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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신드롬을 이끄는 연주자들

Features 2022 SPRING 1113

신드롬을 이끄는 연주자들 수백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세련되고 깊은 울림으로 다시 태어난 크로스오버 신드롬의 기저에는 탄탄한 연주 기량을 갖춘 인스트루멘털 컨템퍼러리 국악의 선구자들이 있다. 국내외 무대에서 크게 조명받고 있는 대표적인 세 그룹 – 그들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음악 세계를 들여다본다. 2019년 벨라 유니언(Bella Union)에서 발매된 잠비나이(Jambinai)의 세 번째 정규 앨범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이다.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인 이일우(Ilwoo Lee 李逸雨), 김보미(Bomi Kim 金寶美), 심은용(Eun Youg Sim 沈恩用) 세 명으로 출발하여 2017년 드러머 최재혁(Jaehyuk Choi 崔宰赫)과 베이스 유병구(B.K Yu 兪炳求)가 정식 멤버로 합류한 뒤 처음 내놓은 앨범이다. 전작들에 비해 한층 역동적인 리듬감이 살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블랙스트링(Black String) “거문고의 진정한 소리, 평생을 바쳐도 다다를 수 없는 그것과 블랙스트링이 추구하는 지향은 큰 틀에서 볼 때 다르지 않다.” 2011년 결성된 4인조 그룹 블랙스트링(Black String)은 전통 음악과 재즈를 접목시켜 즉흥성에 중심을 둔 실험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왼쪽부터 거문고의 허윤정(Yoon Jeong Heo 許胤晶), 아쟁과 장구의 황민왕(Min Wang Hwang 黃珉王), 대금과 양금의 이아람(Aram Lee 李アラム), 기타의 오정수(Jean Oh 吳定洙). ⓒ 나승열(Nah Seung-yull 羅承烈)   지난 여러 해에 걸쳐 국내외 월드 뮤직 및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주목을 받아온 이 4인조 그룹의 독특한 이름은 이들 음악의 깊은 뿌리가 거문고에 있음을 천명한다. 줄잡아도 천 오백 년의 역사를 가진 이 악기는 그 담백하고 장중한 음색이 한국 전통 음악의 품격을 상징한다. ‘현금(玄琴)’이라는 한자 이름을 영어로 옮기면 그대로 Black String이다. 2011년에 팀을 이룬 이들 4인의 걸출한 연주가는 거문고의 허윤정(Yoon Jeong Heo 許胤晶), 기타의 오정수(Jean Oh 吳定洙), 대금과 양금의 이아람(Aram Lee), 아쟁과 장구의 황민왕(Min Wang Hwang 黃珉王)이다. 2016년 이들에게 이륙의 순간이 왔다. 독일의 세계적 음반사 ACT와 무려 5장의 정규 음반을 내는 파격적인 계약을 맺은 것이다. ACT는 ECM과 함께 재즈를 중심으로 실험적 현대 음악까지 아우르는 음반사다. 블랙스트링은 이 회사와 음반을 내게 된 최초의 한국 연주 그룹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출시한 1집 음반 로 2018년 영국의 세계적 월드 뮤직 시상식 송라인즈 뮤직 어워즈(Songlines Music Awards)의 Asian and Pacific 분야 수상자가 되었다. 이것도 한국 음악가로서는 최초로 이룩한 성과였다. 블랙스트링의 음악 세계는 어찌 보면 유럽 민속 음악과 명상적 재즈를 결합하는 ECM의 색깔과 더 맞는지 모른다. 2019년 발매된 2집 의 동명 타이틀곡에서 보여 주는 앰비언트 뮤직의 선(仙)적인 재해석, ‘Exhale-Puri’나 ‘Song of the Sea’가 들려주는 재즈 퓨전적인 접근법은 한국적 ECM 사운드에 가깝다. 그룹의 리더 허윤정은 파격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서울대 국악과 교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거문고 연주자인 그는 20세기 한국 연극의 지평을 크게 넓혔던 마당극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연출가 허규(1934∼2000 許圭)의 딸이다. 그는 “아버지를 통해 즉흥 음악의 대가들을 알게 됐고, 해금 연주자 강은일(姜垠一)이 국악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나도 참여하게 됐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허윤정은 강은일과 함께 국악계에 자유로운 실험 바람을 일으키는 주역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철현금(鐵絃琴) 연주자 유경화(柳京和)와 함께‘상상 트리오(SangSang Trio)’를 만들어 활동하며 전통적 시김새와 장단을 프리 재즈나 현대 음악의 방법론과 섞어 냈다. 유경화, 그리고 작곡가로 협업했던 원일(Won Il 元一)은 허윤정과 국립국악고등학교 동기들이다. 블랙스트링의 다른 멤버들은 모두가 국악과 재즈 분야에서 손꼽히는 젊은 베테랑들이다. 이들은 재료 선택에 거침이 없다. 전통 민요나 무속 음악, 불교 음악을 비롯해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Exit Music - For a Film’까지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가져와 몽환적인 음악 비빔밥을 거침없이 만들어 낸다. 결코 플루티스트에게 밀리지 않는 독보적이고 창조적이며 비르투오소적인 대금 연주를 들려주는 이아람, 그와 함께 다른 팀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황민왕은 물론이고, 오정수의 미니멀하면서도 입체적인 기타 사운드는 이들이 결코 거문고만을 위한 앙상블이 아님을 방증한다. 국악에 막 눈을 뜬 독자라면 제각기 솔로와 프로젝트 활동도 겸비하는 이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허윤정은 “즉흥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팀의 아이덴티티는 즉흥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곡의 명확한 콘셉트와 정체성이 뼈대가 되고, 즉흥성이 동력이 돼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전통의 즉흥 음악 독주 장르인 산조야말로 허윤정과 블랙스트링의 뿌리이자 심장이다.   잠비나이(Jambinai) “멸종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동물이 눈앞에 나타날 때의 충격, 마치 심해에서 살아 있는 실러캔스가 발견됐을 때와 같은…. 그런 뭔가를 추구한다.” 포스트 록 밴드 잠비나이는 한국 전통 악기를 중심으로 록과 메탈이 뒤섞인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한다. 왼쪽부터 드럼의 최재혁, 거문고의 심은용, 기타와 피리, 태평소의 이일우, 해금의 김보미, 베이스의 유병구. ⓒ 강상우(Kang Sang-woo)   헬페스트(Hellfest)라는 음악 축제가 있다. 축제라고 하기엔 조금 살벌한 이름인가? 매년 6월이면 수만 명의 열혈 청춘들을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불러 모으는 세계적 메탈 페스티벌이다.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부터 캐니벌 콥스(Cannibal Corpse)까지 날 선 금속성을 앞세운 록, 메탈 밴드들이 주요 출연진이다. 그런데 2016년, 이 축제 무대에 한국의 전통 악기들이 난데없이 대거 등장했다. 밴드 잠비나이가 공연을 펼쳤던 것이다. 이 팀은 2009년 결성된 5인조 포스트 록(post rock) 밴드로 기타와 피리, 태평소를 두루 연주하는 이일우(Lee Il-woo [Ilwoo Lee] 李逸雨), 해금의 김보미(Kim Bo-mi [Bomi Kim] 金寶美), 거문고의 심은용(Sim Eun-youg [Eun Youg Sim] 沈恩用), 드럼의 최재혁(Choi Jae-hyuk [Jaehyuk Choi] 崔宰赫), 베이스의 병구(B.K Yu 兪炳求)로 구성됐다. 이들의 음악은 음산하고 기괴한 한국 도깨비와 귀신들의 한바탕 난장을 연상시킨다. 술대로 거문고의 몸통과 현을 한번에 내려치는 거친 반복 악절(loop)이 해금의 귀곡성과 전기 기타의 포효를 만날 때 헤비메탈은 만들어 낼 수 없는 서스펜스와 호러가 거친 물결을 이룬다. 포스트 록, 슈게이징, 메탈, 국악의 미학이 예상할 수 없는 비율로 충돌한다. 해금과 거문고가 내는 마찰음과 파찰음이 낯설되 짜릿하다. 그룹의 핵심 멤버인 이일우, 김보미, 심은용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동기인데 어려서부터 국악을 전공한 정통파들이다. 그러나 사실 잠비나이는 국악에 대한 이일우의 반항심이 야기한 산물에 가깝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피리를 잡았고, 3학년 때부터는 전기 기타를 쳤다. 학교에서는 국악을 배우고 집에서는 메탈리카를 보며 로커를 꿈꿨다. 잠비나이 이전에는 ‘49 Morphines’라는 격정적 스크리모(screamo) 장르의 밴드에서 활동했다. 그는 잠비나이의 결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국악기는 밴드 사운드와 절대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없어. 전통 한옥에나 어울리지’ 하는 선입견, 국악은 지루한 음악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그러려면 강렬한 사운드가 필요했는데, 브라질 전통 음악을 메탈과 결합한 밴드 세풀투라(Sepultura)의 ‘Roots’에서 간접적 힌트를 얻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앨범에서 들은 인더스트리얼 록의 사운드 콜라주, 바이올린, 첼로, 백파이프 같은 악기가 록 사운드와 이질감 없이 맞물리는 포스트 록 장르 모두 자양분이 됐다.” 2014년 미국 SXSW 페스티벌 공연에서 잠비나이는 2명의 관객으로 시작해 30분 만에 공연장을 가득 메워 놓았다. 이 놀라운 광경을 직접 본 것은 필자의 콘서트 관람 중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다. 이 밴드는 마침내 2015년 영국의 세계적 레이블 벨라 유니언(Bella Union)과 계약하고, 이듬해 2집 를 세계 시장에 내놔 극찬을 받았다. 촛불처럼 시작해 거대한 들불로 번지는 듯한 이들의 드라마틱한 사운드는 1집 의 ‘소멸의 시간(Time Of Extinction)’, 2집의‘벽장(Wardrobe)’, 3집 의 수록곡 ‘사상(絲狀)의 지평선(Event Horizon)’처럼 맹렬한 곡들뿐 아니라 1집 마지막 곡 ‘커넥션(Connection)’처럼 명상적인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2집 제목이기도 한 ‘은서’라는 단어는 이 팀을 이해하는 좋은 키워드가 될 것 같다. 이 말은 네시(Nessie)나 설인을 다루는 유사 학문 은서동물학(cryptozoology, 隱棲動物學)에서 유래했다. 잠비나이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50회가 넘는 해외 공연을 다녔다. 영국의 워매드(WOMAD), 세르비아의 EXIT, 그리고 덴마크의 로스킬레(Roskilde) 같은 세계적 페스티벌 무대에서 관객을 홀렸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동양고주파(Dongyang Gozupa)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부족함이 창의적인 걸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셋이지만 충분한 팀이 되고 싶다.” 동양고주파(Dongyang Gozupa)는 2018년 결성된 3인조 그룹으로 리듬 악기로만 이루어진 악기 구성은 그 자체로 다른 그룹들과 구별된다. 질주하는 듯한 빠른 연주를 통해 음악적 서사와 폭발적 에너지를 전달한다. 왼쪽부터 퍼커션의 장도혁(Jang Do Hyuk 張道爀), 양금의 윤은화(Yun Eun Hwa 尹銀花, YIN YINHUA), 베이스의 함민휘(Ham Min Whi 咸民輝). ⓒ 김신중(Kim Shin-joong 金信中)   앞선 두 그룹에 결코 뒤지지 않는 파격적 개성을 지닌 3인조 밴드가 있다. 이름부터 만만치 않게 독특한 동양고주파다. 이 밴드에 대한 첫인상은 스콜처럼 내리퍼붓는 양금 주자 윤은화(Yun Eun-hwa [Yun Eun Hwa] 尹銀花, YIN YINHUA)의 타현(打絃)이 먼저 장악한다. 이는 메탈리카가 ‘Master of Puppets’를 연주할 때 보여 주는 다운 피킹의 폭풍우를 시각적으로 압도할 정도다. 여기에 함민휘(Ham Min-whi [Ham Min Whi] 咸民 輝)의 묵직한 베이스 기타와 신출귀몰하는 장도혁(Jang Do-hyuk [Jang Do Hyuk] 張道爀)의 퍼커션이 결합하면 아우토반을 내달리듯 질주하는 이들의 사운드가 완성된다. 양금의 명료한 음색은 싱그러운 초록 열대우림에 쏟아지는 청명한 빗방울같이 뛰어다닌다. 2018년 EP 앨범 으로 데뷔한 이 팀은 아시아 밴드 최초로 세계적 월드 뮤직 페스티벌인 워멕스(WOMEX)에 2020년과 2021년 연속 초청됐다. ‘동양에서 온 고주파’를 뜻하는 듯한 기괴한 팀명은 장도혁이 우연히 본 동네 전파사 간판에서 따왔다. 사납고 날이 선 자신들의 음악 세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따온 이름이다. 이 밴드의 중심은 윤은화의 양금으로 블랙스트링이나 잠비나이가 연주하는 거문고의 현이 명주실인 데 반해 이 악기는 철현(鐵絃)이다. 윤은화는 이것으로 메탈을 방불케 하는 철의 음악을 뽑아 낸다. 양금은 페르시아에서 유래했다. 이후 조금씩 개량되면서 지터(zither), 덜시머(dulcimer), 침발롬(cimbalom) 같은 이름으로 불리다가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전파됐고, ‘서양에서 온 악기’ 라는 의미로 양금이라 불리게 되었다. 국악기 가운데는 생황과 함께 서양 음계나 화성을 어느 정도 연주할 수 있는 희귀한 악기이기도 하다. 세계양금협회 한국 지부장이기도 한 윤은화는 이 악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더 현대적으로 개량했다. 그는 “원래 우리 전통 양금은 작고 음역도 좁아 다양한 장르를 연주하기엔 제약이 있다”면서 “내가 개량해 쓰는 이 양금은 음역으론 4옥타브 반을 커버하고 서양의 12 반음계 체계를 갖췄다. 어떤 음악도 가능하다. 소리를 증폭하는 픽업도 달고 이펙터도 사용해 표현 영역을 더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민휘는 “윤은화만큼 양금을 헤비하게 두드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네 살 때 중국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북한식 양금에도 눈을 떴으며,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타악을 전공했다. 동서양은 물론 남한과 북한, 타악과 현악의 장점을 흡수한 ‘윤은화 스타일’은 오랜 단련의 결과물이다. 발로 밟는 킥 베이스 드럼을 쓰지 않는 장도혁도 독특한 연주자다. 사지를 모두 쓰는 대신 두 손만으로 저음부터 고음까지 모든 타악의 스펙트럼을 구현하다 보니 그만의 스타일이 탄생했다. 동양적 세계관을 결합했던 독특한 록 밴드 ‘단편선(短篇選)과 선원들(Danpyunsun and the Sailors)’ 출신인 그는 “연주의 제약이 오히려 나만의 사운드를 만든다. 이런 도전이 재밌다”고 말한다. 함민휘의 베이스 연주는 미국 뉴메탈 밴드 콘(Korn)이나 펑크록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둔중함과 날렵함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윤은화는 2021년 말 수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수림뉴웨이브상을 받았다. 매년 단 한 명 또는 한 팀만 받을 수 있는, 실험적인 음악 작업을 선보이는 젊은 국악 연주자를 뽑는 영예로운 상이다.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LEENALCHI)의 보컬 권송희(Kwon Song-hee [Kwon Song Hee] 權松熙)와 황해도 무가(巫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밴드 악단광칠(ADG7; Ak Dan Gwang Chil)도 이 상을 받았다.

