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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WINTER

생활

식재료 이야기 생강, 향신료이자 약이었던 식재료

생강은 김치를 비롯해 여러 한국 음식의 양념으로 쓰일 뿐 아니라 약성(藥性)으로 인해 차나 과자로도 만들어 즐긴다. 유럽에서는 생강이 한때 귀한 향신료의 대명사였는데, 미각적 이유보다는 대체로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였다.

생강은 중세 유럽에서 귀한 대접을 받던 향신료였으며, 한국에서는 식재료로 쓰이기 이전부터 오랜 동안 약재로 널리 활용되었다.

음식 재료에도 유행이 있다. 고대 로마의 요리책 『데 레 코퀴나리아』(Apicius: De Re Coquinaria)는 서구 최초의 요리서로 불린다. 이 책의 4세기 판본에 나오는 거의 모든 레시피에는 인도와 극동에서 수입된 향신료들이 등장하는데, 후추는 그 중 80%를 차지할 정도로 자주 쓰였다. 하지만 중세에 이르러서는 후추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생강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생강은 중세 프랑스 귀족의 식탁에 권위를 부여했던 중요한 식재료였다. 14세기에 출판된 프랑스 최초의 요리책 『타유방의 요리서』(Le Viandier de Taillevent)에서 향신료 목록의 첫 줄을 차지한 것도 생강이었으며, 15세기 유럽 여러 지역의 요리법을 광범위하게 소개한 쉬퀴아르 아미즈코(Chiquart Amizco)가 왕실 만찬 준비에 필요한 향신료로 제일 먼저 언급한 것도 생강이었다.

이국의 낙원에서 얻은 진귀한 향신료
생강이 과거 유럽에서 이토록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염장한 고기나 부패한 식재료의 나쁜 맛을 가리기 위해서 또는 육류를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생강이 생선 비린내 같은 불쾌한 냄새를 줄여 주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요리에서 잡내를 없애려면 레몬 주스나 식초의 산성으로 휘발성 냄새 물질을 비휘발성 물질로 변화시키는 화학 반응을 이용하거나 장 담글 때 숯을 넣어 두는 것처럼 냄새 물질을 물리적으로 흡착시켜야 한다. 그런데 2016년 중국 과학자들이 잉어과 민물 생선인 초어(grass carp)에 생강을 넣고 실험한 결과에 의하면 생강에는 비린내 원인 물질을 직접 제거하거나 감소시키는 화학적, 물리적 효과가 없었다. 다만 생강의 강한 향기 물질이 다른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덮어 버리는 감각적 탈취 효과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식재료의 냄새 제거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 생강을 널리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부유층에게는 신선한 육류와 생선을 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당일 잡은 사냥감이나 도축한 가축의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파리의 살림살이』(Le Ménagier de Paris) 같은 책을 봐도 생강을 비롯한 향신료는 가능하면 조리의 마지막 순서에 넣으라고 권하고 있다. 이런 기록은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향신료를 사용했으리라는 추측과 상충된다.
과거 유럽에서 생강 같은 향신료가 욕망의 대상이 된 것은 향신료가 ‘동방의 지상낙원에서 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인들은 생강과 계피가 ‘신비의 지상낙원으로부터 나일강을 타고 흘러내려 오면 어부가 그물로 건져 올린다’는 전설을 믿었다. 신분을 과시하고 싶은 부르주아 계급이 귀족보다 더 향신료 사용에 집착했던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마치 오늘날 고급 레스토랑에서 송로버섯을 넣어 향을 낸 요리를 높이 평가하듯 중세 유럽인에게 생강은 진귀한 식재료였다.

예로부터 한국인들은 생강을 꿀이나 조청과 함께 졸여서 만든 정과(위)와 얇게 저며 물을 붓고 끓인 후 잣가루를 뿌린 생강편을 후식으로 즐겨 왔다. Ⓒ 궁중음식연구원

