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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SUMMER

생활

이 사람의 일상 다정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은 꿈

다수의 고객들은 친절하다. 그러나 전화통 건너 말 한마디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래서 자신들만의 치유법으로 다친 마음을 달래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마의자를 판매하는 회사의 콜센터에서 3년째 일하는 장윤영(Jang Yoon-young 張允瑛) 씨도 그러하다.

3년 차 콜센터 직원 장윤영(張允瑛) 씨가 고객의 전화에 응대하고 있다. 그는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기 전까지 하루 평균 100통의 전화 통화를 한다.

장윤영 씨는 오전 7시 40분에 일어난다. 8시 20분에 집에서 나오면 25분 후 회사에 도착한다. 15분 동안 커피를 타는 등 업무 준비를 시작한다. 정각 9시,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고객만족팀 장윤영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는 하루 평균 60통의 문의 전화를 받고,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사은품과 주의할 점 등을 안내하는 전화를 40통 정도 건다. 고객들에게서 걸려 오는 문의는 대부분 주문한 제품의 배송에 관한 것이다. 안마의자는 배송 기간이 1주일에서 10일 정도 걸린다. 당일 배송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매우 긴 시간이다. 배송을 재촉하는 이들에게 그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한 가지밖에 없다.

“00일 이내 배송 예정이며, 정확한 일정은 해당 지역 배송팀에서 직접 연락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100명 중 80명은 “사정은 알겠지만, 그래도 빨리 받고 싶다”고 말한다. 곱지 않은 말로 불평을 늘어놓는 이들도 있지만, 친절하게 설명하면 대부분 납득한다. 윤영 씨는 자신이 하는 말을 경청하는 사람과 말이 통하는 사람을 ‘좋은 고객’으로 분류한다. 반면에 100명 중 18명은 ‘나쁜 고객’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불평을 늘어놓기 위해 전화를 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냐, 어디서 그따위 변명을 늘어놓는 거냐 하면서 막무가내로 고함을 지른다. ‘최악의 고객’은 100명 중 2명 정도이다. 이들은 거침없이 욕을 퍼붓고 성희롱도 서슴지 않는다.

매일 아침 9시에는 ‘나쁜 고객’을 만날 확률이 매우 높다. 전날 저녁부터 참았던 화를 터뜨리기 위해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다. 월요일 9시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주말 내내 시계만 노려보고 있던 이들이 억눌렀던 불씨를 폭발시킨다. 윤영 씨에게 월요일 아침은 ‘한 주의 즐거운 시작’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윤영 씨가 하루 동안 상대하는 사람들 중 20퍼센트 정도는 불쾌하고 모진 말로 마음에 상처를 주곤 한다. 그 힘겨움을 덜기 위해 그는 가끔 일기를 쓴다.

악명 높은 근무 환경
오전 업무가 끝나는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다. 아침 식사를 거른 윤영 씨는 식당으로 향하는 대신 조용한 공간을 찾아 몸을 숨긴다. 두유 하나와 삶은 달걀 하나로 텅 빈 위장을 달랜 후 눈을 감고 잠시 잠을 청한다. 그에게는 목소리가 사라진 공간, 듣거나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 한 끼 밥보다 절실하다. 육체 노동자가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듯 감정 노동자는 소진된 감정을 채울 침묵이 필요하다. 오후 근무를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지금 회사에는 2017년 11월 23일에 첫 출근을 했어요. 콜센터가 문을 연 직후여서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직원도 부족했죠. 이틀 교육받고 바로 업무를 시작했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하고 일단 끊은 다음 선배에게 물어본 뒤 일 처리를 했죠. 콜센터는 근무 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어요.”

입사 후 한 달쯤 지났을 때 그 ‘악명’을 제대로 실감할 계기가 왔다. 한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당장 보내지 말고 나중에 보내라고 했다. 그래서 “언제 보내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갑자기 욕을 해댔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윤영 씨가 무슨 말을 하든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욕을 했다. 결국 “험한 말을 쓰셔서 상담을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렵겠습니다” 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아야 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회사를 나와 근처 놀이터로 갔다. 그네에 앉아 한참 울었다는 윤영 씨는 지금도 그 목소리와 전화번호를 기억한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가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있다. 부당하고 불합리하고 불공평함에서 오는 불행이 쌓이면,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 이유를 찾는다.

“무턱대고 욕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소리 지르면 일이 해결되는 경험이 많았기에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것일 테고요.”

그는 거친 고객들과 맞닥뜨릴 때마다 그들의 입장과 생각을 헤아려 보려 애쓰고 있다. 원하는 것이 있거나 불만이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이 직업의 특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 재미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질문은 그녀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런 일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수고한다고 말해주거나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어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고객의 말투와 숨소리만 들어도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슬펐던 일은 기억나는가? 한숨과 더불어 돌아온 대답이다.