다양한 시도, 뜻밖의 즐거움

Features 2022 SPRING 979

다양한 시도, 뜻밖의 즐거움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을 안고 새로운 음악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한국 전통 음악의 지평을 한껏 넓히고 있다. 재주와 야심이 넘치는 이 음악인들이 다양한 기법으로 만들어 내는 뜻밖의 묘미를 만나 보자.   ⓒ 김희지(Kim Hee-ji 金熙智) , HAEPAARY, 2021년 6월, 플립드코인뮤직(Flipped Coin Music)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는 국악을 전공한 박민희(Minhee 朴玟姬)와 최혜원(Hyewon 崔惠媛)이 2020년 결성했다. 이들은 국악이 지닌 미니멀한 미학에 존경을 표하는 동시에 그것이 지니는 가부장적인 맥락을 해체하고자 한다. 이 디지털 음반에서는 종묘제례악을 가져와 일렉트로닉 비트로 재해석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악은 조선 왕실의 사당인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음악과 춤으로 요즘에도 재현되고 있다. 특히 두 번째 트랙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 ‘귀인(歸人)-형가(亨嘉)(Born by Irreproachable Gorgeousness)’의 음산한 전자음은 흡사 1960~70년대 독일 크라우트록(krautrock) 장르를 연상시키는 불길한 미니멀리즘의 잔치다. 젠더를 해체하는 박민희의 가창도 상징적이며 기묘하다. 국악 성악곡의 한 갈래인 가곡(歌曲)은 남성이 부르는 남창 가곡과 여성이 부르는 여창 가곡으로 나뉘는데, 그는 이러한 구분 없이 이펙터를 사용해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되 여성을 앞세움으로써 전통의맥락을 뒤집고 재조합한다. 해파리는 2021년과 2022년 연속 미국 SXSW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비스킷 사운드(BISCUIT SOUND) 제공 , 정은혜(Jung Eun-hye [Jung Eunhye] 鄭恩寭), 2021년 8월, 비스킷 사운드(BISCUIT SOUND) 2017 초연된 창작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낭독극 사운드 프로젝트에 완성도를 더해 발매된 음반이다. 창극과 서양 고전 문학에 사운드적 건축학을 적용한 일종의 ‘소리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지옥의 문’, ‘카론의 강’, ‘악마의 먹잇감’ 등 음반에 실려 있는 17곡은 단테의 『신곡』 가운데 지옥편에서 착안했고, 주요 텍스트를 창(唱)과 대사로 풀어냈다. 스테레오의 입체 공간 속을 유령 같은 메아리로 떠도는 정은혜의 목소리는 이따금 타악, 첼로, 기타, 피아노의 지원을 받아 듣는 이의 감은 눈앞에 어둠침침하고 눅눅한 지하 소극장을 펼쳐낸다.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LEENALCHI)가 코믹한 판소리 에서 익살과 흥을 극대화했다면 정은혜는 판소리에 담긴 지극한 처연함의 미학을 단테의 지옥도와 결합 낸다. 그는 판소리와 창극, 연극을 오가며 소리꾼이자 배우로 활약해 왔다. 일곱 살 때 판소리에 입문해 당대의 명창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서울대학교에서 국악을 전공했다. 201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여러 편의 창극에서 주역을 맡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 박진희(Park Jin-hee 朴眞姬) <“Hi, We are Jihye & Jisu”>, 지혜지수(Jihye & Jisu), 2021년 3월, 사운드 리퍼블리카(Sound Republica) 타악 연주자 김지혜(Kim Ji-hye 金智慧)와 클래식 연주자 정지수(Jung Ji-su 鄭智守)로 구성된 듀오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다. 김지혜는 어릴 적부터 국악을 했지만 다른 예술 장르와의 융합을 꿈꾸었고, 정지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성장했지만 창작욕과 대중성에 대한 갈증이 컸다. 미국 버클리음악대학 재즈 작곡과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이들은 연주가로서 활동하며 더불어 창작자로서도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들의 음악 작업에서는 심각하고 난해한 실험은 찾아볼 수 없다. 디지털로 변환한 무언가도 없다. 수록된 일곱 곡이 연주되는 동안 북과 장구와 피아노가 있는 그대로의 음색으로 한 편의 담백한 어쿠스틱 콘서트를 만들어 낸다. 함께 스페인을 여행하며 떠오른 영감과 개인적 경험들을 녹여낸 이 앨범은 낙천적인 분위기, 밝은 에너지가 시종 넘실댄다. 굿거리, 자진모리, 칠채 같은 국악 장단이 재즈의 펑키한 리듬이나 홀수 박자와 맞부딪친다. 속도감 있게 질주하는 다섯 번째 곡 ‘론다와 나(Ronda and Me)’는 꽉 막힌 출근길에서 들으면 제격일 정도로 시원한 느낌이다. 여섯 번째 곡 ‘벚꽃의 기억(Memories of Cherry Blossom)’과 마지막 곡 ‘K-시나위(K-Sinawi)’에는 색소폰 연주자와 타악기 연주자가 참여했는데, 매우 인상적인 이들의 피처링도 기억할 만하다.   ⓒ Daniel Schwartz, Micha , 국악재즈소사이어티(The Gugak Jazz Society), 2021년 3월, 소리의 나이테 음악회사(Sori-e Naite Music Company) 국악재즈소사이어티는 한국, 그리스, 미국 출신의 음악가들로 구성된 다국적 앙상블로 2019년 보스턴에서 재즈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판소리 칸타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이 음반은 제목에 쓰인 ‘Greekorea’라는 조어(造語)처럼 그리스와 한국 전통 음악의 화학적 결합을 시도한 작품이고, 재즈가 촉매로 합류한다. 보스턴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조미나(Cho Mi-na [Mina Cho] 趙美娜)가 주도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장구, 꽹과리, 생황, 가야금, 태평소와 같은 국악기부터 그리스의 류트, 중동 타악기인 벤디르, 리크, 다부카를 포함해 드럼과 베이스까지 다채로운 악기가 입체감을 만들어 낸다. 또한 이나래(Lee Na-rae [Lee Na Rae] 李翼)의 보컬은 놀랍게도 한국 민요와 중동의 소리를 유연하게 오가고 각국의 장단과 리듬, 화성이 이질감 없이 섞여든다. 그는 이날치의 멤버이기도 하다. 이 독특한 3개국 합작 프로젝트는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색감의 음악 팔레트를 만들었는데,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서울, 아테네, 보스턴에 위치한 각국의 연주자들이 원격으로 협업하며 음반을 제작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 보이드 스튜디오(Void Studio) , 신박서클(SB Circle), 2021년 8월, 플랑크톤뮤직(Plankton Music) 재즈 색소폰 연주자 신현필(Shin Hyun-pill 申鉉弼),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Park Kyung-so [Kyungso Park] 朴景召), 베이스 주자 서영도(Seo Young-do 徐永道), 드러머 크리스천 모런(Christian Moran)의 이름을 결합한 팀명을 지닌 신박서클의 두 번째 앨범이다. 젊은 세대가 즐겨 쓰는 ‘신기하고 기발하다’는 뜻의 속어 ‘신박하다’의 의미도 담겨 있다. 이 ‘신박한’ 그룹은 전통 음악의 단선율 음계에 재즈 화성을 끼워 맞추는 식의 오래된 물리적인 결합은 지양했다. 대신 경쾌하되 경박하지 않은 공동 창작의 화학 작용을 준수하게 뽑아 냈다. 색소폰과 가야금의 단선율 유니슨(unison)이 뻥 뚫린 한강변 도로 위 세단처럼 뻗어나가는 첫 곡 ‘밀실의 선풍기(Fan in the Room)’부터 음악의 질감이 매끈하고 근사하다. 서영도의 베이스와 크리스천 모런의 드럼이 가져다주는 섬세하면서도 절도 있는 리듬도 매력적이다. ‘평면지구(Flat Earth)’나 ‘음이온(Negative Ions)’의 뻔하지 않으면서도 귀에 와서 철썩 부딪치는 멜로디는 국적이나 음악적 전통을 떠나 도회적인 재즈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곁에 바짝 다가갈 만하다.

