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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3 SPRING

자기다움을 완성해 가는 젊은 공예가들

김민욱(Kim Min-wook, 金敏旭), 배세진(Bae Se-jin, 裵世眞), 양유완(Yang Yoo-wan 楊宥婉)은 공예의 본질적 가치에 천착하면서 새로운 시도에도 주저하지 않는 젊은 공예가들이다. 이들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노동과 사유의 흔적이 깊게 배인 작업실을 찾아갔다.


목공예가 김민욱은 벌레가 파먹거나 뒤틀리고 갈라진 나무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작품 안에 녹여 낸다. /
유리공예가 양유완의 작품은 비정형, 유리 안의 기포가 특징으로 이는 자신의 단점을 창의적으로 승화시킨 결과이다. /
도예가 배세진은 자신의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일련번호를 찍은 작은 블록들을 촘촘히 붙여 기물을 만든다.
김민욱
나무의 시간을 읽는 목공예가

김민욱에게 목공예란 재료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가진 본연의 물성과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작업실 한쪽 구석에 놓인 작품과 재료들. 그는 부산 해운대에 마련한 작업실 키미누(QI MINU)에서 주문 제작 가구 일과 작가로서 자신의 작업을 병행한다.



김민욱은 시간의 흔적이 드러나 있는 목재를 선호한다. 벌레가 지나가며 만든 작은 구멍과 패턴, 거친 비바람과 반복되는 자연 건조로 인해 갈라지고 뒤틀어진 모습, 곰팡이균이 침투해 일으킨 스팔팅(spalting)의 검은 얼룩들을 매력적으로 느끼며 이런 불완전한 모습을 그대로 존중한다. 그래서 특정 기술로 나무를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자연의 순리대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자 비바람을 맞추며 보관한다.작업을 하다 보면 오래전 재단한 나무에서도 가끔 벌레가 나오는데, 그럴 때면 공예의 소재 중 나무만이 유일하게 다른 생명체를 품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감탄한다. 디자인이나 용도에 중점을 두기보다 나무의 물성을 잘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껍질을 벗겨내고 난 뒤에야 드러나는 나무의 속사정이 궁금해 속도감 있게 나무를 깎을 수 있는 목선반 작업을 선호한다. 변형이 심하고 손상이 커서 작업이 까다로울수록 그 과정이 더 즐겁다.김민욱이 목선반 작업으로 각각의 나무가 품고 있는 사연을 풀어놓았다면 그다음은 또 자연의 몫이다. 1차 가공된 작업물은 자연 건조를 통해 다시 한번 변화를 겪는다. 갈라졌던 부위가 더 깊어지기도 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형태가 기울어지기도 한다. 그런 나무의 몸부림을 지켜보다가 변형이 심할 경우에는 작은 금속을 덧대어 형태를 잡아준다. 그렇게 변화하는 나무의 움직임을 매 순간 조율해 나가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다.전업 작가로 활동한 지 이제 9년 차가 된 그는 2019년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어워드 최종 수상자 4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공예 분야의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렉서스코리아의 프로그램이다. 또한 2022년에는 로에베 공예상 파이널리스트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작가라고 칭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다고 한다. 자신은 그저 나무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중계자일 뿐이라고 생각해서다.맞춤 정장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서울 생활에 지쳐 한때 이민을 준비했다고 고백한다. 그러자면 기술이 있어야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목공 기술을 배우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경기도 일산에서 동업자와 맞춤 제작 가구 일을 3여 년간 하고 고향 부산으로 내려온 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여러 편집숍에서 작품을 판매하고, 좋아해 주는 팬들이 생겼을 정도로 작가로서 입지를 다진 상태다.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주문 제작 가구 일을 받는다. 그럴 때는 고객 맞춤형 디자이너로 변신해 말끔하고 단정한 디자인의 가구를 만든다. 작가로서도 주문 제작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로서도 그는 고집을 부리는 법이 없다. 작가일 때는 나무의 이야기에, 디자이너일 때는 고객의 요청에 귀 기울인다. 그런 그가 그리고 있는 유일한 꿈은 언젠가 자신의 생각을 나무에 조금 보태어 조각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이다. 혹여 그것이 욕심일까 봐 먼 훗날로 미루어 놓긴 했지만 말이다.

목공예를 독학으로 터득한 김민욱은 참나무로 제작한 작품 <본능적(Instinctive)>을 통해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배세진
노동을 찬미하는 도예가

배세진은 조형 작업을 하기 전 블록들을 만들어 일련번호를 찍는다. 34만 5,700까지 도달한 이 번호는 작업에 바친 그의 순수한 노동과 묵직한 시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징표다.




공예의 매력 중 하나는 작업자의 노동과 시간이 결과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얄팍한 속임수나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도예가 배세진도 그렇다. 그는 일련번호가 찍힌 작은 블록들을 촘촘히 붙여 기물을 만들거나 때로는 회화 같은 평면 작업도 선보인다. 대학교 3학년이었던 2008년, 번호 1로 시작한 이 작업은 15년이 흐른 지금 34만 5,700까지 도달했다.

