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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SUMMER

“새로운 삶 준 한국, 제2의 고향이죠”

스롱 피아비(Sruong Pheavy)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당구 선수로 손꼽힌다. 한국에 온 지 10년 차, 한 남자의 아내를 넘어 이제는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내세울 수 있게 된 그녀는 노력으로 가득 채운 시간이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캄보디아를 떠나와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스롱 피아비 씨는 남편의 권유로 당구를 시작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3쿠션 프로 당구 선수가 되었다. 그녀는 당구를 시작하기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삶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3월 11일 경기도 일산 JTBC스튜디오에서 열린 ‘SK렌터카 PBA-LPBA 월드챔피언십 2023’ LPBA 결승전에서 스롱 피아비 선수가 월드챔피언으로 등극했다. 높은 벽으로만 여겼던 김가영(Kim Ga-young 金佳映) 선수를 제치고 거머쥔 트로피였기에 그녀에게는 더욱 의미가 남달랐던 경기였다. 세트스코어 4-3으로 승리를 확정 지은 이번 경기를 두고, 당구 팬들은 길이길이 남을 명승부라며 극찬을 이어갔다.

월드챔피언십 우승자 되다

“이번 월드챔피언십 우승은 그랜드슬램이라는 데 의미가 있어요. 저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정말 믿을 수 없었죠. 승리의 여운이 계속 남아 경기가 끝난 후에도 혼자 펑펑 울었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순간이 머릿속에서 스쳐 갔어요.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제 삶의 순간들, 그 마지막에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제가 있었죠.‘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무도 알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 승리가 정말 감사했습니다.”

월드챔피언십에 최종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피아비 선수는 “큰 승리가 사람에게 주는 자신감은 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여러 승리를 손에 쥐어봤지만, 챔피언십 승리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는 의미였다.

“예선부터 정말 힘들게 올라갔어요. 올라갈수록 몸도 마음도 부담도 커졌어요. 긴장감이 엄습할 때는 잘 때 가슴이 아파 잠을 못 이룰 정도였죠. 자고 일어난 후에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한두 시간 혼자 깊게 숨을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해야 했어요. 워낙 긴장하다 보니 몸도 제 몸 같지 않더라고요. 원래 아무리 긴장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당구는 미세한 손의 방향으로 승부가 나는 게임인 만큼, 긴장으로 인한 손 떨림은 경기에서 큰 위기였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그녀의 매니저도 “결승전을 치를 때 보니, 김가영 선수는 워낙 경험이 많아 전혀 떨지 않더라. 반면 스롱 피아비 선수는 손이 떨리는 게 멀리서도 보일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당구는 자세가 결승을 판가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긴장해서 손을 덜덜 떨고 있으니 마음이 어땠겠어요. 덜덜 떠는 스스로를 보면서 저는 더 긴장되고, 긴장하니 손은 더 떨리고…. 악순환이었죠.”

하지만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꼭 부여잡고 경기에 임한 결과 그녀는 월드챔피언십 우승 소식을 고국의 부모님께 전할 수 있었다.

 


처음 접한 당구로 인생의 새 길 열다

지난 3월 열린 ‘SK렌터카 PBA-LPBA 월드 챔피언십 2023’여자부에서 우승을 한 스롱 피아비 선수가 트로피를 들고 세러머니를 하고 있다.
ⓒ 박용선(朴龍先)

이번 월드챔피언십 경기에 이르기까지 스롱 피아비 선수는 수많은 경기를 거쳐 왔다. 2010년 한국에 온 후 2011년에 당구를 배우기 시작해 여자 당구 3쿠션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었다. 이후 2017년 프로로 데뷔한 그녀는 데뷔 10개월 만에 국내 1위라는 랭킹을 차지했다. 무섭도록 빠른 그녀의 성장에 국내 당구계는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라는 국적 때문인지 이미 업계에서는 그녀의 존재감을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빠르게 순위권을 탈환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제가 낯선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었겠어요. 저도 제 삶에 큰 기대가 없었는데 당구를 만나면서 모든 게 달라졌죠. 뭔가를 기대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자 작은 가능성이라도 붙들고 싶었어요. 당구를 시작한 후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에만 매진할 수 있던 이유죠.”

어마어마한 연습량 때문에 집에 돌아온 후에는 팔이 아파 밥숟가락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남편 김만식(金晚植) 씨는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런 노력이 있어야 당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약한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다.