다름을 보여 준다

Features 2022 SPRING 1218

다름을 보여 준다 장영규(Jang Young Gyu 張領圭)는 영화, 무용, 연극, 현대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몇 개의 밴드를 조직하고 이끌며 전통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실험을 지속해 왔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작업실이 그의 음악적 모험의 산실이다. 2019년, 로 국내외에서 돌풍에 가까운 호응을 얻은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LEENALCHI)에는 음악감독이자 베이시스트인 장영규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이제야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겠지만, 사실 그는 이날치 이전에도 민요 록 밴드 씽씽(SsingSsing)으로 해외 음악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음악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2016)이나 (2016) 같은 영화를 통해 그의 음악을 이미 경험했다. 최근에 높은 흥행을 이룬 이런 작품들 외에 타짜(Tazza: The High Rollers)>(2006), (2005)을 비롯한 80여 편의 영화에도 그의 손길이 배어 있고, 그는 실제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음악상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도 무용과 연극 음악 분야까지 아우르며 종횡무진 작업하는 뮤지션 장영규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말을 잘하지 못한다며 수줍어했지만,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탬버린, 멜로디언으로 연주하는 ‘말도 안 되는’ 그룹을 만들었던 그의 생각은 그의 음악만큼 자유롭게 번득였다. 컨템포러리 국악의 한 축을 이끌어 온 장영규는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해 온 것이 음악 작업의 외연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전통 음악에 접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국악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원일(Won Il 元一) 씨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 그를 알게 되었고, 1994년 결성한 어어부(漁魚父) 프로젝트(Uhuhboo Project)에서 1집을 낼 때까지 함께 활동했다. 그때는 밴드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소리에 대한 호기심이 컸는데, 원일 덕분에 국악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어 그들과 이런저런 작업을 함께했다.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전통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현대무용가 안은미(Ahn Eun-me 安恩美)와 함께 작업하면서부터였다. 안은미컴퍼니는 내 마음대로 음악을 해 볼 수 있는 기회였고, 그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도록 이끌었다. 특히 이나 과 같은 작업을 할 때는 전통 성악의 세 장르, 즉 판소리, 민요, 정가가 그제야 구분되면서 각 소리의 특성과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겉핥기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에 2007년 7인조 밴드 비빙(Be-Being 悲憑)을 만들었다. 비빙을 통해 불교 음악, 가면극 음악, 궁중 음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실 모두 공부하는 마음으로 해 본 작업들이었다. 음악감독으로서 국악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나? 오랜 시간이 아니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들에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 듣는가,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가에 따른 차이도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국악인들을 직접 만나 가까이서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음반이라든지, 아니면 마이크를 통해 소리를 증폭시키는 공연에서 국악을 접하는 것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가까이에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런 경험의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민요 록 밴드 씽씽이 2017년 7월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여우락 페스티벌(Yeo Woo Rak Festival)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파격적인 음악과 유쾌한 퍼포먼스로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씽씽은 장영규를 비롯해 세 명의 소리꾼과 드러머, 기타리스트 등 6인이 모여 2015년 결성되었으며 2018년 해체되었다. 국립극장 제공(Courtesy of National Theater of Korea) 요즘 국악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난해, 오디션 심사를 하면서 60여 개 팀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심사하는 내내 저들은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전통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수련을 거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하지만 숙련된 테크닉뿐이라면 그 자체를‘음악’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최근 몇 년 사이 국악과 다른 장르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밴드들이 늘고 있고, 지난해에는 TV 방송에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생기면서 크로스오버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게 좋기만 한 일인지 모르겠다. 전통 음악을 들어본 경험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시청자들이 이런 경쟁 프로그램에 나오는 크로스오버 형식의 음악만 국악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음악만 찾게 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전통 음악의 재미와 매력을 제대로 들려줄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빨리 찾아내야 한다. 국악과 다른 장르가 접목된 음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김덕수(Kim Duk Soo 金德洙) 사물놀이패와 다국적 재즈 그룹 레드선(Red Sun)의 협연 음반을 들으며 자랐다. 음악적으로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는 푸리(Percussion Ensemble Puri)와 양방언(Yang Bang Ean 梁邦彦, Ryo Kunihiko)이 눈에 들어왔다. 양방언의 경우 그가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공연 무대에서 그의 곡을 연주하지 않는 국악 밴드들이 없을 정도였다. 당시 그의 음악 스타일을 모방한 국악 그룹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국악계가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잠비나이(Jambinai) 같은 경우는 그들의 음악이 전통 음악에 속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자신들이 무슨 음악을 해야 되는지 방향성을 갖고 자신들만의 색깔을 확실히 내고 있는 팀이다. 음악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달(2nd Moon)처럼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한 밴드도 있다. 다양한 팀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12월, 홍대 앞 라이브 공연장 스트레인지 프룻(Strange Fruit)에서 공연하고 있는 이날치. 장영규를 중심으로 2019년 결성된 얼터너티브 팝 밴드로 두 명의 베이시스트와 드러머, 네 명의 보컬 총 7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판소리를 팝으로 재해석한 댄스곡 는 국내외에서 폭발적 호응을 이끌어 냈다. 오른쪽부터 베이스의 장영규, 보컬 권송희(Kwon Song Hee 權松熙), 이나래(Lee Na Rae 李翼), 안이호(Ahn Yi Ho 安二鎬), 신유진(Shin Yu Jin 申有珍), 뒷줄에 베이스의 박준철(Park Jun Cheol 朴俊澈)과 드럼의 이철희(Lee Chul Hee 李鐵熙). ⓒ LIVE CLUB DAY, Azalia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음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름’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업할 때 다름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를 항상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상투적 표현을 경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인가?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스타일이 명확해지고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져 변화에 대해 고민하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항상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내 스타일 안에서 내용에 따라 다른 방식을 찾아가면 된다. 무용, 연극, 영화 음악을 만들 때와 이날치 작업은 어떤 차이가 있나? 다른 작업들은 목적이 분명하고, 내가 해야 되는 역할도 명확하다. 반면에 이날치는 완전히 열려 있다. 이날치 음악을 만들 때는 기본적인 리듬이나 패턴들을 만들어 놓은 후 소리꾼 4명이 모여서 소리 대목들을 찾는다. 리듬과 음악적 방향에 어울리는 선율을 만들기 위해 어떨 때는 주요 판소리 다섯 바탕을 다 찾아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것들을 포착하여 발전시키는 게 재미있다. 전통 판소리를 놓고 편곡하는 방식이 아닌 작곡에 가깝다. 이날치가 성공한 이후 달라진 게 있는가? 대중음악 시장에 들어가고 싶다, 소비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무얼 해야 되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2020년 1집 앨범 를 발매한 후에 보니 정말 하기 싫었던 일들, 예전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이 내 앞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회피하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까지 해야 되나’ 여기던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 게 내 스스로 가장 달라진 점인 것 같다.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날치는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과연 밴드로서 소비되고 있는가’ 자문해 봤을 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갈 길이 남았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사실 국내 음악 시장에는 밴드 시장이 없기 때문에 좋은 음악만 만들면 저절로 잘될 거라 기대해선 안 된다. 소비되기 위해서 때를 기다리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누가 그런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닌 이상, 밴드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해외 활동을 준비하고 있나? 밴드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국내에서도 물론 계속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해외에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시장이 존재하니까 그곳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양쪽 모두 시도해 볼 작정이다. 올해는 해외 공연 일정도 잡혀 있다. 지난해 발매 예정이었던 2집이 늦어지고 있다. 사실 이렇게 바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음반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판소리 다섯 바탕 안에서 뭔가 더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기존 판소리 레퍼토리를 짜깁기하여 이야기만 새로 갈아 끼운다고 지금 시대에 맞는 음악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시대성을 지닌 새로운 이야기는 물론이고 작창에서도 다른 음악적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치 2집은 앞서 말한 고민들이 반영된 창작 판소리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다. 가능하다면 올해 말에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융합과 협업의 축제

Features 2022 SPRING 847

융합과 협업의 축제 국립극장이 주최하는 여우락(樂) 페스티벌(Yeo Woo Rak Festival)이 그 이름이 뜻하는 대로 모두가 함께 즐기는 흥겨운 행사로 자리 잡았다. 국악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대중화를 모색하는 취지로 시작된 축제가 해를 거듭하며 많은 음악인들의 상상력과 영감을 일깨워 과감한 창작의 세계로 이끌어 가고 있다. 2017년 7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여우락 페스티벌에는 월드 뮤직 그룹 1세대인 공명(GongMyoung 共鳴)이 창단 20주년을 맞아 풍성한 레퍼토리로 구성된 기념 공연을 펼쳤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관객의 열렬한 호응 속에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Courtesy of National Theater of Korea) 서울 한복판 남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극장에서는 매년 7월이면 한 달 내내 흥겨운 축제가 펼쳐진다. 여우락 페스티벌이다.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It’s our music)’는 뜻의 줄임말로 ‘동시대인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전통 음악’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2010년에 시작해 올해로 13회를 맞는 이 페스티벌에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전통 음악을 매개로 과감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명실상부한 전통 음악 실험의 장(場)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여우락은 대부분의 다른 국악 공연과 달리 수년째 유료 티켓의 매진 행렬을 자랑한다. 2021년 말 기준 누적 관객 6만 6천여 명(2020년 온라인 상영 시청자 제외), 평균 객석 점유율 93퍼센트를 기록했으며, 꾸준히 마니아층을 확보해 최근 대중 문화계에 불고 있는 국악 열풍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간 전통 음악이 매우 소외된 장르로 명맥을 이어 왔고, 전체 음악 시장에서 국악 기반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도 여전히 미미함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성공은 매우 이례적이고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 페스티벌의 존재 가치는 단순히 티켓 판매에 성공했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통 예술 분야를 국가의 지원으로 이어가는 보존에만 한정하지 않고, 그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음악 활동을 펼치는 음악인들을 무대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전통 예술의 현대화, 나아가 그 가치의 향유를 해외 무대로 넓혀 가는 ‘국악 르네상스’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다. 여우락은 그간 예술 감독으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양방언(Yang Bang Ean 梁邦彦, Ryo Kunihiko), 재즈 아티스트 나윤선(Youn Sun Nah 羅玧宣), 작곡가 겸 지휘자 원일(Won Il 元一), 철현금(鐵絃琴) 연주자 유경화(Ryu Kyung-hwa 柳京和)가 역임하였고, 2020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Park Woo Jae 朴佑宰)가 수장을 맡고 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양방언과 나윤선은 재즈와 대중 음악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뮤지션들이고, 원일과 유경화는 전통 음악 전공자로서 자신의 개성적인 음악 세계를 기반으로 실험적이면서 창의적인 협업으로 일가를 이룬 중견 예술가들이다. 이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구성이야말로 여우락의 세 가지 키워드, 즉 실험성, 대중성, 그리고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주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여우락 페스티벌의 포스터들. 국악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대중화를 모색하기 위한 취지로 201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매년 7월 국립극장 무대에서 창의적 공연을 펼친다. 국립극장 제공(Courtesy of National Theater of Korea) 그간 무대에 섰던 출연진들도 대체로 세 부류의 이질적인 그룹으로 대별된다. 첫째는 판소리 명창 안숙선(Ahn Sook-sun 安淑善)이나 황해도 대동굿 만신 이해경(Lee Hae-kyung 李海京)처럼 전통 음악의 원형을 보유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나 이에 준하는 명인들이다. 둘째는 이들보다 한 세대 젊은 층으로 전통 음악을 전공했지만 재즈나 아방가르드, 대중 음악과 서양 클래식 등 타 장르와의 협업에 능숙하고, 예술성과 실험성,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일가를 이룬 새로운 세대의 음악인들이다. 바로 이들이 여우락 페스티벌의 중추적 역할을 맡아 왔다고 할 수 있다.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Kyungso Park 朴景召) 같은 아티스트와 공명(GongMyoung 共鳴), 신노이(Sinnoi)처럼 주로 월드 뮤직 연주로 알려진 밴드들을 꼽을 수 있다. 셋째는 주로 재즈와 대중 음악 쪽에서 실험적이고 예술성이 높은 작업을 해 왔던 뮤지션들로 평소에도 활발한 협업을 통해 전통 음악과의 융합에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들이다. 피아니스트 임동창(Lim Dong-chang 林東昌), 작곡가 정재일(Jung Jae-il 鄭在日), 래퍼 타이거 JK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사진 작가, 시각 디자이너 등 음악 외 장르 예술가들도 다수 참여해 새로운 형태의 콘서트를 만드는 데 활발히 기여하고 있다.

