대구미술관에, 강원도 양구 출신인 박수근(1914~1965 朴壽根)의 작품은 양구 군립 박수근미술관에 각각 수십 점씩 전달되었다.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기증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간 유물들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작품들일 것이다. 국보급 문화재들을 비롯해 한국 미술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토기, 도자기, 조각, 서화, 목가구 등 방대한 유물 2만 1,600여 점이 기증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그중 당대 최고의 미감과 빼어난 기술을 보여 주는 명품 77점이 선별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전시작 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 정선(1676~1759 鄭敾)이 1751년 그린 와 국보급 금동불상들, 그리고 미려(美麗)한 보살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고려 불화 를 들 수 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코 이다. 이 작품은 경복궁 좌측에 자리 잡고 있는 인왕산에 비가 내린 직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시기적으로 유럽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하면서 점차 관심을 끌게 된 풍경화들과 동시대에 제작되었다. 이 그림은 영국의 풍경화가 리차드 윌슨(Richard Wilson)이 1750년 이탈리아를 방문하면서 그렸던 작품들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먹과 유화 물감이라는 재료의 차이가 있지만, 윌슨의 작품이 사실적 색채 묘사에 입각하여 목가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충실하였다면, 는 붓의 다양한 놀림과 먹의 농담에 의해 생겨나는 미묘한 차이를 이용하여 비가 개인 직후 안개가 걷혀 가는 인왕산의 풍경을 실감나게 묘사했다는 점이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 김환기(Kim Whanki 金煥基 1913~1974).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81.5 × 567 ㎝. 그림에 등장하는 반라의 여인들과 백자 항아리, 학, 사슴 등은 김환기가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까지 즐겨 다루었던 모티브들이다. 대형 벽화 용도로 제작된 작품으로 파스텔 톤의 색면 배경 위에 양식화된 인물과 사물, 동물 등이 정면 또는 정측면으로 배열되어 고답적인 장식성을 띤다. © 환기재단·환기미술관(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미술사적 가치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증받은 이건희 컬렉션은 1,488점이다. 규모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상 최대 기증이지만, 20세기 초의 희귀하고 중요한 작품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곳에서 현재 전시되고 있는 58점의 근현대 미술 작품들은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형성하는 작가들의 대표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20세기 전반기에 식민 통치와 민족 분단에 이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혼란과 파괴의 시기를 겪었다. 이 때문에 이 시기를 전후로 한 미술품들의 상당수가 파괴되거나 분실되어 미술사 연구의 자료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따라서 고난과 결핍을 이겨내며 어렵게 제작된 작품들 중 적지 않은 수량이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오른쪽). 백남순(Baik Nam-soon 白南舜 1904~1994). 1936년경. 캔버스에 유채. 8폭 병풍. 173 × 372 ㎝. 도쿄와 파리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한국의 1세대 여류 화가 백남순의 대형 작품으로 서양의 아르카디아와 동양의 무릉도원이 동시에 연상되어 동서양의 이상향이 결합된 듯한 느낌을 준다. 동서양 회화의 소재와 기법을 어떻게 융합하고 변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화가였던 남편 임용련(任用璉 1901~?)이 한국전쟁 중 실종된 후 1964년 자녀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고, 그 이후의 작품 활동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장욱진(Chang Ucchin 張旭鎭 1917~1990). 1938. 캔버스에 유채. 65 × 80.5 ㎝.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장욱진은 집, 나무, 새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소재들을 단순화시켜 동화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작품은 양정고보 재학 중 조선일보가 주최한 공모전에 출품하여 최고상을 받은 것으로 그의 대표적인 초기작이다. 세밀한 묘사는 생략되었지만 화면 구성이 잘 짜여 있다. 널리 알려진 그의 독특한 화풍이 시작되기 이전의 작품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출품작 가운데에는 백남순(1904~1994 白南舜)의 과 장욱진(1917~1990 張旭鎭)의 , 그리고 김환기의 등이 주목된다. 은 한국의 전통적 8폭 병풍 형식의 화면에 유화로 그린 작품으로 동서양 미술의 형식적 만남을 보여 주며, 현재까지 발견된 백남순 작가의 거의 유일한 대형 작품이다. 단순하고 천진한 작품을 주로 그렸던 장욱진이 20살에 신문사 공모전에 출품하여 입상한 는 작가의 전성기 작품들과 달리 사실주의적인 풍속화 형식의 묘사를 보여 준 귀중한 초기작으로서 주목된다. 1963년부터 1974년 사망할 때까지 뉴욕에서 작업을 한 김환기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73년에 제작한 점화(點畵) 은 최근 국내뿐 아니라 뉴욕과 홍콩 등의 경매에서도 수백만 달러의 낙찰가를 기록하면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의 전성기 대작 가운데 하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증받은 이건희 컬렉션은 1,488점이다. 