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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도시를 숨 쉬게 하는 공원

Features 2024 SUMMER

도시를 숨 쉬게 하는 공원 서울숲은 성수동에 또 다른 표정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다. 2005년 개장한 이곳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조성한 국내 최초의 공원이다. 35만 평 부지에 문화예술공원, 체험학습원, 생태숲, 습지생태원 등 네 가지 특색 있는 테마로 구성되었으며, 지역의 생태 및 지리적 특성이 잘 반영되어 도심 속 대표적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한강과 중랑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조성된 서울숲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삼각형 모양이다.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문화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도심 속 여유로운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 서울연구원(The Seoul Institute) 서울숲은 동쪽에서 흘러오는 한강과 북쪽에서 내려오는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에 조성되어 있다. 서울숲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쪽 꼭짓점이 꼬부라진 삼각형 모양이다. 모서리를 따라 흐르는 녹지띠가 주변을 감싼 도로의 소음과 오염 물질을 막아주겠다는 듯 높게 서 있다. 그 삼각 녹지의 내부는 밀도가 각기 다른 숲이 채운다. 도심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간선도로, 강과 바투 붙은 지리적 특성에서 엿볼 수 있듯 서울숲 부지는 과거부터 활용도가 높은 땅이었다. 도시형 공원 서울숲이 자리한 부지는 조선(1392~1910) 시대에는 왕실의 사냥터였다. 1908년에는 국내 최초로 정수장이 설치되어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했다. 이후 골프장, 경마장, 체육공원 등 여러 용도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1990년대 들어 이곳을 주거 및 업무 지역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공원이 부족한 서울 동북부 지역의 시민들에게 도심 속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계획이 실행되었다. 2003년, 서울숲 조성을 위한 설계 공모가 시작됐고, 2005년 6월 마침내 35만 평 규모의 서울숲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서울숲의 봄 풍경. 지천에 피어 있는 튤립들이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 서울시 서울숲은 일반적 형태의 근린공원을 넘어 뉴욕 센트럴파크나 런던 하이드파크처럼 서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도시 숲을 건설하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서울숲 설계 공모에 당선된 동심원(同心圓)조경기술사사무소(Dongsimwon Landscape Design & Constructions)는 이곳이 자연의 영역을 넘어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그 결과 문화예술공원, 자연생태숲, 자연체험학습원, 습지생태원 등 네 개 테마 공간과 한강으로 이어지는 수변공원이 조성됐다. 휴식의 공간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숲에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지하철을 타는 것이다. 서울숲역 4번 출구로 빠져나와 색색의 컨테이너로 구성된 공간 플랫폼 언더스탠드 에비뉴(Understand Avenue) 사이로 들어서면, 서울숲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문화예술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본래 경마장이었던 이곳은 방문객들이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초입 광장에는 경마장을 기념하는 군마상이 있는데, 역동적인 말의 모습이 뒤편의 활력 넘치는 바닥분수와 잘 어우러진다. 공원 깊숙한 곳에 물놀이터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이 바닥분수는 입구와 가까워서인지 여름철 어린아이들의 물놀이 공간으로 사랑받는다. 날이 더워지면 분수 주위로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는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면 물놀이객을 위한 간이 탈의실이 설치되기도 한다. 반면 바닥분수 뒤편으로 뻗은 거울연못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즐거움을 준다. 수심이 얕은 이 연못에는 주변 나무들이 수면에 비쳐 깊은 산중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목마른 새들이 잠시 내려앉아 물을 마시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서울숲 초입에 위치한 거울연못은 수심 3㎝의 얕은 연못으로,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을 비롯해 주변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낸다. ⓒ 서울연구원 나무의 행렬이 흐트러지고 일직선이었던 길이 부드럽게 휘어지기 시작하면 넓은 녹지가 나타난다. 가족마당이라 불리는 이곳은 단풍나무, 메타세쿼이아 등 키 큰 수목들이 길을 따라 하늘로 쭉쭉 뻗은 산책로에 둘러싸여 있다. 시원하게 펼쳐진 넓은 잔디밭은 도시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포장해 온 음식을 펼쳐놓고 먹는가 하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낮잠을 즐기고, 자전거를 타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 시간을 보낸다. 밤이면 미니 스크린을 펼쳐놓고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다. 서울숲에서 강아지들이 가장 많이 뛰노는 공간이기도 하다. 재즈 페스티벌 같은 큰 축제도 주로 이곳에서 열린다. 거울연못 대각선 방향에 자리한 야외 무대에서 시민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이곳은 탁 트인 분지 형태의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어 문화예술 행사들이 자주 진행된다. ⓒ 윤준환(Yoon Joon-hwan, 尹晙歡) 보존을 위한 노력 자연생태숲은 서울숲의 가장 깊숙한 안쪽 공간에 자리한다. 공원을 설계한 조경가는 서울 근교의 울창한 숲을 본떠 비슷한 수종을 심고 밀도를 조정해 야생의 자연에 가까운 공간을 만들어 냈다. 서울숲 규모가 꽤 크다 보니 입구 부근만 둘러보고 돌아가기 일쑤인데, 자연생태숲에 와본 이들은 서울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져 있는 데 감탄하며 거듭 방문하곤 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잡아끄는 것은 바로 꽃사슴 방사장이다. 긴 철조망 너머의 보호 구역에는 꽃사슴 십여 마리가 자유롭게 뛰놀며 살고 있다. 꽃사슴을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사람들은 서울숲의 공중을 가로질러 한강 고수부지로 연결되는 전망 보행교에 오른다. 사슴은 물론 오랜 시간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어 원시림처럼 울창해진 숲을 볼 수 있다. 주변으로는 벚꽃이 많이 심겨 있어 꽃이 피는 봄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은 서울숲에서 가장 높은 공간에 위치해 있는데 ‘바람의 언덕’이라 불리는 이곳의 진가는 가을에 확인할 수 있다. 가득 자란 억새들이 미풍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계절의 고즈넉함을 느끼게 한다. 한편 삼각형 모양 부지의 또 다른 모퉁이에는 기존 유수지를 활용해 만든 습지생태원이 있다. 이 유수지는 과거 홍수를 조절하는 기능을 맡았다. 폭우가 내려 한강이 범람하면 유수지가 그 빗물을 흡수해 큰 수해를 방지하며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유수지 시설 중 몇몇 기둥을 남겨두었는데, 여름이면 기둥을 타고 오른 덩굴이 장관을 연출한다. 습지생태원은 기존 유수지의 지형을 최대한 살리고 목재 관찰 데크를 놓아 새와 습지 식물을 관찰하게 해놓았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의 생태 학습을 위한 체험학습원은 폐쇄된 정수장 시설을 개조해 조성되었다. 특히 침전조 구조물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한 갤러리 정원은 매우 아름다워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벽체와 더불어 보존된 U형 수로에 흙을 채우고 덩굴 식물을 심은 덕분인데, 여름이면 잎이 피어나 넉넉한 그늘을 드리운다. 서울숲의 여름 풍경. ⓒ 서울시 시민 참여 공원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숲과 공원은 분명히 다르다. 숲이 그대로의 자연이라면, 공원은 자연은 물론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는 녹지다. 사람들의 일상, 그리고 주변의 문화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지 못하는 공원은 도시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 서울숲은 그러한 면에서 주목할 지점이 많은 공원이다. 서울숲은 시민들이 계획, 조성, 관리 및 운영 전 과정에 참여한 국내 최초의 공원이다. 계획 과정에서는 워크숍 및 공청회 등을 통해 전문가들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반영했으며, 조성 과정에서는 시민들이 기금을 모으고 수만 그루의 나무들을 직접 심었다. 그 중심에는 2003년 출범한 서울그린트러스트(Seoul Green Trust)가 있다. 이곳은 시민 참여를 바탕으로 서울시 생활권 녹지를 확대 및 보존하고 쾌적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개장 당시부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서울숲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2016년부터 2021년까지는 서울숲을 수탁 운영하기도 했다. 이 기관이 서울숲에서 벌인 다양한 활동은 시민 참여를 통한 공원 관리의 지속 가능성 확보, 주민 참여 프로그램의 내용과 취지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2020 아시아도시경관상 본상을 받았다. 민간 공원 경영의 첫 모델로 그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서울숲의 영향력은 공원 내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원이 위치해 있는 성수동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지역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공공의 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공원을 만들기 위해 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한편 소셜벤처가 밀집해 있는 인근의 특징을 고려해 체인지 메이커들이 서울숲을 즐겁게 향유할 기회도 마련했다. 서울숲은 수제화 제작 등 경공업이 몰려 있어 낙후 지대로 불리던 성수동의 표정을 변화시키며, ‘성수동에 가고 싶은 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의미와 이유가 있는 변화