‘조선팝’의 탄생

Features 2022 SPRING 944

‘조선팝’의 탄생 국악과 팝을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 ‘조선팝(Joseon pop)’이 주목받고 있다. K-pop의 외연을 확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 ‘변종’ 음악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JTBC의 TV 국악 경연 프로그램 (2021. 9~12)이 마련한 전국 투어 콘서트 중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서도밴드(sEODo Band)가 공연하고 있다. 은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전통 음악의 멋과 매력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JTBC, 어트랙트엠(ATTRAKT M) “국악은 한국인의 음악이지만, 한국인과 가장 거리가 먼 음악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한 소설가의 이 말은 20세기 이후 한국 전통 음악의 현실을 그대로 나타낸다. 오랜 시간 전승되어 온 민족 고유의 음악이지만 오늘의 감각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국악은 한때 거의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했다. 고리타분한 음악이라는 인식이 대중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이러한 고정관념이 국악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른바 ‘조선팝’의 부상과 인기에 지렛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대중이 멀리 밀어 두었던 국악이 어느 날 색다른 변화의 옷을 입고 나오니, 그 변신의 폭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사실 한국의 전통 음악은 시대마다 새로운 감각을 입으며 변화해 왔고, 그 같은 유산이 오랜 침체기를 지나 지금 빛을 발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10월,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Kim Duk Soo 金德洙)와 청배(請拜)연희단(Cheong Bae Traditional Art Troupe)이 함께 광화문 아트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김덕수는 1978년 전통 농악 장단을 무대 예술로 각색한 사물놀이를 세상에 내놓아 국내외 수많은 무대에서 공연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청배연희단은 20여 년 동안 전통 연희를 기반으로 창작 음악을 만들어 오고 있는 단체이다. ⓒ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Samulnori Hanullim, A Non-Profit Organization) 보존을 위한 지원 20세기 후반 정부의 보존 및 지원 정책이 전통 음악의 생존에 중요한 결정적 뒷받침이 되었다. 보존이 가능했기에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의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예로부터 어느 국가나 사회에서도 전통 음악은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빛을 잃기 마련이었다. 한국의 전통 음악도 그런 운명 앞에 놓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 동안 위기를 맞았으며, 1950년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전통 음악인들을 비롯한 국악 자원의 파괴를 가져왔다. 휴전 이후에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전통 음악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으며, 1960년대부터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변되는 근대화 물결이 거세지면서 전통 음악은 전근대적 예술이라는 이유로 그늘 속에 가려 있었다. 하지만 위기 속에도 미약하나마 보존을 위한 노력은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가 그 역할을 했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조선 왕조는 ‘이왕가(李王家)’로 격하되었고, 궁중의례 음악도 자연히 축소되거나 폐지될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왕직아악부가 학생들을 모집해 가르침으로써 궁중 음악의 명맥을 겨우 이어 나갔다. 해방과 건국에 이어 발발한 한국전쟁 동안 임시 수도 부산에서 국립국악원이 문을 열고 전쟁으로 흩어진 국악 자원과 음악인들의 중심 역할을 했다. 1953년 휴전 이후 서울로 이전한 국립국악원은 이후 계속 발전을 이루어 오늘날에도 전통 음악의 보존과 이를 응용한 창작을 지원하는 기관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62년부터 시행된 문화재보호법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이 법에 따라 ‘국가무형문화재’ 제도가 도입되었다. 중요한 전통 문화 예술 분야를 보존 대상으로 지정하고, 이를 연마하고 전승 능력을 갖춘 이들에게 국가가 ‘보유자’ 및 ‘이수자’ 자격을 부여하고 지원하는 제도다. 전통 음악 부문에서는 종묘제례악, 가곡, 판소리, 대금 산조, 경기 민요를 포함한 다수의 종목이 지정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국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주목받고 있는 연주자 중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블랙스트링의 허윤정(Heo Yoon-jeong [Yoon Jeong Heo] 許胤晶)은 거문고 산조, 잠비나이(Jambinai)의 이일우(Lee Il-woo [Ilwoo Lee] 李逸雨)는 피리 정악 및 대취타, 이날치(LEENALCHI)의 안이호(Ahn Yi-ho 安二鎬)는 판소리, 소리꾼 이희문(Lee Hee-moon 李熙文)은 경기 민요 이수자다. 2020년 9월, 데뷔 10주년을 맞은 고래야(Coreyah)가 구리아트홀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 2010년 결성된 국악 크로스오버 그룹 고래야는 전통 악기의 특성을 살린 음악적 구성에 전 세계의 다양한 민족 음악과 대중음악을 접목해 새로운 국악 스타일을 만들어 왔다. ⓒ 구리문화재단(Guri Cultural Foundation) 국악의 정착 1959년 서울대학교 국악과 창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악이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서울뿐 아니라 전국 여러 지역의 대학에 국악과가 개설되는 불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1970~80년대에 크게 증가한 국악과 개설과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은 국악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20세기 역사의 격변 속에 전통 음악이 사라질 위기를 목격했던 전 세대와 달리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는 보존과 전승보다는 국악이 보다 새로운 감각을 입고 대중에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전통 음악의 여러 요소들을 밑바탕으로 시대에 어울리는 창작곡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창작’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일반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민요나 판소리를 소재로 새로운 곡을 쓰거나 익숙한 서양 고전 음악을 편곡하여 국악기로 연주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되었다. 특히 1970년대 말 등장한 사물놀이는 국악이 대중과의 간극을 좁히는 데 획기적 역할을 했다. 전통 농경 사회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기던 농악 장단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물놀이는 북, 장구, 꽹과리, 징 4개의 타악기가 앙상블을 이루어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이다. 젊은 국악인들은 사물놀이의 특성과 요소를 흡수하여 대중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호응을 이끌어 내면서 오랫동안 뒷전에 물러나 있던 전통 음악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국악의 변신 대중음악 시장이 부상하던 1980년대에는 국악의 장단이나 가락을 살려 일반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든 민요풍의 가요가 등장했다. ‘국악 가요’라 불리는 이 장르는 대중 음악의 한 흐름으로 정착했으며, 국악 향유층을 넓히는 데도 한몫했다. 또한 국악기와 양악기를 결합한 반주 편성은 이후 1990년대 들어 퓨전 국악이 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한편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시작된 세계화의 물결은 또 다른 자극제가 되었다. 시장이 개방되고 새로운 무역 질서가 구축되며 서구 문화가 다수 국민들의 일상에 유입되는 가운데 우리 문화를 돌아보자는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 국산 농산물을 애용하자는 내용을 담은 배일호(裴一湖)의 노래 (1993)가 크게 히트했고, 같은 해에 판소리를 소재로 한 임권택(Im Kwon-taek 林權澤) 감독의 영화 도 ‘국민 영화’로 불리며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슷한 시기 판소리의 박동진(朴東鎭 1916~2003) 명창이 출연해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를 외쳤던 한 의약품 TV 광고의 카피가 한동안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2018년 12월, 멜론 뮤직 어워드(Melon Music Awards)의 BTS 특별 무대에서 멤버 지민(Jimin)이 부채춤을 추고 있다. BTS는 음원 사이트 멜론이 주최하는 이 시상식에서 (2018)을 국악 버전으로 편곡해 공연했고, 지민의 부채춤뿐 아니라 제이홉(J-HOPE)의 삼고무, 정국(Jungkook)의 봉산탈춤 등 전통 문화를 접목한 화려한 퍼포먼스로 관객의 열광적 호응을 받았다. ⓒ Kakao Entertainment Corp. BTS 멤버 슈가(SUGA)의 두 번째 믹스테이프 (2020)의 타이틀곡 ‘대취타’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이다. 조선 시대 임금이나 관리들의 공식 행차 때 연주되던 행진곡 대취타를 샘플링해서 만든 곡으로 트랩 비트(trap beat)와 악기 소리가 신명나게 어우러진다. 전 세계 아미들이 국악에 관심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 곡이다. ⓒ 하이브(HYBE Co., Ltd.) 당시 정부는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을 기념하고 관광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1994년을 ‘한국 방문의 해’ 및 ‘국악의 해’로 지정했다. 이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했고, 이 과정에서 국악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몇 년 후 아시아 금융 위기로 국가 부도 사태를 맞게 되자 문화 예술인들의 활동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으나, 한편으로 많은 국악인들에게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가’라는 시대적 당면 과제를 안겨 줬다. 1990년대 말부터는 인터넷의 확산에 따라 국악인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도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국의 전통 음악이나 민속 음악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음악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런 음악이 ‘월드 뮤직’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도나 아프리카 등 다른 문화권의 음악은 국악인들이 새로운 음악을 창작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특히 종전의 해외 국악 공연이 전통 음악에 국한되었던 것과 달리 작곡가 원일(Won Il 元一)을 주축으로 한 그룹 푸리(Puri)나 월드 뮤직 그룹 공명(GongMyoung 共鳴)처럼 퓨전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례가 늘어났고, 해외 음악 페스티벌이나 음반 시장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이와 함께 변화와 변용도 넓은 의미에서 국악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유네스코가 아리랑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릴 때도 “오래된 노래가 여전히 불리며, 동시에 새로운 창작을 통해 전승되고 있다”는 점을 등재 사유로 들었다.   2021년 7월,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진행되었던 소리꾼 이희문(Lee Hee-moon 李熙文)의 온라인 콘서트 의 스틸 사진이다. 공연을 앞두고 공개된 이 사진에서 이희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캐릭터 ‘미뇨’를 판타지적인 비주얼로 표현했다. 현장 공연과 뮤직 비디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영상 콘서트는 새로운 공연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이희문컴퍼니(Lee Hee Moon Company) 제공 협업과 시너지 최근 들어 ‘조선팝’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대중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음악은 이처럼 오랜 역사와 배경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보다 때로는 해외에서 더 사랑받고 있는 듯한 블랙스트링, 잠비나이, 이날치 같은 밴드들의 탄생도 이런 흐름의 한 자락으로 볼 수 있다. 2010년부터 국립극장이 매해 주최하고 있는 여우락 페스티벌도 국악계의 큰 행사인 한편 오늘날 변화하고 있는 국악인들의 생각과 작업을 소개하는 일종의 월드 뮤직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이런 흐름 속에 국악을 대하는 다른 분야 예술가들의 자세와 일반인들의 생각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JTBC가 2021년 9월부터 12월까지 방영했던 TV 오디션 프로그램 은 젊은 국악인들의 자유로운 실험 정신을 가감 없이 보여줬고, 시청자들은 낯설지만 감각적인 이들의 음악에 환호했다. 연극∙무용∙영화∙뮤지컬∙미술 등 다른 장르들이 색다른 변화를 시도할 때 국악인들과 활발히 협업하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소리꾼 이희문은 패션∙영상∙뮤직비디오 같은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긴밀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최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국악을 잘 보존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악이 다른 예술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숨은 무기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고 했다. ‘조선팝’이 앞으로 지구 곳곳의 독특한 음악을 찾아 듣는 해외 월드 뮤직 팬들에게 앞으로 더욱 다가설 수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월경(越境)하는 국악기들

Features 2022 SPRING 976

월경(越境)하는 국악기들 국악기에는 고대로부터 한반도에 존재해 온 자생적 악기와 유라시아 대륙과의 교류를 통해 유입된 외래 악기가 있다. 이 악기들은 이 땅의 오랜 역사와 함께하며 각 시대의 문화와 감성을 담아 왔다. 그런 가운데 어떤 것은 한때 성행하다가 조금씩 잊히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잠시 잊혔다가 다시 조명되기도 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국악기 가운데 몇 종류를 소개한다. 세상의 모든 악기에는 문화가 반영된다. 악기의 재료, 형태, 크기, 연주법은 지리, 환경, 종교, 정치 등 다양한 요소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외부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악기는 거의 없다. 설령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보편화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사회적 요인이 개입한다. 새로운 악기는 인접 국가의 문화와 자국의 문화가 융합되고 충돌하며 탄생한다. 이렇듯 악기의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국악기도 마찬가지다. 까마득히 먼 과거에 중국에서 수입된 악기를 개량해 보편화된 것도 있고, 비교적 가까운 과거인 20세기에 서양 악기를 개조한 것도 있다. 오늘날에는 음량을 개선하거나 음역대를 넓히기 위해 기존 악기를 개량하기도 한다. 국악기는 지금도 여전히 경계를 넘으며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한편 서양 음악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근대를 거치며 밴드나 콰르텟, 서구 오케스트라 편성의 합주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편성은 국악기에 최적화된 합주 방식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국악기 본연의 특성이 배제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음량이 작거나 화성 진행에 어려움이 있는 국악기는 무대에서 보조적인 역할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각각의 악기가 지닌 고유한 특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늘었다. 합주에서 본연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부차적으로 밀려났던 악기, 홀로 연주되는 일이 드문 악기가 주축이 되는 독주곡도 새롭게 등장했다. 악기를 사용하거나 전통 음악을 해석하는 방식도 과거에 비해 무척 다양해졌다. 오늘날 국악기는 전통 음악의 문법에 깊게 착안한 음악부터 장르의 경계가 모호한 음악까지 모두 아우른다.   거문고,악기 중의 으뜸 한국을 대표하는 현악기 거문고는 예로부터 모든 악기 중 으뜸이라 칭해져 왔다. 비단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의 역할뿐 아니라 지식인들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수양의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외관은 같은 현악기인 가야금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특성을 지녔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음색이다. 거문고는 가야금에 비해 줄이 굵어 낮고 중후한 소리가 난다. 연주법도 다르다. 가야금은 손가락으로 줄을 누르고 튕기며 연주한다. 하지만 거문고는 술대라는 막대를 사용해 줄을 밀거나 뜯고 내려치며 연주한다. 거문고가 다른 현악기들에 비해 강인하고 절제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이렇듯 현악기적 특성과 타악기적 특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합주를 하는 전통 음악 레퍼토리에서 거문고는 핵심적인 입지를 갖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역할이 점차 줄고 있으며,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창작 음악도 드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밴드나 서구 오케스트라 편성이 주를 이루다 보니 거문고의 작은 음량과 소박한 음색의 가능성에 주목하지 못한 탓이 크다. 실제로 거문고의 특징이 잘 발휘되는 작품을 만들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최근 거문고만으로 존재감을 입증하는 연주자가 하나둘 늘고 있다. 거문고 솔리스트이자 창작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황진아(Hwang Gina 黃眞娥)는 이 악기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다. 2021년 발표한 디지털 싱글 은 이별을 대하는 남녀의 상반되는 심리를 재치 있는 사운드로 표현했다. 분명한 기승전결 속에서 거문고만이 할 수 있는 리드미컬한 호흡의 연주를 가감 없이 담아냈다.   피리,숨결을 불어넣은 나무 어떤 악기는 나무에 숨을 불어넣었을 때 완성된다. 피리는 대나무로 만들어 세로로 연주하는 관악기로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 세 종류가 있다. 궁중 음악부터 민간 음악까지 대부분의 전통 음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관악기는 소리를 내는 작은 진동판인 리드(reed)가 있는 악기와 그렇지 않은 악기로 나뉜다. 피리는 ‘서’라고 하는 겹리드(double reed)를 사용하며, 여타 관악기와 마찬가지로 숨을 불어넣고 강약을 조절하며 지공(指孔)을 여닫는 방식으로 연주한다. 혀를 사용하거나 서를 무는 위치를 달리하여 음정을 조절하고 피리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기교를 구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민감한 특성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연주자의 섬세한 기량이 요구된다. 피리가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꿋꿋하고 힘찬 음색 덕분에 현대에 만들어진 음악에서도 주선율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외로 피리 연주자로만 이루어진 팀은 흔치 않다. 삐리뿌(BBIRIBBOO)는 두 명의 피리 연주자와 프로듀서로 구성된 3인조 밴드다. 다양한 전통 음악 레퍼토리를 재기발랄하게 풀어내 악기가 지닌 매력을 극대화한다. 2021년 발표된 는 조선 시대에 궁중과 상류층에서 연주되던 정악 연주곡들 가운데 ‘양청도드리’의 주선율을 펑키한 스타일로 편곡한 작품이다. 양청도드리는 정악 계열의 음악 중에서 템포가 빠르며,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는 흥겨운 선율로 구성되어 있다. 는 이러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해석해 피리와 생황으로 연주한다.   운라(雲鑼), 떨림과 울림 모든 국악기가 까마득히 먼 과거부터 사용된 것은 아니다. 운라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했다. 운라가 전래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시대 대표적 악서인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에 등장하지 않고, 조선 후기 사료에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대략적인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운라는 구리로 만든 작은 접시 모양의 ‘동라’를 나무틀에 매달아 작은 막대로 쳐서 연주하는 타악기다. 하지만 선율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일반적인 타악기와는 조금 다르다. 동라는 여러 개의 단으로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는데, 맨 아래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가면서 음이 높아진다. 제일 높은 단의 중앙에 위치한 동라의 음이 가장 높다. 연주법은 간단하다. 양손에 채를 쥐고 동라를 번갈아 치거나 한 손으로 치기도 한다. 이 악기는 주로 수문장 교대식이나 어가 행렬 재현식과 같은 행진곡에 사용된다. 다른 타악기와 함께 연주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단독으로 사용된 음악은 드물다. 최근에는 타악기 연주자 한솔잎(Han Solip)이 다른 타악기와 함께 운라를 사용해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2018년 발표된 첫 번째 디지털 싱글 는 맑고 청아한 음색의 운라를 사용해 따뜻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그려낸다. 이 곡은 행진곡에 사용되는 운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동라를 강하게 타격할 때 발생하는 쨍한 소리보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잔향과 서정적인 선율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미니멀하면서도 모던한 음색 속에서 운라의 가능성을 찾는 음악가들은 앞으로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최영모(Choi Yeong-mo) 철현금(鐵絃琴), 기타의 변신 철현금은 1940년대 남사당패 줄타기 명인이었던 김영철(金永哲)에 의해 고안된 현악기로 서양 악기인 기타를 국악기의 문법에 맞게 개량한 흔치 않은 사례이다. 기타를 거문고처럼 바닥에 놓고 연주하면서 놀다가 만들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다 보니 기타와 거문고의 속성이 절묘하게 결합되었다. 일반적인 현악기는 명주실을 사용하지만 철현금은 기타처럼 쇠줄이다. 연주법은 기타가 아닌 거문고와 비슷하다. 오른손에 술대를 쥐고 왼손으로는 농옥(弄玉)으로 줄을 문질러 연주한다. 쇠줄을 사용하지만 연주법은 기타와 전혀 다르다 보니 음색이 무척 독특하다. 미묘한 경계에 서 있는 이 악기는 근대의 역동성과 변화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사실 철현금은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 사이에서 보편화된 악기가 아니어서 다른 악기에 비해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드물다. 당연히 연주할 수 있는 곡도 매우 적다. 최근에 들어서야 창작곡을 통해 접할 기회가 조금씩 늘고 있다. 가야금 트리오 밴드 헤이스트링(Hey String)이 2019년 발표한 중반부에 철현금이 등장한다. 가야금 선율과 대비되는 날카롭지만 둥글게 휘는 금속성 선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송광찬(Song kwang-chan 宋光燦) 장구, 음악의 처음과 끝 장구는 한국의 거의 모든 전통 음악에 사용되는 타악기다. 음악의 처음과 끝에는 언제나 장구가 있다. 음악의 기준이 되는 ‘박(拍)’을 짚어 주면서 템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장구는 나무의 속을 파내고 가운데를 잘록하게 깎아 만든 긴 통의 양쪽에 가죽을 대고 줄로 엮어 만든다. 양쪽 가죽을 양손으로 두드려 연주한다. 장구의 왼쪽을 북편 또는 궁편, 오른쪽을 채편이라 부른다. 북편은 손바닥으로 두드리거나 동그란 궁알이 달린 궁채로 치고, 채편은 나무를 깎아 만든 길고 가느다란 열채로 연주한다. 일반적으로 장구는 반주용 악기로 인식된다. 물론 설장구, 풍물굿 등 장구를 중심으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가락과 기교를 선보이는 음악도 있다. 하지만 온전히 타악기로만 연주되는 경우는 많지 않고,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음악도 다른 선율 악기에 비해 한정적이다. 최근에는 솔리스트를 선언하고 활동하는 타악 연주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음악을 선보이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소라(Kim So-ra [Kim So Ra] 金素羅)는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타악기 연주자이다. 2021년 발매된 두 번째 앨범 는 한국에 오랜 기간 전승되어 온 풍물굿과 무속 장단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한 작품이다. 그의 연주에는 폭발하는 에너지와 정제미가 공존한다. 긴장과 이완 속에서 가락을 섬세하게 변주하며 장구가 지닌 역동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장구 연주를 온전한 하나의 음악으로 감상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보살피며 사는 집