규모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상 최대 기증이지만, 20세기 초의 희귀하고 중요한 작품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 이응노(Lee Ungno 李應魯 1904~1989). 1971. 천에 채색. 230 × 145 ㎝. 이응노는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끊임없는 실험으로 한국 미술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작가이다. 1960년대 초부터 제작한 ‘문자 추상’ 시리즈 또한 그의 조형적 실험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 작품은 서정적 경향이 나타나는 초기작과 달리 문자가 더욱 입체적, 추상적으로 조합되어 있다. . 유영국(Yoo Young-kuk 劉永國 1916~2002). 1974. 캔버스에 유채. 136 × 136.5 ㎝. 유영국은 1960년대 초부터 일관되게 ‘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그에게 산은 자연의 신비와 숭고함을 담은 아름다움의 원형이었으며, 동시에 형태와 색감 같은 회화적 요소를 실험하기 위한 매개체였다. 그의 회화적 여정에서 전환점이 되는 시기에 그려진 이 그림은 기존의 절대 추상에서 형태와 색감이 보다 자유로운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전시 관람 열기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이 기증한 이번 작품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두 전시에 대한 관람 열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최고 부자가 소유한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에 더하여 최근 국민 소득 증가에 따른 문화 소비의 활성화가 맞물려서 그야말로 예술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평소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던 일반 시민들, 특히 젊은 층들이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향했는데 여기에는 평소 전시장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진 그룹 BTS의 리더 RM뿐 아니라 젊은 층들에게 인기 있는 유명 연예인들의 행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양 전시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여 사전 예약으로 제한된 인원만 관람이 가능한데, 그 때문에 입장권 예약 경쟁이 뜨거워지고 한때 암표가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미술관 관람 문화는 유럽의 살롱전 형식과 유사한 조선미술전람회가 1922년 창설되면서 일반 관람이 시작되어 이제 겨우 한 세기를 지나고 있다. 그동안 전시 관람은 높은 문화적 소양을 요구하는 특별한 행위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최근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 점차 변화가 생겨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전시 관람과 전시장에 인접한 편의시설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을 일상의 중요한 활동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때마침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들이 공개되면서 그 열기가 더욱 확산되어 가고 있다. . 천경자(Chun Kyung-ja 千鏡子 1924~2015). 1983. 종이에 채색. 96.7 × 76 ㎝. 꽃과 여인을 즐겨 그린 천경자는 동양의 전통 안료와 종이의 성질을 이용한 기법을 통해 화면에 몽환적인 느낌을 담아냈다. 자신의 큰며느리를 모델로 한 이 그림 역시 아름다운 색감과 문학적 서정을 토대로 독자적 양식을 완성한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정신력과 열정으로 이룬 쾌거

Focus 2021 AUTUMN

정신력과 열정으로 이룬 쾌거 정신력과 열정으로 이룬 쾌거 최근 여러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 음악인들의 수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일찍 음악을 시작하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성장하며 음악적 재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수연(Kim Su-yeon 金秀姢)은 올해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는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인 그는 이어 10월에 열리는 쇼팽 콩쿠르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 Denise Tamara, 금호문화재단 제공 2020년부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는 클래식 음악계도 얼어붙게 만들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3년마다 개최되는 리스트 콩쿠르(International Franz Liszt Piano Competition)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5년에 한 번 열리는 쇼팽 콩쿠르(International Frederick Chopin Piano Competition)가 예정되어 있었다. 전자는 연기를 거쳐 결국 취소되었으며, 후자는 올해 가을로 연기되었다. 올해는 사정이 조금 나아져 각종 콩쿠르가 재개되었는데, 우수한 성적을 올린 한국인 연주자들의 소식이연이어 들려왔다. 이 외에도 바리톤 김기훈(Kim Gi-hoon 金基勳)이 영국 BBC 카디프 세계 성악가 콩쿠르(BBC Cardiff Singer of the World)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성악 콩쿠르로서 이 대회의 권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과거에 가곡 부문에서 한국인이 1위를 차지한 적은 있었지만, 본상 우승은 그가 처음이다. 퀸 엘리자베스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한국인들이 해마다 늘어나자, 2011년 벨기에 국영 RTBF 방송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집중 취재해‘한국 음악계의 미스터리’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한국 연주가들이 콩쿠르에 강한 이유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조기 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꼽는다. 