Features 2024 SUMMER

의미와 이유가 있는 변화 김재원(Kim Jae-won, 金才媛) 대표는 브랜드 설계와 컨설팅을 업으로 하는 기획 집단 아틀리에 에크리튜(Atelier Écriture)를 이끌고 있다. 2014년 성수동에 복합문화공간 자그마치(Zagmachi)를 열었으며, 이후 10년간 개성 넘치는 공간들을 운영하거나 기획하면서 이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카페 자그마치(Zagmachi)는 기존 인쇄 공장의 흔적을 그대로 살려서 내부를 리모델링했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강연이나 전시, 팝업 이벤트를 진행해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했다. 아틀리에 에크리튜 제공 적막한 공장 지대였던 성수동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모했다. 골목골목 줄 서는 맛집과 카페가 즐비하고,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비롯해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대형 패션 편집숍들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한정된 기간 열렸다가 사라지는 기발한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들은 행인들의 발걸음을 유혹한다. 김재원 대표는 공간 콘텐츠를 통해 성수동의 표정을 바꿔 온 기획자이다. 그 시작은 황량한 거리에 문화의 온기를 불어넣은 복합문화공간 자그마치였다. 이후 F&B 공간 오르에르(Orer, 2016)로 성수동 카페 투어족을 불러 모았다. 물건의 선택과 진열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소품 편집숍 W×D×H(2017)와 오르에르 아카이브(Orer Archive, 2018)는 카페밖엔 갈 데가 없었던 초기 성수동에서 귀한 콘텐츠였다. 어른들을 위한 과자점 오드 투 스위트(Ode to Sweet, 2019), 그리고 공간 플랫폼 LCDC 서울(2021)은 성수동의 리테일 신을 한층 다채롭게 만들었다. 2022년에는 기존 오르에르 자리에 문구점 포인트오브뷰(Point of View)를 새롭게 선보였다. 창작자들을 위한 도구를 제안하는 이 공간은 성수동에서 꼭 들러 봐야 할 앵커 매장으로 오늘도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김재원 대표가 이른바 ‘성수동 개척자’로 통하는 이유다. 그녀가 작업한 공간들을 보면 그러한 평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틀리에 에크리튜의 김재원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개성 있는 콘텐츠로 성수동의 리테일 신을 풍부하게 만들어 왔으며, 그러한 이유로 ‘성수동 개척자’라 불린다. 성수동에 터를 잡은 지 10년이다. 변화를 느끼는가? 과거에는 모든 게 지금과 달랐다. 성수동에는 인쇄소가 즐비해 종이를 싣고 다니는 지게차가 자주 지나다녔고, 자동차 정비소들도 많아 슈퍼카가 거리를 채우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처음 이곳에 자그마치를 열었을 때 직원들이 밥 먹을 만한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백반집에 장부를 써 두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순간 보니, 그 가게들이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더라. 지나간 시간을 가장 실감할 때는 이웃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다. 포인트오브뷰 옆에 있었던 미용실이 없어진 지는 오래고, 오르에르에서 낼 케이크를 위해 반죽기를 제작했던 맞은편 기계 공장도 얼마 전 자취를 감췄다. 성수동이 왜 이렇게 뜨거워진 걸까? 성수동만의 매력이 있다. 이곳은 서울 도심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준공업 지대다. 산업은 쇠퇴했어도 건물 마감재로 사용된 붉은 벽돌이라든지 시원한 파사드처럼 공장 지대 특유의 독특한 감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존 용도와 다른 콘텐츠로 공간이 운영되어도 이러한 스케일과 감도는 다른 동네에서 느끼기 어렵다. 지정학적 이점도 있다. 성수동은 강남과 접근성이 좋다. 또한 건국대학교, 세종대학교, 한양대학교 등 인근에 대학을 3개나 끼고 있다는 점에서 젊은 문화가 유입되기 좋은 편이다. ‘성수동 개척자’로 불리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첫 깃발을 꽂았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기도 하다. 자그마치를 냈던 성수이로(聖水二路)와 오르에르가 위치했던 연무장(演武場)길이 점차 유명해졌고, LCDC 서울이 문을 열고 나서는 동(東) 연무장길도 개발되기 시작했다. 우표, 티켓, 전단지, 청구서 등 일시적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종이 아이템들을 벽면에 장식한 카페 이페메라 내부. 고전적 디자인과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잔잔한 감흥을 선사한다. 아틀리에 에크리튜 제공 성수동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런던에서 유학하던 시절 이스트 런던이 개발되는 걸 목격했다. 낙후된 지역에 아티스트들이 들어와서 다양한 문화가 자생하던 시점이었는데,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동네가 확 살아났다. 서울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점, 개발이 안 됐다는 점에서 나는 성수동이 이스트 런던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건국대학교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가르칠 때도 예술디자인대학 학생들이 멀리 서쪽의 홍대까지 가서 노는 게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성수동에는 맛있는 커피를 파는 곳이 없었다. 당시 국내에 스페셜티 커피가 퍼지고 있었는데 그 커피를 맛보려면 홍대나 이태원까지 가야 했다. 그래서 자그마치를 열게 되었다. 자그마치에 대해 성수동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는 평이 많았다. 인쇄소를 개조해 만들었는데, H빔 등 기존 설비를 그대로 살리거나 버려져 있던 물품들을 소품으로 활용해 지역색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디자인했다. 당시만 해도 100평이 넘는 큰 규모의 카페는 서울 시내에 거의 없었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아티스트나 디자이너 같은 트렌드를 리딩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손님들 중 재미있는 분을 강사로 모시는 ‘손님의 발견’이나 아마추어 과자 아티스트들의 장터였던 ‘과자전’ 같은 이색적인 기획도 많이 했다. 오르에르를 오픈할 무렵에는 성수동이 이전보다 활기를 띠게 된 것 같다. 그 시기에 대림창고, 어니언 등 성수동의 유명한 카페들이 거의 동시에 오픈했다. 경쟁자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시너지가 생겼다. 성수동에 가면 뭔가 특별한 공간들이 있다는 입소문에 버스를 대절해서 카페 투어를 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오르에르에서 사용하는 접시나 커트러리, 기물 같은 걸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라이스프타일 숍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점이다. 주택과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 오르에르는 가정집 정원을 연상시키는 고즈넉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유명해진 공간이다. 2022년 문을 닫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장소로 남았다. 아틀리에 에크리튜 제공 현재 포인트오브뷰의 전신을 그때 구상한 것인가? 오르에르에 나뭇가지나 돌멩이를 주워다 장식한 적이 있는데, 그걸 사가겠다는 사람들이 자꾸 나타나서 난감했다. 그때 사람들이 물건이 아닌 안목을 가져가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다. 큐레이션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르에르 아카이브를 열었고, 문구를 워낙 좋아해서 포인트오브뷰를 시작했다. 복합문화공간에서 F&B, 라이스프타일 숍으로 이어지는 공간 기획은 성수동의 변화와 성장에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 개성 있는 브랜드가 계속 살아남아야 동네의 생명력이 유지된다. 성수동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The Sims)처럼 이곳에 재미있는 걸 계속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막연히 ‘그냥 해볼까?’는 없었다. 그때그때 의미와 이유가 있었고, 모두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흐름도 잘 탔다. 마침 인스타그램이 생기면서 잘 기획된 스몰 브랜드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도 갖춰졌다. 작업한 공간들이 모두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브랜드에도 문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테리어나 공간에 흐르는 음악, 심지어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런 말투를 썼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디테일을 치밀하게 정립한다. 나는 이렇게 정립해 놓은 캐릭터를 상황에 맞게 계속해서 만져 간다. 브랜드나 공간도 돌처럼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생물처럼 움직인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피봇팅을 잘해야 진짜 ‘완성도’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관찰이 가장 중요하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기획의 실마리가 생긴다. 앞으로 또 어떤 공간을 내고 싶은가? 새로운 브랜드 론칭보다는 포인트오브뷰의 다른 버전을 시도해 보고 싶다. 기존 콘셉트는 유지하면서 공예에 가까운 물건들만 모아둔다든지 혹은 종이나 도자기만 큐레이션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문구점 포인트오브뷰 내부 모습. 김 대표는 ‘문구는 이야기를 가공하는 가장 원초적인 도구’라는 생각으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각종 문구류와 오브제를 섬세하게 큐레이션했다. 성수동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코스를 추천해 달라. 성수동 일대를 산책하듯이 천천히 돌아보길 권한다. 지금 성수동에는 엄청나게 많은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기획이 잘된 팝업 스토어는 그 자체로 재미있는 체험 요소이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 리스트를 뽑아 두고 하나씩 둘러보면 좋겠다. 그리고 사이사이 성수동의 랜드마크를 하나씩 둘러보면 어떨까? 포인트오브뷰, 메쉬커피, 아시아 음식점 플레이버타운, 수제 맥주 양조장 서울브루어리,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의 플래그십 스토어, LCDC 서울 같은…. 비교적 오랫동안 운영되어 온 곳들과 금방 사라지는 팝업 스토어를 고루 둘러보는 게 지금의 성수동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 같다.

국내 소셜벤처의 산실

Features 2024 SUMMER

국내 소셜벤처의 산실 2010년대 중반부터 소셜벤처와 관련된 기관, 단체들이 성수동에 모이면서 이 지역에는 민간 주도를 통한 소셜벤처 밸리가 형성되었다. 국내 소셜벤처의 명실상부한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성수동은 과거 준공업 지대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롭고 활기차게 변신 중이다.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가 운영하는 헤이그라운드 전경. ‘커뮤니티 오피스’를 표방하는 이곳은 성수동에 소셜벤처 클러스터가 형성되는 데 한몫했다. 루트임팩트 제공 “전세 사기 예방은?” “기후 위기 문제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성수동 한복판에 자리한 코워킹 오피스 헤이그라운드(Heyground) 1층 로비 게시판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 있다.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소셜벤처의 체인지 메이커들(Changemakers)이 적어 놓은 것들이다. ‘체인지 메이커’는 사회∙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의 관심사는 건강한 삶, 공평한 교육 기회, 기후 변화, 지속 가능한 도시, 양질의 일자리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저녁 늦게까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혁신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밤에도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는 헤이그라운드를 ‘성수동의 등대’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클러스터의 시작 현재 성수동에는 소셜벤처 창업과 육성, 성장에 필요한 대부분의 기관과 단체들이 한데 모여 있다. 2002년 설립되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소셜벤처 창업 집단으로 알려진 크레비스(Crevisse)를 비롯해 2008년 창립된 국내 최초의 임팩트 투자사 소풍벤처스(Sopoong Ventures)가 성수동에 둥지를 틀고 있다. 액셀러레이터 기업 임팩트스퀘어(Impact Square), 소셜 임팩트 벤처 캐피털 옐로우독(Yellowdog) 등 굵직한 기업들도 이곳에 자리한다. 성수동에 소셜벤처 클러스터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2010년대 중반으로, 그 중심에는 ‘커뮤니티 오피스’를 표방하는 헤이그라운드가 있다. 이곳은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Root Impact)가 운영한다. 사회 곳곳의 체인지 메이커들을 발굴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다. 루트임팩트의 허재형(Johan Jaehyong Heo) 대표는 2022년 ‘오바마 아시아 태평양 리더(Leaders Asia-Pacific)’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바마 재단은 “육성 프로그램에서 제도 개선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헤이그라운드는 커뮤니티 오피스라는 공간의 목적을 고려해 인테리어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각 층을 계단형 라운지로 연결한 것도 입주자들의 원활한 커뮤니티를 위해서다. 사진은 헤이그라운드 1호점에 입주한 체인지 메이커들이 6층과 7층을 연결하는 라운지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루트임팩트 제공 루트임팩트는 2017년, 성수동에서 가장 번화한 연무장길 근처에 헤이그라운드 1호점을 마련했다. 2년 후에는 서울숲 인근에 2호점을 추가로 열었다. 여러 업체들이 들어와 내부 시설을 함께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유 오피스라고 할 수도 있지만, 기존 공유 오피스와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다. 우선 헤이그라운드는 공간을 완성한 뒤 입주 업체를 모집하는 일반적인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구상 단계부터 입주 예정인 단체들을 모아 공간을 함께 설계했다. 국내 소셜벤처 업계를 이끌어 가는 20여 개의 기업들이 이 과정에 참여했다. 한편 이곳에 들어오고 싶은 기업은 심층 인터뷰와 내부 심사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루트임팩트가 코워킹 오피스를 마련한 이유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 도전하는 소셜벤처들이 한곳에 모였을 때 각자에게 필요한 정보와 지식, 경험이 공유되고 시너지가 창출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루트임팩트는 이러한 공간을 만들 장소로 서울 시내 몇 개 지역을 검토했으며 적정한 토지 가격, 접근성, 지역적 특성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성수동을 낙점했다.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성수동의 분위기가 활기차고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도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네트워크 형성 헤이그라운드가 성수동에 자리를 잡을 즈음 때맞춰 소셜벤처의 성장을 지원하고 투자하는 이들이 이 지역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에 더해 정부와 지자체까지 가세하면서 성수동은 준공업단지라는 과거의 역사를 뒤로하고 소셜벤처 밸리로 새롭게 변모하게 되었다. 성수동 관할 성동구청은 2017년부터 매년 사회 혁신을 꿈꾸는 소셜벤처 기업의 성과를 공유하고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엑스포를 개최한다. 지난해 서울숲 일대에서 열린 ‘서울숲 소셜벤처 엑스포’는 청소∙환경, 교육∙돌봄, 제조∙유통, 문화∙예술, 인쇄∙출판 분야의 160여 개 소셜벤처가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이 행사에서는 특히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주제로 한 기업의 사례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이와 관련해 방문객들은 전시 체험존에서 휠체어 동력 보조 장치,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 내비게이션,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장애인 택시 등 소셜벤처 기업들의 아이디어가 만들어 낸 결과물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성동구청은 2018년 성수동에 소셜벤처 허브센터를 세우고, 이곳을 거점으로 각종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2020년 기존의 ‘성수 IT 종합센터’를 ‘서울창업허브 성수’로 개칭하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소셜벤처를 지원 중이다. 입주 기업에 사무 공간 제공 및 맞춤형 액셀러레이팅, 사업화 등 기본적인 지원과 함께 다양한 네트워킹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소셜벤처가 성수동으로 집결한 데는 네트워크 안에 속하고 싶은 심리도 영향을 끼쳤다. 네트워크에 속해 있을 때 정보 교류와 협력을 통해 더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헤이그라운드를 위시해 KT&G가 운영하는 상상플래닛(KT&G SangSang Planet) 같은 플랫폼도 성수동 소셜벤처 밸리 형성에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KT&G 상상플래닛은 소셜벤처의 성장과 교류를 돕는 플랫폼으로, 업무 공간 제공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들을 지원한다. 사진은 입주 기업 구성원들의 심신 건강을 위해 운영하는 웰니스 프로그램. ⓒ KT&G 상상플래닛 체인지 메이커들은 이런 플랫폼들이 제공하는 다채로운 커뮤니티 프로그램들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며, 그 덕분에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쳐낼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예컨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어 제대로 공부하기 힘든 아이들을 위해 학습용 콘텐츠를 만드는 글로벌 에듀테크 기업 에누마(Enuma)는 헤이그라운드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소셜벤처와 교류해 정보를 얻고 우리만의 정체성도 만들 수 있었다. 소셜벤처로서 중심을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헤이그라운드의 지지와 지원 덕분이다.” 돌봄 서비스 플랫폼 사업을 펼치는 예비사회적기업 째깍악어(Tictoccroc)도 “4명으로 시작해 구성원 70여 명으로 성장하기까지 우리가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헤이그라운드가 물과 영양분을 줬다”고 말했다. 미래를 위한 과제 한국에서 소셜 임팩트 생태계가 태동한 시기는 2000년대이고, 본격적인 성장은 2010년대 중반부터이다. 그 성장을 견인한 주인공들은 헤이그라운드를 비롯해 성수동 소셜벤처 밸리를 형성하고 있는 단체와 기관들이다. 특히 성수동 소셜벤처 밸리는 민간 주도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자못 크다. 또한 문화와 예술, 스타트업이 결합해 지역이 변화한 사례는 많지만, 소셜벤처를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고민해 왔다는 점은 성수동만의 특별함이다. 2014년쯤 성수동엔 약 40개 정도의 비영리 단체와 사회적기업이 있었지만, 소셜 임팩트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2016년 153개였던 관련 기업과 단체가 2022년에는 525개로 많이 늘어났다. 코워킹 오피스들은 대개 공간 구조부터 가구에 이르기까지 입주자들의 창의적인 협업을 돕는 장치들을 세심하게 마련한다. 사진은 2016년 서울특별시건축상(Seoul Architecture Awards) 우수상을 받은 코워킹 플랫폼 카우앤독(CoW and DoG).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되 개방형 공간으로도 유연하게 변신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진효숙(Chin Hyo-sook, 陳孝淑) 그러나 이제 초기 성장기인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들도 많다. 지난해 5월 성수동 일대에서 벌어진 는 컬처 테크놀로지, 아트, 음악, 게임, 패션 등 다양한 주제로 열린 축제이다. 이 행사의 키노트 스피치 세션에서는 지난 10년간 빠르게 변화해 온 성수동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미래에 대한 우려 또한 거론되었다. 성수동이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를 기반으로 스타트업의 성지로 거듭나긴 했지만, 이곳 역시 큰 지가 상승폭을 기록하며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또한 임대료 상승과 상업화는 이곳에 둥지를 튼 소셜벤처들이 꿈꾸는 지속 가능성과 상충된다. 그런 맥락에서 소셜벤처의 생태계를 넘어 소셜벤처 커뮤니티를 이루는 2.0 단계를 고민할 시점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속 가능한 지역 커뮤니티 개발은 성수동의 소셜벤처들이 다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과제가 되었다.