Features 2021 WINTER 1090

보살피며 사는 집 차정금(車貞金) 씨는 야생 잎차와 전통 옹기를 생산하는 회사 ‘징광문화(JINGKWANG Culture 澄光文化)’를 아들과 함께 운영한다. 회사로부터 1km쯤 떨어져 있는 한옥에서 약 20년 동안 살았던 그는 이 집이 자부심의 원천이라 말한다.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징광리 금화산 자락에 그가 공들여 가꾸고 있는 회사와 집, 그리고 너른 차밭이 있다. 1980년대 초반, 서울 한남동에 있던 한옥을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옮겨 다시 지은 ‘한상훈 가옥’의 안채 모습이다. 한옥은 못이나 접착제를 쓰지 않고 나무 부재(部材)를 조립하여 짓기 때문에 해체와 재조립이 가능하다. ‘징광문화’라 새겨져 있는 표지석 입구에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왼편에 황토로 지은 옹기 가마와 작업장, 돌담이 보인다. 다시 돌담을 따라가면 양쪽으로 나뉜 커다란 두 개의 공간이 나타난다. 왼쪽 자갈 깔린 마당에는 전통 옹기가 줄지어 서 있다. 한 단 낮은 오른쪽 정원에는 소나무와 석등, 연꽃이 핀 연못과 정자가 펼쳐져 있다. 이 두 공간 주변에는 잎차를 만드는 공장과 옹기 전시장을 비롯해 몇 채의 기와집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인 1979년, 차정금 씨의 남편 한상훈(韓尙勳) 씨는 전통적인 의식주와 관련된 문화 상품을 개발해 생산하겠다는 큰 꿈을 안고 이곳에 터를 마련했다. 그는 인근 금화산(金華山) 중턱에 야생 차밭을 조성하고 경사지의 논밭을 사들여 옹기 가마를 지었다. 1998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내와 자녀들이 회사를 운영해 오고 있다. 차 씨가 생산하는 잎차는 일반적인 녹차와 다르다. 찻잎을 고압의 수증기로 쪄서 만든 것이 녹차이고, 가마솥에 덖어 만든 것이 잎차이다. 빛깔도 녹차는 맑은 녹색을 띠는 데 반해 잎차는 연한 노란빛이다. 그는 야생 차밭에서 농약은 물론 퇴비조차 주지 않고 차나무를 키운다. 녹차와 구별하기 위하여 이곳의 차를 ‘야생 잎차’ 혹은 ‘징광 잎차’라 부르는 이유다. 옹기는 입이 밑바닥보다 넓고 윗배가 부르며 어깨가 넓은 것이 특징인 남부 지방의 전통적인 형태를 재현해 만들고 있으며, 약토(藥土)와 초목의 재로만 만든 전통 유약을 발라 굽는다. 이런 자긍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한상훈 가옥’이다. 차정금(車貞金) 씨는 남편 고 한상훈 씨의 고향인 벌교에서 야생 잎차와 전통 옹기를 생산하는 회사 징광문화를 아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남편이 집 근처 금화산 자락에 조성한 야생 차밭에서 화학 비료와 농약을 주지 않고 차나무를 키운다. 차 씨가 지난 가을 어느 오후 막내 손녀 세란(世蘭)이와 함께 차를 즐기고 있다. 옮겨 지은 집 회사에서 산길을 따라 1km 정도 올라가면 한상훈 가옥이라 불리는 한옥 한 채가 나타난다. 이 집은 원래 서울 한남동에 있었으나, 1980년 도로 확장으로 철거 대상이 되자 남편이 매입하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서양 주택과 달리 한옥은 못이나 접착제를 쓰지 않고 나무 부재(部材)를 조립하며 짓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남편은 모든 부재마다 빠짐없이 번호를 매겨 해체한 뒤 그 번호대로 다시 조립하였다. 철저하고 치밀한 작업 공정인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우여곡절도 있음직하다. 그가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때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살았어요. 저는 직장에 다니면서 어린 아들을 키웠고, 남편은 서울과 벌교를 오가며 징광문화 일을 했지요. 남편은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어느 날 혼자 뚝딱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었어요. 한남동 한옥도 구입 후 이듬해에 해체를 하는가 싶더니, 그다음 해에 제가 딸을 출산하고 나서 이곳에 와 보니 어느새 집이 다 완성되어 있더군요. 경사지의 흐름에 따라 아래쪽에는 사랑채를, 위쪽에는 안채를 배치했고, 정원도 새로 만들었지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 끝에 삼면이 개방된 누마루가 붙어 있는 一자 형태의 사랑채가 있다. 그 앞에는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름날 누마루는 그의 가족이 가장 즐겨 머무르는 공간이다. 시원한 마루에 누워 한낮의 무더위를 달래고, 둘러앉아 밥도 먹는다. 밤에는 모기장을 치고 들어앉아 나방의 군무를 보고, 매미 울음소리를 듣고, 정원의 꽃향기를 맡으며 한여름 밤의 정취를 만끽한다. 어디 여름뿐인가. 누마루 난간에 기대어 앉아 변화무쌍한 자연의 정취를 즐기는 일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누마루 뒤로는 경사진 지형을 활용해 화단을 조성한 화계(花階)가 있다. 이 화계는 규모는 작아도 징광문화가 ‘2021년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심사위원들은 요즘 보기 드물게 전통미를 잘 살린 정원이라고 평가했다. 화계 옆으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ㄱ자 형태의 안채를 볼 수 있다. 안채 마당에도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그런데 내부는 예상 밖의 모습이다. 아궁이가 있는 재래식 부엌이 아니라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세탁기를 들여놓은 현대식 부엌이 자리하고 있다. 욕실에는 수세식 변기가 설치되어 있고, 욕조에는 샤워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천장 안에는 조명등을 설치했고, 보일러 시설도 갖추었다. 차 씨는 한옥에서 사는 것은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를 제때 뽑지 않으면 정원이 엉망이 되듯이 한옥도 부지런히 보살피고 고쳐가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존과 보수 2000년 초, 서울에서는 북촌 보존 캠페인이 일어났다. 조선 시대에 세도가들이 모여 살았던 북촌은 기품 있는 전통 한옥들이 다수 남아 있는 곳이다. 이 한옥들을 보존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민간 단체 중 하나가 ‘한옥 아낌이 모임’이다. 이 단체가 선택한 방식은 한옥을 사서 불편한 곳을 수리하고 직접 들어가 사는 것이었다. 그들과 친분이 있었던 차 씨는 그 무렵 사별한 남편이 남긴 징광문화를 운영하기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있던 중이었다. 징광리로 가면 남편이 옮겨 놓은 한옥에서 살 계획이었지만, 일상을 영위하기에는 이런저런 불편함이 많았다. 그는 이 단체의 회원들과 함께 문제를 하나씩 해결했다. 그 결과 한상훈 가옥 내부는 실용적이고 기능적으로 리노베이션되었고, 2년 후인 2003년부터 그와 가족들의 본격적인 한옥살이가 시작되었다. 한옥을 보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무와 흙 등 자연 재료로 짓는 집이어서 사람뿐만 아니라 벌레와 동물들에게도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주재료인 목재에는 곰팡이가 쉽게 핀다. 대나무를 엮고 흙과 짚을 섞어 채운 흙벽에는 벌레가 생긴다. 흰개미는 나무 구멍으로 침투해 안쪽에서부터 집을 갉아먹는다. 예전에는 쥐는 물론이고 구렁이까지 집 안에 들어앉았다는 이야기가 흔했다. 석재로 지은 서양 건물과 비교해 보면 목구조인 한옥은 내구성이 약하고 수명이 짧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잘 보존된 한옥이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엄청난 노력과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고쳐 살고 있는 집도 그런 문제를 안고 있다. 내부의 목재는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외부 공기에 노출되는 부분은 곰팡이가 슬어 검게 변한다. 나무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뒤틀어지는 부분도 있다. 흙벽도 여름에는 곰팡이가 피고, 비를 맞은 부분은 약해져 흙이 부슬부슬 떨어져 내린다. 지난여름에는 폭우로 돌담이 무너져 열흘이 넘도록 아들과 함께 다시 쌓았다.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은 한옥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기와이다. 바람결에 날아온 씨가 싹을 틔우고, 이슬로 인한 이끼와 새똥도 기와를 훼손한다. 손상된 기와 틈으로 박쥐들이 들어와 떼를 지어 산 적도 있다. 차 씨가 안채 윗방에서 손녀들과 함께 시루떡을 만들고 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얼마 전 보수한 사랑채 기와지붕이 보인다. 한옥은 자연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부지런히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 집이기도 하다. 돌과 흙으로 쌓아 올린 담장 아래 각종 장을 담은 옹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징광문화 내 가마에서 구운 것으로, 어깨가 넓고 윗배가 부른 남부 지방 옹기를 재현함으로써 맥이 끊어질 뻔한 이 지역 전통 옹기를 되살렸다. 자부심의 원천 차 씨는 한옥에서 사는 것은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를 제때 뽑지 않으면 정원이 엉망이 되듯이 한옥도 부지런히 보살피고 고쳐가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생스러운데 왜 계속 한옥을 돌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와서 보고 ‘예뻐요’, ‘좋아요’ 감탄하면 그 한마디에 힘을 얻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족이죠. 새벽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힘든 노동으로 손가락 관절이 휘어졌는데도 말이죠. 정서적으로 한옥만큼 좋은 집도 없어요. 저뿐만 아니라 아들, 며느리, 심지어 어린 손주들까지 이 한옥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이 집은 우리 가족에게 자부심의 원천이랍니다.” 최근에 그는 대단한 결단을 내렸다. 기와를 교체해야 하는데 전통 기와로 할 것인지 아니면 신식 기와로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이미 주변 한옥들은 가볍고 견고하며 반영구적인 강판(鋼板) 기와로 지붕이 바뀌었다. 아들도 이제는 강판 기와로 바꾸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통 기와는 비용과 유지 보수의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전통 기와는 정부의 지원 없이 개인이 고스란히 부담하기에는 상당히 큰 액수이다. “사람 마음이 참 희한해요. 처음에는 이웃집 강판 기와가 그렇게 보기 싫더니 자꾸 보니까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기합리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우리도 그 기와로 바꾸었어요. 전통 기와가 좋긴 하지만 워낙 비싸고 유지하기도 힘드니까,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었어요. 우리는 기존의 전통 기와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프레임을 짜 강판 기와를 얹었어요. 그렇게 바꾸고 나니 앞으로 50년은 지붕 걱정을 안 해도 되겠다, 안심이 되기도 했어요.” 따지고 보면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한 한옥에서 과연 쾌적하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과거보다 사람들의 키도 훨씬 커진 데다가 현대식 주방과 욕실, 냉난방, 단열 등 삶을 편리하게 해 주는 문명의 이기를 외면하고 살기는 어렵다. 전통적인 한옥 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그런 한옥을 만드는 장인들도 이제는 귀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옥은 짓거나 보존하는 데 양옥보다 훨씬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문화재처럼 오롯이 보존해야 할 한옥도 있지만, 사람이 일상을 누리는 집은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전통 한옥의 특성을 보존하되 현대 생활에 맞게 기능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그는 한상훈 가옥에서 살지 않는다. 결혼한 아들과 손주들을 포함하여 3대가 함께 살기에는 공간이 부족해서다. 그는 남편이 징광문화의 정원 언덕 위에 직접 지었던 흙벽 기와집에 머무르고 있으며, 아들 부부는 그 옆 벽돌벽 기와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상훈 가옥과 흙벽 기와집, 벽돌벽 기와집…. 이 세 채의 집이야말로 시대와 사람에 따라 변화해 온 한옥의 변천사가 아닐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