성악 분야를 제외하면 대개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해 일찌감치 재능을 찾아내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경험을 쌓아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이 대표적인 영재 교육기관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입학 자격을 얻게 되는데 입학 후에도 1년마다 치러지는 오디션에서 탈락자가 생길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의 기량보다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고 선발한 학생들이 결국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들의 강한 정신력도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또한 과거에 비하면 국제 콩쿠르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나 재능을 발현할 기회가 많아진 것도 큰 변화이다. 피아니스트 김수연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Montreal International Musical Competition)는 만 33세 이하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대회다. 성악, 바이올린, 피아노 부문이 한 해씩 돌아가면서 열린다. 바이올린과 성악 부문에서는 한국 연주자들이 그동안 수차례 수상한 전력이 있었지만, 피아노 부문에서는 올해 1위를 차지한 김수연(Kim Su-yeon 金秀姢)이 처음이다. 지난해 말 김수연은 2021년으로 연기된 콩쿠르가 결국 온라인으로 치러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별된 27명의 연주자들이 각각 다른 도시에서 녹음을 하고, 결과 발표 후 추가로 결선 무대를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낯선 진행 방식이 다소 염려스럽기는 했지만, 담담하게 연습을 이어갔다. 첫 촬영은 4월 초, 자신이 살고 있는 잘츠부르크에서 조금 떨어진 빈에서 녹음을 마쳤다. 이후 4월 말 파이널리스트 결과가 발표됐고, 결선 연주는 일주일 후 브뤼셀에서 촬영됐다. 이때 그녀는 베토벤의 와 스크랴빈의 , 라벨의 를 연주했고 콩쿠르 위촉곡인 캐나다 작곡가 존 버지의 도 포함됐다. 그녀는 같은 시기 브뤼셀에서 진행된 퀸 엘리자베스 국제 음악 콩쿠르(Queen Elizabeth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에서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준결선에 진출한 상태였다. 두 개의 콩쿠르를 동시에 준비하며 영상 촬영까지 해야 하는 과업이 주어졌다. 그녀는 “청중 앞에 서는 것이 아니어서 현장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덜했지만, 온라인 연주를 위해 카메라와 녹음기 앞에서 연주하는 게 다소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마치 빈 벽을 상대방으로 여기고 감정을 담아서 연기해야 하는 배우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는 뜻이다. 김수연은 이번 대회를 통해 “주목할 만한 세련된 테크닉과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아티큘레이션, 미니어쳐 밸류를 가진” 연주자로 평가됐다. 그녀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폭넓은 레퍼토리를 배우며 음악적 상상력을 키웠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이번 대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치러졌지만, 실전 무대만큼 엄격했다. 김수연은 결선 무대에서 베토벤, 스크랴빈, 라벨, 그리고 캐나다 작곡가 존 버지의 작품을 연주했다. ⓒ 2021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유튜브 영상 캡처 첼리스트 한재민과 피아니스트 박연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리는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George Enescu International Competition)는 루마니아 출생의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제오르제 에네스쿠를 기념하여 1958년 시작됐다. 창설 당시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부문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이후 성악과 작곡 부문이 추가되어 1971년까지 3년 주기로 열렸다. 2009년부터는 첼로 부문이 추가되며, 2년 주기로 총 네 부문을 대상으로 열리고 있다. 동유럽권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제오르제 에네스쿠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한국인 수상자가 수차례 배출된 이 대회는 지난해 개최 예정이었다가 올해로 연기되었는데, 연도를 변경하지 않고 원래대로 ‘2020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로 표기했다. 지난 3월, 한경필하모닉 정기 연주회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을 연주하는 첼리스트 한재민(Han Jae-min 韓載慜)을 보고 깜짝 놀랐다. 14세 소년이 거침없이 성숙한 기교로 곡을 해석해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2개월 뒤 그의 제오르제 에네스쿠 우승 소식을 접했을 때는 덜 놀랐다. 그는 이 대회 역사상 모든 부문을 통틀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는데,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재민은 그동안 다비드 포퍼 국제 첼로 콩쿠르(David Popper IX. International Cello Competition), 돗자우어 국제 콩쿠르(International Dotzauer Competition for Young Cellists)에서 1위를 수상했는데, 성인 대상 콩쿠르에 나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경험 삼아 도전했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피아노 반주자를 동반한 데 반해 그만이 주최 측에서 정해 준 루마니아 피아니스트와 함께 연주했다. 