팝업 스토어의 성지

Features 2024 SUMMER

팝업 스토어의 성지 오프라인 상점들이 불황을 겪고 침체에 빠졌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성수동은 오히려 도약할 수 있었다. 팝업 스토어 덕분이다. 이곳에서는 일 년 내내 크고 작은 팝업 스토어가 끊이지 않는다. 패션, 미술, 음악, 라이프스타일 등 콘텐츠도 다양하다. 이제 팝업 스토어는 성수동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적 요소가 되었다. 2023년 성수동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 중 하나인 버버리의 성수 로즈(Seongsu Rose) 전경.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의 첫 컬렉션으로 구성된 이 팝업 스토어는 외관과 내부를 장미 문양으로 화려하게 꾸며 큰 볼거리를 제공했다. ⓒ 버버리코리아 성수동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인파로 거리가 빼곡하다. 그중 상당수는 팝업 스토어에 방문하려는 사람들이다.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행렬이 성수동 곳곳에서 자주 목격된다. 팝업 스토어는 웹페이지의 팝업 창처럼 단기간 운영됐다가 사라지는 오프라인 매장을 말한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6개월까지도 운영된다. 서울 시내 유명 상권들을 비롯해 전국 대도시 번화가에서 흔히 열리는데, 유독 성수동의 팝업 스토어가 주목받는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성수동 팝업 스토어 목록이 활발히 공유된다. 게시물 댓글에선 친구를 태그하며 “이번엔 여기 가자!”고 제안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성수동의 매력 수많은 브랜드들이 팝업 스토어를 열기 위해 성수동을 찾는 건 이곳이 현재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권이기 때문이다. 우선 지리적 특성이 남다른데, 서울숲과 뚝섬 한강공원을 끼고 있어 자연 친화적이다. 이는 다른 지역의 핫플레이스와 큰 차이점이다. 또한 서울 어디로든 이동하기 쉽고, 외곽으로 빠져나가기도 좋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상업 시설과 고급 아파트들도 분포해 있다. 수요층까지 뒷받침되는 셈이다. 또 강남대로나 청담동(淸潭洞), 압구정동(狎鷗亭洞) 등 강남권에 비해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다. 옛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도 흡인 요인이다. 성수동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 레미콘 생산 시설이 있었던 공업 지역이었다. 철공소, 인쇄소, 자동차 정비 공장을 비롯해 구두 공장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곳들이 파산했고 동네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 이 지역의 기류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저렴한 임대료, 공업 지역의 색다른 분위기에 끌린 젊은 사업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다. 이들은 공장과 창고를 개조해 카페와 식당, 편집숍 등을 만들었고 특색 있는 매장이 늘어나면서 이질적인 요소들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성수동 특유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성수동으로 모이면서 유통업계도 이곳을 주목하게 됐다. 온라인 쇼핑몰만 운영했던 브랜드들도 성수동에 팝업 스토어를 열어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성수동에는 공장과 창고로 사용되던 넓은 평수의 건물들이 많기 때문에 스케일이 큰 팝업 스토어를 구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다. 휴양지 리조트 콘셉트로 운영된 음료 브랜드 클룹(CLOOP)의 제로소다 팝업 스토어. 투어 미션을 완료한 참가자들에게 어메니티 키트를 증정하는 한편 인력거를 타고 성수동 반경 1km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해 큰 인기를 끌었다. 공간 플랫폼들 팝업 스토어는 성수동이 막강한 신흥 상권으로 부상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성수동에선 통상 일주일 동안 팝업 스토어 50여 개가 열린다. 인기 있는 대관 장소는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쉽고 면적이 넓은 곳이다. 그중 성수동과 건대입구역 사이에 위치한 커먼그라운드(COMMON GROUND)는 200개의 컨테이너로 구성되어 독특한 외양을 자랑한다. 2015년 국내 최초의 팝업 쇼핑몰을 표방하며 오픈한 이곳에서는 K-팝 아티스트들의 팬 사인회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최근 들어 특색 있는 팝업 스토어 연출을 위해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진은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가 2023년 8월부터 약 한 달 동안 커먼그라운드에서 운영한 팝업 스토어. 국내 디자인 스튜디오 스티키몬스터랩(Sticky Monster Lab)과 협업했다. ⓒ The Absolut Group 연무장길에 자리한 에스팩토리는 1970년대 지어진 섬유 공장, 체육관, 기숙사, 자동차 정비소 네 개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6년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아트페어나 콘서트, 콘퍼런스 등 규모가 큰 행사가 주로 개최된다. 이 외에도 대림창고, 마크69, 쎈느 같은 카페를 겸한 복합문화공간들이 팝업 스토어 장소로 자주 애용된다. 최근에는 팝업 스토어 전용 공간을 대여해 주는 임대업이 등장했으며, 패션 기업 무신사의 스퀘어 성수(SQUARE Seongsu)처럼 기업이 직접 공간 플랫폼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단순한 공간 매개를 넘어 팝업 스토어의 콘텐츠 기획, 마케팅, 운영 등 프로세스 전반에 걸친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도 나타났다. 프로젝트 렌트(Project Rent)가 대표적이다. 부동산 업계에 의하면 인기가 좋은 장소들은 내년까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경험 그동안 성수동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의 면면을 살펴보면 뷰티, 패션을 비롯해 F & B, 라이프스타일, 자동차, 미술, K-팝, 영화, 캐릭터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또한 국내 브랜드만 성수동을 찾는 것도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도 팝업 스토어나 쇼룸 형식으로 성수동에 닻을 내린다. 지난해 가을, 패션 브랜드 버버리가 글로벌 프로젝트 ‘버버리 스트리트(Burberry Streets)’의 일환으로 성수동에서 약 한 달 동안 성수 로즈(Seongsu Rose), 성수 보틀(Seongsu Bottle), 성수 슈(Seongsu Shoe) 세 개의 팝업 스토어를 각기 다른 장소에서 진행했다. 이 기간에 성수동 연무장길에서는 몽환적인 보라색과 노란색 장미가 그려진 화려한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뷰티 브랜드 이니스프리가 2024년 4월부터 5월까지 성수동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 ‘이니스프리 디아일 성수’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 젊고 창의력 넘치는 인재를 모집한다는 재미있는 콘셉트로 이목을 끌었다. 디즈니 플러스(Disney+)가 자사 오리지널 시리즈 < 삼식이 삼촌(Uncle Samsik) > 공개를 앞두고 2024년 5월 연무장길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 전경. 빵집과 사무실 등 작품 속 배경을 그대로 구현했다. 최근 성수동에서 진행되는 팝업 스토어들은 단순히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방문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을 제공하거나 화려한 비주얼 아트를 선보이는 등 다채로운 경험을 유도한다. 이에 독창적인 기획력, 전문적인 마케팅은 이제 팝업 스토어 성공에 필수적인 역량이 되었다. 일례로 주류 브랜드 선양(鮮洋)은 지난해 겨울, 보트를 타고 체험존으로 입장하는 ‘플롭 선양(Plop Sunyang)’을 운영해 매우 큰 인기를 끌었고, 올해 4월에는 입장할 때 주어진 칩을 활용해 게임을 즐기는 카지노 콘셉트의 ‘선양 카지노’를 운영했다. 하이트진로 역시 올해 4월 실내형 테마파크 형식으로 ‘진로골드 판타지아(Jinro Gold Fantasia)’를 개최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팝업 스토어의 부작용 팝업 스토어는 성수동의 부동산 시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팝업 스토어의 공간 임대 방식과 비용은 일반적인 상가 임대와 확연히 다르다. 대여 기간과 면적, 입지 등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 건물의 경우 일주일 대관료 시세가 1~3억 원에 달하기도 한다. 팝업 스토어의 비용 상승에 법적인 제약이 없다 보니 부르는 대로 값을 받을 수 있고, 월세보다 수익이 높아 임차인들도 팝업 스토어를 선호하는 추세다. 팝업 스토어의 성행으로 성수동 임대료가 치솟자, 일각에서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아 온 가게들이 밀려나면 상권 전체가 침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1970년대부터 인기를 끌던 성수동 갈비 골목이 최근에 사라졌다. 수십 곳에 달하던 골목 내 식당들이 폐업하거나 이전하면서 두세 곳으로 줄었는데, 임대료 상승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원주민이 밀려 나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성수동도 피하진 못한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성수동 상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오래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언제 어느 때 방문하더라도 각양각색의 팝업 스토어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고, 새롭고 생동감 넘치는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제화, 오래된 로컬 콘텐츠