Features 2021 WINTER 873

자연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 비좁은 공간, 층간 소음 같은 불편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탈(脫) 아파트의 대안으로 한옥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 북서쪽 외곽 북한산 자락에 지은 한옥에서 6년째 살고 있는 한 부부의 경우도 그렇다. 낙락헌(樂樂軒) 주인 내외가 부엌 식탁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IT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남편 이병철(李秉哲) 씨와 방송작가로 일하다 은퇴한 아내 김은진(金恩辰) 씨는 오랫동안 아파트 생활을 하다가 북한산 자락 아래 은평한옥마을의 자연 풍경에 매료되어 이곳에 한옥을 짓고 6년째 살고 있다. 한옥은 근현대 들어 크게 두 차례의 변곡점을 거쳤다. 첫 번째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졌다. 19세기 후반 이 땅에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서울 남산 자락의 산 사면(斜面)인 충무로나 회현동 일대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본인 유입이 점점 늘고 이에 따라 또 다른 주택지가 필요해지면서 총독부는 조선인 고관대작들의 고급 한옥이 즐비했던 북촌 일대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독립운동 및 민족 운동 단체에 기부를 많이 해 훗날 일제로부터 핍박을 당하기도 했던 부동산 개발업자 정세권(鄭世權 1888~1965)은 조선 시대로부터 수백 년 역사를 지닌 북촌이 일본식 주택촌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북촌 일대의 큼직큼직한 한옥을 사들여 필지를 잘게 쪼갠 다음 소형 한옥을 지어 조선인들에게 분양했다. 이것이 이른바 가운데 마당을 둔 ㅁ자 구조의‘도시형 한옥’이 출현하게 된 배경이다. 이로써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밀려나지 않고 주거권을 지켜낼 수 있었으며, 서울의 대표적 한옥촌인 북촌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변화는 2000년대 들어서 일어났다. 당시는 현대적 생활 양식과 맞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한옥이 하나둘 헐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에 서울시는 한옥을 보존하기 위한 대책으로 ‘한옥등록제’를 도입했다. 집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비용 일부를 시가 지원함으로써 한옥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환경 개선에 도움을 주고 문화적 유산을 지키자는 취지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것이 2010년 이후 조성되기 시작한 은평한옥마을이다. 서울 북서쪽에 자리한 이곳은 뉴타운 선정 지역을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는 일반적인 정책을 뒤엎고, 한옥 단지도 매력 있는 주거 유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한 뒤 IT 관련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병철(李秉哲) 씨와 방송작가로 일하다 얼마 전 은퇴한 김은진(金恩辰) 씨 부부도 이곳에 산다. 즐겁고 또 즐겁다 부부는 자신들이 아파트 외에 다른 주거 형태는 전혀 고려해 보지 않았던 전형적인 ‘아파트주의자’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들에게 삶의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 벌어졌다.“이곳에 한옥을 짓기 전까지 서울 왕십리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어요. 대부분 그렇듯이 저희도 윗집 사람들이 쿵쿵 걸어 다니는 소리를 비롯해 각종 소음으로 고생했어요. 층간 소음 때문에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도 서로 밝게 인사를 못할 정도였죠. 게다가 창밖으로는 다른 집 창문이나 건물 벽만 보였고요. 조금 과장하자면, 답답한 감옥 같았어요. 변화가 필요했죠.” 부부가 아파트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다. 이들은 단독 주택을 짓기 위해 택지를 알아보러 다니던 중 은평한옥마을의 북한산 풍경에 압도되었다고 말했다.“능선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맑지, 그 맑은 물에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지, 근처에 아름다운 사찰 진관사도 있고요. 땅과의 인연이라는 게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어요.” 흥미로운 점은 애초 서양식 단독 주택을 지으려 했던 이들 부부가 한옥을 짓기로 생각을 바꾼 이유였다. 부부는 집을 지을 터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한옥이 더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2016년, 집이 완공되자 부부는 ‘낙락헌(樂樂軒)’이란 당호를 붙였다. 즐겁고 또 즐겁다는 뜻이다.대체로 서양 건축물과 한옥은 구조와 재료가 상이하다. 벽난로로 난방을 하는 서양 건축물은 벽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주요 재료가 무거운 소재라서 벽체와 지붕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창문이 작아야 한다. 게다가 창에 나무로 만든 덧문까지 달았으니 자연스레 외부와 시각적 연결이 차단될 수밖에 없었다. 한옥은 이와 정반대다. 일단 재료부터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소재인 나무라서 창을 크게 만드는 데 있어 보다 유리했다. 사실 나무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통풍을 위해 창을 크게 내야 했는데, 그 창문은 종이로 마감을 하게 된다. 한여름에는 문을 아예 접어서 천장에 매달 수도 있었다. 이를 통해 한옥은 매우 개방적인 성격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볼 때 시선 높이와 방향, 각도를 고려해 집을 짓는다. 창을 기능적인 구조물로만 보지 않고 계절 따라 변하는 바깥 풍경을 담는 액자로 생각했기에 자연을 내 집 정원처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차경(借景)’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 한번 보세요. 지금은 단풍이 찬란하지만, 겨울이 오면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인 풍경을, 또 봄이 되면 무채색이었던 풍경이 연두색으로 변해가는 걸 볼 수 있어요. 창을 통해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보다 더 치열하게 생을 반복하고 있는 자연을 만날 수 있어요. 자연의 섭리를 비롯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지요.” 통창을 크게 낸 부엌 식탁에 앉은 김은진 씨가 바깥 경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두 기둥과 처마가 만들어 낸 프레임 바깥엔 붉게 물든 단풍과 잎이 노랗게 변한 느티나무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가을바람에 날리는 오색 낙엽의 군무까지 더해졌다. 밖에서 한옥을 볼 때는 미학적으로 분할된 건물의 면과 선이 아름답지만, 안에서 밖을 내다볼 때는 결국 풍경이 핵심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2층에 자리한 3칸 대청과 그 아래로 보이는 앞마당. 김은진 씨는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을 감상하기 위해 소박한 정취의 야생화를 골라 심었다. 침실 오른쪽으로 멀리 북한산 자락이 보인다. 부부는 바깥 경치를 적극적으로 즐기기 위해 창문에 창살을 틀고 한지로 마감하는 전통 방식 대신 통유리창을 시원하게 냈다. 마당의 매력 마당도 한옥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의 원천이다. 벽이 곧 담이 되는 서양 건축물과 달리 외부를 향해 개방적 구조를 지닌 한옥의 경우엔 담을 둘러 프라이버시를 확보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담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 전통적으로 담은 비교적 값싼 소재인 돌과 흙으로 만들다 보니 한여름 집중호우 때 물에 녹아 허물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높게 쌓지 않았다. 또한 낮은 담은 집 안에서 근경과 중경, 원경에 이르는 깊이감 있는 경치를 차경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건물과 담장 사이에 만들어진 마당은 온전히 사적인 집 내부와 바깥 자연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완충 지대 역할을 한다. “저희랑 비슷한 시기에 한옥을 지은 이웃이 있어요. 그분들 역시 전에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주말이면 두 딸아이와 함께 캠핑장이든 어디든 밖에 나가야 하는 의무감이 있었대요. 집이 답답해서 아이들이 보채니까요. 그런데 이 동네에 한옥을 짓고 들어온 뒤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다고 해요. 굳이 다른 데 갈 필요 없이 여름에는 마당에 미니 수영장을 설치해 물놀이를 하고, 겨울엔 그릴을 놓고 바베큐를 하고요. 삶이 훨씬 풍요로워졌다는 얘기죠.” 남편 이병철 씨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파트에 살 땐 시간만 나면 자꾸 집 밖으로 벗어나려 했는데, 이사 온 후부터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간다”고 말했다. 아내 김은진 씨가 그 말을 받아서 이었다. “마당에 일부러 야생화를 가져다 심었어요. 달맞이꽃과 붓꽃, 접시꽃 같은 것들 말이죠. 소박하면서도 여운을 주는 야생화의 멋이 한옥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꽃이 지면 저 꽃이 피고, 저 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이 피고…. 이 집에는 저희 부부만 사는 게 아니라 꽃들도 함께 살고 있는 거죠.” 전통의 여러 요소 가운데 마땅히 지향해야 할 점을 따르며 시대에 맞게 더욱 발전시켜 가는 것이 ‘계승’이다. 반면 그와 같은 가치 판단 없이 무조건적으로 옛것을 고집하는 것은 ‘답습’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부부가 택한 것은 당연하게도 계승이다. 창을 기능적인 구조물로만 보지 않고 계절 따라 변하는 바깥 풍경을 담는 액자로 생각했기에 자연을 내 집 정원처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차경(借景)’이 발달할 수 있었다. 실용적 계승 “단독주택, 그중에서도 한옥을 건축하기로 했을 때 결심했던 게 한옥을 짓되 요즘의 생활 스타일에 맞게 기능은 실용적으로, 스타일은 모던하게 하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바깥 경치를 더 오롯이 즐기기 위해 저희는 종이창 대신 유리창을 택했고요. 처마 선도 지나치게 길게 빼지 않았어요. 대들보도 너무 두꺼우면 자칫 육중해 보일 수 있어 가능한 얇게 깎았고요. 한옥에 살겠다는 이유로 저희를 집에 맞출 수는 없잖아요. 집이 우리 삶에 맞게 지어져야죠.” 남편의 말이다. 실제로 이 집은 1층과 2층이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1층은 콘크리트 슬래브 구조로 지어서 그 안에 거실과 세탁실, 신발장, 그리고 중정(中庭)을 들였다. 기존 한옥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쓰임새를 지닌 공간들이다. 반면에 한옥 특유의 전통적 미감을 바탕으로 설계한 2층은 차담(茶啖)을 즐기는 부부를 위해 대청을 시원하게 뽑아냈다. 대청 옆으로는 입식 부엌을 두었다. 그리고 2층은 채광과 차경에 유리하게끔 기둥과 기둥 사이를 유리창으로 마감했다. 이 현대적인 구조와 부재가 부챗살 모양으로 뻗어 있는 서까래(椽木) 선자연(扇子椽)의 고풍스러움과 잘 어우러진다. “한옥은 잘 관리하면 100년도, 200년도 간다고 하잖아요. 못을 쓰지 않다 보니 혹시 부재(部材)에 문제가 생기면 지은 순서와 반대로 해체한 뒤에 보완하고 재조립하면 되니까요. 이렇게 생명력이 강한 집에 살게 되다니, 지금도 만족하지만 앞으로 저희 가족에게 어떤 긍정적 변화가 찾아올지 기대가 돼요.” 부인의 말이다.