덕분에 세미 파이널에서 에네스쿠의 를 연주할 때 루마니아적인 정서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요즘 이슈트반 바르더이와 지안 왕의 연주를 즐겨 듣는다는 그는 “앞으로 나이 제한에 근접할 때까지 할 수 있는 한 많은 콩쿠르에 나가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음악인 집안에서 태어난 한재민은 5세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바이올린보다 큰 악기의 울림에 흥미를 느껴 첼로로 전공을 바꿨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는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이 대회의 피아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박연민(Park Yeon-min 朴淵敏)은 서울대 음대와 하노버 국립 음대 석사 과정 졸업 후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녀는 지난해 열릴 예정이던 프란츠 리스트 국제 콩쿠르의 14명 준결선 진출자 중 하나였지만, 코로나19로 콩쿠르가 취소되고 말았다. 마음을 다잡고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어렵기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의 을 선택했는데, 압도적인 힘과 열정으로 연주한 끝에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올해 14세인 첼리스트 한재민(Han Jae-min 韓載慜)이 지난해 개최 예정이었다가 올해로 연기된 ‘2020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우승했다. 1958년에 시작한 이 대회 역사상 모든 부문을 통틀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이다. ⓒ Andrei Gindac, George Enescu International Competition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개최된 2020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한 박연민(Park Yeon-min 朴淵敏)이 라흐마니노프의 을 연주하고 있다. 2014년 금호영아티스트 콘서트로 데뷔한 그는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 Andrei Gindac, George Enescu International Competition test 한국 연주가들이 콩쿠르에 강한 이유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조기 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꼽는다. 성악 분야를 제외하면 대개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해 일찌감치 재능을 찾아내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경험을 쌓아간다. 피아니스트 이동하와 아레테 스트링 콰르텟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Prague Spring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는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과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1946년 창설했다. 만 30세 이하의 젊은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두 부문씩 매년 번갈아가며 열린다. 올해는 피아노와 현악 4중주 부문에서 경연이 펼쳐졌고, 각각 이동하(Lee Dong-ha 한자)와 아레테 스트링 콰르텟(Arete String Quartet)이 1위에 올랐다. 이동하는 연세대 졸업 후 하노버 국립 음대 석사를 거쳐 뮌스터 국립 음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국제 콩쿠르에 처음 참여한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평소 좋아하던 곡들을 선택했는데, 많은 연주자들이 연습하는 곡들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음악적 해석에 더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 지난 5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예정보다 한 달가량 앞당겨진 일정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심사위원들로부터 자신의 연주에 대한 객관적이고 상세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던 점이 뜻깊었다고 말했다. 아레테 스트링 콰르텟은 바이올리니스트 전채안(Jeon Chae-ann 全彩顔)과 김동휘(Kim Dong-hwi 金東暉), 비올리스트 장윤선(Jang Yoon-sun 張允瑄), 첼리스트 박성현(Park Seong-hyeon 朴星昡)으로 구성됐으며 2019년 9월 창단했다. 2020년 금호 영체임버 콘서트를 통해 데뷔한 이들의 데뷔 실황 연주는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KBS 라디오 클래식 FM에 소개되었다. 이들은 현재 노부스 콰르텟, 에스메 콰르텟의 뒤를 잇는 차세대 콰르텟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이 팀은 무려 16년 만에 열린 현악 4중주 부문에서 우승 외에도 5개의 특별상을 차지했다. 피아니스트 이동하(Lee Dong-ha 李東夏)가 2021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연주하고 있다. 국제 콩쿠르에 처음 출전한 그는 1위라는 수상 결과보다 훌륭한 심사위원들로부터 조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더 값지다고 말했다. 연세대 졸업 후 하노버 국립 음대 석사를 거쳐 현재 뮌스터 국립 음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 Petra Hajská, Prague Spring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2021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 현악사중주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아레테 스트링 콰르텟(Arete String Quartet)은 특별상까지 포함해 이번 대회에서 6관왕을 차지했다. 2019년 창단한 이 그룹은 국내 실내악 분야를 이끌어 갈 차세대 콰르텟으로 주목받고 있다. ⓒ Petra Hajská, Prague Spring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류태형(Ryu Tae-hyung 柳泰衡) 음악 칼럼니스트