Features 2024 SUMMER

수제화, 오래된 로컬 콘텐츠 성수동은 국내 최대의 수제화 산업 집적지로서 1980~90년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 환경의 변화로 인해 차츰 사양길로 접어드는 추세다. 이에 지자체에서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치며 수제화 산업의 부활을 꾀하고 있으며, 가업을 이은 디자이너들과 기술자들이 젊은 감각을 내세우며 성수동 수제화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 관역 내에는 이 지역이 전국 수제화 산업의 중심지임을 상징하는 다양한 표식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최태원(Choi Tae-won, 崔兌源) 성수역 2번 출구로 나가면 뚝섬역 방향으로 600미터 남짓 수제화 거리가 이어진다. 지금은 유명 패션 브랜드나 코스메틱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성수동의 랜드마크가 되었지만, 본래 이 지역을 상징하던 것은 수제화였다. 성수동 수제화 산업의 역사는 196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내 굵직한 제화업체 중 하나였던 금강제화(Kumkang, 金剛製靴) 본사가 인근 금호동(金湖洞)으로 이전했고, 1970년대 초에는 에스콰이아(Esquire)가 성수동에 공장을 세웠다. 이들 기업의 하청 업체들이 자연스레 하나둘 성수동으로 옮겨 오면서 이 지역은 국내 최대 규모의 수제화 산업 집적지가 되었다. 이후 전국의 구두 장인들이 몰려들면서 1980~90년대에는 수제화의 메카로 자리 잡으며 번성했다. 성수역 지하철 역사에는 이 지역 수제화 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 ‘헤리티지 SS’가 조성되어 있다. 성수동을 관할하는 성동구(城東區)가 2021년 마련한 이곳은 국내 수제화 산업의 역사를 비롯해 작업 지시서, 구두 모형 등도 볼 수 있다. 성수동의 터줏대감들 현재 성수동 수제화 산업은 예전 같지 않다. 노후한 시설과 제한적 판로, 치솟는 임대료 등 제반 여건이 매우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가죽과 부자재 매장은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고, 구두 가게들도 임대료가 더 저렴한 후미진 골목으로 밀려났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성수동 수제화가 다시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초부터다. 서울시는 명장과 우수 숙련인을 선정해 수제화의 가치를 널리 알렸고, 성동구는 성수역 교각 아래 수제화 공동 판매장 FromSS를 마련해 지역 내 소상공인들을 지원했다. 수제화 업체 대표들은 서울성수수제화타운(SSST)이라는 고유 브랜드를 만들고 공동 판매장을 열어 유통 구조를 바꾸고자 했다. 모두 지역 특화 사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성수동에는 40년 이상 경력을 지닌 명장들이 여럿 있다. 이들은 수제화 허브센터의 공방에서 교육생들을 가르치는 멘토로 활약한다. 그중 서울시 구두 명장 1호로 선정된 유홍식(劉洪植) 장인은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의 구두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아빠는 구두장이’를 운영 중인 박광한(朴光漢) 장인도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다. 전태수(全泰洙) 명장은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 영부인 김정숙(金正淑) 여사가 신었던 버선 모양의 구두로 화제를 일으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가 방한했을 때 신었던 꽃신도 그의 작품이다. 성수동에는 수십 년 동안 수제화를 만들어 온 솜씨 좋은 장인들이 여럿 있다. 그중 한 명인 전태수(全泰洙) 명장은 성수동 수제화 산업의 산증인으로 50년 넘게 구두를 만들어 왔다. 그는 신발 제작뿐 아니라 디자인 연구와 소재 개발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 서울시 성수동 연무장길을 걷다 보면 큼지막한 빨간 하이힐 모형이 한눈에 들어오는 건물이있는데, 이곳이 전태수 명장의 JS슈즈디자인연구소(JS Shoes Design Lab)이다. 매장 안에는 장인의 솜씨를 짐작하게 하는 화려하고 섬세한 구두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쪽에 놓인 꽃신은 2022년 tvN이 방영한 드라마 에서 배우 김혜수(Hye Soo Kim, 金憓秀)가 신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이다. 당시 한복에 어울리는 굽이 높은 스타일로 몇 켤레 만들어 달라는 주문에 제작했다. 이곳을 지나 몇 분 걷다 보면 남성용 구두 가게 더젠틀박(The Gentle Park)이 나온다. 이곳의 구두는 어퍼에 그러데이션을 주며 염색하는 파티나(Patina) 공법으로 유명하다. 뚝섬역 근처 찰스보툼(CHARLSE VOTUM)도 오래된 수제화 브랜드이다. 김철(金撤) 대표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에서 20년 넘게 일한 남성용 구두 전문가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회사를 그만뒀다. 유럽 감성에 성수동 장인들의 기술을 더한 제품으로 살롱 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2층 단독 주택을 개조해 만든 숍의 짙은 녹색문을 열고 들어가면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고객들을 반긴다. 수제화는 신발과 재료의 종류가 가지각색이다 보니 사용되는 도구 또한 매우 다양하다. 사진은 성수동의 오래된 수제화 브랜드 중 하나인 찰스 보툼 매장 내부로, 작업 단계마다 필요한 각종 도구가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다. ⓒ 최태원 2세들의 등장 최근에는 가업을 승계한 2세들이 성수동 수제화 산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성수역 3번 출구 인근 건물 2층에 위치한 피노아친퀘(Finoacinque) 쇼룸에서는 곡선 형태의 실루엣을 강조한 구두를 만날 수 있다. 편안한 착화감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이곳의 구두는 굽 높이가 5㎝를 넘지 않는다. 이곳은 김한준(金漢俊) 기술자와 이서정(李敍正) 디자이너가 의기투합해 6년 전 문을 열었다. 김한준 공동 대표는 수제화 제작 공장을 운영하던 부모님으로부터 도제식으로 구두 제작과 관련한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이들이 제작한 구두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고객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2월 파리 패션위크의 트라노이(Tranoi) 수주회에 참가해 5,000유로 이상 상담 성과를 얻었다. 뉴욕과 파리, 밀라노 등 셀렉트숍 바이어들과 생산 수량을 상담 중이다. 김한준 대표는 “패턴 제작, 바느질, 창 부착, 최종 검수에 이르기까지 제조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기 위해 모든 패키지에 장인들 이름을 적고 있다”고 말했다. 장인 정신을 중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수제화 품질에 자신이 있어서다. 구두 디자인을 전공한 백인희 대표가 운영하는 베티아노 내부. 가업을 이은 젊은 디자이너와 테크니션들이 성수동 수제화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최태원 연무장길에 위치한 베티아노(VETIANO)도 외국인 고객들이 찾는 곳이다. 대학에서 구두 디자인을 전공한 백인희(白仁熙) 대표는 40년 이상 구두를 만들어 온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아 가업을 이었다. 매장 내부에는 플랫 슈즈부터 스니커즈류, 굽 있는 트렌디한 구두까지 다양한 종류의 신발이 진열돼 있다. 백 대표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는 수십 년 경력이 있는 전문 기술자들이 구두를 만든다. 덕분에 신발 가격을 합리적으로 책정할 수 있고, 더욱 세심한 고객 서비스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공장과 연계하여 일관성 있는 품질을 보장한다는 얘기다. 2세들의 젊은 감각을 비롯해 성수동 수제화 산업을 위한 다각적 노력이 어떤 결실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들어 낸 제품들이 고객들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붉은 벽돌