1999년 서울대학교 미대에 진학한 작가는 학교생활에 그다지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나마 연극 동아리 활동 덕분에 학교에 정을 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하는 형편 때문에 일찍 휴학을 하고, 웹디자인 회사와 전시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면서 저녁에는 극단 홍보 일까지 했다. 극단 일은 수입에 그리 보탬이 되지는 않았지만, 매일 저녁 연극을 볼 수 있어 고맙고 행복했다. 그는 스물일곱 살이 되어서야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

도예 기법은 크게 물레, 캐스팅, 핸드 빌딩(판 작업과 코일링)으로 나뉜다. 다양한 기법을 익히는 동안 작업 방식에 이런저런 변화가 계속 생기는 게 일반적인데, 그는 일찌감치 자신에게 맞는 방식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한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도자 기초 수업 과제로 판 작업을 하는데 선배 하나가 지나가며 “잘했다”고 칭찬을 던졌다. 그 한마디가 그를 도예가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도예의 재미에 빠져 작업을 하면 할수록 도자 작업은 시간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자는 흙이 마르는 시간, 가마 안에서 구워지는 시간을 조절하거나 통제하지 못한다. 극복할 수 없는 물리적 시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가 존재하는 일이었지만, 이 또한 대부분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그는 시간의 숙명에 순응해야 하는 자신의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블록을 만들고 그 블록마다 일련번호를 찍는 것이었다. 작품명에 붙은 숫자는 그 작품에 들어간 블록의 일련번호를 뜻한다. 또한 작품명에는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말도 항상 들어가는데, 그가 좋아하는 동명의 연극에서 따온 것이다. ‘고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끝없이 기다리는 한 인물의 삶이 무엇이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흙과 불의 시간을 오롯이 기다리는 도예가의 기다림과 닮았다.

배세진은 서울 필동(筆洞)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공예•디자인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도자 수업을 진행한다. 올해로 7년 차가 되었다. 젊은 작가들이 공방을 운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작품 판매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 역시 작품 활동을 위해 생계 수단으로 공방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공예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공예가가 오래도록 활동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그는 소명 의식을 갖고 수준 높은 도예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데 힘쓰는 중이다. 안목 있는 소비자들이 늘어야 공예 생태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 WFG 282260-284565_1 > . 2019. 33 × 33 × 35 ㎝.그의 작품 제목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를 뜻하는 알파벳과 함께 작품에 쓰인 조각들의 일련번호들로 구성된다.

배세진은 안목 있는 소비자들이 늘어야 공예 생태계가 활성화된다는 생각에 서울 필동(筆洞)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도자 수업을 진행한다.

양유완
유난한 실험을 즐기는 유리공예가

몇 년 전부터 젊은 공예가들 사이에서 작가와 디자이너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개성을 강조하며 작품 세계를 펼치는 작가 활동과 브랜드와의 협업 제품 또는 시장성을 고려한 대량 생산 라인을 선보이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모두 해내는 것이다. 유리공예가이자 디자인 스튜디오 모와니 글라스(Mowani Glass)의 대표인 양유완도 그런 작가 중 하나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은 물론 뷰티, 리빙, 다이닝 등 여러 분야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브랜드 성격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의 결과물을 선보인다.블로잉 기법을 활용해 결과물을 만드는 그의 작품은 비정형, 다양한 소재의 결합, 유리 안의 기포가 특징이다. 특히 비정형과 기포는 자신의 단점을 승화시킨 결과다. 블로잉을 하는 유리공예가들은 대개 기술이 미숙해 기포가 생긴다고 여기고 불량품으로 치부한다. 기포를 완벽하게 없애기가 어려웠던 작가는 생각을 바꾸었다. 의도적으로 기포를 많이 만들어 이를 패턴화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비정형 또한 기포와 비슷한 맥락에서 탄생했다. 좌우 대칭이 일치하지 않는 게 매력인 달항아리처럼 비정형도 보는 각도에 따라 인상이 달라져 시각적 재미를 준다.양유완은 나무, 도자, 금속 등 다양한 소재에 대한 실험에도 적극적이다. 대학 시절 그는 도자로 된 볼과 유리 뚜껑을 결합한 합(盒)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 덕분에 우수 학생으로 선발되어 밀라노디자인위크에 나가고, 영국 민트 갤러리와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이를 계기로 유리와 타 소재를 결합해 보거나 도자 유약이나 옻칠 기법, 동박(銅箔) 기법을 활용해 색을 표현하는 등 자신만의 차별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브랜드 컬래버레이션에서도 그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실행해 가는 과정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기회로 작동한다. 일례로 세계적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설계한 분더샵 청담점을 위해 만든 펜던트 조명도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기포로 가득 찬 7개의 유리 막대를 한데 묶은거대한 조명을 천장에 매달고 싶다는 주문을 받고, 필요한 전문 지식을 적절히 적용하고 해결법을 제안해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유리를 활용해 물을 표현해 달라는 스파 브랜드 스위스퍼펙션의 의뢰로 만든 작업물은 그릇 디자인으로 이어져, 새로운 형태의 접시나 소스 볼 등에 적용해 보기도 했다.양유완이 운영하는 브랜드 모와니 글라스는 대량생산 라인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동료들과의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그가 다양한 실험과 프로젝트를 해나갈 수 있는 저력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력에서 나온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디자인 대학에 들어갔고 우연히 접한 유리공예에 빠져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디자이너의 프로그래밍 능력과 다양한 재료에 대한 호기심, 공예가의 손기술과 감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앞으로 유리공예를 주축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블로잉 기법을 활용한 유리 소품과 가구, 나아가 공간 디자인까지 시도할 계획이다.

건물 3층에 마련된 양유완의 작업실은 작업장과 리빙룸으로 공간이 구획되어 있다. 작가의 사적인 휴식 공간인 리빙룸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선반에는 자신의 작품들뿐 아니라 여행하면서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들이 놓여 있어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달받는다.

작업장 한쪽 테이블 위에 놓인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화병들. 양유완은 나무, 도자, 금속 등 소재에 대한 실험에도 적극적인데, 이를 통해 유리공예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은영(Park Eun-young, 朴恩英) 자유기고가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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