DILKUSHA ‘기쁜 마음의 궁전’

Focus 2021 SUMMER

DILKUSHA ‘기쁜 마음의 궁전’ 1919년 3.1운동을 해외에 최초로 알린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와 그의 영국인 부인 메리 린리 테일러(1889-1982)가 살았던 집‘딜쿠샤(Dilkusha)’가 여러 해에 걸친 복원을 끝내고 올해 3월 1일 기념관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그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한국의 독립을 도우려는 열정이 담긴 보금자리가 옛모습으로 돌아왔다.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영국인 부인 메리 린리 테일러가 1923년 서울 행촌동에 지은 서양식 벽돌집 ‘딜쿠샤.’2009년서울시가 펴낸 『돈의문 밖, 성벽 아랫마을: 역사·공간·주거』에 실린 옛 모습이다. ⓒ 서울역사박물관 딜쿠샤는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이루어졌으며 20세기 초 한국에 지어진 서양식 가옥의 건축 기법을 보여 준다. 특히 외벽에는벽돌의 옆면과 마구리를 번갈아 가며 쌓는 프랑스식 공법(rat-trap bond)이 적용되었다. 1890년대 말, 아버지, 동생과 함께 금광 채굴 사업 차 한국에 온 앨버트 테일러는 일본에 공연 여행 온 영국인 연극 배우 메리린리를 만나 결혼한 후 1942년 일본에 의해 강제 추방될 때까지 딜쿠샤에서 살았다. 영국인 연극 배우 메리 린리 서울 행촌동 언덕의 빽빽한 주택가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지상 2층 지하 1층의 특이한 건물 하나가 있다. 머릿돌에 ‘DILKUSHA1923’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이 집의 내력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미국인 조지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 1829~1908)와 그의 두아들 앨버트, 윌리엄이 이 땅에 들어온 것은 대한제국 선포 즈음인 1890년대 말이었다. 입국 목적은 당시 평안북도에 있던 운산(雲山) 금광 채굴 사업을 위해서였다. 앨버트는 그 후영국인 배우 메리 린리(Mary Linley)와 결혼한 뒤 신혼살림을 위해 서양식 주택을 짓고, 그 이름을 딜쿠샤라 했다. 신혼여행 중에 방문했던 북부 인도의 궁전 이름으로,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Palace of Heart's Delight)’이라는 뜻이다. 잊힌 집 앨버트는 단순히 금광 개발업에만 종사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 중심 소공동에 테일러상회(W. W. Taylor& Company)를 세워 미국산 자동차를 비롯해 다양한 생활용품과 건축 자재를 수입 판매했는가 하면, UPI와 AP 서울 통신원을 맡아 이곳 소식을 미국에 타전하는 역할도했다. 앨버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1919~2015)가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난 날은 1919년 2월 28일로 일본의 식민 통치에 저항해 전 국민이 일어선 3.1운동이시작되기 하루 전이었다. 메리 린리 테일러가 쓴 회고록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The Book Guild Ltd., 1992)에 의하면, 조선인 간호사들이 일본경찰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 어떤 서류 뭉치를 갓 태어난 아기의 강보 밑에 감춰 놓았다고 한다. 저녁 무렵 남편 앨버트가 와서야 비로소 그것이 「기미독립선언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립선언서’잖아! 그가 놀라서 소리쳤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서운한 마음에 그날의 일을 힘주어 말한다. 당시 갓 신문 기자가 된 브루스는 아들을 처음 만난 것보다 그문서를 발견한 것에 더 흥분했다고 말이다. 바로 그날 밤, 시동생 빌이 독립선언문 사본과 그에 관해 브루스가 쓴 기사를 구두 뒷축에 감춘 채 서울을 떠나 도쿄로 갔다. 금지령이 떨어지기전에 그것을 전신으로 미국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Kor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he exclaimed, astonished. To this day,I aver that, as a newly fledged newspaper correspondent, he was more thrilled to find those documentsthan he was to find his own son and heir. That very night, Brother Bill (Albert’s younger brother) leftSeoul for Tokyo, with a copy of the Proclamation in the hollow of his heel, to get it off, with Albert’sreport, over the cables to America, before any order could be issued to stop it.)” 당시 온 국민이 제국주의세력에 대항해 봉기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식민 지배가 시작된 지 9년 만에 조선에서는 대대적인 민중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앨버트가 타전한 기사를 받아 3월4일 중국의 영문 매체 『대륙보(China Press)』를 시작으로, 10일에 미국 인디애나 『사우스벤드 뉴스 타임스(South Bend News-Times)』, 13일에는『뉴욕타임스』에 ‘조선인들이 독립을 선언하다 (Koreans Declare For Independence)’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는 이후 3.1운동 진압 과정에서 일본이자행한 수많은 민간인 학살과 방화 사건들도 열심히 취재해 보도했다. 사업가로서 일본 당국으로부터 여러 면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개인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의 무력적인 탄압행위를 세상에 알리고, 조선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한 것이다. 그런 활동은 일본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다. 