Features 2024 SUMMER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붉은 벽돌 성수동은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례로 꼽히는 지역이다. 그 기저에는 건축 재료인 붉은 벽돌이 있다. 과거 경공업 중심지였던 성수동에는 1970~90년대 지어진 붉은 벽돌 공장과 주택들이 다수 남아있다. 지역적, 역사적 특성을 지닌 붉은 벽돌 건축물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확산하면서 성수동은 특색 있는 도시 경관을 만들어 가고 있다. 패브리커(Fabrikr)는 대상에 내재한 맥락과 물성을 파악해 이를 자신들의 조형적 언어로 표현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이들이 공간 디자인을 맡은 카페 어니언 성수 역시 마찬가지. 건물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살려 주변과 이질감 없이 어울리도록 했다. ⓒ 허동욱(Heo Dong-wuk, 許東旭) 벽돌은 가장 오래된 건축 재료 중 하나로, 개항 이후 급격하게 수요가 증가하면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화재나 날씨 변화에 잘 견디고 생산, 운송, 시공이 간편한 구조재였기 때문이다. 철근콘크리트가 등장하면서는 콘크리트 구조 위에 다양한 방식으로 덧붙여 외장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벽돌은 기본적으로 표준화된 형태와 크기를 가지고 있는데 쌓기 방법이나 모르타르 배합, 시공 방식에 따라 마감재로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현재 서울에서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성수동을 걷다 보면, 붉은 벽돌을 입은 건축물들이 이곳의 고유한 풍경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그 풍경이 단시간에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도 직감하게 된다. 고유한 정취의 보존 성수동은 붉은 벽돌 건축물이 전체 건축물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성수동에 유독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많은 이유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이곳은 근대기부터 공업 지역으로 조성되었고, 1962년 도시계획법이 제정되면서는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되었다. 1966년 시행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거치면서 현재의 격자형 가로(街路) 체계도 갖추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경공업 지역으로 발전하면서 많은 영세 업체들이 붉은 벽돌로 공장과 창고를 지었고, 1980~90년대에는 주거 지역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붉은 벽돌로 된 소규모 주택들이 양산되었다. 붉은 벽돌 건축물들이 성수동의 시각적 구심점을 이루게 된 것은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성수동은 또 다른 분기점을 맞는다.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성수동의 제조업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창고가 방치되는 일이 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버려진 공장과 창고들을 최소한으로 리모델링해 사진작가의 스튜디오나 디자이너들의 쇼룸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간들이 화제가 되면서 성수동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도 달라졌다. ‘힙’한 문화예술 지역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관 주도의 변화도 일어났다. 준공업 지역들은 대부분 기존 건축물들을 철거하고 신축을 통해 도시 재생을 계획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과거의 흔적들을 모두 지우고 획일화된 도시 풍경을 만들어 내기 쉽다. 성수동은 과거의 산업 유산을 토대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여타 지역과 차별된다. 성수 WAVE는 JYA 건축사사무소(JYA-RCHITECTS)가 오래된 다가구 주택을 개조해 상업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곡면을 구현하는 시공 방식을 통해 이웃 주민들의 불편함은 최소화하면서도 상가 입주자들에게는 개방감을 제공했다. ⓒ 황효철(Hwang Hyochel, 黃曉哲) 성수동을 관할하는 성동구청은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그로 인해 형성된 고유한 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의지로 2017년 「서울특별시 성동구 붉은 벽돌 건축물 보전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역사∙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붉은 벽돌 건축물의 보전 및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 건축물 입면의 경관적, 재료적 특성 보존을 통해 지역의 고유한 정취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도시 재생 방식을 택한 것이다. 보전과 증축 성수동 카페 거리에 위치한 대림창고는 성수동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게 된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1970년대 정미소 용도로 지어졌으며, 정미소가 문을 닫은 이후에는 오랫동안 창고로 사용되었다. 2000년대 후반 한 사진작가가 이 건물을 촬영 스튜디오로 활용하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2011년부터는 대형 패션쇼와 록 공연, 전시회 등이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현재 이곳은 카페와 갤러리를 겸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 2016년 오픈한 카페 어니언 성수 역시 50여 년 동안 슈퍼마켓, 식당, 가정집, 정비소, 공장 등으로 변형되어 온 시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살리며 리모델링되었다. 수십 년 동안 정미소와 창고로 사용되었던 대림창고는 외관은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리모델링해 현재 갤러리 카페로 운영된다. 성수동을 대표하는 도시 재생공간으로서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2021년 오픈한 공간 플랫폼 LCDC 서울은 자동차 정비소였던 500평의 건물을 재탄생시킨 사례다. 이곳은 레노베이션과 증축이 함께 이루어졌는데, 기존 건물의 벽돌 외벽을 그대로 남기면서도, 새로운 콘크리트 벽을 엇갈리게 설치하여 과거와 현재가 대비되면서도 겹쳐 보이도록 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기존 건물의 질서를 어떻게 남겨놓을 것인가?’에 대해 ‘박제’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지난해 완공된 서울도시제조허브(Seoul Urban Manufacturing Hub), 일명 ‘성수 사일로 (Seongsu Silo)’는 2018년 공개 공모 당시 붉은 벽돌 입면을 포함한 기존 건물 일부를 존치하되 증축하는 설계 지침을 따라 설계됐다. 성수동 일대의 붉은 벽돌 건축물을 보전하고 지원하는 정책 아래 진행된 공모였던 것이다. 기존 공장은 콘크리트 골조 사이를 벽돌로 채워 만든 라멘조(ramen-structure) 건물이었다. 건축가는 이를 새로운 유형의 공장으로 설계하면서 담아야 할 공간 요소를 전면의 독립된 실린더 형태로 표현했다. 이곳의 공간 중 슈즈 사일로는 전면은 유리, 후면은 벽돌로 계획해 개방성과 독립성을 모두 확보했다. 또한 건물 외부와 내부 바닥에 동일한 벽돌 재료가 연속적으로 이어지게 함으로써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심리적 경계를 낮췄다. 전면은 유리, 후면은 벽돌을 사용해 개방성과 독립성을 동시에 확보한 슈즈 사일로.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는 기존 공장을 리모델링해 상품 제작, 기획, 유통, 마케팅, 소비가 하나의 공간에서 통합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하는 한편 붉은 벽돌을 사용함으로써 성수동의 경관적 특질을 반영했다. ⓒ SoA, 사진 신경섭(Kyungsub Shin, 申璟燮) 가능성에 대한 탐구 성수동에서는 현재 신축 공간에도 붉은 벽돌을 활용하고 있다. 2021년 오픈한 생각공장은 성수동에 자리 잡은 수많은 지식산업센터들 중 하나로 연면적 2만여 평 규모로 지어졌다. 애초에 옛 성수동 공장 단지의 건축적 맥락을 이어가려는 생각으로 붉은 벽돌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업무동 저층부와 상가동 전체를 붉은 벽돌로 마감했는데, 이는 업무 공간과 상업 공간이라는 서로 다른 용도의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새것과 헌것 사이의 연결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벽돌을 사용한 것이다. 또한 건물 내부에도 2층 높이의 벽면을 붉은 벽돌과 유리벽돌로 채워 과거에서 미래로의 전환을 내포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지식산업센터 생각공장은 두 개의 오피스동과 하나의 상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설계를 맡은 디자인 전문 그룹 디엠피(dmp)는 중심부에 위치한 상가동 성수낙낙(Seongsu NakNak)을 붉은 벽돌로 전면 마감하는 한편 다른 두 빌딩의 저층부에도 붉은 벽돌을 사용해 세 건물에 연속성을 부여했다. 사진은 성수낙낙 내부 모습. ⓒ 윤준환(Yoon Joon-hwan, 尹晙歡) 이처럼 각기 다른 방식과 전략으로 붉은 벽돌을 활용하여 지어지는 주요한 상업 공간, 오피스 공간, 공공 공간들은 성수동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물리적 매개로서 성공적인 도시 재생에 기여하고 있다. 도시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장소의 고유한 풍경 언어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데이비드 레더배로우(David Leatherbarrow)와 모센 모스타파비(Mohsen Mostafavi)가 공저 『표면으로 읽는 건축(Surface Architecture)』에서 지적했듯이 역사에 대한 향수로 과거의 형태를 모방하여 디자인하는 것은 다양한 재료와 시공 방식이 제공하는 새로운 기회를 저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건축 재료로서의 구법과 그 가능성을 계속해서 탐구해 나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성수동의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 단순히 표피적인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슴슴한 육수부터 달곰한 갈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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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슴한 육수부터 달곰한 갈비까지 을지로에는 개업한 지 수십 년이 된 오래된 식당들이 많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든든한 한 끼를 책임져 온 노포는 음식 맛도 일품이어서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의 노포는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으며,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간직하고 있다. 을지로 3가에 위치한 노가리 골목은 해가 지면 노가리와 생맥주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서울시는 이 골목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 이유신(Lee Yusin, 李侑信) 서울 한가운데 자리한 을지로는 노포가 많은 대표적인 지역이다. 골목마다 인쇄소, 철공소, 목재소 등이 들어서 있는 이곳에는 낡은 간판을 내건 식당과 술집들도 즐비하다. 1960년대 말에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인 세운상가가 건립되면서 사람들로 더욱 북적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번성했던 이 일대는 점차 낙후된 지역이 되었다. 빠른 속도로 급변한 한국의 산업 구조 때문이었다. 인쇄 종이는 빠르게 컴퓨터 파일로 대체됐다. 늦은 밤까지 빛났던 공장의 불빛은 점차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수명을 다한 듯했던 거리는 2010년대 말부터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옛 모습 그대로인 골목과 공장에 예술가들은 공방이나 스튜디오를 차렸다. 예술가들이 모이자 골목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노포 앞에는 음식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생겼다. 을지로의 노포들은 오랫동안 그저 낡고 오래된 식당,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나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주로 가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 을지로가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 노포들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맛집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을지로 대림상가 옆 삼겹살 골목은 최근 젊은 층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을 정도로 인기다. 소규모 공업사들 사이사이 들어서 있는 식당들은 대부분 문을 연 지 20년이 넘은 노포들이다. ⓒ 서울관광재단(Seoul Tourism Organization) 소문난 평양냉면 가게 평양냉면은 현재 북한의 수도인 평양(平壤) 지역의 향토 음식이다. 장시간 끓인 고기 육수에 메밀국수를 말아서 먹는 음식이다. 1930년대 평양 사람들이 서울에 진출해 냉면집을 내면서 여름철 최고의 별미가 되었고, 점차 대중화되었다. 평양냉면은 밍밍한 육수에 돌돌 말아서 담은 면, 그 위에 올린 채 썬 배와 달걀 지단이 전부이다. 언뜻 보기엔 별다른 맛이 없을 것 같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담백한 맛에 끌리게 되는 음식이다. 지하철 을지로4가역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우래옥(Woo Lae Oak, 又來屋)은 미식가들이 손에 꼽는 평양냉면 가게다. 1946년 가게를 차린 장원일(張元一) 씨 부부도 평양에서 왔다. 1972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후손들이 대를 이어 지금까지 운영한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름은 서북관(西北館)이었다. 서북은 한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지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개업하고 4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주인 내외도 다른 이들처럼 가게 문을 닫고 피난을 떠나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영업을 재개하면서 현재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다시 찾아온 집’이라는 뜻이다. 우래옥은 날이 갈수록 번창해 하루에 2천 그릇을 판 적도 있다고 한다. 을지로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외지에서도 많이 찾아왔다. 지방에서 서울에 놀러 온 이들은 창경궁을 관람하고는 꼭 이곳에 들러 냉면을 먹고 갔다. 맛의 비결은 소고기를 오랜 시간 끓여 만든 육수에 있다. 면의 재료가 되는 메밀의 함량도 높다. 매우 부드러워서 입 안에 넣자마자 면이 후루룩 넘어간다. 우래옥에 평양냉면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자리가 오목하고 가운데가 불룩 솟아난 불판에 구워 먹는 불고기 맛도 일품이다. 심심한 듯하면서 달곰한 양념은 불고기의 풍미를 배가시킨다. 외국인 손님들도 이 불고기를 좋아한다. 우래옥과 더불어 을지로 지역의 소문난 평양냉면 가게로 을지면옥이 있었다. 1985년 개업한 이 가게는 같은 자리에서 약 40년 동안 냉면을 만들어 팔았다. 도심 재개발로 인해 퇴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2022년 6월 25일 마지막 영업일에는 가게 문이 열리기도 전에 100여 명의 손님들이 찾아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들은 을지면옥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평양냉면은 보통 소고기만으로 육수를 만들지만,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동치미 국물을 섞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소금, 식초, 설탕에 절인 무와 채 썬 배를 고명으로 얹는다. 사진은 우래옥의 평양냉면. ⓒ 박미향 1985년 개업한 을지면옥은 을지로의 대표적인 노포 중 하나로 평양냉면이 유명한 식당이었다. 입구부터 노포의 느낌이 물씬 흐르는 이곳은 노년층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젊은 층 사이에서도 한 번쯤 꼭 가봐야 하는 식당으로 꼽히던 곳이다.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2022년 영업을 종료했다. ⓒ 신한카드, 어반플레이(URBANPLAY) 맥주 골목의 시작 중소벤처기업부는 2018년부터 ‘백년가게’ 사업을 벌이고 있다.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 고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온 점포 가운데 역사적 가치가 있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곳을 선정하여 지원하는 정책이다. 을지OB베어(Eulji OB Bear)는 시행 첫해에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 1980년 개업한 이 가게는 생맥주를 판다. 생맥주는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게 주인은 생맥주 통을 상온에 그냥 두지 않고 온도 제어 장치가 설치된 냉장고 안에 보관하며 관리한다. 겨울에는 4℃, 여름에는 2℃를 유지한다. 이 집이 유명해진 데는 언제 가더라도 항상 신선한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안주로 내놓는 노가리구이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노가리는 명태 새끼를 말한다. 가게 주인은 잘 말린 노가리를 연탄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자신이 만든 고추장 소스와 함께 제공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가격도 매우 저렴하게 책정했다. 고소하게 구워진 노가리는 단박에 손님들을 사로잡았다. 맥주 안주로는 이만한 게 없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19.8㎡밖에 되지 않은 작은 술집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에 맥줏집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새로 생긴 가게들에서도 노가리 안주를 팔았다. 사람들은 을지로 3가에 위치한 이 골목을 ‘노가리 골목’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맥주 골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해마다 5월 맥주 축제가 벌어져 골목에 흥겨움이 넘쳐났다. 서울시는 2015년, 이 골목의 가치를 인정하여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고, 을지OB베어를 노가리 골목의 원조로 명시했다. 노포의 비애 중 하나는 건물주와의 마찰이나 도시 재개발로 인한 이전 문제다. 이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뀐 건물주와 5년간 법정 다툼 끝에 2022년 4월 강제 철거되었다. 가게를 아끼는 단골손님들과 시민단체가 철거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곳은 2023년 3월 마포구 경의선(京義線) 책거리 인근에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을지로로 다시 돌아갈 날을 꿈꾼다. 을지로3가역을 기준으로 북쪽에 노가리 골목이 있다면 남쪽으로는 골뱅이 골목이 있다. 1970년대 생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면서 몇몇 가게가 안주로 골뱅이 무침(golbaengi muchim)을 내놓은 것이 현재 골뱅이 골목의 시초로 알려졌다. 이곳의 식당들은 대부분 30년이 넘었다. ⓒ 신한카드, 어반플레이(URBANPLAY) 잘 말린 노가리는 밑반찬으로 쓰이던 식재료였으나, 1980년대부터 술안주로 팔리기 시작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1980년 개업한 생맥주 가게 을지OB베어가 저렴한 노가리 구이를 안주로 내놓은 데서 유래했다. ⓒ 한국관광공사(Korea Tourism Organization)   한결같은 맛과 정성 이 외에도 조선옥, 문화옥, 양미옥 등이 을지로를 대표하는 노포들이다. 이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은 1937년 문을 연 조선옥이다. 이 식당은 서울에서 제대로 된 갈비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소갈비를 진간장, 참기름, 마늘, 설탕 등 갖은양념에 하루 정도 재웠다가 연탄불에 구워 내는 것이 맛의 비결이다. 창업주의 아들 김정학(金貞學) 씨는 현재도 발행되고 있는 잡지 『월간 바둑』을 창간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을지로4가역 인근에 있는 문화옥은 1952년 개업한 설렁탕 가게이다. 사골과 양지로 육수를 내 국물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옥과 함께 을지로 3가에서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켰던 양미옥은 1992년 개업한 양곱창 전문점인데, 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자주 찾던 집으로 명성을 크게 얻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21년 화재로 전소되어, 현재는 남대문 분점이 그 맛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노포도 외형적 변화를 겪기 마련이지만, 한결같은 맛과 정성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서체, 을지로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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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을지로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우아한형제들(Woowa Brothers)이 운영하는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Baedal Minjok)은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한글 글꼴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그중 을지로체(Baemin Euljiro) 시리즈는 을지로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 진정성 있는 서체로 평가받으며 화제가 되었다. 배달의민족은 2012년부터 자체적으로 전용 서체를 개발하고 있다. 여덟 번째로 제작한 을지로체 출시를 기념하기 위해 2019년 10월 엔에이갤러리(N/A Gallery)에서 < 도시와 글자 > 전시를 개최했다. ⓒ 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Baemin)]은 기발한 기획력과 마케팅 감각을 지닌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진행하는 위트 넘치는 프로젝트들은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한글 서체 개발도 그중 하나이다. 배민은 2012년부터 매년 무료로 한글 서체를 배포해 소비자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왔다. 이들이 본업과는 거리가 먼 일을 십 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들이 안 하는 거잖아요.” 한명수(Han Myung-su, 韓明洙) COO의 대답이다. 그는 싱글싱글 웃으며 덧붙였다. “게다가 재미도 있고요.” 그는 그동안 가장 재미있었던 서체 개발 작업으로 2019년 출시한 을지로체를 꼽는다. 첫 작업이었던 한나체(Baemin Hanna, 2012)를 비롯해 주아체(Baemin Jua, 2014), 도현체(Baemin Dohyeon, 2015) 등 기존에 공개한 서체들은 길거리의 오래된 상점 간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을지로체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오래된 간판들이 다수 남아 있는 을지로 지역 전체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였다. 을지로체의 원형 우아한형제들의 창업자 김봉진(Kim Bong-jin, 金奉眞) 의장은 디자이너 출신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전부터 한국의 오래된 간판 글씨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길거리 간판을 찍은 수천 장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는데, 그중 특히 좋아한 것은 1960~70년대에 제작된 을지로 간판들이었다. 을지로 공구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붓글씨 간판들은 모두 당시에 ‘간판 할아버지’라 불리던 두세 명의 장인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전거에 페인트통을 싣고 다니며, 함석판이나 널빤지 위에 자기만의 고유한 필체로 글자를 적었다. 한명수 COO는 김봉진 의장의 휴대전화 속 사진 한 장이 을지로체의 원형이 되었다고 말한다. “일곱 글자가 적혀 있는 공업사 간판이었어요. 획마다 힘이 넘치는 투박한 서체 디자인이 흥미로웠죠. 미완성의 매력이 있었다고 할까요?” 얼마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아한형제들과 오랫동안 협업해 온 서체 전문 기업 산돌의 창립자 석금호(Seok Geum-ho, 石金浩) 의장의 휴대전화에도 똑같은 사진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석금호 의장도 그 간판 글씨가 마음에 들어 사진으로 찍어둔 거였어요. 당대를 대표하는 두 크리에이터들의 안목이 일치한 순간이었죠. 그래서 그 일곱 글자가 을지로체의 샘플이 되었습니다.” 을지로에는 1960~70년대 페인트로 직접 글씨를 써서 제작한 간판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배민의 을지로체 시리즈는 고유한 필체가 담겨 있는 을지로의 옛날 간판들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 우아한형제들 붓글씨의 매력 배민은 이 일곱 글자를 기준으로 서체의 토대가 되는 2백여 개의 글자를 그렸다. 그리고 산돌은 이 초벌 스케치를 바탕으로 2천여 개의 글자를 추가로 만들었다. 반세기 전에 쓰인 붓글씨 일곱 글자는 그런 과정을 거쳐 한글 서체의 최소 단위인 2,350글자를 갖춘 을지로체로 완성되었다. “산돌은 기업용 서체를 주로 만드는 기업이다 보니 세련된 서체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저희는 글자를 좀 더 ‘망가트려 달라’고 주문했죠. 예를 들어 동그라미 하나도 산돌은 정말 깔끔하게 그리거든요. 그런데 붓글씨로 쓰는 한글의 ‘이응’은 달라요. 왼쪽으로 반원 하나, 오른쪽으로 반원 하나, 이렇게 두 번에 나눠 그리다 보니 동그라미 윗부분이 불룩 튀어나오고 균형이 깨지는 부분도 생기죠. 붓글씨의 불규칙한 매력을 그대로 살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다들 이런 작업은 처음이라며 굉장히 즐거워했죠.” 한명수 COO의 회상이다. 2019년 일반에 공개된 을지로체는 붓글씨를 닮은 개성 있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TV 예능 프로그램 자막부터 시위 현장 현수막까지 다방면으로 활용되었다. “을지로체가 사용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팀원들끼리 채팅창에서 공유했어요. ‘여기 저희 서체가 쓰였어요!’, ‘여기도요!’ 하면서요. 을지로체가 대중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면서 배민의 브랜드 이미지도 점차 공고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죠.” < 도시와 글자 > 전시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전국의 간판들. 2012년 발표한 첫 번째 글꼴 한나체를 비롯해 배민이 지금까지 제작한 대부분의 서체들은 투박하지만 정감이 느껴지는 옛날 간판들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 우아한형제들   프로젝트의 확장 을지로체가 단순히 서체를 넘어 사용자들 사이에서 레트로 문화로 발전하는 동안 배민은 재개발로 옛 모습을 하나둘 잃어가는 을지로 일대의 풍경을 기록하기로 했다. 을지로의 간판들은 개인이 아닌 공공의 산물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성장과 쇠퇴, 부활을 반복하며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 온 을지로의 역사에 주목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터전인 그곳을 일회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한 데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간판의 시각적 매력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지역과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배민은 관록 있는 사진작가와 손잡고 6개월 동안 을지로를 돌아다니며, 수십 년 동안 이곳을 지켜 온 장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 지긋한 철공소 사장부터 젊은 예술가들까지 폭넓은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을지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2020년 이를 주제로 한 전시 < 어이, 주물(鑄物)씨 왜, 목형(木型)씨 > 를 개최하며 또 한 번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전시 준비의 일환으로 을지로의 오래된 간판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다음 서체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세월에 마모되어 페인트가 벗겨진 간판이 의외로 멋스럽더라고요. 그 모습 그대로 또 다른 을지로체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꽤 괜찮아서, 나중에는 아예 글자가 완전히 닳아 없어진 버전까지 출시했어요. 중간에 계속 문장을 만들고 테스트하면서 완성도를 높였죠. 어떻게 하면 글자가 더 자연스럽게 닳아 보일지 고민하면서요.” 배민이 2020년 후속으로 내놓은 을지로10년후체(Baemin Euljiro Ten Years Later)는 을지로체의 10년 후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것으로, 햇빛과 비바람에 바랜 듯한 글자가 특징이다. 그 이듬해 발표한 을지로오래오래체(Baemin Euljiro OraeOrae)는 글자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릿하다. 3년에 걸쳐 을지로체 시리즈를 선보이는 과정에서 배민은 그들만의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다. 을지로체가 배민의 사업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일상에 미친 문화적 파급력은 기업의 일반적인 브랜딩 효과를 훌쩍 뛰어넘었다. 서체 개발을 계속 이어가는 동력에 대한 한명수 COO의 답변이 흥미롭다. “말하자면 창의적 기업가의 욕망 같은 거예요. 크리에이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받기를 원하는 존재니까요.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문화가 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향유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을지로체는 오래된 간판에 대한 시각적 호기심에서 출발한 배민의 서체 프로젝트를 지역 사회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민은 그 일환으로 사진작가 MJ Kim과 협업하여 을지로 산업 장인들을 폴라로이드 필름으로 촬영했고, 2020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 어이, 주물씨 왜, 목형씨 > 전시에서 그 결과물을 선보였다. ⓒ 우아한형제들  