“강아지가 안마의자에 앉아 있는 걸 모르고 작동을 시켰다는 고객이 있었어요. 가엾게도 강아지는 구하지 못했어요. 부모님이 쓰시던 걸 자기 집으로 옮겨 달라는 전화도 받은 적이 있어요. 원래 사용하시던 분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겠죠. 한번은 고층 아파트에 사다리차로 안마의자를 운반하는데, 의자가 떨어지면 어쩔 거냐고 주인이 항의를 하는 바람에 배송하는 기사님이 사다리차에 같이 탔다가 떨어진 일도 있었어요.”

그에게는 목소리가 사라진 공간, 듣거나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 한 끼 밥보다 절실하다. 육체 노동자가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듯 감정 노동자는 소진된 감정을 채울 침묵이 필요하다.

COVID-19 때문에 친한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포옹할 수 없는 요즘, 그는 펭수 인형으로 허전함을 달랜다.

스트레스 해소법
즐겁게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윤영 씨는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료에게 ‘이상한 전화를 걸어온 이상한 고객’ 이야기를 하다가 고소를 당한 콜센터 직원이 있었다. 그 ‘이상한 고객’이 하필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콜센터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윤영 씨가 일하는 곳에도 그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졌다. 동일한 직종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이 하얘질 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모르는 고객을 상대하는 직업이니 아무리 불쾌하거나 억울한 일이 생겨도 그저 마음속에 처박아두거나 잊어버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했다.

“욕을 듣고 울고 나서도 다음에 걸려온 전화는 반갑게 받아야 해요. 계속 전화가 오기 때문에 잠시 밖에 나가서 마음을 달랠 수도 없죠. 그래서 마음 상하는 전화를 끊고 나면 혼잣말을 하게 돼요.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자기 자리에 앉아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고 있죠.”

그러나 오후 6시 정각이면 어김없이 그날의 일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퇴근 시간이 되면 쾅, 문을 닫듯 마음을 닫고 스위치를 내린다.

윤영 씨는 스트레스를 마음에 품고 있지 않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사무실에 향수를 여러 종류 가져다 놓고 이것저것 뿌려요. 냄새가 달라지면 공기가 달라지고, 그걸로 기분전환이 돼요. 퇴근 후 직원들과 술 한잔하면서 쌓인 걸 푸는 날도 있지만, 요즘은 대체로 집에 일찍 들어가요.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넋 놓고 있는 시간이 절실하기도 하니까요.”

현실에 대한 긍정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니기 시작한 첫 직장에서 10년 동안 그는 호락호락한 직원이 아니었다. 상대가 세게 나오면 자신도 세게 나갔고, 하고 싶은 말도 거리낌 없이 했다. 그때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는 것이 좋다. 얼마 전에는 안마의자에 문제가 생겨 A/S를 신청하는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접수를 받고 알아보니 미수금이 있었다. 미수금을 먼저 납부해야 한다고 안내를 했더니 “코로나19에나 걸려서 죽으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몇 달 전 갑자기 세상을 등진 동생과 홀로 남겨진 엄마가 떠올랐다. 그날 밤,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안을 수 없는 요즘 60cm 키의 펭수 인형을 안고 다닌다. 보드랍고 가볍고 둥근 그 애를 안고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면 힐링이 된다. 숨 쉬기가 힘든 것이 KF94 마스크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성대는 늘 건조해 부어 있고, 오후만 되면 다른 목소리가 된다. 목젖이 사과만큼 부어서 침 삼키기가 힘들다. 물론 목젖은 멀쩡하다. 그냥 가끔 뜨겁고 단단한 무엇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 봐 꿀꺽 삼키는 기분을 말한 거다. 오늘은 한 고객이 나에게 “코로나19에나 걸려서 죽으세요”라고 악담을 했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 하나밖에 안 남은 자식인데, 죽으라니.

윤영 씨는 어릴 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나 쓰고 싶어 하지만 쓰지 못하는 것을 쓰면서,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다정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의 꿈이다. 순간순간이 그리 행복하지도 않고, 훈장을 달아줄 만큼 거룩하지도 않은 하루하루가 반복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온 인생의 어느 한 점을 비틀고 싶지는 않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해 탄식을 늘어놓거나 하지 못한 일에 미련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놓고 싶지도 않다.

“인간이 바뀌지 않는 이상,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세상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겠죠.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어요. 그래도 주어진 모든 시간 동안 잘 해내고 싶어 나도 모르게 열심히 살게 되는 것, 그게 인생이라고 믿어요.”

황경신(Hwang Kyung-shin 黃景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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