미래를 향한 진화

Features 2021 WINTER 1033

미래를 향한 진화 오늘의 한옥에는 여러 스펙트럼이 공존한다. 전통적 격식을 갖춘 고택부터 1930~70년대에 지어진 도시형 주택, 현대적 일상을 영위하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내부를 개량한 가옥까지 형태가 다양하다. 더 나아가 한옥의 정수에서 영감을 받은 창의적 실험이 담긴 집들도 등장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에 위치한 1930년대 도시형 한옥을 개조한 이 집은 협소한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마당 일부에 유리 지붕을 얹어 거실로 탈바꿈시켰다. ⓒ 박영채(Park Young-chae 朴榮采)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를 가득 메웠던 한옥은 아파트 단지와 현대식 주택 건설에 밀려 사라질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서구식 호텔보다는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옛집의 정취를 즐기는 한옥스테이를 선호하고 평범한 카페보다 한옥 카페를 더 세련되게 여기는 풍조가 생겨났다. 요즘 많은 젊은 부부들은 햇살이 드는 한옥 마당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여유롭게 살고 싶은 꿈을 꾼다. 사람들이 이처럼 한옥의 매력에 빠지는 이유는 우선 마당에 있다. 한옥 마당은 계절을 가까이 느끼게 하며, 가사와 여가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이다. 다음은 소재이다. 한옥을 건축적으로 간단히 정의한다면 ‘마당을 중심으로 나무, 돌, 흙, 종이로 지은 집’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을 감싸는 공간이 자연의 일부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현대에 매우 주목할 만한 매력적인 가치다. 또 다른 요인은 방과 마루이다. 마루는 밝고 시원한 개방적 공간감을, 방은 안락하고 포근한 공간감을 지닌다. 여름의 공간인 마루와 겨울의 공간인 방이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나란히 조화를 이루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창의적인 결합이다. 최근의 한옥은 21세기의 건축 기술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동시대의 문화와 융합하며 변모하고 있다. 리모델링 한옥을 비롯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현대 한옥이나 다양한 구법과 결합한 유연한 하이브리드 한옥, 양옥이지만 한옥의 정서가 느껴지는 한옥 같은 집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건축가로서 나와 동료들이 그동안 설계했던 집들을 통해 한옥에 나타나고 있는 진화의 몇 가지 의미 있는 양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현대적 삶과의 밸런스 1939년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에 지어진 이 집은 여러 해 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비어 있었다. 지붕 일부가 무너져 있기는 했지만, 실력 있는 대목이 지었는지 비례와 짜임이 좋고 보존 상태도 매우 양호했다. 이 집의 새 주인이 된 가족은 부부와 자녀를 합쳐 모두 다섯 식구로, 각자가 원하는 공간을 마련하기에는 기존 규모가 많이 협소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부를 해체하고 지하에 부부 침실과 거실을 두려고 구상했지만, 오래된 한옥이 주는 고풍스러움과 마당이 마음에 들어 이 집에서 살기로 결심한 가족을 위해서는 적합하지 않은 계획이었다. 어떻게 하면 한옥의 정취를 느끼면서도 편리하고 다채로운 삶을 누리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대청을 주방과 식당으로 하고, 마당 일부를 아트리움 공간의 거실로 만들기로 했다. 주방과 식당이 가족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도시형 한옥의 핵심인 마당을 거실로 만드는 것은 격식에 어긋나는 파격적인 일이었기에 고민이 깊었다. 하지만 유리 지붕을 덮어 거실이 된 마당에서 가족들이 시간을 보내면 한옥의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따라 아트리움에는 외부 차양을 두어 날씨에 맞게 햇빛을 조절하고, 기단에 마루를 얹어 앉거나 누울 수 있게 했다. 이 집을 고치는 일은 지나간 시간과 현재의 삶을 조화시키는 과정이었다. 키가 큰 건축주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바닥을 낮추었고, 오래된 창들을 부분 해체하여 새로운 부재를 덧대어 고쳤다. 하수도 공사를 하면서는 바닥을 파헤칠 수밖에 없어 오래된 타일 바닥을 잘 들어낸 후 타일 하나하나에 붙은 모르타르를 떼어내 다시 깔았다. 원래 부엌이었던 욕실은 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간 공간으로 상부의 다락 장선을 그대로 두면서, 장독대에 있던 1960년대 스테인리스 욕조를 공장에서 연마해 욕실에 배치했다. 192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고 이에 따라 인구가 과밀해지자 서민들의 주거 문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대규모 필지를 잘게 쪼개어 지은 도시형 한옥이다.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 등 건물이 따로 구분되어 있던 전통 한옥과 달리 도시형 한옥은 대개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ㄷ자나 ㅁ자의 정방형으로 지어졌다. 전형적인 ㄷ자 형 구조인 천연동 가옥에는 오래된 한옥의 정취가 남아 있다. ⓒ 박영채(Park Young-chae 朴榮采) 은평한옥마을에 위치한 낙락헌은 현대적 구조의 1층과 전통 한옥 형태인 2층이 계단을 통해 이어져 있다. 기능과 성격이 다른 두 공간이 공존하는 이 집은 현대 한옥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한다. ⓒ 안홍범(Ahn Hong-beom 安洪範)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낙락헌(樂樂軒)은 북한산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서울 은평한옥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집이다. 가까이는 녹음이 우거진 맹꽁이 습지와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처음에는 도시형 한옥처럼 ㄷ자 모양의 배치를 생각했으나 이러한 내향적 구성으로는 부부가 원하는 전망 좋은 집을 구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2층에 누마루 식당, 3칸 대청, 침실, 욕실을 배치하고 거의 모든 공간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외향적인 구성으로 변경했다. 이 집에는 한옥을 전통 건축이 아닌 현대 건축의 중요한 주제로 보는 건축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현재의 삶과 호흡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전통적 요소와 현대 건축을 유연하게 결합했고, 두 개의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이 위아래에 공존하는 새로운 형식의 공간을 실험해 보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원래 한옥에는 없는 현관과 주차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필로티 구조로 누마루를 들어올린 후 그 아래에 주차와 수납 공간, 현관을 설치했다. 1층 실내에도 썬큰(sunken) 마당과 채광창, 계단을 통한 자연스러운 레벨 변화를 주어 2층과 달리 모던한 스타일의 거주 공간으로 만들어 보았다. 하이브리드 한옥 실험 하동 한옥문화관은 한국 현대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박경리(1926~2008 朴景利)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유명한 경남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 뒤편에 자리한 숙박 시설이다. 멀리 남쪽으로 섬진강과 평사리 평야가 보이며 사방으로 가깝고 먼 산들에 둘러싸여 자연 경관이 뛰어나다. 주거로 쓰이는 집은 아니지만 이곳의 관리동은 전통 목구조와 현대식 중목구조를 결합한 건축으로, 주변의 풍경을 끌어안은 투명한 공간감과 함께 기존 한옥과는 다른 현대적 감각의 실내와 외관을 지니고 있다. 이를 테면 전통 한옥의 대청이 그러하듯 풍경 앞에 그대로 열려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리셉션 홀에는 완전히 문을 밀어 넣을 수 있는 창호 시스템을 설치해 대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지도록 했으며, 대들보 없이 시원하고 개방적인 느낌도 줄 수 있었다. 즉 공간을 열어 자연의 풍광을 누릴 수 있는 전통 한옥의 미학을 하이브리드 구법과 디자인으로 해법을 찾아낸 작업이다. 어쩌면 미래의 한옥은 여기서 나아가 전통 목구조가 없는 기와지붕집이 될 수도 있으며, 그 기와지붕마저 사라진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상상해 본다. 경기도 파주 주택단지 안에 자리하고 있는 ‘파주 k주택’은 한옥은 아니지만 한옥의 정서를 살린 집이다. 동서로 길게 뻗은 대지 형태에 맞춰 건물을 일자형으로 배치함으로써 빛이 풍부하고 계절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있는 집으로 설계되었다. ⓒ 박영채(Park Young-chae 朴榮采) 파주 k주택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기둥과 도리, 서까래를 중목구조 부재로 바꾸어 전통 민가의 대청처럼 개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거실이다. ⓒ 박영채(Park Young-chae 朴榮采) 최근의 한옥은 21세기의 건축 기술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동시대의 문화와 융합하며 변모하고 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의 숙박 시설 하동 한옥문화관의 관리동이다. 이 건물은 전통 목구조와 현대식 중목구조를 결합하여 기존 한옥과 다른 현대적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바깥 경치를 끌어들이는 ‘차경’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살렸다. ⓒ 박영채(Park Young-chae 朴榮采) 미래의 한옥 파주 k주택(Paju k House)은 주택 단지 한가운데 자리한 집이다. 오랫동안 부부는 ‘한옥은 아니지만 한옥의 정서가 느껴지는 집’에 대한 생각을 키워 오다 설계를 의뢰했다. 우리는 일조에 유리한 일자형 배치로 방향을 잡고 부부 침실과 거실, 식당, 부엌이 전면에 늘어서도록 했다. 식당에는 앞쪽에 온실과 다용도실을 덧붙였다. 이로써 동서로 긴 대지 형상과 어울려 어디서나 빛이 풍부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집이 되었다. 또한 기둥과 도리, 서까래 등을 중목구조 부재로 바꾸어 거실을 만들었다. 안팎의 경계가 없는 투명한 공간감, 3칸 입면의 품격과 전통미가 느껴지면서 여유와 아름다움을 지닌 거실을 의도한 것이다. 시스템 창호를 목구조면 뒤로 숨기고, 상부 창을 투명하게 하여 서까래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보이게 했는데, 이 덕분에 거실에 들어서면 3칸의 기둥과 보만 눈에 띄어 전통 민가의 대청처럼 열려 있는 느낌이 들 수 있었다. 이 집은 한옥의 모양을 흉내 내어 현대 건축으로 만든 집이 아니다. 애초에 마당의 존재감을 먼저 고려하고 여기에 전통적 미감과 현대적 공간감을 가미하여 만든 집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집은 ‘미래의 한옥’ 중 하나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집이 완성되고 이사를 한 건축주로부터 “정말 한옥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의도대로 여유와 아름다움을 지닌 한옥 같은 집이 완성되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는 2층 한옥

Features 2021 WINTER 879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는 2층 한옥 전통 한국식 건축에서 2층 구조가 보편화되지 못한 이유로 온돌을 위층에 적용하기 어려웠던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과거에는 도시 밀도가 높지 않아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도 그 주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이제 2층 한옥은 기술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으며, 주거와 상업 용도로 점점 관심을 끌고 있다. 헤이믈 길 건너편에 최근 문을 연 베이커리 카페 만나밀 실내. ⓒ 안홍범(Ahn Hong-beom 安洪範) 세종시 한옥마을에 지어진 2층 누각 형태의 카페 헤이믈. 입구의 동그란 월문은 이 카페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 윤준환(Yoon Joon-hwan 尹晙歡) 2000년대 후반 이후 상업 시설로 이용되는 한옥에 많은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벽돌 구조와 목구조를 결합시킨 만나밀은 한옥 카페가 발전하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 ⓒ 안홍범(Ahn Hong-beom 安洪範) 주거용 한옥에서 2층 공간은 기존 한옥에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서재나 가족실, 취미실 같은 여가 공간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체부동에 있는 한 한옥에서 2층이 건축주의 작업실로 쓰이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다. 한편 주변 풍광이 좋은 경우에는 시원한 전망을 누리는 누각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건축가로서 2층 주거 한옥 설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처마로 둘러싸인 마당이 있는 1층 한옥의 정서를 유지하면서 2층을 적절한 위치에 적당한 크기로 올려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집을 만드는 것이다. 한편 최근 세종시 한옥마을에 지은 두 채의 상업 시설은 이제까지의 한옥과는 다른 개념과 형태로 계획되었다. 네덜란드어로 천국이란 뜻의 카페 헤이믈(hemel)은 2층 누각이 차들이 다니는 도로에서도 잘 보이도록 디자인했고, 지하 공간에는 썬큰 마당과 함께 조형적인 계단을 두어 현대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대문으로 디자인한 동그란 월문은 이곳의 상징으로 거의 모든 방문자가 사진을 남길 만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헤이믈에 이어 길 건너편에 지은 만나밀(mannamill)은 베이커리 카페로, 넓은 지하에 빵을 만드는 주방을 두고,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놓아 누구나 이동이 편리하게 계획하였다. 이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관으로, 새롭게 조성된 세종 신도시 속에서 ‘오래된 시간’을 느낄 수 있도록 구상하였다. 서양 문물과 우리 전통이 만났던 19세기 말 개화기의 풍경을 떠올리며, 밖에는 붉은 고벽돌을 쌓아 아치문이 있는 파사드를 만들고 뒤로는 마당을 끼고 2층 한옥을 두어 시공간의 깊이감과 함께 이곳에 아이덴티티를 주고자 했다.