한국산 조명 브랜드의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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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조명 브랜드의 신호탄 2019년 론칭한 조명 브랜드 아고(AGO)는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이며, 오리지널 디자인의 개념이 희박했던 국내 조명 산업의 타성을 흔들어 깨웠다. 소상공인과 디자이너들이 협업해 얻어낸 값진 성과였다. 그 밑바탕에는 을지로의 독특한 산업 생태계가 자리한다. 을지로 대림상가 3층에 자리 잡고 있는 아고 쇼룸 전경. 아고는 을지로에서 30년 동안 조명 유통에 종사한 이우복 대표와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유화성 디자이너가 2019년 파리 메종&오브제를 통해 론칭했다. 스튜디오 플록(Studioflock) 제공,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 서울시는 2013년부터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 미래 세대에게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을지로 조명 거리도 그중 하나이다. 을지로 3가와 4가 사이에는 약 200개의 조명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데, 이 중에는 30년이 넘은 오래된 가게들도 많다. 조명은 가구, 공구, 기계, 미싱, 인쇄, 조각, 타일 등과 함께 을지로 특화 산업의 한 부분을 이룬다. 이곳의 조명 산업은 1960년대 활성화되어 1970~80년대에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 초반에는 수도권 신도시 개발 붐으로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등 건물 신축이 급증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조명 설비에 필요한 각종 제품의 수요가 늘면서 활기를 이어갔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인테리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집을 꾸미려는 사람들이 을지로 일대로 나와 조명 용품을 구매하곤 했다. 국내 조명 산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아고는 이렇게 수십 년간 축적된 을지로의 산업 생태계 속에서 탄생했다. 위기의식 조명 업체 모던 라이팅의 이우복(Woobok Lee, 李雨福) 대표는 을지로에서 30년간 조명 유통에 종사한 베테랑이다. 그리고 스톡홀름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 바이마스(ByMars)의 유화성(Mars Hwasung Yoo, 柳和成)은 대범하면서도 꼼꼼한 실행력을 갖춘 디자이너이다. 두 사람은 2017년 ‘By 을지로 프로젝트’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사실 나는 복제품이 버젓이 유통되는 을지로의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관계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었다. 그게 내가 By 을지로 프로젝트에 지원한 이유였다.” 을지로 조명 산업이 도심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유화성 디자이너의 말처럼 이곳에는 복제품 유통이라는 문제점도 내재해 있었다. 현재 을지로 조명 시장이 예전 같지 않은 데에는 인터넷을 통해 저가의 해외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미적 기준이 높아지면서 복제품을 외면하게 된 현실도 있다. 위기를 느낀 상인들은 한국조명유통협동조합을 만들고 공동 브랜드 올룩스(ALLUX)를 개발하는 등 서비스와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자체 또한 조명 거리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고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 그 출발은 서울 중구청과 서울디자인재단이 2015년부터 공동으로 개최한 < 을지로, 라이트웨이(Euljiro, Light Way) > 였다. 조명 전시와 공연, 을지로 투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해 을지로 조명 산업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행사이다. 2017년, 중구청과 서울디자인재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을지로 조명 업체들과 디자이너들이 팀을 이루어 브랜드 상품을 개발하는 By 을지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참여한 8팀 중 3팀의 제품은 이듬해 유럽 최대 규모의 인테리어 박람회 < 메종&오브제(Maison&Objet) > 에서도 전시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2018년과 2019년에도 이어져 각각 11팀, 10팀이 참가해 좋은 성과를 얻어 냈다. 이우복 대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그는 유화성 디자이너에게 을지로 조명 산업을 함께 쇄신해 보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옛 친구’라는 뜻을 담고 있는 단어 ‘아고(雅故)’에서 이름을 따온 조명 브랜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2021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Seoul Living Design Fair)에서 아고는 앨리(ALLEY), 벌룬(Balloon) 등 기존 라인들의 업그레이드 버전과 신제품을 선보이며 확고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보여 주었다. 부스는 벽돌, 목재, 금속 등 재사용이 가능한 건축 재료들로 소박하게 꾸몄다. ⓒ 아고 명료한 디자인 2019년 론칭한 아고는 국내 조명 브랜드로서는 드물게 조명 기기의 조형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했다. 과감한 형태와 색감,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아고의 디자인은 국내 조명 시장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아고는 2019년 메종&오브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2020년 스톡홀름 가구박람회(Stockholm Furniture Fair)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같은 해 서커스(Cirkus) 라인으로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 ‘Best Dinner Guests’ 부문에서 수상했다. 해외에서 먼저 디자인과 품질을 인정받은 것이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른 찹쌀떡을 닮은 전등, 우주 비행선 같은 미래적 형태, 빛의 방향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펜던트 조명 등 아고의 모든 제품들은 조명이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기능적 역할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디자인을 통해 알려줬다. 여기에는 아고의 아트디렉터를 맡은 유화성 디자이너의 공이 컸다. 그가 아고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함께 만들어 갈 협업 디자이너들을 찾는 것이었다. 스위스 디자인 스튜디오 빅게임(BIG-GAME), 스웨덴의 요나스 바겔(Jonas Wagell), 독일의 세바스티안 허크너(Sebastian Herkner) 등 여러 나라의 디자이너들이 현재 아고와 함께하고 있다. 아고는 명료한 형태를 지향한다. 이를 기본 원칙으로 삼아 디자이너들과 의견을 나누며 작업을 진행한 끝에 2년 만에 13개의 제품이 완성됐다.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종류의 디자인이 생산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을지로의 산업 시스템이 한몫했다. 을지로에서는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그것에 대해 디자이너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피드백을 반영해 다시 또 기민하게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할 수 있다. 각자 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산업 장인들이 한데 모여 있는 덕분이다. 이들은 때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디자이너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고가 글로벌 브랜드를 지향하는 만큼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을지로의 시스템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각종 소재와 기술을 사용해 여러 번 수정을 거듭해야 하는 조명 디자인의 특성을 고려해 처음부터 국내 생산을 고수한 이우복 대표는 수도권에 위치한 공장들과 협업해 작업에 필요한 부속들을 만들고, 경기도 파주의 공장에서 최종적으로 조립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 과정에서 유화성 디자이너는 의도한 디자인을 완벽하게 구현하고자 기술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그는 기술 장인들에게 시종일관 디테일을 강조하며 요구 사항을 끈질기게 관철시켰다. 처음에는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사람들이 디테일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야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에게 ‘0.1mm’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조명 브랜드 아고는 전문 분야와 기술이 철저히 분업화된 을지로의 산업 시스템을 기반으로, 그동안 을지로 조명 업계에서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했다. 사진은 스웨덴 디자이너 요나스 바겔(Jonas Wagell)과 협업하여 론칭한 제품 앨리(ALLEY). ⓒ 아고   산업 생태계의 변화 을지로에서 론칭한 조명 브랜드에 대해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복제품 유통의 벽을 쉽게 넘어서지 못할 거라는 염려도 있었다. 또한 풀옵션으로 세팅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들에게 조명 전문 브랜드의 매력을 어필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아고는 한국산 조명 디자인의 우수성을 보여 주며 보란 듯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고의 과감한 디자인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은 젊은 세대의 SNS에는 어김없이 아고 제품이 등장했다. 심지어 아고 제품을 모방한 복제품들도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 유화성 디자이너는 “복제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오리지널을 구매할 확률이 낮고, 오리지널을 사는 사람은 복제품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복제품과 오리지널은 시장 자체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고가 출시된 이후 을지로에는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익숙했던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난 것이다. 아고는 좋은 브랜드가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가 되었다. 이제 론칭 5년 차가 된 아고는 글로벌 조명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 업종이 다른 브랜드들과도 협업하며 을지로에서 뿌리를 내려 가고 있는 중이다. 2022년 아고 쇼룸에서 열린 전시 < Optimistic Design > 중 일부. 아고의 프로브(Probe) 컬렉션을 디자인한 스위스 빅게임(BIG-GAME) 스튜디오의 대표 제품들을 볼 수 있었던 전시다. 2004년 설립된 빅게임 스튜디오는 단순하고 기능적이면서도 낙관적인 이미지의 작업물을 주로 선보인다. ⓒ 아고  