결국 1941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적성국시민’의 거주를 허용하지 않았고, 앨버트는 그해 12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 부근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이듬해에 부부가 미국으로 추방당했다. 이후 그와 그의 가족은한국인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브루스 테일러와 그의 딸 제니퍼 테일러(1958~)가 2006년 방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테일러 부부가 추방된 지 64년 만의 일이었다. 딜쿠샤 2층 거실. 테일러 부부가 거주하던 당시의 모습을 사진 자료를 통해 그대로 재현했다. 풍경화, 화병, 램프, 의자, 삼층장등 가구와 장식품에 동서양 문화가 혼합되어 있다. 테일러 가족의 방문 필자가 10여 년 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딜쿠샤는 건물 내외부가 모두 쇠락한 상태였다. 안전 진단 결과더 이상 거주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육안으로 대충 보아도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벽돌이며 부서진 콘크리트 사이로 보이는 철근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추방 전 일본 군인들이 체포하러 왔을 때테일러 가족이 몸을 숨겼다는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 아래 공간, 2층 서재의 벽난로, 현관과 계단, 마룻바닥, 창틀 등 내부 시설은 함부로 없애거나 덧댄 나머지 누더기처럼 변해 있었다.비가 새는 지붕에는 얼기설기 비닐 천막이 덮여 있었다. 서울시와 중앙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즈음이었다. 브루스 부녀의 방한으로 딜쿠샤의 내력이 알려지자, 더이상의 훼손을 막고 역사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되었다. 이듬해 건물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고 내부 시설을 갖춘 후 2021년 3월 1일 일반에 개방되었다.글렌우드 난로(Glenwood Heater)를 비롯해 메리가 남긴 사진들을 기반으로 재현한 가구와 화병, 촛대 등 소품에 이르기까지 마치 192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살렸다. 특히앨버트 부부의 생활 유품과 옛 사진을 비롯한 1,026건에 달하는 자료가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되면서 딜쿠샤는 더욱 풍성한 전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집은 단순히 한외국인 가족이 살았던 공간이 아니다. 딜쿠샤는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 그리고 세계 만방에 식민지 민중이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린 주인공의 보금자리였다. 일생을통해 미국보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던 앨버트는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했고, 1948년 캘리포니아에서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있는자신의 아버지 묘 옆에 유해가 안장되었다. 그의 아내 메리가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군 군함에 유골을 싣고 돌아와 소원을 이뤄준 것이다. 메리는 1982년 92세에세상을 떠나 캘리포니아에 묻혔다. 2006년 브루스와 제니퍼가 방한했을 때 메리의 묘에서 퍼온 흙을 앨버트의 묘에 뿌렸고, 그의 묘의 흙을 떠다가 캘리포니아의 메리 묘에 뿌린 것으로알려졌다. 딜쿠샤 1층 거실. 고증을 거쳐 2년여 동안 꼼꼼하게 재현되었다.ⓒ 이정우(Lee Jeong-woo 李政雨) 이 집은 단순히 한 외국인 가족이 살았던 공간이 아니다. 딜쿠샤는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 그리고 세계 만방에 식민지 민중이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린주인공의 보금자리였다. 이방인 조력자들 앨버트 테일러뿐만 아니라 당시 외국인 중에 음으로 양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운 이들이 적지 않았다.딜쿠샤에서 약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살았던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Ernest T. Bethell 1872-1909)은 1904년 조선에 들어와 언론인 양기탁(梁起鐸1871~1938) 등과 함께 『대한매일신보(Korea Daily News)』를 발행했다. 그는 언론 활동을 통해 일본의 침략 정책을 비판하고 조선의 독립을 지지했다. 일본이 대한제국정부에 떠안긴 거액의 외채를 조선인들 스스로 십시일반 모금해 갚자는 국채보상운동 때에도 전면에 나서서 지원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 기자프레데릭 매켄지(Frederick Mackenzie 1869-1931)는 1906년부터 1907년 사이 경기도와 충청도, 강원도의 산중을 찾아다니며 일본에 저항하는 의병들을 만나취재했다. 그 결과 『한국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1908),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1920) 등의 저서를남겼다. 이 책들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일반 민중까지도 치열한 게릴라 항전을 이어갔음을 증명해 주는 귀중한 사료다. 또 영국 태생의 캐나다 선교사이며 의학자인 프랭크스코필드(Frank Schofield 1889-1970)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교수로 봉사하며 한편으로 일본의 조선인 학살을 취재해 해외 언론에 알리기도 했다. 이를 구실로 1920년강제 출국 당했다가, 1969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최초의 외국인이다. 이 외에도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변호한 일본인 인권 변호사후세 다쓰지(布施辰治 Datsuji Fuse 1880-1953)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도운 중국인 저보성(褚輔成 Chu Fucheng 1873-1948), 한국광복군의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한 중국인 쑤징허(蘇景和 Su Jinghe 1918-2020) 등 외국인들의 조력이 있었다. 딜쿠샤는 그런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장소이다.