“남편의 권유로 시작한 당구인 만큼 남편은 저를 정신적으로 강하게 키웠어요. 제게 당구를 알려준 스승은 따로 있지만, 남편은 제 멘탈코치인 셈이었죠. 사실 결혼 후 남편과 다른 일로 싸운 적은 없는데 오로지 당구 때문에 싸웠어요. 제 시합을 보고 난 후 ‘왜 그렇게 쳤냐’,‘더 얇게 쳐야지’, ‘그때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저 선수 잘하는 것 좀 봐라’라며 어찌나 혹독하게 몰아붙이던지요. 그럴 땐 저도 화나서 ‘그렇게 잘하면 당신이 쳐봐라’라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제게 말하는지 아니까 귀담아들으려고 했죠. 남편은 제게 정말 고마운 사람이에요.”

그녀가 처음 당구장에 갔던 순간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당구가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싶어 당시의 기분을 물었지만, 그녀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냥 당구장이었어요.” 남편을 따라 처음 간 당구장에서 딱히 인상적인 느낌은 없었다고 했다. 그저 당구를 치는 남편을 조금 지루하게 기다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낸 게 전부였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처음 당구장에 온 아내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제가 가만히 앉아 남편을 기다리는 게 미안했는지 와서 한번 쳐보라고 하더라고요. 알려 준 대로 쳤을 뿐인데 남편은 제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나 봐요. 그날 집에 오더니 ‘당구선수 할래?’라고 묻더라고요. 하지만 전 싫다고 했어요. 당구선수 해 봤자 돈만 쓰지 정작 돈은 못 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양국에 필요한 사람 되고파

처음 접한 스포츠와 언어 장벽, 고강도 연습 등으로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던 수많은 순간에도 그녀가 큐를 놓지 않은 이유는 캄보디아의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 박용선(朴龍先)

남편은 피아비 씨를 부단히 설득했고, 결국 그녀는 큐를 잡기 시작했다. 남편이 사 준 3만 원짜리 큐를 들고 그때부터 당구장에서 하루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당구를 시작하긴 했는데 말이 안 통하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스승님이랑 여러 대화를 자유롭게 하고 싶은데 한국말이 부족하니 서로 그림을 그려가며 소통했어요. 몇 년 후에는 저도 한국말이 좀 늘기 시작했고, 좀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됐죠.”

처음에는 억지로 시작한 당구였지만, 나중에는 스스로를 엄격히 대하며 훈련에 임했다. 그러자 그녀의 실력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스롱 피아비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남편이 요즘 저를 보면 ‘미안했다’라고 말해요.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도 포기하지 않아서 고맙다고요. 물론 저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캄보디아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겨냈어요. 한국에 오고 나서 제 고향인 캄보디아가 얼마나 가난한지 더 크게 체감했거든요.”

피아비 씨의 집 한 켠에는 캄보디아 아이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나는 이들을 위해 살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한국에서 꿈을 이룬 자신처럼, 캄보디아의 아이들이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을 적은 것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컴퓨터도 할 줄 몰랐는데, 남편이 알려줘서 컴퓨터를 시작했어요. 인터넷에 접속한 후 캄보디아의 실상을 알 수 있었어요. 여기 와서 보니 내 나라가 이렇게 가난하구나 싶어 펑펑 울었어요. 그런 저에게 남편이 말했죠. ‘당구선수로 성공해서 유명해지면 돈도 많이 벌어서 캄보디아 아이들 도울 수 있어’라고요. 그동안 제 가족만 돕는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가족을 넘어 캄보디아의 많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그 말이 제게 큰 위안을 주었어요. 그 이후로 캄보디아 아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피아비 선수는 우승으로 받은 상금을 차곡차곡 저축해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보내고 있다. 구충제와 학용품 등을 고향의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시작으로 고향 땅에 학교를 짓는 게 그의 꿈이다.

팬들의 응원 덕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그녀는 “힘들 때 팬들의 한마디와 응원이 정말 큰 힘이 됐다. 어젯밤에도 팬들의 댓글을 읽으며 울었다. 내가 혼자 여기까지 온 것 같지만, 사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도와 여기까지 왔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한국과 캄보디아, 양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앞으로 캄보디아에 스포츠센터를 건립하고 싶다는 스롱 피아비 선수. 당구로서는 한 개인이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이룬 만큼, 이제 더 큰 가치를 찾아 나아가고 싶다는 그녀는 캄보디아의 스포츠 인프라를 개선해 고향 땅의 아이들이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도록 돕고 싶다고 전했다.


황정은(Hwang Jung-eun 黃淨垠) 작가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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