도시의 표정을 수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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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표정을 수집하다 설동주(Seol Dong-ju, 薛棟柱)는 사진과 펜 드로잉으로 도시를 기록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는 여행지에서 마주친 풍경과 사람들을 정감 어린 필치의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2020년 발간한 『을지로 수집』에는 자신만의 시선과 감성으로 포착한 을지로의 단면들이 담겨 있다. < 을지로 3가 사거리 > . 설동주. 2019. Pen on paper. 39.4 × 54.5 ㎝. 서울역 근처에 자리한 설동주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고딕체로 된 스텐실 도안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We live City We love.”라는 문구는 그가 머무르는 공간과 아주 잘 어울린다. ‘도시’와 ‘사랑’은 그의 작업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들이기 때문이다. “옛것이 주는 편안함에 반해 을지로를 자주 오갔다.”는 그는 그곳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이미지들을 모아 몇 해 전 『을지로 수집』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가 ‘수집’한 이야기들은 이미 없어진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조만간 사라질 처지에 놓인 것들에게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는 옛것과 새것의 공존을 꿈꾸며 동네 특유의 문화를 계승 중인 청년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건강한 변화 덕분에 희망을 발견한다는 그가 을지로를 향한 오래된 애정을 고백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설동주는 자신이 다녔던 여행지의 기억을 오래 남기고 싶어 펜 드로잉 작업을 시작했다. 정밀하면서도 흥미로운 그의 작품은 일명 ‘도시 정물화’로 불린다. 최근 후쿠오카 아트갤러리 아더(Art Gallery OTHER)와 도쿄 와다화랑(Wada Garou Tokyo, 和田画廊) 등에서 각 도시의 풍경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책을 출간한 지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독자들을 많이 만났나? 을지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분들이 내 책을 읽은 것 같다. 출판 후 새로운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생겼다. 다만 발행 후에 북토크 같은 행사를 열고 싶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불발된 점이 내내 아쉬웠다. 을지로를 기록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염리동(鹽里洞)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의 정취를 무척 좋아했고, 성장한 후에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 한번은 친구에게 그 동네를 보여 주고 싶어 데려갔는데, 재개발로 인해서 철거가 시작되고 있었다. 너무 안타깝고, 원망스러웠다. 이곳에 대한 기록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왜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러다가 2017년인가 2018년쯤 을지로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을지로도 예전부터 자주 들락거렸던 동네인데, 이번만큼은 좋아하는 장소가 자취를 감추기 전에 나만의 방식으로 최대한 많은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헐리고 있는 건물이나 철거가 예정된 공간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책에는 을지로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책에 소개한 사람들 중에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이 꽤 있다. 매체에 노출된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얼굴이 알려지게 된 걸 재밌어하고 신기해했다. 인터뷰이들 중에는 자의로 다른 동네에 이사 간 사람도 있고, 지내던 공간이 철거 대상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긴 경우도 있다. 요즘도 을지로에 가면 책의 주인공들을 찾아가 안부를 묻곤 한다. 2020년 출판한 『을지로 수집』은 을지로에 대한 그의 애정을 담백하게 담아낸 책이다. 직접 찍은 사진과 그림들을 비롯해 을지로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일곱 편의 글이 실려 있다. ⓒ 설동주 인터뷰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풍년이용원은 토박이들도 내력을 잘 모를 정도로 오래된 이발소인데,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어도 상호와 간판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에이스포클럽(Ace Four Club)은 60년 된 다방을 개조한 카페 겸 바이다. 나는 을지로에 오래 계셨던 분들이나 본인 의지로 새로이 터를 잡은 분들을 두루두루 만나보고 싶었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을 깊이 있게 인터뷰하자는 목표도 세웠다. 그래야 이곳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을지로가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책에서 당신의 염려를 느낄 수 있었다. 원고를 쓸 때만 해도 나는 당시 을지로에서 감지되는 변화의 바람을 다소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달라진 모습이 예뻐 보이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상권이 활발해지는 것도 바람직하다. 옛것을 포용하면서도 새로운 활력을 받아들이는 상생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 희망을 느꼈다. 그런가 하면 기존 을지로와 너무나 이질적인 모습을 발견할 때는 ‘이게 뭐지?’ 싶기도 하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그래서 다시 책 작업을 한다면 무척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지금 이 책에 그림 몇 장을 추가한다면 무엇을 그리고 싶나? 예전에는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가면 청계천부터 남산타워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지금은 주변에 신축 건물들이 생겨나서 풍경이 달라졌다. 내가 좋아했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어 아쉽지만, 달라진 전경(全景)을 그려 보고 싶기도 하다. 작가는 미리 촬영해 둔 사진을 컴퓨터에 띄운 후 그것을 펜 드로잉으로 옮긴다. 노트 크기의 그림은 보통 몇 시간 내로 완성하지만, 대형 작품은 며칠이 소요된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과 장면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군중 속에서 개인 개인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고, 저마다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노가리 골목 그림 같은 것이 그렇다. 연령도, 차림새도, 직업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재밌지 않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데이트하러 온 연인, 여행 온 외국인 등 여러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 캐릭터도 살짝 숨겨 뒀다. 펜 드로잉을 처음 시작할 때는 누가 봐도 예쁘고 멋진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차츰 독자들이 다층적 감정을 느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풍경 속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늘 세심히 신경 쓰며 작업한다. 사람을 몇 명 등장시킬지, 어디에 배치할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자신의 정체성을 ‘시티 트레커(city trekker)’로 규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을지로를 비롯해 뉴욕, 도쿄, 후쿠오카 등을 그렸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파리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빠른 시일 내에 그곳을 그림과 사진으로 담아보고 싶다. 나는 도시 곳곳을 여행하면서 소소하게 마주치는 찰나의 감성을 포착한다. 도시의 풍경, 그중에서도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고 그것들이 모여 삶을 이루는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을지로를 방문하려는 분들에게 동대문, 종로, 충무로 등 주변 동네들도 거닐어 보기를 권한다. 모두 매력적인 곳들이다.   남선우(Nam Sun-woo, 南璇佑) 『씨네21』 기자 허동욱 포토그래퍼

근현대 도시 건축의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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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도시 건축의 만물상 을지로는 건축을 통해 서울의 역사를 오롯이 보여 주는 공간이다. 20세기 초 이 지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개발되면서 서구 양식의 근대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수십 년간 공업 지구로서 호황을 누렸던 시기에 지어진 맞벽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더해 1980년대 적극적인 도심 재개발 사업이 시행되어 현대식 고층 건물들도 밀집해 있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지닌 세운상가는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단지이다. 이 건물들은 1970년대 한국 사회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상징한다. 2023년 10월, 서울시가 이곳을 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재개발을 위한 철거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단지의 남쪽 끝에 자리한 진양상가 옥상이다. ⓒ 노경(Roh Kyung, 盧京) 을지로는 서울특별시 중구 원도심을 가로지르는 길이 약 3km의 6차선 도로이다. 대한제국(1897~1910) 시대의 제단인 환구단(圜丘壇) 앞 시민 공원에서 시작해 신당동(新堂洞) 한양(漢陽)공업고등학교에 이르는 길이다. 좀 더 유명한 시설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특별시청에서 출발해 복합 문화 공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끝난다. 북쪽에는 청계천로, 남쪽에는 퇴계로가 을지로와 함께 동서로 나란히 뻗어 있다. 일반적으로 방산동(芳山洞), 산림동(山林洞), 입정동(笠井洞) 등 주변 지역을 한데 아울러 ‘을지로’라고 말한다.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 업무 지구인 을지로는 건축적 면모 또한 남다르다. 고풍스러운 근대기 건축물들과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낡은 공장 건물들, 그리고 세련된 외양의 고층 빌딩들이 공존하면서 독특한 광경을 연출한다. 이는 을지로의 역사가 만들어 낸 풍경이다. 다층적 스펙트럼 을지로가 도시 공간으로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조선(1392~1910) 시대다. 이곳은 서울 건도(建都)와 함께 정비한 행정구역 가운데 남부(南部) 명철방(明哲坊)에 속했다. 궁궐을 지척에 둔 도성 안 거리로, 하루아침에 도시 중심부로 부상했다. 을지로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더욱 번성하였는데, 1909년에는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 현재 우리은행)의 점포 광통관(廣通館)이 을지로 입구에 들어섰다. 서양식 2층 건물인 광통관은 지금도 은행 점포로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2002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을지로에는 근대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들과 산업화 시대 양산된 저층의 콘크리트 건물들을 비롯해 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공존하고 있다. 을지로 입구에 위치한 대일빌딩의 리모델링을 맡은 디자인 전문 그룹 디엠피(dmp)는 이 건물이 1909년 지어진 광통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영속적인 성격이 강한 마감재를 사용하고 디테일과 경관 조명에 주의를 기울였다. ⓒ 윤준환(Yoon Joon-hwan, 尹晙歡) 1925년에는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있는 자리에 경성(京城)운동장이 준공되었고, 이듬해에는 태평로1가에 경성부청 청사가 지어졌다. 이 건물은 1946년부터 서울특별시의 청사로 사용되다가 2012년 신관이 건립됨에 따라 이후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로써 을지로의 기점과 종점 두 곳에는 대형 시설들이 자리하게 되었다. 1928년에는 명동(明洞) 입구에 경성전기주식회사(현재 한국전력공사) 사옥이 세워졌다.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지상 5층 건물로 국내 최초로 내진, 내화 설계가 적용되었으며 엘리베이터까지 갖추었다. 을지로는 번화가인 을지로 입구 일대를 중심으로 근대 문명 초기부터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이후 이곳의 도시 건축은 같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 첫 흐름은 1930년대부터 시작해 1950~1960년대에 양산된 2~3층 높이의 콘크리트 상가 건물들이었다. 지금도 을지로 3가에서 5가 일대에는 당시 지어진 건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건물들이 거리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50센티미터 이내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맞벽 건축[對壁建築]’이 대부분이다. 또한 지금은 외장재로 잘 사용하지 않는 타일로 외부를 마감한 건물들이 많아 이 자체만으로도 희귀한 역사적 자료라 할 수 있다. 을지로 3가에는 세월의 더께가 앉은 허름한 건물들 앞에 2011년 지어진 지상 25층 높이의 오피스 빌딩 파인 애비뉴(Pine Avenue)가 마주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을지로에는 건립 연도, 건축 양식, 건물 높이 등이 제각각인 건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가히 한국 근현대 건축의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을지로 일대에는 1950~60년대 지어진 2~3층 높이의 콘크리트 상가 건물들이 즐비하다. 건물들이 이격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맞벽 건축 양식은 도시 미관을 고려한 당시의 건축법을 따른 결과이다. 건물 외장재로 타일을 사용한 것도 그 시대 건축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 박용준(Park Yong-jun, 朴瑢峻)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 우리나라는 한국 전쟁 이후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 냈다. 을지로는 이 흐름의 선두에 선 지역으로 지금까지 그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그 출발점은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인 세운(世運)상가이다. 이곳은 한국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Kim Swoo-geun, 金壽根, 1931~1986)의 설계로 지어졌다. 세운상가, 대림(大林)상가, 진양(進洋)상가 등 총 8개 건물로 조성되었는데 이 상가군을 통칭하여 세운상가라고 부른다. 가장 먼저 준공된 현대(現代)상가가 2009년 철거됨에 따라 현재는 7개 동만 남아 있다. 1966년 착공을 시작해 순차적으로 완공된 세운상가는 종묘 앞에서 시작해서 필동(筆洞)에 이르는 1km 남짓 되는 초대형 타운이다. 단지 내에는 기계, 공구, 전기, 전자 등의 부품부터 가전 제품까지 망라하는 거대한 상권이 형성되었다. 상점 위층의 아파트에는 당시 주거 시설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스팀 난방, 욕조, 엘리베이터 등이 갖춰졌다. 건물에는 아파트 입주민들을 위한 실내 골프장과 사우나도 구비되었다. 세운상가는 도심 한복판에 우뚝 선 고급 아파트의 위용을 자랑하며 순식간에 서울의 명물이 되었다. 시골 사람이 서울에 와서 세운상가만 보고 돌아가도 서울을 다 본 것과 진배없다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중 대림상가는 세운상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작품성이 높은 건물이다. 김수근이 애용하던 건축 양식인 구조주의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건물을 저층부와 보행 데크, 중간 돌출부, 고층부로 구성한 뒤 각각 출입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저층부에는 계단이 독특한 형태로 설치되어 있으며, 데크와 돌출부를 가느다란 콘크리트 기둥이 연결해서 받치는 모습도 특이하다. 돌출부의 중앙에는 표면에 항아리 파편을 장식으로 붙였는데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뉴브루털리즘(New Brutalism)의 거친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세운상가 타운의 건물들은 모두 주거용 아파트가 시작되는 5층에 기하학적으로 대칭 구조를 이루는 천창과 중정이 있다. 건물 중앙에 위치한 중정은 ㅁ자 구조이며, 반투명 아크릴 소재로 이루어진 천창을 통해 은은한 빛이 내부로 스며든다. 건축가 김수근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이 공간에서는 종종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열린다. ⓒ 이경환(Lee Kyung-hwan, 李炅奐)   역동적인 고층 빌딩들 1970~1980년대에는 시청과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사이에 롯데, 웨스틴 조선, 플라자, 프레지던트 등 대형 고급 호텔들이 줄지어 들어서면서 호텔 거리가 형성되었다. 그 옆에는 은행 점포들이 하나둘 지어지면서 남쪽의 한국은행 본점과 북쪽의 광통관을 잇는 금융 거리가 탄생했다. 1986년 준공된 을지한국빌딩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지상 20층, 지하 4층 규모의 사무실 건물이다. 몸통 전면에 커튼 월(커튼처럼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유리 벽)을 설치해 첨단 이미지를 갖춤과 동시에 양옆 모서리 부분은 화강암으로 마감해서 안정감을 높였다. 건물 중간은 벽체를 안으로 밀어 넣어 발코니 공간을 확보했는데, 건축물의 인상을 한층 풍부하게 만드는 조형적 기능을 제공한다. 일명 ‘하늘 공원(Sky Plaza)’이라 불리는 이곳은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휴게 공간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국내 건축물로서는 처음 시도된 것이었기에 큰 화제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을지로 입구를 중심으로 한 재개발이 한층 속도를 내면서 고층 유리 건물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을지로 입구에서 을지로 2가 사이의 거리는 수백 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고층 유리 빌딩들이 상당히 밀집해 있다. 그중 2010년 완공된 페럼 타워(Ferrum Tower)를 눈여겨볼 만하다. 지상 28층, 지하 6층 규모인 이 건물은 육면체를 기본 형태로 삼되 건물 윤곽을 거침없는 사선으로 처리해 현대적인 느낌을 극대화했다. 이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건물 외형이 제각기 달리 보인다. 깎인 각도가 크지는 않지만, 수익성 확보 경쟁이 벌어지는 치열한 도심 재개발 사업을 감안하면 건축주가 면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조형적 변화를 꾀한 걸로 볼 수 있다. 외피는 커튼 월을 세 가지 방식으로 응용하여 사선 면에 적절히 할당했고, 이를 통해 유리를 이용한 구성미를 얻어냈다. 주위에 건물들이 가깝게 붙어 있는데 오히려 그 덕에 주변 형상이 유리 표면에 비추면서 스펙터클한 장면을 만들어 준다. 옥상 부분도 옆으로 쳐냈는데 고층인 데다가 특이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해 길 건너 골목에서도 머리를 삐쭉 내민 페럼타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을지로의 아우트라인을 조금 더 넓히면 남쪽으로는 대한제국 시대에 고딕식 구조로 완성된 서울 명동성당(明洞聖堂, 1898)과 국내 최초의 대형 교회인 영락교회(永樂敎會, 1950)가, 북쪽으로는 2019년 리모델링을 통해 청계천의 명소로 부상한 한화빌딩이 을지로의 도시 건축권에 들면서 이곳의 만물상다운 특징이 더욱 부각된다. 역사성은 유서 깊은 도시의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는데, 서울에서는 을지로가 그 역할을 대표한다. 을지로입구역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페럼 타워는 역동적인 기업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건물 외형이 각기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도록 디자인했다. 간삼건축이 설계한 이 건물은 201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 건축물 부문 우수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서울특별시 건축상 일반 건축 부문에서도 우수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 간삼건축(Gansam Co., Ltd.)