[세한도], 국민의 보물로 정착하다

Focus 2021 SPRING

[세한도], 국민의 보물로 정착하다 는 조선 후기의 뛰어난 학자 김정희가 유배지 제주도에서 1844년에 그린 그림으로, 흔히 한국 문인화의 정수로 불린다. 개인 소장품이었던 이 유명한 그림이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자, 정부는 이를 문화훈장으로 치하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을 열어 긴 여정의 끝에 국민의 품에 안긴 국보를 환영했다. 2020년 12월 8일, 정부는 13명의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이날 수훈자 중 가장 눈길을 끈 이는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孫昌根) 씨였다. 유일하게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데다가 이 훈장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는 경우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수집한 국보•보물급 문화재를 아무런 조건 없이 국가에 기증해 왔으며, 특히 2020년 1월엔 값을 매길 수 없는 국보 를 국민 모두의 자산이 되게 해 국민 문화 향유 증대에 기여했다.” 문화재청은 손 씨에 대한 훈장 수여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2018년에도 수백 점의 미술품과 문화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소장하고 있던 미술품 전체를 기증하려다가 마지막 순간 빼놓은 한 점이 바로 였다. 그만큼 애착이 컸다는 얘기다. . 김정희. 1844. 종이에 수묵. 23.9 × 70.4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두루마리 중 가로 약 70cm 길이의 그림 부분이다. 작가가 『논어(The Analects of Confucius)』의 한 구절에 자신의 처지와 마음을 빗댄 발문을 왼쪽에 써서 붙였다. 소나무와 측백나무,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 잡은 오두막집으로 유배지 제주도의 외롭고 황량한 풍경을 묘사한 이 그림은 조선 시대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 허련(許鍊 1808~1893). 19세기. 종이에 채색. 79.3 × 38.7 cm.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Amorepacific Museum of Art) 소장. 조선 후기 산수화의 대가 허련이 그린 제주에서 유배 생활 중인 스승 김정희의 모습. 중국의 시인 소동파를 그린 가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허련은 평소 소동파를 존경했던 스승을 위해 에 스승의 모습을 투영했다. 유배지 스승의 선물 1974년 국보 제180호로 지정된 ‘세한도 두루마리’는 다 펼치면 전체 길이가 1,469.5㎝에 이른다. 이 중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그린 가로 약 70㎝ 길이의 그림이 이며, 나머지 대부분은 여러 사람의 감상평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와 후일 덧붙여 장정된 두루마리를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해서 그림보다 감상문이 더 긴 두루마리가 만들어진 것일까? 김정희가 태어난 18세기 말 한반도는 조선 왕조(1392~1910)가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에선 루이 16세에 반기를 든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됐고, 미국은 독립을 선언하고 8년간의 전쟁 끝에 1783년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았다. 조선은 이러한 세계사적 격변과 동떨어진 채 아직도 이웃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유교 국가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실용주의 학문이 활기를 띠면서 근대가 서서히 태동하고 있었다. 왕실의 먼 친척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정희는 고증학과 금석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일찍부터 선진 학문을 익혔고, 24세 땐 사신으로 청나라를 방문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연경(현재의 북경)에 가서 석학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추사, 또는 완당이라는 아호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문인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로 요구됐던 시•서•화 모두에 뛰어났으며, 특히 독창적 서체인 ‘추사체’를 창안했다. 19세기 조선은 어린 왕들이 잇따라 즉위하면서 외척의 세도가 극에 달했던 정치적 혼란기였다. 실학과 천주교 같은 신식 사상이나 새로 유입된 종교는 보수적인 지배층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정적들을 내쫓아 먼 곳으로 유배시키는 일이 흔했다. 김정희도 모함을 받아 1840년, 55세의 나이에 귀양지 중 가장 멀고 험한 지역이었던 제주도에 유배됐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혹독한 귀양살이는 8년 4개월이나 이어졌다. 그는 유배 기간 동안 끊임없이 질병에 시달렸고 아내가 사망하는 슬픔까지 겪어야 했지만, 절망 속에서도 글씨와 그림에 몰두했다. 그런 그에게 역관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 배편으로 보내 주는 귀한 서적과 연경의 최신 정보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상적은 중국을 왕래하며 어렵게 사 모은 서적들을 유배지에서 외롭게 지내는 스승에게 보내오곤 했다. 는 이 시기 김정희가 이상적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화폭 속에는 한 채의 소박한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는 텅 빈 여백으로 처리되었다. 그림 왼쪽에는 다른 종이를 이어 붙이고 칸을 그려 그동안 책을 보내준 일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정갈한 필체로 적었다. 이어 『논어(論語 The Analects of Confucius)』의 「자한(子罕 Zi Han)」 편에 나오는 “추운 계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When the year becomes cold, then we know how the pine and the cypress are the last to lose their leaves; 번역 James Legge)”는 구절을 인용했다. 그림 제목은 이 인용문의 첫 두 글자에서 왔다. 제주도 고독한 유배살이를 ‘추운 계절’로 은유하면서 역경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제간 우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총 길이 1,469.5cm에 이르는 두루마리에는 김정희로부터 이 그림을 선물로 받은 제자 이상적(李尙迪)이 중국 지식인 16명에게 받은 감상문이 이어져 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이 그림이 품고 있는 의미를 새기면서 군자가 지조를 지키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술회했다. 