한옥, 현대 건축의 모티브가 되다

Features 2021 WINTER 962

한옥, 현대 건축의 모티브가 되다 한옥은 현대 건축가들에게 영감의 보고이기도 하다. 많은 건축가들이 한옥의 평면 구성이나 형태에서 모티브를 얻어 현대 건축과 접목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독특한 미적 성취를 얻는다. 한옥에 내재해 있는 본질적 속성을 포착하여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는 건축가도 있다. 20세기 근대 한국의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Kim Chung-up 金重業 1922~1988)이 대형 전통 목조 건물의 흘림기둥 양식과 화려한 공포를 모티브 삼아 설계한 진주 시내 경남문화예술회관. 1988년 완공된 이 건물은 전통 양식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현대적으로 추상화시켰다. ⓒ 안홍범(Ahn Hong-beom 安洪範) 196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 공로 훈장(Chevalier de l'ordre national du Mérite)을 받은 한국인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40대 초반의 젊은 건축가 김중업(Kim Chung-up 金重業 1922~1988)이었다. 그해는 그의 스승이자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사망한 해이기도 했다. 그는 1945년 해방 후 우리나라 건축계를 이끌었던 1세대 건축가이자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직접 사사받은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1952년부터 1956년까지 파리에 있는 스승의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하고 귀국한 그는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이 땅에 근대 건축을 어떻게 이식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와 함께 우리의 전통 건축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는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 설계(1960)가 그러한 모색이 낳은 첫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채 나눔을 특징으로 하는 한옥의 평면 구성과 지붕의 처마 곡선을 콘크리트로 재현한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과거 모습이다. 완공 3년 후인 1965년, 김중업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 공로 훈장을 받았다. 그동안 여러 번의 증개축으로 인해 지붕이 변형되어 이제는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 김중업건축박물관 지붕 처마 김중업은 당시 정부 주도의 전통 재현 사업들처럼 한옥을 형태만 그대로 모방하여 콘크리트로 다시 짓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대신 한옥의 독특한 공간 구조와 미학을 되살렸다. 한옥의 평면 구성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 별채처럼 각 건물을 채로 나누는 ‘채 나눔’을 특징으로 하는데, 집에서 가장 주된 공간은 바깥주인이 거주하는 사랑채와 안주인이 머무는 안채이다. 사랑채는 남성 가장이 손님을 맞이하는 공적인 성격을 띠며, 안채는 가족들이 생활하는 사적인 속성을 지닌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도 이러한 건물 배치에 착안해 집무 공간인 사무동과 관저 두 동으로 나누었다. 또한 그는 우아하게 치켜 올라간 처마 선도 접목시켰다. 각 건물의 지붕을 몸체와 완전히 분리시켜 하나의 조형 요소로 사용했고, 처마 곡선을 콘크리트로 날아갈 듯이 재현했다. 그런데 사무동과 관저의 지붕 모습이 다르다. 사무동의 지붕이 날렵하게 휘어져 그야말로 날개를 펼친 듯한 모습이라면, 관저 지붕은 평평하여 안정감을 준다. 이는 본래 한옥에서 안채는 실용성에 중점을 두는 데 반해 외부에 노출된 사랑채는 좀 더 화려하게 꾸몄던 것에서 비롯된다. 지붕의 처마 선만 보고도 안채와 사랑채를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대사관을 처음 방문한 사람도 두 건물의 지붕 각도를 보고 업무동과 관저를 구분할 수 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한국에 지어진 프랑스 대사관이라는 기능에 걸맞게 몸체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배운 현대 기능주의에 충실하고, 상징성과 가시성이 크다고 할 수 있는 지붕은 한국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수작이다. 공포와 기둥 1981년 설계 공모에 당선되어 1988년 완공된 경남문화예술회관 역시 김중업이 한옥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경상남도 진주에 자리하고 있는 이 건물은 기둥과 공포(栱包)가 특히 돋보인다. 지붕과 기둥을 연결하는 공포는 대형 전통 목조 건물에서는 요철을 심하게 두고 단청을 칠하는 등 매우 화려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 건물도 활짝 펼쳐진 지붕 아래 기둥들이 공포를 받치고 있는데, 전통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현대적으로 추상화시켰다. 복잡했던 요철은 단순화되어, 멀리서 보면 물동이를 머리에 인 아낙네 같기도 하고, 혹은 머리 위로 한껏 손을 높이 쳐들어 환호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또한 지붕 아래 늘어선 기둥들은 전통 목조 건축의 흘림기둥 양식이 엿보인다. 흘림기둥은 원통형 기둥과 달리 위아래의 지름이 다르다. 배흘림기둥은 기둥 하부의 1/3 지점이 불룩하며, 민흘림기둥은 기둥 하부가 상부보다 굵다. 일반적으로 흘림기둥은 궁궐이나 사찰처럼 규모가 큰 건물에 적용되는데, 멀리서 보았을 때 상하 직경이 같은 원통형 기둥보다 훨씬 안정감을 준다. 공연을 위주로 운영되는 경남문화예술회관은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던 경복궁의 누정 경회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경회루의 상층 나무 기둥이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민흘림 형태이다. 건축가 승효상(Seung Hyo-sang, aka Seung H-Sang 承孝相)의 설계로 1992년 서울 논현동에 지은 단독 주택 수졸당이다. 이 집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외관과 달리 내부는 모든 공간이 마당을 향해 수렴되도록 설계하여 ㅁ자 형 한옥이 지니는 안마당의 정서를 구현했다. ⓒ 김재경(Kim Jae-kyeong 金在經) 안마당 승효상(Seung H-Sang 承孝相)은 우리나라가 성장과 팽창을 향해 내달리던 시기에 거꾸로 ‘빈자(貧者)의 미학’을 추구해 온 건축가이다. 그는 화려한 치장 없이 ‘노출 콘크리트’로 질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해 왔다. 콘크리트로 한옥의 멋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이는 그가 한옥의 진수를 외형이 아닌 내면에서 찾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2년 서울 논현동에 지어진 단독주택 수졸당(Sujoldang 守拙堂)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이 집은 건축주가 199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미술사학자 유홍준(兪弘濬) 교수라는 점도 관심을 모았다. 본래 한옥은 널찍한 마당을 둔 채 앞뒤로 건물을 배치하지만, 근대에 들어서 점차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넓은 땅을 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 1920~30년대부터 일명 ‘ㅁ자 집’이라 불리는 도시형 한옥이 서울 북촌 일대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ㅁ자 같다 하여 이런 별칭이 붙었는데, 안마당을 둘러싸고 문간방, 사랑방, 건넌방, 대청, 안방이 빙 둘러 이어져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안마당이었다. 수졸당의 외관은 노출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한옥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그 공간 구조가 영락없는 한옥이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1층에는 거실과 2개의 침실이 자리하고 2층에는 3개의 침실을 놓았는데, 각 방들이 모두 안마당을 바라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내부 동선이 길어 생활하기에 다소 불편하게 설계되어 있다. 동선이란 무조건 짧아야 하고 집이란 되도록 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집을 보고 다소 의아할 수 있다. ㅁ자 한옥에서 안방을 나와 사랑방으로 가는 동선을 생각해 보자. 안방 문을 열고 나오면 대청을 거쳐 댓돌에서 신을 신어야 한다. 그러고는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방 툇마루에 이르러 댓돌 위에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간다. 동선도 길뿐더러 그 사이에 신발을 신고 벗는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데, 오히려 그 점 때문에 공간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안방 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 있고 코앞에 다른 방이 맞붙어 있는 아파트는 동선이 짧아 편리할 수는 있어도 바로 그 이유로 좁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또한 한옥은 마당이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해 주어서 대가족이라도 서로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다. 안방과 사랑방 사이에 대청과 마당이 있기 때문에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한 집에 살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수졸당은 한옥의 이러한 정수를 잘 녹여낸 집이라 할 수 있다.수졸당은‘부족함을 지키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오래된 집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에도 있다. 흔히 건축을 일러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그릇은 되도록 깨끗이 비워져 있어야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올해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막(Mahk)집’은 건축가 조병수(Cho Byoung-soo 趙秉秀)가 한옥의 확장성에 주목하여 노후한 한옥을 개조한 곳이다. 본래의 집에서 지붕과 기둥만 남기고 모든 벽체를 헐어내 실내외의 경계를 없앴다. ⓒ 하지권(Ha Ji-kwon 河志權) 확장성 조병수(Cho Byoung-soo 趙秉秀)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던 오래된 한옥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막(Mahk)집’은 한옥에 내재해 있는 무한한 가변성을 포착한 곳이다. 서양식 주택은 서재, 침실, 식당, 드레스룸처럼 각 방의 기능과 용도에 따른 명칭이 정해져 있다. 반면에 한옥의 방들은 기능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불을 펴고 잠을 자면 침실이 되고, 책상을 펼치고 공부를 하면 공부방이 되며, 밥상을 놓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 식당이 되는 것처럼 공간을 융통성 있게 사용했다. 그런가 하면 사랑채의 사랑방도 평소에는 윗방과 아랫방으로 나누어 쓰다가 손님이 많이 오는 날에는 미닫이문을 열어 큰 방 하나로 터서 쓰기도 했다. 때로 잔치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안방과 대청까지 모두 사용했다. 조병수는 이러한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지 100년이 넘은 고택에서 지붕과 기둥만 남긴 채 대부분의 벽체를 제거했다. 본래 미닫이문이 있던 자리에는 두꺼운 비닐 커튼과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칸막이 벽을 둘렀다. 비닐 커튼을 걷어 올리면 이곳이 과연 실내인지 실외인지조차 모호하다. 막집은 과거에는 살림집이었지만, 현재는 전시장 겸 카페 역할을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연주회도 공연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장소가 된 것이다. 공간의 기능을 처음부터 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다. 흔히 건축을 일러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그릇은 되도록 깨끗이 비워져 있어야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물을 담으면 물그릇, 술을 담으면 술잔이 될 수 있는 막사발과 같은 집, 막집은 그것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이 집은 고택을 재활용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아파트는 콘크리트로 지은 벽식 구조여서 벽이 곧 기둥 역할을 한다. 그래서 화장실과 주방을 수리하거나 벽지와 바닥재를 교체하는 인테리어 공사만 가능할 뿐 벽을 헐어내 방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옥은 기둥이 구조체 역할을 하는 가구식(架構式) 구조이기 때문에 기둥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리모델링이 가능하다. 요즘 사람들이 수십 년 된 집을 헐고 다시 새 집을 짓는 이유는 그 집이 곧 무너질 것 같아서가 아니다. 집들이 당시의 유행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딘지 촌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심각한 자원 낭비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 폐건축 자재가 다량 발생한다. 자원 재활용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조병수의 막집은 더욱 의의가 크다.  

어린 시절 한옥의 추억이 건축가로 이끌다

Features 2021 WINTER 768

어린 시절 한옥의 추억이 건축가로 이끌다 건축가 다니엘 텐들러(Daniel Tändler)는 독일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곳에서 대학도 마쳤지만, 여느 한국인들보다 한옥에 대한 이해가 깊고 몇 채의 한옥을 직접 짓기도 했다. 2014년 서울 을지로 방산시장 골목에 어번디테일(urbandetail Architecture & Design)이라는 건축사무소를 최지희(Choi Ji-hee 崔智喜) 소장과 함께 차리고, 한옥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건축가 다니엘 텐들러가 국내 각 지역을 답사하며 기록한 노트에는 그가 선호하는 소박한 고택의 스케치가 주로 담겨 있다. 목재와 벽돌로 마감한 박공지붕 건물이 눈에 띄는 경기도 광교주택(2018)은 중정을 포함해 3개의 마당을 둔 현대식 주택이다. ⓒ 훅스미(hooxMe) 이상훈(Lee Sang-hoon 李相勳) 서울 종로구 체부동 한옥(2020)은 원래 있던 한옥을 철거한 뒤 신축한 2층 주택으로 오래된 골목의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밖에서는 1층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 훅스미(hooxMe) 이상훈(Lee Sang-hoon 李相勳)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를 둔 다니엘 텐들러는 어린 시절 종종 광주에 있는 외갓집에서 방학을 보내곤 했다. 그곳에서 사촌 형제들과 어울려 놀았던 일도 추억이 되었지만, 한옥이었던 외갓집에 대한 기억도 애틋하게 남아 있다. 그는 독일 괴팅겐대학교(Georg August University of Göttingen)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내내 전공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었다. 그러다가 졸업 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인턴 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그는 이 분야의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던 중 한국 전통문화, 특히 한옥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신영훈(申榮勳) 대목장이 쓴 한옥에 대한 책을 찾아보고, 방학이면 한국에 와서 그가 운영하던 한옥문화원의 안내로 한옥 답사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마음을 정하고 라인베스트팔렌 아헨공과대학교(RWTH Aachen University) 건축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졸업 후 조정구(Cho Jung-goo 趙鼎九) 건축가가 운영하는 구가도시건축(guga Urban Architecture)에 입사해 몇 년간 실무 경험을 쌓은 후 어번디테일 건축사무소를 차렸다. 한옥의 정수를 현대 건축에 접목해 보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도를 해 보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독일 전통 건축과 한옥이 비슷한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독일의 전통 주거 건축에도 목구조 방식이 있습니다. 제 고향에도 중세시대 지어진 민가가 많이 남아 있는데,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벽체를 흙으로 채우는 방법이 특히 한옥과 비슷합니다. 전통 건축은 어느 나라든 기본적으로 돌, 나무, 흙 같은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 닮아 보이는 것 같아요. 어떤 한옥에 특히 관심이 끌렸나요? 저는 궁궐이나 사찰처럼 화려한 건물보다는 안동 수곡(樹谷)고택이나 해남 윤두서 고택 같은 사대부 집을 좋아해요. 조선 시대에는 유교적 관습에 따라 지켜야 할 규범이 엄격했기 때문에 이 집들은 궁궐처럼 화려하고 복잡한 건축 요소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구조가 간단하고 담백하죠. 우리 사무소에서 설계하는 한옥도 경우에 따라서는 복잡하고 화려한 겹처마 대신 홑처마를 만들어 단순하고 질박하게 표현하는 편이죠. 텐들러가 서울 을지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옥의 정수를 현대 건축에 접목해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도를 해 보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한옥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한옥을 짓는다고 하면 보통 조선 시대 한옥을 고스란히 모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의 건축을 현대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요. 요즘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내장 설비를 바꾼다든지 새로운 기능과 공간을 설계하게 되면 과거와 형태가 달라질 수밖에 없죠. 또는 궁극적으로 아예 한옥의 공간적 핵심을 현대 건축과 접목하는 방향으로 작업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한옥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한옥의 외형적 요소를 모방하는 데에서 나아가 한옥의 정수를 잘 녹여내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한옥의 어떤 요소가 현대 건축과 접목될 수 있을까요? 제가 항상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한옥의 에센스를 재해석해 현대 건축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다양하게 해 보고 싶거든요. 한옥의 특징 중 하나가 완전히 성격이 다른 공간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한다는 점이에요. 대청은 무더운 여름을 나기 위해 남방에서 발달한 공간이고, 온돌은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 북방에서 발달한 방식이죠. 공간의 성격을 보면 대청은 개방적이고 화려한 데 비해서 온돌방은 개인적, 폐쇄적이고 심플해요. 이처럼 상반된 요소가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공간 구조의 위계가 매우 섬세한 것도 특징이에요. 마당은 골목과 연결되면서 동선을 자연스레 집 안으로 이끌고 또 대청과도 이어집니다. 대청은 다시 방과 방을 연결하고요. 골목-마당-대청-방으로 흘러가는 공간 구조에서 골목과 마당이 상대적으로 공적인 공간이라면, 대청과 방은 사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어요. 집 안에 공적인 요소와 사적인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죠. 이런 점들을 현대 건축에 잘 응용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체로 건축주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하시는 편인가요? 미묘한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축가로서 제 시각만을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건축주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한옥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 중 하나가 마당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서울 시내에 집을 지으려면 공간이 부족하니 마당을 넉넉히 만들기가 어려워요. 그렇다 보니 건축주가 필요로 하는 면적을 만들면서 동시에 전체적으로 잘 구성된 집을 설계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설계하면서 차근차근 풀어 나갈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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