옛것과 새것의 공존

Features 2024 SPRING

옛것과 새것의 공존 을지로(乙支路)는 서울 한가운데에 위치한 공업 지역이다. 제조업으로 오랫동안 호황을 누렸던 이곳에는 오래된 공장과 점포들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둥지를 틀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보여 주며,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을지로의 미로 같은 골목 사이사이에는 1950~60년대에 자리 잡은 철공소, 공구 가게, 인쇄 업체 등이 들어서 있다. 그중 을지로 3가는 노후한 저층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을지로 일대에서 가장 낙후한 곳이다. ⓒ 설동주(Seol Dong-ju, 薛棟柱) 을지로 3가 골목에 어둠이 내리면 소문난 음식점들을 찾아온 젊은이들로 골목이 북적인다. 이곳에는 을지로의 역사와 함께해 온 오래된 가게들이 많다. ⓒ 서울관광재단 강남(江南)이나 명동(明洞), 홍대(弘大) 입구처럼 사람들이 항상 복작거리는 번화가가 아닌데도, 몇 년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지역이 있다. ‘#핫플레이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빈번하게 언급되는 그곳은 바로 을지로다. 이곳은 인쇄소, 철공소 같은 소형 공장들과 타일, 조명 등 자재상들이 몰려 있는 도심 내 대표적인 공업 지역으로 ‘없는 게 없는’ 동네로 통한다. 하지만 골목 곳곳을 천천히 걷다 보면 예상외로 없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서울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편의점 하나 마주치기 어렵고, 동네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매장도 큰길가나 지하철역 입구가 있는 데까지 나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번듯하고 말끔한 것 대신 이곳의 골목들을 채우고 있는 것은 바삐 움직이는 오토바이들과 용접 소리, 쇠를 갈아 내는 매캐한 냄새,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의 을지로를 만들어 온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다. 을지로에 켜켜이 쌓인 과거의 흔적들은 색다른 재미를 추구하거나 옛것에 이끌리는 젊은이들을 불러 모은다. 제조업의 산실 을지로는 1914년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황금정(黃金町)’이라 불렸고, 고구려(BC 37년~668년) 시대의 명장인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이름을 따 1946년 현재의 지명으로 바뀌었다. 이곳이 제조업 중심지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시기는 20세기 초다. 방직, 식품, 인쇄업 등이 활성화되면서 일대가 근대 상공업 지역으로 발돋움했다. 한국전쟁(1950~1953) 이후에는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을지로와 그 아래 천변인 청계천(淸溪川)에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각지에서 찾아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했다. 밤에는 허름한 거처에서 새우잠을 자고, 낮에는 노점과 좌판에서 되는 대로 물건을 팔았다. 주력 상품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기계와 공구들이었다. 전쟁 이후 쓸모를 잃은 고철도 거래되었다. 상품을 판매하던 사람들이 점차 전문성을 갖추면서 기계와 공구를 수리하거나 직접 제작하는 일도 늘어났다. 어느덧 을지로는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인들이 모인 곳으로 인식되었다. 항간에는 “을지로와 청계천 한 바퀴만 돌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게 되었다. 그만큼 이 지역의 제조업 기술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전기∙전자, 금속, 유리, 조명, 도기, 가구 등 제조 업체가 골목골목마다 둥지를 틀고 을지로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전성기였던 1970년대에는 손님들이 하도 밀려들어 상인들이 돈을 셀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을지로가 내리막길을 걷는 시기가 왔다. 제조업을 필두로 한국 경제가 활황을 누리던 1980년대 후반, 이곳의 주력 산업인 전기∙전자가 도심 부적격 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상당수 업체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야 했다. 게다가 20세기 초부터 형성된 주거 환경과 시설들이 노후하면서 이 일대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복잡한 필지 정리 문제로 인해 재개발이 쉽사리 진행되지 못했고, 결국 지가(地價)만 높아진 채 밀레니엄을 맞이했다. 세운상가는 수십 년 동안 전자 산업의 메카였던 곳으로, 대대적인 재생 사업을 통해 2017년 새로운 모습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그중 세운베이스먼트(Sewoon Basement)는 지하 보일러실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이곳은 교육, 전시, 공방 등 다목적으로 활용되며 새로운 쓰임새를 얻었다. ⓒ 노경(Roh Kyung, 盧京) 옛것에 대한 존중 을지로는 산업뿐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효용성이 높은 지역이었다. 청년 예술가들은 미술∙영화∙연극 등의 작업에 필요한 재료들을 이곳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고, 없으면 기술자들에게 의뢰해 제작할 수도 있었다. 을지로의 장인들은 청년 예술가들이 요청한 것들을 만들어 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눴고, 때로는 기술적인 조언과 자문을 통해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이들이 을지로를 자주 찾는 데에는 지리적인 이점도 한몫했다. 을지로에는 지하철 2, 3, 5호선이 지나가기 때문에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을지로 산업 장인들의 기술력은 청년 예술가들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있어 강력한 무기가 된다. 사진은 어보브 스튜디오(above.studio)가 자동 제어 분야에서 5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을지로의 음향 장인과 협업하여 출시한 진공관 블루투스 스피커 ‘노트 사운드 어보브(KNOT, SOUND ABOVE)’. 을지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어보브 스튜디오는 논리적인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 어보브 스튜디오 쇠락해 가는 을지로의 가치를 일깨우며 이곳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은 이들청년들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작업실이나 전시 및 공연 공간을 얻기 위해 을지로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한 임대료가 을지로를 선택하게 한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특유의 물리적 환경에 있다. 을지로는 땀 냄새 나는 노동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생동감과 세월의 더께가 앉은 건물들, 그리고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들이 어우러져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을지로에 마련된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공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 지역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이질감이 생기지 않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임대한 작업실이나 전시장을 목적에 맞게 완전히 레노베이션하는 대신 대부분 기존 인테리어를 그대로 활용했다. 수십 년 전에 유행했던 벽돌 장식이나 오래된 가구를 함부로 부수지 않았다. 이전 점포나 공장의 간판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 자체로 을지로의 역사가 된 것들을 존중하며 보존했던 것이다. 이들이 새롭게 조성한 공간들은 기존 을지로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을지로를 탐방하는 사람들에게는 골목마다 숨어 있는 독특한 갤러리들을 발견하는 것도 묘미이다. 2018년 개관한 엔에이(N⁄A)갤러리는 을지로 4가 철공소 골목에 숨어 있다. 갤러리 간판도 내걸고 있지 않지만, 다양한 장르의 전시를 선보이며 이 지역의 예술 생태계를 이끌고 있다. 사진은 올해 초 열렸던 김예슬(Yesul Kim)과 헤미 랑베흐(Rémi Lambert)의 2인전 전시 장면. ⓒ 엔에이갤러리(N/A Gallery) 코오롱FnC가 2020년 멀티 플래그십 스토어를 표방하며 을지로 3가에 마련한 을지다락의 내부 모습. 공간 디자인을 맡은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는 20여 년 된 기존 건물의 원형을 유지하는 한편 내부 인테리어 또한 오래된 가구와 마루, 집기들을 활용해 주변 지역과 어우러지는 장소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LTH 제공, 사진 최용준   힙지로의 탄생 을지로에 정착한 문화예술인들은 딱히 돈이 되지 않는 전시나 공연일지라도 새로움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했다. 을지로가 지니고 있는 지리적, 건축적 특징을 작품에 녹여 내는 실험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을지로에서 볼 수 있는 전시나 공연을 ‘장소 특정적 콘텐츠’라 말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이들의 문화예술 활동은 을지로의 음식 문화에도 점차 스며들기 시작했다. 문화예술 공간들 근처에는 차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이 가게들도 대부분 기존 업소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음식점 이름을 내걸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느새 이곳들은 복합 문화 공간이 되었다. 레스토랑, 카페, 펍 등과 작업실, 갤러리, 공연장 등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경계가 허물어졌다. 레스토랑에서 미술 작품 전시를 하거나 카페가 일일 공연장이 되는 식이다. 맛있는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바에서 멋진 수공예품을 만나는 것 역시 을지로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각각의 목적과 쓰임이 분명하던 서울에서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을지로는 입소문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이른바 ‘힙지로(을지로에 영어 단어 hip을 합쳐 만든 신조어)’가 탄생한 것이다. 을지로는 이제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노동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기술과 예술, 낡은 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향으로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재미있는 공간을 찾아내는 것은 을지로만이 선사하는 독특한 묘미이다. < 59계단(59 Stairs) 와인바, 산림동 130-1 5층 > . 변경랑(Byun Kyoung-rang, 邊敬娘). 2021. 피그먼트 프린트. 51 × 34 ㎝. 2021년 충무로 와이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서울아카이브사진가그룹(SAPG)의 사진전 < 을지로 2021 > 전시작 중 하나. 변경랑은 을지로 일대에 새로 생긴 식당들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경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선보였다. ⓒ 변경랑 을지로3가역 인근에 위치한 에이스포클럽(Ace Four Club)은 60년 된 다방을 개조한 카페 겸 바이다. 가게 주인은 이전 다방의 단골손님들을 위해 출입문을 그대로 사용하는 등 과거의 흔적 일부를 남겨 두었다. ⓒ 설동주(Seol Dong-ju, 薛棟柱) 을지로3가역 뒷골목에 자리한 더랜치브루잉(The Ranch Brewing)은 수제 맥주와 피자를 판매하는 가게로, 화려한 그래피티와 자판기 형태의 출입문이 젊은 층의 취향을 사로잡으면서 을지로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 서울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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