조선 최고의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이기도 했던 김정희는 그림 왼쪽에 다른 종이를 이어 붙여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비롯해 유배 중인 자신의 심경을 적었다. 이 그림의 세 번째 소장자였던 김준학(金準學 1859~?)이 1914년에 쓴 ‘완당세한도’ 다섯 글자와 감회를 적은 시(詩). 국경을 넘은 긴 여정 스승에게서 를 받았을 때 이상적은 중국 출장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감격한 그는 이 그림을 들고 연경으로 향했다. 그의 방문을 환영하는 모임에 중국의 지식인 17명이 모였는데, 이상적은 그들에게 스승의 그림을 보여 주며 감상문을 부탁했고, 그중 16명이 글을 써 주어 지금까지 전해 오게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군자가 지조를 지키는 일의 어려움과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이 두루마리에는 총 20명의 감상문이 적혀 있는데, 중국인 16명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한국인이다. 여기에도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이 그림은 첫 번째 소유자였던 이상적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제자와 그 아들에게 대물림되었다가 또 다른 주인을 거쳤고, 20세기 전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 Chikashi Fujitsuka 1879~1948 )의 손에 들어갔다. 경성제국대학 중국 철학과 교수였던 그는 김정희에 관한 연구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 그림을 소유하게 되었고, 1940년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편 김정희의 서화를 연구했던 서예가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은 일본으로 건너간 이 그림을 돌려받기 위해 1944년 도쿄 대동문화학원(大東文化学園) 원장으로 있던 후지쓰카를 찾아갔다. 그는 “원하는 대로 다 해 드리겠으니 작품을 양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후지쓰카는 자신도 김정희를 존경한다며 그의 간곡한 제안을 거절했다. 뜻을 접지 않은 손 씨는 두 달간 매일 후지쓰카를 찾아갔고, 마침내 그해 12월 “세한도를 간직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당신”이라는 말과 함께 아무런 대가 없이 작품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이듬해 3월 도쿄는 미군의 폭격을 받았고, 후지쓰카의 연구 자료 대부분이 이때 화재로 손실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35년의 일제 강점에서 해방됐다. 손재형은 이 기쁜 마음을 담아 세한도 두루마리에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 정치인 3명에게서 감상문을 받았다. 이들은 나라를 되찾은 감격과 함께 일본인에게서 를 되찾아온 손재형을 상찬하는 글을 남겼다. 당시 그는 비단 두루마리를 새로 단장하면서 군데군데 여백을 남겨 놓았다. 아마도 더 많은 글을 받으려 했으나 실현되지 않은 듯 두루마리의 상당 부분이 지금도 비어 있다. 이후 손재형은 1971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면서 자금이 필요해 이 그림을 포함해 많은 서화 소장품들을 내놓게 됐다. 이를 인수한 이가 인삼 무역으로 크게 성공한 개성 출신 사업가 손세기(孫世基 1903~1983)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뛰어난 안목을 지녔던 그는 김정희의 작품을 특별하게 여겼다. 그의 수집품을 물려받은 이가 바로 지난해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장남 손창근 씨다. 두 세기에 걸쳐 한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일본을 오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던 가 디지털 시대 새로운 작품의 소재로 재해석된 것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장-줄리앙 푸스(Jean-Julien Pous)는 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흑백 영상 작품 을 통해 표현했다. 두루마리의 끝부분에는 20세기 학자, 정치인 등 한국인 4명의 감상평도 실려 있다. 두루마리의 맨 끝에는 한학자 정인보(鄭寅普 1893~1950)의 매우 긴 감상평이 적혀 있다. 그는 김정희의 심경을 헤아리는 한편 이 그림과 함께 나라를 되찾은 기쁨에 대해서도 적었다. 서예가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은 2차 대전 막바지에 포탄이 떨어지는 도쿄에서 이 그림을 어렵게 가지고 돌아온 손재형의 용기를 크게 칭찬했다. 『몽고유목기(蒙古游牧記)』 등을 저술한 중국 학자 장목(張穆 1805~1849)은 김정희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신하는 감상평을 남겼다. 21세기 프랑스인의 해석 2020년 11월 말 국립중앙박물관은 세한도 두루마리 기증을 기념하는 특별전 전을 열었다. 그림이 전시된 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두루마리 전체를 공개한 것은 2006년 이후 처음이다. 오는 4월 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서 특히 눈여겨볼 게 있다. 인트로 성격으로 제작된 흑백 영상물 이다. 이 7분짜리 영상에는 제주의 바람과 파도, 쉼 없이 줄을 잣는 거미와 무성한 소나무숲 등이 고독하게 담겼다. 이 영상을 제작한 미디어 아티스트 장-줄리앙 푸스(Jean-Julien Pous)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한도에 많은 감정이 담겨 있겠지만 외로움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La peinture Sehando me fait ressentir plusieurs émotions, mais peut-être est-ce le sentiment de solitude le plus fort.)”면서 “요즘 우리도 코로나19 때문에 외로운 도시에 사는 상황이라서 더 크게 와 닿았다(Ce sentiment est sans doute exacerbé par la Covid-19, qui nous fait sentir d'autant plus seuls dans une grande ville.)”고 설명했다. 정밀한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21세기 프랑스인이 에 남긴 감상문이라 하겠다. 두 세기에 걸쳐 한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일본을 오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던 가 디지털 시대 새로운 작품의 소재로 재해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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