약재로 사용된 생강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 마늘과 함께 양념으로 넣을 정도로 흔하게 사용하는 생강을 두고 낙원을 운운하는 게 우습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한국에서도 생강은 귀한 식재료였다. 동남아시아를 원산지로 하는 생강이 정확히 언제 국내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생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종은 북방 거란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에게 차와 생강, 베를 나눠 주도록 지시했다. 생강이 당시 귀중품에 속했던 차, 베와 동급의 귀한 식재료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생강이 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자가 식사 때마다 생강을 빠뜨리지 않고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논어』에 나와 있으니,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어찌 생강을 귀히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생강이 이토록 귀히 대접받은 것은 식재료 이전에 약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강을 먹으면 뱃속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생강이 소화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15세기에 조선에서 저술된 『산가요록』(山家要錄)이나 16세기의 『수운잡방』(需雲雜方) 같은 요리책의 방식대로 생강과 엿을 함께 넣고 졸여 만든 생강정과를 먹었던 사람들에게나 중세 영국과 독일에서 진저브레드를 먹었던 사람들에게나 생강은 맛 좋은 과자이면서 동시에 약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어린 시절 생강 맛이 나는 과자를 먹으며, ‘이렇게 매운 과자를 어른들은 뭐가 좋다고 먹는 건가’ 의아했던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이야기다. 생강은 향신료이자 동시에 약이었던 것이다.
생강 과자, 생강차, 진저에일은 구역질을 완화하기 위해서도 사용되곤 한다. 생강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얼얼한 맛을 내는 진저롤(gingerol) 성분에 의한 효과로 생각된다. 생강을 말리면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진저롤이 원래보다 두 배 더 매운 쇼가올(shogaols)이라는 물질로 바뀐다. 말린 생강이 더 얼얼한 이유다. 이들 성분이 위장 점막을 자극하면 혈관이 확장되면서 따뜻한 느낌을 주고 소화 기관이 더 잘 작동하도록 도와서 메스꺼움을 줄여 주는 것 같다.
항간에는 임신 중에 생강을 먹으면 안 된다는 설도 있으나 해롭다는 연구 결과는 없고, 오히려 입덧 완화에도 종종 사용된다. 예로부터 생강이 체온을 높여 주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2015년 일본 연구팀의 실험에서는 사람의 체온에 생강이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점은 고추와 같은 다른 매운맛 음식도 마찬가지인데 생강이나 마늘, 고추를 넣은 음식을 먹으면 온몸이 화끈거리고 땀이 나지만 실제로 체온이 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운맛 음식을 먹었을 때 인체의 반응은 체온이 상승했을 때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마치 정말 열이 나는 것처럼 땀을 흘린다. 생강을 먹는다고 해서 다른 음식을 먹은 것 이상으로 체온이 높아지지는 않지만, 추운 겨울날이면 따끈한 생강차 한 잔이 생각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느낌만 따뜻해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가.

생강을 먹는다고 해서 다른 음식을 먹은 것 이상으로 체온이 높아지지는 않지만, 추운 겨울날이면 따끈한 생강차 한 잔이 생각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생강의 체온 상승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지만, 한국인들은 겨울철에 따끈한 생강차를 자주 마시면 추위와 감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적 욕망의 변화
생강에는 나무향, 레몬향, 민트향을 내는 향기 물질이 풍부하다. 레몬과 생강은 특히 그 풍미가 잘 어우러져서 꿀과 함께 차로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매운맛에 더해 달콤한 향기도 지니고 있어, 디저트의 풍미를 높이는 목적으로도 자주 사용된다.
각종 향신료를 세계에 전파시킨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생강과 그 사촌격인 갈랑갈(galangal)이 요리에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들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 서구 식문화에서는 생강의 사용 범위가 디저트나 음료로 좁아졌다. 대량 수입으로 희소성이 떨어진 후추와 생강이 이제는 더 이상 상류층의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18세기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된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의 영향으로 귀족과 부르주아가 ‘식재료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게 고상한 취향’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자 메인 음식에는 자극적 향신료의 사용이 줄고, 단맛과 감칠맛의 구분이 시작되었으며, 뒤이어 짠맛과 감칠맛 중심의 식사 뒤에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는 방식의 코스가 나타났다. 이러한 구분은 사회·문화적 변화일 뿐 미식의 차원에서 깨뜨리면 안 되는 법칙은 아니다. 유럽에서도 아시아의 향신료가 상대적으로 늦게 도입된 지역에서는 아직도 요리에 향신료를 많이 첨가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고추, 마늘과 함께 생강의 자극성 강한 맛이 한식과 중식을 비롯한 아시아 음식에서 식재료 본연의 맛을 가린다는 불평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현대 서구 식문화에 치우친 편협한 관점에서 음식을 바라보는 것에 불과하다. 중세 유럽에서의 과도한 향신료 사용이 음식 맛의 향상보다는 신분 과시용이었던 것처럼 이후 향신료 사용이 줄어든 현상 또한 미각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욕망의 변화에 따른 결과이다.
서구의 기준으로 아시아의 음식을 평가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문화가 만들어 낸 다른 맛을 즐기는 것이 좋다. 기실 미식가에게는 생강을 넣은 음식이든, 넣지 않은 음식이든 맛있는 법이다. 다양성이야말로 삶의 양념이지 않은가.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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